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949화 (949/1,000)
  • 외전 75화 여자에게 있어 머리카락이란 (3)

    그 후에 엘리사는 여리고를 떠나 벧엘로 올라갔는데 가는 도중에 성에서 아이들이 나와 그를 조롱하며 '대머리야, 꺼져라! 대머리야, 꺼져라!' 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이때 엘리사가 돌아서서 그들을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자 숲속에서 암콤 두 마리가 나와 아이들 42명을 찢어 죽였다.

    -열왕기하 2:23-25-

    *       *       *

    …번쩍!

    주변을 휩쓸어가는 칠흑의 아우라와 함께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의 눈앞으로 이상한 상태창 하나가 떠올랐다.

    ……오잉!? ‘서큐버스 퀸’의 상태가……?

    그것은 상위종으로의 ‘진화’를 알리는 빛기둥이었다.

    -축하합니다! ‘서큐버스 퀸’는(은) ‘서큐버스 퀸 [델라]’(으)로 진화했다!

    서큐버스 퀸은 가발을 벗고 그 안에 숨겨져 있었던 진면목을 드러냈다.

    교태, 애교, 여우짓 등으로 표현되곤 하는 위장들을 모두 벗어 버린 그녀.

    <서큐버스 퀸 ‘델라’> -등급: S / 특성: 어둠, 이상성욕, 레이디 퍼스트, 양자택일, 침어낙안(沈魚落雁), 반전(反轉), 백전노장, 불완전변태

    -서식지: 악의 고성.

    -크기: 1.7m.

    -머리카락을 잃고 흑화(黑化)한 하급악마.

    단지 머리카락이 사라졌을 뿐이건만 세상의 시선은 180도 변해버렸고 이에 절망하던 끝에 강력한 힘을 손에 넣었다.

    본디 유약한 하급악마에 불과했던 ‘델라’는 이제 마(魔)의 계보에 정식으로 이름을 올린 지고한 존재가 되었으며 그녀의 진명을 알게 된 자는 곧이어 엄습하게 될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위험등급이 한 단계 치솟아 오르며 상태창 역시도 바뀌었다.

    쿠-오오오오오!

    진명(眞名)을 드러낸 그녀의 전투력은 몇 배로 폭증한 상태였다.

    “……!”

    이우주는 ‘서큐버스 퀸 델라’의 특성들 중 하나에 주목했다.

    특성: <불완전변태>

    ↳ HP가 0이 되었을 때 1개의 목숨을 추가로 획득하며 모든 스탯이 10배 증가합니다.

    ※이 특성은 딜레이 없이 즉각 발동합니다.

    ※되살아난 직후의 HP는 1초당 1%씩 감소합니다.

    ※되살아난 직후의 시야는 붉은 색으로만 표시되며 피아를 구분할 수 없습니다.

    ‘베르세르크(berserkr)’. 잃을 게 없는 자만이 발동할 수 있는 광전사 모드.

    “어엇!? 저건 아빠가 사용하던 핵심 특성들 중 하나야!”

    “알아. 부유섬에서 ‘여덟 다리 대왕 큘레키움’을 잡고 얻었던 특성이군.”

    이산하의 말에 이우주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제 서큐버스 퀸 델라의 목숨은 채 100초도 남지 않았다.

    서큐버스 퀸이 가진 몽마 특유의 엄청난 자연 회복량을 감안하면 시간이 약간 늘어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결국에는 초읽기였다.

    그러나.

    [그 안에 너희들 쯤은 전부 쳐 죽이고도 남는다!]

    델라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마력장을 뻗어 내 이우주를 요격했다.

    콰콰콰콰쾅!

    뜨거운 정열을 형상화한 듯한 불길이 날아들어 돌기둥과 돌바닥을 노린다.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린 석재들이 뻘건 용암이 되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아스모데우스의 하위호환인가. 어마어마하군.”

    이우주는 이를 악물었다.

    시간은 이쪽의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100초. 무려 100초다. 그 시간만큼 버텨야 승리할 수 있다.

