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953화 (953/1,000)
  • 외전 79화 친해지길 바라 (2)

    그 뒤로도 약간의 시간이 더 흘렀다.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는 유튜뷰에서 개최하는 연말 시상식에 와 있었다.

    <31층 L3101호-유튜뷰 연말 시상식>

    이산하는 들뜬 표정으로 홀에 입장했다.

    흰 보자기가 덮인 원형의 테이블들이 즐비한 홀.

    커다란 샹들리에에 반사된 불빛들이 이곳저곳에 화려한 빛을 뿌리고 있다.

    작지만 또렷하게 들리는 클래식 음악이 잔잔하다.

    정장을 입은 직원들이 기념품이 담긴 가방을 나누어 주고 있는 것이 보였다.

    “‘눈누난나내가니누나네’님이시군요. 자리를 빛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산하는 직원의 안내를 받아 지정석으로 가 앉았다.

    이우주와 솔레이크는 유튜뷰 스트리머가 아니었지만 게스트 신분으로 정식 초청을 받은 몸이었다.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가 앉아 있는 너머로 행사는 계속 진행된다.

    시작은 유튜뷰의 역사와 그간의 성장폭, 그리고 이념과 기치 등의 설명회.

    유튜뷰의 창업주와 역사, 그리고 그간의 성장폭들이 그래프와 연표로 쭉 설명된다.

    그 밑으로는 투자액과 앞으로의 전망, 신사업 계획 등이 발표되었다.

    그 뒤로는 스트리머들의 소개가 이어졌고 여러 가지 명목의 시상식이 열린다.

    “AA부분 최우수상에······.”

    “BB부분 인기상에······.”

    “CC부분 금상에······.”

    .

    .

    수많은 이들이 상을 받고 자기만의 인생역전 스토리를 늘어놓는다.

    자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지금 이 자리가 얼마나 영광된지, 지금 심정이 얼마나 기쁘고 얼떨떨한지.

    그리고 그들에게는 모두 화려하고 값비싼 상품이 수여되었다.

    사회자는 유쾌한 어조로 외쳤다.

    “아! 예전 같았으면 금두꺼비 두 돈, 세 돈 이런 것들을 상품으로 많이 썼는데요. 요즘 트렌드는 그게 아니죠! 유가 폭등, 주식 폭등으로 인해 금값이 자꾸만 떨어지고 있는 이 상황에서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는 상품! 그러면서도 독특하고 유니크한! 그런 것들을 오늘 준비해 봤습니다! 바로……! 가! 상! 화! 폐! 입니다! 폭락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금값보다는 역시 요즘 떠오르고 있는 코인이……!”

    USB에 담겨져 있는 가상화폐가 상품으로 지급된다.

    “세상이 많이 변하긴 변했구만. 상금을 코인으로 주고.”

    “누나, 왜 그렇게 늙은이처럼 말해.”

    “나는 No 코인충. 금이나 현금을 More 선호.”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는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며 시상식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그들의 주요 관심소재는 오늘의 유튜뷰 시상식 자리가 아니었다.

    “그나저나. 다들 그건 어떻게 생각해?”

    “…….”

    “…….”

    이산하가 묻는 것은 분명했다.

    죠르디. 조디악 번디베일의 딸.

    ‘……내가 요 근래 쬐끔 고전하고 있었던 던전이 하나 있거든. 함께 클리어해 줄 수 있을까?’

    그녀가 어렵사리 꺼낸 부탁이었다.

    “걔를 믿을 수 있을까?”

    이산하의 질문에 이우주는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는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우리를 방해하려면 얼마든지 방해할 수 있었고. 심지어 우리를 구해 준 적도 있잖아.”

    “맞다. 흑해의 무영왕 때. 걔 아니었으면 전멸. 믿음이 간다. 약간이지만.”

    솔레이크 역시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한다.

    이산하는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렸다.

