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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948화 (948/1,000)
  • 외전 74화 여자에게 있어 머리카락이란 (2)

    푸슈슈슈슉-

    그림자 분신들이 사라진다.

    주변을 뜨겁게 태우던 붉은 기운들도 서서히 몸에서 빠져나갔다.

    “푸하!”

    이우주는 그림자 분신 특성과 홍해 특성이 힘을 잃는 것을 느끼며 숨을 몰아쉬었다.

    “……하마터면 질식할 뻔했군. 일반인 수준의 폐활량으로는 힘드네. 평소에 숨 참는 연습을 해 둬야겠어.”

    현재까지 숨을 참고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은 약 2분, 격렬하게 움직이는 도중이라면 1분 30초 정도가 한계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서큐버스 퀸의 가발을 날려 버리는 것 정도는 말이다.

    한편.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가발을 잃어버린 서큐버스 퀸은 엄청나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띠링!

    <보스 몬스터의 핵심 무기가 파괴되었습니다.>

    <보스 몬스터가 당황하기 시작합니다.>

    <보스 몬스터의 자존감이 떨어집니다.>

    <보스 몬스터의 매력이 떨어집니다.>

    <보스 몬스터의 핵심 스탯들이 감소합니다.>

    <보스 몬스터의 핵심 특성들이 봉인됩니다.>

    .

    .

    [내, 내 머리카락…… 내 머리카락이…… 여자의 무기가……]

    서큐버스 퀸의 아우라가 급격하게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천장까지 피어오르던 검붉은 열기는 순식간에 쪼그라들어 사라졌다.

    서큐버스 퀸은 풀려 버린 다리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여태까지 당당하게 내보이던 아름다운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린 채 슬피 울기 시작했다.

    [흑흑흑흑흑- 나는 이제 어쩌면 좋아. 내 이미지…… 나는 몽마로서, 아니 그 전에 여자로서 끝장이야……]

    매력 스탯을 주 무기로 삼는 몽마, 그것도 서큐버스 ‘퀸’이라는 직책에 올라 있는 존재에게 있어 외모에 대한 자존감이 떨어진 것은 큰 타격이다.

    그것을 본 이우주는 쾌재를 불렀다.

    “보스의 멘탈이 깨졌다. 육체적인 데미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큰 타격이 되었을 거야. 역시 머리카락을 유심히 관찰한 보람이 있군!”

    아무래도 실제 머리카락과 가발의 머리카락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우주는 특유의 예리한 관찰력으로 모발 하나하나가 가지는 특이점들을 파악했고 그 결과 서큐버스 퀸의 머리카락이 가발이라는 사실을 발견해 낸 것이다.

    “가발을 쓰고 있다는 것은 진짜 머리 모양을 숨기고 있다는 뜻이고 그것을 숨기고 있다는 것은 곧 그것이 약점이라는 뜻이겠지. 그래서 가발을 벗기면 어떤 식으로든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했는데…… 설마 이렇게 효과가 대단할 줄이야.”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한 이우주는 고개를 돌려 뒤에 있는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를 향해 외쳤다.

    “자! 지금이야! 보스가 약해진 틈을 타서 치자! 한타각 날카롭게 섰……!?”

    그러나 이우주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

    “…….”

    “…….”

    세 여자가 이우주를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랬군. 바람을 경계했던 것은 헤어스타일이 망가질까 봐 그런 것이 아니었어.”

    “여자의 보물. 머리카락. Terrible tragedy. 설마 저런 안타까운.”

    “아무리 상대가 몬스터라지만 이건 좀 너무 잔인한 게 아닌지…….”

    이윽고.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이우주를 맹렬하게 비난하기 시작했다.

    “야! 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사람들 많은 앞에서 여자의 가발을 벗기다니! 그렇게 사람 망신 주면 좋냐!?”

    “그러다가 서큐버스 퀸. 극단적인 선택. 할 수도 있다! 우주가 책임 질 것?”

    “그래. 아무리 그래도 이런 비인간적인 레이드는 좀 아니지!”

    파티원들이 보이는 뜻밖의 반응에 이우주는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헛소리들이야. 상대는 몬스터야.”

    “몬스터이기 이전에 같은 여자다!”

    “왜 사냥감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거야. 레이드 안 뛸 거야?”

    “우주! blood도 tear도 없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 보스몹 레이드 중인데.”

    “육체의 데미지를 입혀서 잡는 레이드라면 몰라도 마음을 상처 입히는 것은 조금…… 그리고 이건 인신공격이나 다름없고…….”

    “아니 물리 공격이든 마법 공격이든 인신공격이든 일단 잡고 봐야 할 거 아니냐고!”

