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944화 (944/1,000)

외전 70화 무릉도원 (3)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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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팅창이 아주 잠시, 찰나의 순간 얼어붙었다.

그리고.

-ㅗㅜㅑㅗㅜㅑㅗㅜㅑ

-ㅁㅊ지금 뭐하는거야ㅋㅋㅋㅋㅋㅋㅋㅋ

-융합한다! 쟤네 융합한다!

-융!합!융!합!

-퓨~~~전!

-몽마X몽마 ㄷㄷㄷㄷ...

-오해하지마십시오 융합 특성을 가진 몬스터들은 원래 둘이서 하나로 융합하여 상위개체의 몬스터로 합체진화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너네들도 다 융합의 결과물들이야!!!!

-아는데 그게 방송에 나오는건 좀 다른 문제 아님?ㅋㅋㅋㅋ

-와! 용자왕!

-이걸 방송에 내네ㅋㅋㅋㅋㅋ

-싸우지 말고 융합해 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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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 채팅창이 미칠 듯한 속도로 갱신된다.

이산하가 다급하게 외쳤다.

“야 이 미친놈년들아! 왜 남의 방송에서 합체를 하고 지랄들이야! 당장 그만두지 못하겠냐!”

하지만 이산하가 테이머 클래스인 것도 아닌데 몬스터들이 플레이어의 말을 들을 리가 없다.

츠츠츠츠츠츠……

서큐버스와 인큐버스.

몸의 중요부위만을 아슬아슬하게 가리고 있던 옷들이 모조리 벗겨져 나간다.

꾸르르르르륵!

전라의 두 남녀가 한곳에서 격렬하게 뒤엉켜 들기 시작했다.

“으아아! 뒤져 그냥!”

이산하는 화살을 쏘았지만.

MISS-

특유의 발컨이 또 발목을 잡는다.

-아ㅋㅋㅋㅋㅋ산하누나 이 와중에도 몸개그ㅋㅋㅋㅋㅋ

-여윽시 산선생님ㅋㅋㅋㅋㅋㅋ

-이거면 오늘 점심 뚝딱이다

-방송이 폭파될 위기에서도 이런 예능감을 보여준다고?

-역시 본분을 잊지않았죠?

-슬랩스틱 코미디가 근본이다 이거야

-우리 애가 볼까 무서워요ㅠㅠ... 빨리 쟤네들 다 끔살해주세요ㅠㅠ...

-근데 샴푸+린스면 그냥 효과 없어지는거 아니냐?ㅋㅋㅋㅋ

-ㄴ 맞음. 삼퓨는 음이온계 계면활성제고 린스는 양이온계라서 섞으면 별 효과도 없어짐ㅋㅋㅋ

-ㄴ 그럼 융합해서 오히려 더 약해지는거 아니냐고 ㅋㅋㅋㅋ

-ㄴ ㄹㅇ?? 우리아빠 맨날 샴푸랑린스 섞어서 머리감는데;;

-ㄴ 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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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들은 놀림 반 조롱 반, 도합 100%의 깐족거림으로 이산하를 괴롭히고 있었다.

“으아아! 안 돼! 내 방송이! 내 채널이! 심의규정이! 민원이! 노란딱지가……! 으아아아아!”

“으윽! 융합을 막기에는 시간이 부족!”

“…….”

솔레이크와 죠르디 역시도 별다른 방법을 찾지 못한 채 이를 악물 뿐이었다.

바로 그때.

…첨벙!

이우주가 묘수를 냈다.

방금 전까지 인큐버스가 펑펑 뿜어낸 물 때문에 바닥 곳곳에는 물웅덩이가 생겨나 있었다.

촤악-

이우주는 그것으로 파도를 일으켜 앞으로 날려 보냈다.

그러자.

…미끄덩!

샴푸와 린스의 주변에 닿은 물이 거품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역시! 아까부터 저 녀석들이 쓰던 수계 마법에는 샴푸와 린스가 섞여 있었어!”

“그, 그게 왜!? 바닥에 고인 물이라고 해봐야 얼마 되지도 않는데…….”

“바보야! 이렇게 물을 튀기면 거품이 몇 배로 일어나잖아!!”

이우주의 말을 들은 이산하의 머리 위에 느낌표가 떴다.

“아하!”

이산하 역시도 발을 굴러 물을 튀겼다.

그러자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오기 시작한다.