    “좋아. 그러면 한번 믿고 가 보자. 근데 죠르디 정도 되는 녀석이 클리어를 못 하고 쩔쩔매고 있었다는 건…….”

    “던전의 난이도가 보통이 아니라는 얘기겠지.”

    “기대된다. expected.”

    세 사람의 의견이 하나로 모이는 순간이었다.

    *       *       *

    한편.

    “…….”

    죠르디는 혼자 게임에 접속해 있는 상태였다.

    발밑에는 젖거미와 긴칼비늘 킹코브라 등의 수많은 몬스터들이 쓰러진 채 죽어 있다.

    죠르디는 지친 기색으로 고개를 떨궜다.

    약 12시간 전. 죠르디는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도와줄 거면 일주일 뒤 오후 1시까지 ‘숨죽이는 평원’으로 와.’

    그녀는 그 말만 남기고 도망치고 후다닥 로그아웃했었다.

    그들이 도움 요청을 수락할지 거절할지, 직접 귀로 들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껏 수많은 레이드를 거치며 죠르디는 내심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를 친구로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쪽은? 그쪽의 생각은?

    ‘나만 친구로 생각했던 거면 어쩌지?’

    죠르디는 그 점이 불안했다.

    태어난 이후 단 한 번도 친구라는 것을 가져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공부를 잘해 늘 성적이 우수했고 손꼽히는 명문대학에도 진학했지만 학교에서는 늘 겉돌았다.

    병석에 누워 있는 아빠와 일 때문에 늘 바빠 보이는 엄마를 제외하면 일상의 사소한 일들을 말할 만한 사람도 없었다.

    죠르디는 눈을 감고 머릿속에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들과 레이드를 계속 함께 뛰고 싶었다.

    현실에서도 만나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은 처음이었다.

    함께 있을 때면 자연스러웠고 즐거웠다.

    시간이 너무나도 빨리 흘러갔고 때로는 헤어지는 것이 아쉬울 때도 있었다.

    그들을 만나기 전까지 혼자였던 시간이 훨씬 더 길었지만 어째서인지 함께했던 시간이 더 길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이 모든 것이 죠르디에게는 처음 있는 일이었고 또 낯선 것이었다.

    ‘……안 도와줄 거면 그냥 무시해도 되고.’

    그래서 새빨개진 얼굴로 이렇듯 서툴고 수줍게 덧붙일 수밖에 없었다.

    과연 그들이 와 줄까?

    죠르디는 약속 시간보다 2시간이나 먼저 접속했다.

    그리고 멀찍이 떨어진 곳에 숨어서 약속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

    ……하지만.

    시간이 흘러 오후 1시가 되었지만 아무도 접속하지 않았다.

    죠르디는 먼저 온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수풀에 숨은 채로 생각했다.

    ‘내가 너무 빨리 온 것일 거야. 나의 나쁜 버릇 중 하나지.’

    ‘코리안 타임이라는 말도 있다잖아. 조금 늦을 수도 있지.’

    ‘저번에 남녀탐구생활 때 문제에서도 그랬어. 남자들은 지각이 예사라면서?’

    ‘……이러다가 안 오는 거 아냐?’

    ‘아니야. 아니야. 나쁜 생각은 하지 말자. 레이드 때 우리 제법 분위기 좋았잖아.’

    그러나.

    오후 1시가 지나 2시, 3시가 되어도 약속장소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

    죠르디는 그 자리에 서서 자그마치 6시간을 더 기다렸지만 그때까지 그 누구도 오지 않았다.

    뚝-

    물방울 하나가 죠르디의 턱 끝에서 떨어져 내렸다.

    죠르디는 울고 있었다.

    자신의 마음은 그저 자신의 마음일 뿐, 그것이 받아들여지는가의 문제는 전혀 다른 것이다.

    내가 남을 생각한 만큼 남은 나를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사실을 모를 만큼 어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상처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후두둑- 후두둑- 후두둑-

    이제는 비까지 쏟아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약 8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그렇지. 내 주제에 친구는 무슨.”