    누군가는 ‘겨우 100초?’ 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막상 이 상황에 처한 입장에서는 ‘100초씩이나?’ 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것이다.

    이 정도로 절대적인 힘을 저쪽에 부여한 이상 시간은 오히려 저쪽 편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힘을 합쳐 델라의 마법에 저항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으아아아! 삼손은 머리카락 자르면 힘을 잃는데, 얘는 왜 더 쎄지는 거냐고!”

    “머리카락. 잃다. 여자. 분노. 뜨겁다! 요동친다! 하트!”

    “어, 엄청 감정적이 되었는데? 마법 난사 패턴도 무작위가 되어서 오히려 전보다 훨씬 까다로워졌다고!”

    그 전까지 서큐버스 퀸의 주 공격패턴이었던 머리카락 뱀이나 채찍은 강력하긴 하지만 속도가 미묘하게 느리고 공격 패턴도 비교적 단조로웠기에 상대하기 수월했지만…….

    콰-콰콰콰콰쾅!

    지금 쏟아져 내리는 화염구들은 마치 슈팅액션게임의 극악 난이도를 보는 것처럼 시야 전체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이우주는 이를 악물며 외쳤다.

    “저런 엄청난 힘에 제약이 없을 리가 없어! 분명 제한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을 거야! 조금만 더 버티면……!”

    그러나. 벼락처럼 울리는 서큐버스 퀸의 절규에 의해 이우주의 말은 중간에 끊겼다.

    [내 머리가 그렇게 보기 흉하냐? 그래! 그렇겠지! 마음껏 비웃어라! 여자에게 있어 머리카락은 목숨처럼 귀한 것! 그것을 잃었으니 나는 여자로도 보이지 않겠지! 호호호호!]

    서큐버스 퀸은 그동안 쌓아 왔던 울화를 모조리 토해 내고 있었다.

    “……애초에 머리카락이 뭐라고 이 난리지?”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있는 이우주와는 달리.

    “맞아. 여자는 머리빨이지 확실히. 나는 매일 아침, 그리고 방송 전에 1시간씩 꼭 손질한다구. 이게 죄다 잘린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해.”

    “머리카락. 중요하다. 나의 친구. 벗. 소울메이트.”

    “아무리 몬스터라지만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이해가 되네. 왜 타락했고 왜 폭주하는지.”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나름 서큐버스 퀸의 사연에 공감을 하는 듯했다.

    이윽고 서큐버스 퀸이 울먹이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사연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하급 악마이던 시절. 나는 외모도 별로고 목소리도 별로인, 그저 그런 몽마일 뿐이었다.]

    그것은 악의 고성의 보스 서큐버스 퀸이 가지고 있었던 설정이자 비하인드 스토리였다.

    [하지만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던 내게도 유일한 자랑거리였던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머리카락이었지.]

    서큐버스 퀸의 목소리에는 복잡한 회한의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그것은 듣는 이를 절로 잡아끄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홀린 듯 그녀의 사연에 빠져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어느 날 사랑에 빠졌다. 하찮은 몽마에 불과하던 나를 참 끔찍이도 사랑해 주던 남자였어.]

    서큐버스 퀸의 눈에 물기가 어린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며 아름다운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어느 날의 기념일, 그 관계는 끝나 버리고 말았지, 너희들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내 머리카락 때문이었다.]

    “어머.”

    “어쩜.”

    “그럴 수가.”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화염구를 피하는 것도 잊은 채 서큐버스 퀸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그 와중에 서큐버스 퀸이 만들어 내는 불덩이는 세 여자에게 닿지 않고 있다.

    “어이! 불덩이가 왜 나한테만 떨어지는 거야!”

    이우주가 항의했지만 서큐버스 퀸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다음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나는 하급 악마였기에 가난했고 또 비루했다. 그래서 내 남자, 내 정인에게 줄 변변찮은 선물 하나도 살 수가 없었지.]

    “서, 설마?”

    [그 설마가 맞다. 나는 나의 유일한 자랑거리이자 재산이며 보물이었던 머리카락을 잘라서 팔았다.]

