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950화 (950/1,000)
  • 외전 76화 여자에게 있어 머리카락이란 (4)

    [호호호호- 머리카락도 없는 것을 여자라고 할 수 있나?]

    서큐버스 퀸의 등을 찌른 것은 창처럼 뭉친 머리카락이었다.

    그녀의 뒤에는 또 다른 악마가 서 있었다.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기르고 있는 악마.

    하지만 몸 전체가 머리카락으로 수북하게 덮여 있어서 외형은 알 수가 없었다.

    “뭐야 저 털복숭이는?”

    “빅풋? 예티? 사스콰치?”

    “기분 나쁘게 생겼는데…….”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새로이 나타난 악마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유극두피 악령> -등급: S / 특성: 어둠, 하수인, 하극상, 살금살금, 뺑소니, 반전, 매복, 기습, 배신, 암살자

    -서식지: 악의 고성, 샛별의 성

    -크기: 3.8m.

    -머리카락이 모여 탄생한 악마.

    전신을 뒤덮고 있는 아름다운 머릿결을 자부심으로 삼고 있다.

    선천적으로 아름다운 머릿결을 타고나는 몽마 일족과는 라이벌 관계이다.

    아름다운 머릿결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너무 과하다는 느낌을 주는 몬스터 디자인.

    하지만 악령의 대사는 상당히 깨는 것이었다.

    [너 같이 못생긴 것은 죽어야 해. 그렇게나 추한 헤어스타일을 하고도 뻔뻔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니.]

    대사로 미루어 짐작건대 상당한 나르시스트 같아 보인다.

    녀석은 서큐버스 퀸을 향해 못된 말을 퍼붓고 있었다.

    [그 잘난 머리카락도 결국 가발이었나? 호호호- 비참하기 그지없군.]

    [너 같은 녀석은 악마라고 불릴 자격도 없어. 아니, 그 전에 여자라고도 할 수 없지.]

    [루시퍼 님께서 말씀하셨다. 내 머리카락은 델라, 네년 다음이라고. 나는 그것을 인정할 수 없었어. 그리고 결국 내 판단이 옳았던 거야. 이 추한 년!]

    그러자 서큐버스 퀸은 핏물을 뱉으며 이를 악물었다.

    [내게 이런 짓을 하고도 루시퍼 님께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나? 하극상은 중죄일 텐데?]

    [호호호- 하극상? 그것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저지르는 건데? 내가 네 아래야? 황당한 말을 하네. 그리고……]

    악령은 퀸에게 조소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루시퍼 님은 이미 알고 계시는데?]

    [……!?]

    [애초에 내가 여기를 왜 왔겠어? 너를 제거하려고 온 거야. 루시퍼 님의 명령을 받아서 말이야.]

    [거짓말 하지 마라!]

    [이런, 안타깝지만 거짓이 아니야 델라.]

    악령은 계속해서 이죽거렸다.

    [루시퍼 님께서도 방금 전에 알아 버리셨어. 네 머리카락이 가발이었다는 것 말이야.]

    [……!]

    [잘 알잖아. 남자들이란 원래 여자의 머리카락에 많이 집착한다는 것. 이미 겪어 본 적도 있으면서 뭘.]

    과거의 상처를 헤집는 폭언에 서큐버스 퀸의 표정이 한번 더 일그러졌다.

    [루시퍼 님께서는 네게 많이 실망하셨어, 델라. 그렇게 추한 머리 모양을 하고도 어떻게 몽마의 여왕으로 군림할 수 있겠어? 이것은 모두를 속이는 일이잖아?]

    […….]

    [넌 추하고 못생겼고 볼품없어. 루시퍼 님께서도 이제는 너를 경멸하시게 되었지. 생각해 봐. 네 유일한 자랑거리였던 것이 머리카락이었잖아? 하지만 너는 사실 빡빡이였고.]

    […….]

    [루시퍼 님께서는 네 매력적인 머리카락을 아껴 너를 간부로 삼으셨는데. 너는 그분의 사랑과 신뢰를 배신한 거야. 이 추하고 역겨운 대머리야.]

