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947화 (947/1,000)
  • 외전 73화 여자에게 있어 머리카락이란 (1)

    이우주가 본격적으로 레이드에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츠츠츠츠츠츠……

    ‘살인자의 기억법’ 특성은 지금껏 잡아온 S급 몬스터들의 절기들을 이끌어 낸다.

    -<살인자의 백과사전> / 마도서 / S

    죽은 자를 위한 죽인 자의 기록.

    사냥했던 대상의 살아생전 모습, 특징, 습관 등이 자세하고도 생생하게 저장되어 있다.

    <현재 기록: ‘엘리뇨/홍해(紅海)’, ‘라니냐/용권(龍卷)’, ‘흑해의 무영왕/그림자 분신’>

    -특성 ‘살인자의 기억법’ 사용 가능 (특수)

    이우주는 제일 처음으로 흑해의 무영왕을 잡고 얻은 ‘그림자 분신’ 특성을 발동했다.

    특성: <그림자 분신>

    ↳ 그림자를 이용해 최대 아홉 개의 분신을 빚어냅니다.

    ※분신은 숨을 참는 시간 동안만 유지됩니다.

    파파파파팟!

    총 아홉 개의 분신들이 이우주의 양옆으로 늘어섰다.

    마치 엄청난 속도로 좌우 반복뛰기를 해서 잔상이 생겨난 듯한 광경이었다.

    이 정도만 해도 상당한 위력의 특성이었지만 이우주는 내심 조금 불만이었다.

    “흑해의 무영왕이 사용했을 때는 훨씬 더 엄청난 특성 같았었는데…….”

    온 세상을 휩쓸 듯 몰아치던 그림자의 광풍.

    하늘의 거대한 적란운마저 통째로 끌어당기던 그 압도적인 힘과 전율을 이우주는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만약 시기적절하게 찾아온 ‘라하이나 눈(Lahaina Noon: 그림자가 사라지는 정오) 현상’을 이용하지 않았더라면 죽었다 깨어나도 흑해의 무영왕을 이길 수 없었으리라.

    “……뭐, 어쩔 수 없나.”

    같은 특성이라도 사용하는 존재들 간의 능력차가 심하면 그 능력은 제한적으로 발휘될 수밖에 없다.

    흑해의 무영왕은 그림자 분신 특성을 이용해서 온 바다 위의 그림자를 모조리 자신의 분신으로 만들어 컨트롤했지만 이우주의 레벨과 스탯으로는 고작해야 9명의 그림자 분신을 만들어 내어 조종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지덕지지. 1타 10피가 가능할 테니까.”

    이 능력은 차후 ‘롤모델’ 특성과 좋은 시너지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일전에 ‘곤장형’ 특성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우주는 바로 뒤이어 다음 특성을 골랐다.

    특성: <홍해(紅海)>

    ↳ 주변의 산소를 장작삼아 체온을 높여 스탯을 10배로 극대화합니다.

    ※스탯 증가는 숨을 참는 시간 동안만 유지됩니다.

    이번에는 엘리뇨를 잡고 얻은 ‘홍해’ 특성이다.

    …후욱!

    이우주의 몸에서 뜨거운 열기와 수증기가 뿜어져 나옴과 동시에 전신이 붉게 물들었다.

    숨을 참는 동안 전신의 스탯이 10배 증폭되는 버프 스킬.

    이 역시도 밸런스를 붕괴시켜 버릴 정도로 사기적인 특성이다.

    주변의 산소를 모조리 태워 버릴 정도로 체온이 뜨거워지기에 정상 체온으로 내려갈 때까지 재사용은 할 수 없다.

    당연히 근처에 아군이 있다면 사용할 수 없는 특성이기도 했다.

    ‘……두 특성 다 쿨타임이 기니 가급적 빨리 승부를 내야 한다.’

    이우주는 있는 힘을 다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다가오게 둘 것 같으냐!?]

    서큐버스 퀸은 머리카락 채찍을 뻗어 이우주를 요격하려 했다.

    그러나.

    “어딜! 가시려고! 그러나!”