    결국 죠르디는 쓸쓸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바로 그 순간.

    “아니 약속 시간까지 5시간이나 남았는데 왜 벌써 가겠다는 거야? 으으, 숙취 때문에 머리 깨질 것 같구만.”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축 처져 있던 죠르디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귀가 저절로 쫑긋 섰다.

    “숨죽이는 평원에는 귀찮은 필드보스들이 많잖아. 만나기 전에 미리 청소해 두자는 거지. 어차피 회의를 하려면 몬스터들을 한번 싹 정리해 놔야 해.”

    “오후 1시. 레이드 한판 뛰고 만나면 딱이다. 회의 장소 choice 굿. 산하. 게을러.”

    그토록 듣고 싶었던 다른 목소리들도 들려온다.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그들이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죠르디는 눈물이 왈칵 치솟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너, 너희들……!”

    그러자 맨 앞에 있던 이산하가 흠칫 놀란다.

    “어? 뭐야? 너 왜 이렇게 일찍 왔어?”

    “나, 나도 방금 왔다.”

    “방금 오긴. 약속 시간까지 아직 5시간이나 남았구만.”

    “……?”

    이산하의 말에 죠르디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고개를 갸웃한다.

    그때, 이우주가 물었다.

    “혹시…… 시차 계산 안 한 거야?”

    “……!”

    죠르디는 그제야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뜬다.

    그렇다. 한국과 미국은 약 13시간의 시차가 있다.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가 약속시간에 약속장소로 오지 않은 것은 시차 때문에 시간이 달라서 그랬던 것이었다.

    “나, 나도 안다! 다 계산했다! 그냥…… 그냥……!”

    죠르디는 울면서 웃었다.

    두 손으로 눈을 쓱쓱 비비면서 웃었다.

    *       *       *

    -<서큐버스 퀸의 알현> / 주문서 / S

    초고위 악마가 있는 ‘어떤 장소’로 통하는 순간이동 주문서이다.

    강력하고도 오만한 샛별의 힘이 담겨있기에 ‘격’이 떨어지는 이는 감히 사용할 수 없다.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

    네 사람은 델라에게 받은 주문서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 레벨은 72인데. 다들 레벨 어떻게 되십니까?”

    “나. 솔레이크. 레벨. 72.”

    “나는 74야.”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의 시선이 이우주에게로 향한다.

    <이우주>

    LV: 63

    이우주의 현재 레벨은 63.

    단기간에 참 무지막지하게도 많이 올렸다 싶다.

    하지만 그래도 옆에 있는 세 여자들에 비하면 레벨이 10가까이 차이가 나고 있는 실정이었다.

    “우주의 레벨이 너무 낮아서 주문서를 쓰기에는 무리가 있지 싶은데.”

    이산하의 말대로였다.

    -띠링!

    <이 주문서는 레벨 제한이 있습니다.>

    <레벨 70미만 사용불가 아이템.>

    주문서를 찢으려 하면 이와 같은 알림음이 뜬다.

    ‘격’에 맞지 않는 자는 쓸 수 없다는 아이템 설명과 꼭 부합하는 것이었다.

    파티장인 이산하가 말했다.

    “어차피 이 주문서를 바로 쓸 수는 없는 거네. 우주 레벨이 7정도 오를 만한 던전을 몇 번 돌고 가야겠어. 단기간의 폭렙이니 만큼 난이도가 높은 던전을 골라야겠지?”

    “그게 바로 죠르디가 말했던 던전. 딱이다.”

    솔레이크 역시도 맞장구를 쳤다.

    어차피 이우주의 레벨을 올리기 위해 레이드를 뛰어야 한다면 기왕지사 죠르디가 혼자서 애먹었던 던전에 도전하면 좋을 일이다.

    이윽고, 죠르디가 입을 열었다.