    악령은 퀸을 향해 높은 목소리를 내며 비웃었다.

    [그리고 뭐, 솔직히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충고하는데. 머리카락을 잃었으면 그냥 죽는 게 낫다고 봐. 솔직히 왜 사니? 그 머리꼴로.]

    서큐버스 퀸은 언제인가부터 악령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입가에서 피를 뚝뚝 떨어트리고 있을 뿐이다.

    눈물이 섞인 피를.

    ……바로 그때.

    퍼-억!

    유극두피 악령의 몸에 ㄱ자로 꺾였다.

    [켁!?]

    악령은 난데없이 옆구리로 날아든 충격에 저 멀리 날아가 나동그라졌다.

    콰콰쾅!

    돌기둥 몇 개를 부수며 날아가 처박힌 악령을 보며 퀸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

    그리고 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저 털쟁이 자식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풍성충. OUT.”

    “머리카락만 예쁘면 다냐? 머리카락도 예쁘면 좋은 거지.”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 3인방이 살기를 풀풀 뿜어내며 서 있었다.

    “방송 꺼. 오늘 저 털투성이 놈 제대로 담근다.”

    “저 녀석. 닮았다. 우리 집 고양이. 어제 저녁에 토해 냈던. 헤어볼.”

    “미추의 기준도 편협하고 심성도 못된 놈이네. 플레이어 대 몬스터의 관계를 떠나서 왠지 화가 나.”

    이윽고, 세 여자와 유극두피 악령과의 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제기랄! 이 못생긴 것들이 감히 반항이냐!?]

    “머리카락이랑 입술밖에 없는 괴물한테 얼평받고 싶지 않다!”

    “요즘은 예쁘거나 잘생겼다고 해도 불편한 사람 많다.”

    “그런데 그 와중에 부정적인 평가를? 그만큼 죽고 싶으시다는 거지!”

    얼평. 얼굴 평가.

    이것만큼 초면에 사람을 빡치게 하는 무례한 행동이 또 있을까?

    이산하의 저격과 솔레이크의 골렘 펀치, 그리고 마지막으로 죠르디가 내리긋는 참격이 유극두피 악령의 머리카락 창과 팽팽한 접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제야 레이드를 제대로 뛸 마음이 들었구나. 전후사정이 어쨌든 말이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우주가 참전했다.

    이우주는 예리한 눈썰미로 악령이 휘두르는 머리카락 창의 패턴을 파악했다.

    “강약약강강강약강중약. 놈의 공격 패턴을 알아냈다!”

    이우주의 오더에 세 여자는 힘차게 돌진했다.

    ……그러나.

    과연 S급의 벽은 높은 것이었다.

    [호호호호- 못생긴 것들이 눈썰미는 있구나. 하지만 이건 어떨까?]

    악령은 머리카락의 수를 곱절로 늘렸다.

    아까보다 더욱 더 복잡하고 다채로운 공격패턴들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수없이 뒤엉켜 오는 머리카락들의 향연에 이산하가 짜증난다는 듯 외쳤다.

    “으윽! 남의 머리카락이 휘감겨 오는 것만큼 싫은 게 또 없는데…… 동생! 패턴 분석은 멀었어!?”

    “으음. 이번 것은 나도 감이 잘 안 잡혀.”

    이우주는 드물게도 자신 없는 내색을 보였다.

    “악령이 공격해 오는 타이밍을 정확히 판단하기가 힘들어. 분명 1초 내외인데, 그 1초 사이에서도 시간적인 어긋남이 있어서 그 포인트를 정확히 짚어 내기가 어려워. 분석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듯한데…….”

    “으아아! 우주! 이러다 죽겠다! 이 머리카락. 엄청 질기고 단단!”

    “시간이 별로 없을 것 같긴 해!”

    솔레이크와 죠르디 역시도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유극두피 악령은 비웃음 가득 섞인 고음으로 외쳤다.

    [호-호호호호호! 내 머리카락은 강철도 두부처럼 꿰뚫는다구! 경도도! 강도도! 탄성도! 매력도! 뭐 하나 빠지지 않는 초특급 머리카락이라 이거야!]