    유일한 자랑거리이자 자존감의 원천이었던 머리카락.

    여자는 그것을 잘라 내며 대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의외로 후회는 들지 않았다. 이것을 팔아서 그에게 좋은 선물을 해 줄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아무런 상관도 없었어. 나의 전부를 바치고 싶은 마음이었지.]

    요부(妖婦)의 겉모습 뒤에는 이토록 지고지순하고 순수한 사랑이 있었던가.

    어느새인가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의 눈에는 촉촉한 물기가 어리고 있었다.

    “언니…….”

    “왤케 순수함…….”

    “응원하고 싶군…….”

    한편.

    “아니! 왜 나한테만 불덩이 떨구냐고! 으아아!”

    이우주는 아까부터 계속 화염구를 피하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지만 네 여자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서큐버스 퀸은 대사를 계속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좋지 않았다.]

    “헉. 언니 왜요?”

    “무슨 일이냐. 왜.”

    “남자 반응이 어땠길래!”

    [선물을 준비해 남편의 퇴근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불안했지. 선물을 준비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대머리가 된 나를 본 그의 마음이 어떨지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거야. 나는 머리카락이 없으면 아무런 매력도 없는걸.]

    “그게 어때서! 언니는 대머리여도 예뻐!”

    “선물. 준 게 어디냐. 무조건 감사하십시오 휴먼.”

    “머리카락 팔아서 산 선물이면 울면서 절해야지. 마음이 더 중요한 건데…….”

    [하지만 남자들의 마음은 그게 아니더군.]

    “서, 서, 설마!?”

    “이런 쳐 죽일!”

    “남자 반응이 어땠는데?”

    걸즈토크가 계속 이어진다.

    서큐버스 퀸은 물기 어린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나는 보았다. 퇴근길의 끝에서 방문을 열었을 때, 나의 민머리를 보고 할 말을 잃어버린 그의 얼굴을.]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울음을 터트렸다.

    [그 떨리는 눈동자를, 그 실망 어린 눈빛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개새끼!”

    “씨발놈!”

    “호로새끼!”

    필터링도 없이 욕을 박아 버리는 세 여자.

    그러자 서큐버스 퀸은 더더욱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 표정을 본 순간 직감했다. 그는 내가 아니라 내 머리카락을 사랑했던 것임을. 그래서 그 견딜 수 없는 상처를 잊기 위해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준비한 선물상자를 바닥에 떨어트린 채, 그렇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악마의 머리카락은 본디 매우 천천히 자란다.

    그 뒤로 한참의 시간이 흘렀지만 서큐버스 퀸이 여전히 대머리인 이유였다.

    즉, 서큐버스 퀸이 머리카락을 자른 것은 평생의 노력과 기다림과 인내를 희생한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였다.

    여기까지 들은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언니…… 울지 마요…… 나도 울 것 같잖아…….”

    “그런 놈 따위. 잊어버려라. 망각술. Be 야돈.”

    “눈물을 흘려 줄 가치도 없어. 똥차 가면 벤츠 온다잖아.”

    [너희들……]

    서큐버스 퀸과 세 여자들 사이에 따듯하고 포근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물론,

    콰-콰콰콰콰쾅!

    미친 듯이 화염구를 피하고 있는 이우주에게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왜 아까부터 나만 슈팅게임 끝판왕 난이도냐고!”

    이우주가 항의했지만 네 여자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바로 그때.

    “엇!? 잠깐! 뒤에……!”

    시간을 초 단위로 계산하고 있던 이우주가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그것은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서큐버스 퀸에게 허락된 시간이 거의 다 되어갈 무렵.

    …푹!

    갑자기 그녀의 배를 꿰뚫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검은 창, 아니, 길고 거대한 작살과도 같은 병기.

    슈르르륵-

    자세히 보면 그것은 머리카락이 뭉쳐져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호호호호- 머리카락도 없는 것을 여자라고 할 수 있나?]

    또 다른 악마가 서큐버스 퀸의 뒤에서 비릿한 조소를 흘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