    이우주는 계속해서 항변했지만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의 시선은 차갑기만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채팅창의 민심들도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아...대머리한테서 가발 벗기는건 선넘었지...

    -저건 진짜 뺨 맞아도 무죄다!!!!

    -진짜 인성 터졌네

    -ㄴ 진지충임?

    -우주 님 사이코패스 테스트 받아보세요~

    -ㄴ 제 점수는요....

    -ㄴ 만점. 만점입니다!

    -ㄴ 야점... 야점이요...

    -아무리 몬스터라고 해도 그렇지...

    -우주 당신에겐 양심도 없습니까?

    -서큐버스 퀸이 님 가족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ㄴ 응~ 우리집엔 대머리 없어~

    -ㄴ 여기도 싸이코 한명 있네;;;

    -대머리한테서 가발 벗기는 것도 잔인한데...그 대머리가 여자라니...

    -ㄴ ㅇㅈ같은 대머리라도 남자의 대머리는 유머코드로 통할 여지가 있는데 여자 대머리는...

    -이우주! 당신은 사람도 아냐! ㅠㅠㅠㅠㅠㅠ

    -전대협(전국 대머리 협회)에서 나왔습니다. 당신을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고발하겠습니다.

    -사실 난 예전부터 타인을 대머리라는 소재로 놀리는 문화 자체가 좀 불편했음ㅇㅇ

    -ㄴ 2222222222...

    -ㄴ 3333333333333...

    .

    .

    하지만 이우주는 레이드 앞에서는 가차 없는 남자.

    “뭐야? 왜 내가 나쁜 놈 되는 분위기야?”

    이우주는 황당하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어쩔 수 없지. 수레바퀴가 앞으로 가기 위해서는 앞에 있는 것들을 깔아뭉갤 수밖에.”

    뭐, 아무튼. 이우주로서는 이제 슬슬 결단을 내려야 했다.

    곧 오만의 악마성좌 루시퍼와 황금룡 일족의 용군주 태양룡 바이어스가 되돌아온다.

    이런 곳에서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결전의 순간이 도래했을 때 뎀1의 올드비, 구시대의 랭커들에게 밀려나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레벨을 올리고 아이템을 모아 둬야 했다.

    “……만약 대머리를 놀리는 것이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면.”

    이우주는 눈을 부릅뜨고 눈앞의 서큐버스 퀸을 노려보았다.

    “난 인간을 그만두겠다!”

    이우주의 머릿속에 과거 시청했던 동영상의 내용이 떠오른다.

    ‘화는 나나 보네. 비늘은 안 나면서.’

    ‘두 발로도 잘 걷네. 두발도 없으면서.’

    ‘용암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는가 보네. 그러니 헤어(hair)가 안 나오지.’

    그것은 오래 전 아빠가 처음으로 유튜뷰에 업로드했던 ‘고정 S+급 몬스터’ 레이드 영상이었다.

    ‘흑막(黑幕)’, ‘검은 용 군주’, ‘낮으신 분’, ‘칠흑의 대왕’, ‘모든 시체들의 소유자’, ‘가장 오래된 일곱 위상’, ‘분쟁지대의 절대자’, ‘교활한 협상가’, ‘일곱 용군주 중 세 번째로 나이가 많은 노룡(老龍)’, ‘무저갱의 독재자’, ‘고정 S+등급 몬스터’…….

    죽음룡 오즈(Odd’s).

    ‘임모탈(Immortal)’.

    불멸이라 불리었던 검은 비늘 족의 용군주를 거꾸로 뒤집어 쓰러트린 전략.

    ‘탈모임(Talmorim)’.

    바로 탈모(脫毛)인 것이다.

    이우주는 앞으로 달려 나가며 서큐버스 퀸의 상태를 살폈다.

    근거리 원거리를 자유자재로 농락하던 머리카락 뱀과 채찍들이 사라졌으니 이제 근접전을 벌여도 무방하다.

    “불멸이 뒤집히면 필멸인 법! 이제 더는 공격수단도 없어 보이는군. 끝이다!”

    [흑흑흑흑- 으아앙!]

    이우주의 외침에 서큐버스 퀸은 또 한번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아무리 상대가 몬스터라고 해도 이건 좀 불쌍하다...

    -선넘는거같은데...ㅠㅠㅠㅠ

    -ㄹㅇ; 이거 나만불편함? 자꾸대머리희화화시키네

    -ㄴ 게임인데 뭐어때서;;

    -ㄴ 아니 불편할만하지 웰케다들 비뚤어져있냐

    -아니 플레이어가 몬스터 잡으려고 효율적인 공략 쓰는건 당연한건데 왤케 불편한 사람들이 많냐!