    “흐럅! 파리채 블로킹!”

    “이쪽을 더 신경 써야 할 텐데, 언니?”

    화살, 골렘, 칼.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의 세 방향 동시공격 때문에 서큐버스 퀸의 머리카락 채찍은 도중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이윽고, 놀라운 속도로 거리를 좁힌 이우주가 서큐버스 퀸의 바로 앞까지 쇄도했다.

    퍼퍼퍼퍼퍼펑!

    태양살의 작살이 앞으로 뻗어 나감과 동시에 ‘곤장형’ 특성이 발동했다.

    1…… 2…… 3…… 4…… 5…… 6…… 7…… 8…… 9…… 10!

    운 좋게도 10회가 클린 히트로 들어 맞았다.

    가끔 이런 일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지!”

    이우주는 그 10번의 공격에 라니냐를 잡고 빼앗은 특성인 ‘용권’까지 실어 쏘았다.

    특성: <용권(龍卷)>

    ↳ 아래에서 위로 용솟음치는 강력한 와류를 만들어냅니다.

    열 개의 그림자 분신이 각각 열 번의 공격을 퍼붓는다.

    그것들은 각각 홍해 특성에 의해 강화된 용오름을 동반하고 있었다.

    콰-콰콰콰콰콰콰쾅!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는 상승기류에 의해 주변이 온통 초토화된다.

    와지지지지지지직!

    사납게 몰아치는 회오리가 주변의 돌기둥들을 맹렬하게 깎아 내며 휴게소에서 파는 회오리 감자와도 같은 모양처럼 만들어 버리고 있었다.

    그 위력은 이우주보다 최소 10레벨 이상은 높은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마저 감탄하게 만들 정도였다.

    “우, 우와 저 자식, 레벨 61 맞아? 엄청난 사기캐가 됐네.”

    “우주. 상대적인 저레벨. In spite of. 딜량 실화? 밸붕이다.”

    “……역시.”

    세 여자는 사방팔방으로 튀는 돌조각과 돌가루의 향연을 뚫고 계속해서 이우주를 엄호하고 있었다.

    이산하의 화살은 서큐버스 퀸의 급소를 계속해서 노리고 있다.

    솔레이크의 골렘은 거대한 덩치로 서큐버스 퀸의 머리카락 채찍을 막아낸다.

    죠르디는 유령 군마에 탄 채 계속해서 참격을 날리며 이우주의 옆에서 딜을 퍼붓고 있었다.

    한편. 이우주는 계속해서 용권을 내지른다.

    “↓↘→+RP. ↓↘→. 오-아!”

    마치 X권의 폴 피X스처럼 계속해서 똑같은 포즈로 붕권을 날려 대는 이우주.

    그리고 그 무식하고 무자비해 보이는 단순 원패턴 연속공격에도 불구하고 서큐버스 퀸은 시종일관 똑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크윽!]

    서큐버스 퀸은 이번에도 아래에서 위로, 강렬하게 뻗어 오는 용오름에 당황하며 뒤로 물러난다.

    하지만 이미 좌우양옆은 이우주가 만들어 내고 있는 강렬한 와류에 포위되어 있었다.

    “어디로 물러나든 소용없어.”

    이우주는 계속해서 똑같은 특성만을 발동하고 있었다.

    용권용권용권용권용권용권용권용권용권용권용권용권용권용권용권용권용권용권……

    마나가 바닥나는 한이 있더라도 일직선 마이웨이(My way).

    아래에서 위로 쏘아져 나가는 강력한 바람이 계속해서 서큐버스 퀸의 머리카락들을 흔들어 놓고 있었다.

    [크, 크윽! 비겁하게 계속 바람 공격을!]

    “뭐가 비겁하냐. 상대방이 약한 속성으로 공격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야?”

    서큐버스 퀸의 항의에 이우주는 냉정한 지적을 가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약한 속성이라니? 서큐버스 퀸의 약점이 언제부터 바람 속성이었어?”

    “몽마. 빛 속성에 약하다. 하지만 바람 속성? 뜬금없다.”