    “원래 내가 혼자서 공략해 보려고 했던 히든 던전이 있어.”

    “뭐가 사는 곳인데?”

    이우주가 묻자 죠르디는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르파닉.”

    “……!”

    죠르디의 말에 모두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아르파닉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위험등급 S랭크의 몬스터들 중에서도 최상위 티어에 속하는 개체값을 지닌 몬스터 중의 몬스터다.

    황금룡 아르파닉.

    황금룡 오메가닉과 함께 태양룡 바이어스의 왼팔과 오른팔로 통하는 용 계열의 마물.

    과거에 있었던 3차 대격변 당시 ‘어비스 터미널’을 통째로 붕괴시켰던 초엘리트 몬스터이다.

    “그 녀석 역시도 황금비늘 일족 중 하나지?”

    “태양룡 바이어스를 제외하면 가장 강력한 용 위상이야. 분명 중간보스들도 있을 테니 레이드에 성공만 한다면 7렙쯤은 간단할지도.”

    “아르파닉. 동영상에서 봤다. 엄청 강하다. 근데 이 정보. 어디서 Get?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는 동시다발적으로 죠르디를 쳐다보았다.

    죠르디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는 과거 아빠가 레이드를 뛰었던 ‘싸움 나락’에 갔던 적이 있어. 그곳에서 무투룡 카프카타렉트의 오른팔이었던 ‘흰 용 프란츠’, 그놈의 라이벌에 대한 간략한 기록을 찾았지.”

    흰 비늘 일족과 황금 비늘 일족은 대대로 사이가 좋지 않다.

    싸움 나락의 사회자 프란츠와 그의 라이벌인 아르파닉.

    서로 라이벌 관계였던 용 계열의 두 S급 몬스터.

    죠르디는 그 아르파닉이 근거지로 삼고 있는 던전의 위치를 알아내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이우주가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레벨업도 할 겸 겸사겸사 황금비늘 일족의 세력도 약화시킬 수 있겠군. 아빠도 그랬었어. 죽음룡 오즈를 상대하기 전에 그의 부관들을 먼저 잡아 뒀지. 최후의 결전에서 적이 왼팔과 오른팔을 사용하지 못하게끔 말이야.”

    “적의 차(車), 적의 포(包). 미리 떼어 놓는다. 좋은 전략.”

    솔레이크 역시도 이우주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마지막으로 이산하가 자신의 의견을 냈다.

    “내 활시위 말이야. 태양의 힘을 사용해야 제작할 수 있다면서? 황금룡 아르파닉도 결국 태양룡 바이어스의 권속이니까 뭔가 좋은 재료 아이템을 주지 않을까? 기대되는데 이거.”

    모두가 이산하의 인벤토리 속에 담겨있는 ‘항아의 머리카락’을 바라보았다.

    -<‘가공된’ 항아의 머리카락> / 재료 / S

    항아가 살아생전에 길게 길렀던 머리카락.

    지금은 좋은 샴푸와 린스, 그리고 미용사를 만나 예전의 생기를 되찾았다.

    하지만 태양을 향한 올곧은 마음이 깃들어 있어서 태양의 힘이 아니면 다른 것으로 가공할 수 없는 듯하다.

    -특성 ‘융합’ 사용 가능 (특수)

    결국 모두의 필요성이 하나로 모였다.

    이우주는 레벨을 올려야 했고 이산하는 활시위를 제작해야 했다.

    죠르디는 오래 전부터 애먹고 있던 던전이 있었고 솔레이크는 아무래도 좋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그 대상이 공통적으로 향할 수 있는 대상은 바로 황금비늘 일족의 ‘황금룡 아르파닉’이었다.

    “그럼 가자.”

    죠르디는 칼을 빼들며 씩씩하게 말했다.

    “황금룡의 숨겨진 던전으로.”

    꽤나 로망이 있는 대사가 아닐 수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