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951화 (951/1,000)
  • 외전 77화 여자에게 있어 머리카락이란 (5)

    옛날 옛적에 가난하지만 서로를 아끼며 사랑하는 부부가 있었다.

    남자의 자랑거리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금시계였으며 여자의 자랑거리는 길고 아름다운 갈색 머리카락이었다.

    어느 해의 크리스마스, 여자는 남편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지만 가난한 그녀의 수중에는 겨우 1달러 87센트뿐이었다.

    그녀는 아주 오래 전부터 남편의 시계와 어울리는 고급 시곗줄을 머릿속에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적은 돈으로는 남편에게 선물할 만한 근사한 시곗줄을 살 수 없었다.

    결국 여자는 자신의 보물이자 자랑거리였던 긴 머리카락을 잘라서 20달러에 팔고 그 돈으로 시곗줄을 샀다.

    하지만 남편은 이미 아내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 자신의 시계를 팔아서 멋진 머리빗을 샀고 그 사실을 숨기고 있는 상태였다.

    여자는 자신의 민머리를 보고 실망한 표정을 짓는 남편의 마음을 잠시 오해하지만 이후 서로가 준비한 선물을 꺼내 보이면서 이러한 오해는 일단락된다.

    남자는 더 이상 시계를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그 대신 무엇보다 값진 시곗줄을 받았고 여자는 더 이상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그 대신 무엇보다 값진 머리빗을 받았다.

    이런 모순적인 상황 속에서 둘은 서로를 끌어안은 채 진실한 사랑을 느끼게 된다.

    - 『The Gift of the Magi』 中 -

    *       *       *

    <서큐버스 퀸 ‘델라’> -등급: S / 특성: 어둠, 이상성욕, 레이디 퍼스트, 양자택일, 침어낙안(沈魚落雁), 반전(反轉), 백전노장, 불완전변태

    -서식지: 악의 고성.

    -크기: 1.7m.

    -머리카락을 잃고 흑화(黑化)한 하급악마.

    단지 머리카락이 사라졌을 뿐이건만 세상의 시선은 180도 변해버렸고 이에 절망하던 끝에 강력한 힘을 손에 넣었다.

    본디 유약한 하급악마에 불과했던 ‘델라’는 이제 마(魔)의 계보에 정식으로 이름을 올린 지고한 존재가 되었으며 그녀의 진명을 알게 된 자는 곧이어 엄습하게 될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몽마의 여왕 ‘델라’.

    그녀는 떨리는 시선으로 고개를 들었다.

    화톳불의 빛을 반사해 찬란하게 빛나는 민머리.

    손에 들고 있는 것은 거대한 가위다.

    짐. 뷰티 헤어살롱 ‘The Gift of the Magi’의 총지배인.

    그는 눈앞에 있는 유극두피 악령을 향해 여느 때와 다름없는 대사를 말했다.

    [……서큐버스 퀸의 머릿결이 세상 제일이라던데.]

    그 말에 델라의 시선이 다시 한번 흔들렸다.

    그녀는 머리카락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자신의 머리를 생각하고는 시선을 바닥으로 떨군다.

    바로 그때.

    [누구의 머리카락이 세상 제일이라는 거냐!?]

    유극두피 악령이 버럭 화를 냈다.

    [저 민머리 계집의 머리카락 따위는 이제 이 세상에 있지도 않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머릿결은 바로 나의 머릿결이다! 두려움에 떨어라!]

    악령의 머리카락이 또다시 거대한 창들을 만들어 낸다.

    이윽고 수없이 많은 창이 짐을 향해 쏘아져 갔다.

    그러나.

    퍼퍼퍼퍼퍼펑!

    그 수많은 머리카락들 중 짐의 몸에 닿는 것은 단 한 올도 없었다.

    [미용사가 머리카락을 두려워할 수는 없지.]

    짐의 가위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악령의 머리카락을 커트하기 시작했다.

    촤촤촤촤촤촤촤촤촥!