    바로 그때.

    퍼-엉!

    그토록 자부심 넘치던 악령의 공격이 일순간 뚝 멎었다.

    “……!”

    “……!”

    “……!”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깜짝 놀라야 했다.

    서큐버스 퀸 ‘델라’.

    그녀가 피투성이의 몸을 이끌고 세 여자의 앞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악령이 소리쳤다.

    [네, 네년! 감히 적의 편을 드는 것이냐!? 배신을 하겠다는 게야!? 못생긴 외모만큼이나 마음씨도 추하구나! 대체 무슨 생각이냐! 이 사실을 루시퍼 님이 아신다면……!]

    하지만 서큐버스 퀸은 악령의 말을 조금도 듣지 않고 있었다.

    다만, 그녀는 눈앞에 있는 세 여자를 바라보며 씁쓸하게 웃고 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내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마웠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너희들은 이제 적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구나. 어쩐지 그래.]

    “어, 언니!”

    “나도 그렇다!”

    “…….”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이윽고, 서큐버스 퀸이 말했다.

    [……가라.]

    그것이 그녀가 남긴 마지막 대사였다.

    이윽고.

    [죽어! 이 살 가치도 없는 못생긴 년!]

    유극두피 악령이 머리카락을 뻗어 하나의 창을 만들어 냈다.

    그것은 지금 서큐버스 퀸의 몸에 박혀 있는 수많은 창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훨씬 더 거대한 크기였다.

    천장에서 형성된 창은 천천히 서큐버스 퀸을 향했고 이내 엄청난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안 돼! 언니!”

    “막아야 한다!”

    “……제길! HP가 얼마 안 남았어!”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가 황급히 반격을 하려 했지만 S급 몬스터의 필살기 앞에서는 속도도 힘도 모두 비교불가였다.

    이우주 역시도 이를 악물었다.

    “제길. 하다못해 보스 몬스터의 공격 타이밍만 정확히 계산할 수만 있었어도……!”

    바로 그때였다.

    뎅겅-

    변칙적인 타이밍으로 밀려 들어오던 유극두피 악령의 머리카락이 싹둑 잘려 나간 것은 말이다.

    “어엇!?”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가 동시에 경악했다.

    특히나 이우주는 크게 놀라고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공격이 들어올 타이밍을 정확히 계산할 수 있었지? 올림픽에서 쓰는 디지털 초시계로도 안 되던 건데?”

    이우주는 옆에 띄워 둔 초시계 스크린으로도 잡아낼 수 없었던 유극두피 악령의 고스피드 공격을 막아낸 의문의 공격에 당황했다.

    물론 가장 크게 당황하고 있는 것은 유극두피 악령 본인이었다.

    [꺄아아아아악! 이게 뭐람!? 무슨 일이야! 누가 내 공격을 막았어!? 게다가 내 머리카락을 잘라 내다니! 최강의 강도와 경도를 가진 내 아름다운 머릿결을 누가 감히!?]

    악령은 싹둑 잘려 나가고 없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보며 팔딱팔딱 뛰고 있었다.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위를 향한다.

    참격이 날아온 쪽은 동쪽 문.

    그곳에서는 작은 소리 하나가 규칙적이고 반복적으로 들려오고 있었다.

    째각- 째각- 째각- 째각- 째각- 째각- 째각-

    화톳불의 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회중시계가 하나.

    그것은 아름답게 세공되어 있는 금시계였다.

    -<줄 없는 손목시계> / 재료 / S

    금으로 만들어져 있는 최고급 시계로 어떤 상황에서든 완벽하게 정확한 시간을 알려준다.

    누군가가 급한 사정 때문에 매물로 내놓은 듯하다.

    어디서 많이 본 시계.

    그리고 그 시계로 시간을 재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어머? 형편없는 머릿결이네. 내가 아는 한 머리카락에 비하면 말이야.]

    어지간한 대검의 몇 배나 될 정도로 거대한 가위를 들고 있는 남자.

    …반짝!

    그의 머리 역시도 불빛을 받아 금시계만큼이나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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