    -ㄴ ㅇㅈ대머리 드립 초창기에는 사람들이 다 웃고 즐겼음;;;채팅창 분위기 왜 이렇게 바뀜?

    -ㄴ 그냥 머머리 밈 자체가 시간이 지나면서 인식도 바뀐 거겠죠

    -솔직히 남자가 대머리인 건 놀려도 괜찮은데...여자가 대머리인건 놀리면 좀 그렇지 않냐...

    -ㄴ 남자도 놀리지 마 ㅅㅂ

    -ㄴ 남자는 호르몬에 의해 자연스럽게 탈모가 올 수 있는데...여자 탈모는 진짜 심각한 건강 문제라고...

    -ㄴ 걍 아무도 놀리지 마! 외모가지고!

    -음...대머리를 두 번 죽이네

    -이우주 종족 밝혀짐. 용은 아니고 아마도 악마인 듯?

    -ㄴ 찐악마가 요기 있었네...?

    -ㄴ 사탄도 실직하겠다 야ㅋㅋㅋㅋㅋ

    -ㄴ 이미 사탄 구직중인거 모르냐구ㅋㅋㅋㅋㅋ

    -ㄴ 아ㅋㅋㅋㅋ악마는 못 참지

    -진짜 대머리 놀리지 마세요...인신공격입니다...

    -ㄴ 뚱뚱한건 놀리지 말라고 하면서 막 잡지 모델로도 쓰고 그러는데 대머리는 왤케들 놀리냐 ㅅㅂ

    -ㄴ 탈모는 의료보험도 안되고 당사자 입장에서는 아주 스트레스 받습니다...ㅠㅠ

    -ㄴ 뚱뚱한거 놀림=차별주의자 / 못생긴거 놀림=차별주의자 / 대머리인거 놀림=유쾌한 농담거리

    -ㄴ 대머리 놀리면서 댓글다는 놈들 다 10대 20대라서 지들도 탈모올줄 모르는 거지ㅋㅋㅋ10년만 지나봐아 이 ㅅㄲ들아~~~피눈물날걸~~~~

    -ㄴ 대머리쉨~ 한명검거!

    -여기서 부들대는 놈들 특) 대머리임

    -ㄴ 응 니도 곧이야~~^^

    -ㄴ 일단 한 명 검거

    -ㄴ 대머리들은 헤어나올 수 없는 매력이 있다면서요? 헤어가 안 나니까ㅋ

    -ㄴ 대머리들은 총 쏠때도 한발만 쏜다면서요? 두발이 없으니까ㅋ

    -ㄴ 대머리들은 투표권도 없다면서요? 뽑을 게 없으니까ㅋ

    -ㄴ 음...이렇게 연달아 보니까 확실히 눈살 찌푸려지긴 하는데...

    -ㄴ 네다펄 네다음진주^^

    .

    .

    하지만 이우주는 꿋꿋하다.

    “누가 뭐라고 하든 나는 서큐버스 퀸 잡아야 해. 그래야 항아의 머리카락을 가공해서 활시위를 만들 수 있다고!”

    고정 S+급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해선 아수라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까라락-

    태양살의 작살이 앞으로 향해 겨누어졌다.

    대머리인 서큐버스 퀸은 머리카락을 다룰 수 없어 이우주의 돌진을 막지 못했다.

    ……하지만.

    이우주조차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생겼다.

    “어엇!? 자, 잠깐! 동생아 스탑! 멈춰 봐!”

    “크, 큰일! An ominous premonition! 불길한 예감!”

    “서큐버스 퀸의 상태가 이상해!”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가 황급히 이우주를 만류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가…… 가만두지 않겠어.]

    서큐버스 퀸의 전신에서 숨 막힐 듯한 마기가 폭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쿠-오오오오오오오오!

    거대한 암흑의 소용돌이가 서큐버스 퀸의 몸을 감싸 안는다.

    [남자놈들은 다 똑같아. 고작 머리카락이 사라진 것 가지고 나를 멸시해?]

    서큐버스 퀸의 목소리가 웅웅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죽음조차도 피해 갈 수 없어 부끄러운 맨낯, 아니 맨머리를 드러내야 하는 것이 이 저주라면 나는 기꺼이 이것을 운명으로 짊어지리라!]

    이우주가 그것을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대사라고 생각하는 순간.

    …번쩍!

    비명과도 같이 울려 퍼지는 서큐버스 퀸의 마지막 대사와 함께, 주변을 휩쓸어 가는 칠흑의 아우라가 있었다.

    동시에.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의 눈앞으로 이상한 상태창 하나가 떠올랐다.

    ……오잉!? ‘서큐버스 퀸’의 상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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