    거침없는 가위질에 그토록 빠르고 변화무쌍하던 머리카락 창들은 속절없이 베어져 나갔다.

    “이럴 수가! 유극두피 악령의 변화무쌍한 공격 타이밍을 어떻게 계산하는 거지!?”

    “저 시계 덕분인 것 같군.”

    이산하의 질문에 이우주가 대답했다.

    이우주는 짐의 손목에 채워져 있는 금빛의 시곗줄과 시계를 보고 있었다.

    째깍째깍째깍째깍……!

    금시계는 악령이 공격하는 타이밍을 정확하게 계산해서 알려 준다.

    짐은 어떤 머리카락이든지 다룰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던 바와 같이 악령의 머리카락도 문제없이 커트하고 있었다.

    “……과연 세계제일의 미용사.”

    이우주는 그 광경을 보며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퍼퍼퍼퍼펑!

    곳곳에 머리카락 파편들이 흩날린다.

    악령은 이를 악물었다.

    [크윽! 커트 솜씨가 제법이구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를 쓰러트릴 수는 없다!]

    동시에, 악령의 몸을 감싸고 있던 머리카락들이 빳빳한 바늘처럼 변했다.

    절대의 방어력을 자랑하는 바늘 갑옷, 마치 무쇠를 깎아 내어 만든 듯 단단하고 까칠한 모양새.

    가까이 닿는 모든 것을 구멍투성이로 만들어 버릴 듯한 외관이었다.

    그러나.

    [세상의 그 어떠한 머리카락이라고 해도 내 빗을 거치면 아름답게 찰랑거리게 되지.]

    짐은 바늘처럼 변한 악령의 머리카락을 보면서도 피식 웃을 뿐이다.

    이윽고. 짐의 등 뒤에 가려져 있던 거대한 빗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름다운 금빛을 뿜어내고 있는 빗.

    그곳에는 ‘For Della’ 라는 글귀가 음각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짐은 이 거대한 빗을 두 손으로 들고 온 힘을 다해 휘둘렀다.

    …콰콱!

    황금빗에 찍힌 유극두피 악령은 크게 당황했다.

    빗의 이빨 사이를 스쳐 간 머리카락은 다시 부드럽게 찰랑이는 머릿결로 되돌아왔기 때문이다.

    [마, 말도 안 돼! 내 경화(硬化) 머리카락을!? 마, 마치 매직 펌이라도 한 것 같잖아! 1만 도의 고데기로도 펼 수 없는 내 머리카락을 대체 어떻게……!?]

    빗살 사이에 껴서 꼼짝도 할 수 없게 된 악령을 짐은 스산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용사로서 이런 말은 실격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름다움에 있어서 머리카락의 결은 중요치 않다.]

    [뭣!? 무슨 헛소리를……!?]

    [머릿결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씨야. 내 아내는 마음씨가 비단결이거든.]

    짐은 대사를 끝맺음과 동시에 들고 있던 빗과 가위를 동시에 휘둘렀다.

    …번쩍!

    빗과 가위가 X자로 교차함과 동시에.

    [끄아아아아아아악!]

    유극두피 악령은 어마어마한 기세로 찢어져 소멸해 버렸다.

    파스스스스스스스……

    몇 줌의 머리카락 가루로 변해 흩날리는 악령.

    “커트보가 없는 것이 조금 아쉽군.”

    짐은 앞치마에서 커다란 스펀지를 꺼내 몸에 묻은 머리카락 가루들을 털어 내기 시작했다.

    툭툭툭-

    이목구비부터 조심조심 시작해서 귀 뒤에서 목까지 시원스럽게 탁탁!

    이발의 마무리 동작을 모두 마친 짐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서큐버스 퀸 델라가 서 있었다.

    […….]

    […….]

    두 남녀는 한동안 그렇게 서로를 마주보았다.

    장시간 이어진 침묵을 먼저 깬 쪽은 남자였다.

    짐은 어색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아까 오던 길에 희미하게나마 들었어. 당신의 목소리.]