    “바람 타입에 약한 것은 풀, 벌레, 격투 타입인데? 서큐버스 퀸은 딱히 셋 중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걸.”

    하지만 이우주는 어떠한 확신이라도 가지고 있는 듯 계속해서 서큐버스 퀸을 향해 용오름을 발생시키고 있었다.

    콰-콰콰콰콰콰콰!

    회오리바람이 일어 또다시 서큐버스 퀸을 저 뒤로 날려 버린다.

    [크윽, 아까부터 계속 바람을……!]

    서큐버스 퀸은 머리카락들을 회수한 채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쓱쓱쓱쓱-

    마치 공들여 스타일링한 머리카락이 바람에 모양이 흐트러질까 계속해서 머리를 정리하는 것과 같은 모습.

    이와 같은 패턴이 계속되자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점을 눈치챌 수 있었다.

    “용권 특성에 넉백 기능이 있었던가?”

    “아니다. 없다. 저건 서큐버스 퀸이 그냥 뒤로 물러나는 것.”

    “바람을 두려워하는 게 아닌 것 같아. 마치 바람으로 인해 일어나는 ‘그 다음’의 일을 꺼리는 듯한…….”

    그 말대로였다.

    이우주가 초고속으로 접근해 작살을 휘둘러 회오리바람을 만들어 낼 때마다 서큐버스 퀸은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난다.

    아래에서 위로, 강하게 올려 치는 바람.

    이것이 서큐버스 퀸을 그토록 두려움에 질리게 만드는 것이다.

    [꺄아아악! 치사하게 굴지 말란 말이야! 바람 같은 건 내게 아무런 데미지도 못 줘! 그러니 그만 하라고!]

    하지만 말과는 달리 서큐버스 퀸은 바람을 꽤나 질색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대체 왜?

    왜 서큐버스 퀸은 딱히 상성도 아닌 바람 계열 공격에 이토록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진짜 뭐야! 왜 바람에 안 닿으려고 저 난리야! 괜히 사람 궁금하게!”

    “설마. 그건가? 헤어스타일. 간지.”

    “……무슨 말도 안 되는. 설마 헤어스타일이 망가지는 게 싫어서 바람을 기피하는 거야?”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계속해서 의문을 표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지금 바로 알려 주지.”

    그러는 동안 이우주는 서큐버스 퀸의 바로 코앞까지 파고든 상태였다.

    [으읏!? 이, 인간! 어느 틈에 여기까지!]

    서큐버스 퀸은 황급히 마법을 캐스팅해서 이우주를 밀어내려 했지만.

    …퍼펑!

    그보다 먼저 이우주의 손이 움직였다.

    “푸하!”

    숨 참기가 한계에 이르는 순간 홍해 특성과 그림자 분신 특성이 동시에 풀려 버렸다.

    하지만 특성들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 이우주는 마지막 힘을 끌어올려 서큐버스 퀸의 앞으로 강력한 용오름을 만들어 냈다.

    휘-이이이잉!

    아래에서 위로, 강력하게 솟구쳐 오르는 상승기류.

    그것은 서큐버스 퀸의 머리카락들을 온통 휘감으며 말아 올린다.

    넉백이 제대로 먹혔다.

    서큐버스 퀸은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등 뒤에는 이미 거대한 돌기둥이 자리해 있어 공간이 없었다.

    [크윽!? 아, 안 돼! 이대로라면……!]

    그녀는 어떻게든 자리를 피하려 했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서큐버스 퀸은 속수무책으로 회오리에 휘말리고 말았다.

    쿠르르르르르르르륵!

    바닥에서 시작해 천장까지를 연결하는 높고 굵은 바람기둥.

    그리고 그것에 딸려 올라가는 서큐버스 퀸의 머리카락.

    동시에.

    “……!”

    “……!”

    “……!”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의 두 눈을 휘둥그렇게 만드는 이변이 발생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바람결에 실려 찢어질 듯 울려 퍼지는 서큐버스 퀸의 단말마와 함께.

    훌렁-

    그녀의 머리카락, 아니 ‘가발’이 통째로 벗겨져 날아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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