서큐버스 ‘샴푸’와 인큐버스 ‘린스’가 몸에서 분비하는 샴푸와 린스가 물과 만나 거품이 일어나는 것이다.

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

산더미처럼 치솟아 오른 거품은 융합하고 있는 서큐버스와 인큐버스의 몸을 가려 주었다.

이우주는 씩 웃었다.

“아까 채팅창의 댓글을 유심히 봐 두길 잘했군.”

그 와중에도 이우주는 수많은 뻘소리들 사이에 묻혀 있는 공략 포인트를 잘 짚어 낸 것이다.

-인큐버스 횽아...저한테도 끼얹어 주세요...뜨거운 물...

-ㄴ 근데 물이 약간 뿌연 것 같은데?

-ㄴ 그거 린스임. 물에 린스가 풀어져 있는 것 같음ㅇㅇ

-ㄴ 엄청 미끌거리겠다, 저거 밟고 미끄러지면 바로 다리 밑으로 수직다이빙 각임?

-ㄴ ㅇㅇ그래서 저 중간보스들 공략 난이도가 꽤 높음

그러자 시청자들의 반응은 한번 또 술렁인다.

-우리가 도움이 되었다니 기뻐!

-ㄴ 비록 한 건 뻘소리 뿐이지만 말이야!

-ㄴ 시청자들만 믿으라구!^^b

-ㄴ 개떡같이 채팅쳐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이우주 센세ㅋㅋㅋ

-ㄴ 호스견시라...호랑이 스트리머에 개같은 시청자들....

-ㄴ 그래도 그 와중에 저걸 공략의 기회로 삼다니...순발력도 엄청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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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 틈에 이산하는 화면 중앙에 블러 처리를 할 시간을 겨우겨우 벌 수 있었다.

“좋았어! 수위가 살짝 위험할 뻔했지만 거품이 중요 부위들을 다 가려 줘서 괜찮았다!”

“마치 전체연령가 애니에 나오는 목욕 씬. 90년대인 줄 알았다.”

“……뭐, 어찌어찌 넘어간 것 같긴 하군.”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곧바로 레이드에 착수했다.

“내 방송을 죽일 뻔한 인큐버스! 너는 더 이상 나의 오뽜가 아니야!”

“손. 절. 선. 언.”

“이제 더 이상의 시간낭비는 없다!”

세 여자는 각각 활, 골렘, 칼을 이용해 막 합체 모드에 들어간 서큐버스와 인큐버스를 순살해 버렸다.

[꺄아아아아악! 비겁한 녀석들! 합체하고 있을 때 공격하는 것은 반칙인 것도 모르……!?]

[우리가 변신로봇이었어도 이렇게 틈을 찔렀을 거냐!? 이건 몬스터 차별이……!]

두 몽마는 결국 비통한 단말마만을 남긴 채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띠링!

<‘서큐버스 샴푸’, ‘인큐버스 린스’ 레이드에 성공하셨습니다!>

<악의 고성에 딱히 큰 변화는 없어 보입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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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중간보스 레이드가 모두 끝났다.

이산하는 땀을 닦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힘들었다.”

“A급 몬스터. 강하다.”

“딱히 강하지는 않았는데…… 뭔가 왠지 심적으로 피로하네.”

솔레이크와 죠르디 역시도 고개를 끄덕여 동감의 뜻을 표했다.

전체적으로 몸이 좀 젖고 입고 있던 아이템들의 색깔이 조금 옅어졌다는 것을 빼면 별다른 피해는 없었다.

물론 빨래의 물이 빠졌다는 것은 룩덕들에게 있어 치명적인 피해였겠지만 이들 중 딱히 커스터마이징에 큰 의미를 두는 사람은 없었기에 다행이었다.

한편.

채팅창은 온통 이우주를 칭송하는 분위기로 가득했다.

-와 이번 레이드는 솔직히 이우주가 다했다

-이우주!이우주!이우주!이우주!이우주!이우주!이우주!이우주!

-아빠!난커서이우주가될래요!아빠!난커서이우주가될래요!아빠!난커서이우주가될래요!

-ㄴ 아빠!난컸는대왜이우주가아니야?아빠!난컸는대왜이우주가아니야?아빠!난컸는대왜이우주가아니야?

-하드캐리 인정

-이산하는 뭐했냐 진짜ㅋㅋㅋㅋㅋㅋ

-ㄴ 산하한테는 왜그럼;; 나름 노력했는데.. 불편하네;

-ㄴ ㅋㅋㅋㅋ방방봐 제발!!