    델라는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나는 그 표정을 본 순간 직감했다. 그는 내가 아니라 내 머리카락을 사랑했던 것임을. 그래서 그 견딜 수 없는 상처를 잊기 위해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준비한 선물상자를 바닥에 떨어트린 채, 그렇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짐은 물기 어린 시선으로 델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두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꼭 붙잡은 채 말했다.

    [오해야, 델라. 내가 그때 실망한 표정을 지었던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었어.]

    짐은 자신의 황금 빗을 앞으로 내밀었다.

    자신의 금시계를 팔아서 샀던 빗, 아내 델라의 보물이었던 아름다운 머릿결을 위해 준비했던.

    […….]

    그리고 이내 델라의 시선은 짐의 손목을 향했다.

    그동안 시계 없이 그의 손목에 채워져 있었던 시곗줄, 시계가 있어야 할 자리가 까맣게 타 있고 시곗줄이 있어야 할 자리만 하얀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시계 없이 시곗줄만 차고 있었을지 짐작이 간다.

    짐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빗을 선물하려고 했는데 당신의 머리카락이 없어졌으니 당황했지. 악마의 머리카락은 자라는 데에 오래 걸리잖아.]

    [……바보야.]

    [당신이 떠나고 난 뒤 선물상자 속에서 시곗줄을 발견하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머리카락은 또 왜 그래.]

    [하하. 당신을 따라 해 봤어. 남자나 여자나 머리빨인 것은 똑같다는데, 우리는 그런 거 없이도 예쁘고 잘생겼으니까.]

    짐의 말을 듣고 있던 델라의 눈시울도 붉어진다.

    그와 그녀는 서로의 손을 잡았다.

    [시계는 왜 팔았어 이 바보야. 그거 당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유품이잖아.]

    [그러는 당신은 머리카락을 왜 팔았어. 당신의 머리카락이야말로 세상 제일이었는데.]

    [당신에게 뭔가를 해 주고 싶었어.]

    [내가 할 말이야.]

    [시곗줄만 있으면 무슨 소용이람.]

    [빗만 있으면 무슨 소용이람.]

    ……결국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짐과 델라 말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던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에게서 말이다.

    “뿌애애애애애애앵! 두 분 행복하십쇼!”

    “흐헝흫헣. 감동. 나 오열. 3초전. 3, 2, 1…….”

    “……크흠. 훌쩍! 크흐흠. 훌찌럭! 크흠쓰- 흐으으읍! 으욱! 읍!”

    세 여자가 두 남녀를 격렬한 반응으로 축복해 주고 있을 때.

    “……쳇. S급 몬스터 둘을 놓친 건가.”

    살인자의 백과사전을 펼친 채 대기타고 있었던 이우주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와! 이 사이코패스! 그 와중에 우리 델라 언니 특성 빼앗으려고 대기타고 있었던 것 좀 봐! 야 이 못된 막타충아! 너는 감성도 없냐!”

    “뭐래. 나는 누나처럼 불성실하지 않다고. 레이드 뛰러 왔으면 레이드를 뛰어야지 왜 멜로드라마를 찍고 있는 거야, 대체. 누가 NPC고 누가 플레이어인지 모르겠군.”

    이산하의 지적을 듣고 투덜거리는 이우주의 귓가로 순간 알림음들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띠링!

    <세계 최초로 ‘서큐버스 퀸 델라’ 레이드에 성공하셨습니다!>

    <세계 최초로 ‘유극두피 악령’ 레이드에 성공하셨습니다!>

    <최초 정복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이름을 남기시겠습니까? YES: 이우주, 눈누난나내가니누나네, 0개국어능력자, (계정정보없음)>

    <보상이 지급됩니다!>

    <히든 퀘스트 ‘동방박사의 선물(The Gift of the Magi)’을 완료하셨습니다!>

    <미용사 ‘짐 더 제임스 델링햄’의 히든 퀘스트 수행 [1/1]>

    <※이 퀘스트는 메인 퀘스트 ‘3차 대격변-용마동맹(龍魔同盟)’과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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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찌되었든 간에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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