-동생 버스 탐

-이우주 피지컬 뇌지컬 둘다 미쳤네 진짜...

-다음 세대 하이랭커는 이우주다

-이우주 코인 간다!

-어랭주. 어차피 랭커는 이우주

-이우주...그는 게임의 신이 아니다. 신이 천국의 이우주인 것이다

-나 프랑스인인데...이우주, 당신이라면 내 개를 먹어도 좋아!

-ㄴ 이건 찬양이나 인종차별이냐...?

-이우주! 내 아내와 결혼해 다오! 그리고 내가 네 아이를 키우게 해 다오!

-ㄴ 만약 내게 기회가 있다면 나는 그 좋은 기회를 내 아내에게 양보하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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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팅창에는 온통 이우주의 피지컬, 뇌지컬, 상황 판단력과 순발력에 대한 칭송들뿐이다.

이산하는 입을 삐죽거렸다.

“쳇. 이게 내 방송인지 내 동생 방송인지. 암튼 레이드 끝났으니까 방송 잠깐 종료할게요! 이따 2차 레이드 때 봐요! 산바! 산하 바이라는 뜻!”

-산하눈나 어서가고~

-산바~

-이우주! 작별인사를 해줘!

-이따 또 보러올게용!

-이젠 동생 보는 맛에 온다ㅋㅋㅋㅋ

-합방 자주 좀 해주세요!!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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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시청자들의 아쉬움 속에, 이산하는 방송을 종료했다.

그녀는 방송을 끄자마자 눈을 초롱초롱 빛낸다.

“이제 보상 확인할 시간! 야! 아이템 뭐 떨궜냐!?”

하지만 먼저 아이템 보상을 확인하고 있던 솔레이크와 죠르디는 약간 실망한 표정이었다.

이윽고, 보상 아이템의 정체가 드러났다.

-<몽마의 샴푸> / 재료 / A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샴푸.

아름답게 찰랑이고 싶다면 마땅히 이 제품을 택해야 할 것이다.

-특성 ‘융합’ 사용 가능 (특수)

-<몽마의 린스> / 재료 / A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린스.

아름답게 찰랑이고 싶다면 마땅히 이 제품을 택해야 할 것이다.

-특성 ‘융합’ 사용 가능 (특수)

“장난하냐!”

이산하는 손에 쥐어진 두 포션병을 들고 화를 냈다.

솔레이크와 죠르디 역시도 꽤나 실망한 모양이었다.

“룩덕들에게나 필요한 사치품. 나는 가성비충. 필요 없다.”

“좀 허탈하긴 한데, 혹시 항아의 머리카락을 가공할 때 필요하지는 않을까?”

죠르디의 의견에도 일리가 있었기에 이산하는 투덜거리면서도 샴푸와 린스를 잘 챙겨 두기로 했다.

“야, 너가 가지고 있어라.”

“왜 내가?”

“딜 미터기 보니까 네가 제일 많이 넣었더만. 또 너는 머리가 좋으니까 기발한 사용처를 찾아낼지도 모르지.”

이산하의 말을 들은 이우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레이크와 죠르디 역시도 딱히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이번 레이드에 제일 기여도가 큰 이우주가 샴푸와 린스를 보관하기로 했다.

그 다음은 오른 레벨을 확인할 시간이었다.

<이산하>

LV: 71

<이우주>

LV: 61

<솔레이크>

LV: 71

<죠르디>

LV: 73

흑해의 무영왕 레이드 이후 경험치가 거의 끝까지 차 있었던 이산하와 이우주는 레벨업을 했다.

솔레이크는 비록 레벨은 오르지 않았으나 상당량의 경험치를 쌓은 것으로 만족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죠르디의 레벨이 생각보다 높다는 사실이었다.

“너 어디서 레벨업 했냐? 엄청 높네.”

“……2차이 밖에 안 나잖아.”

“70레벨 구간에서 2차이면 거의 하늘과 땅 아니냐?”

“너와 나의 차이가 하늘과 땅 정도밖에는 되지 않는다니. 어쩐지 슬프네.”

“이게 진짜!”

이산하는 죠르디와 티격태격 싸우기 시작했다.

한편. 솔레이크는 이우주에게 물었다.

“이제 최종보스. 코앞. 아까 전에 메시지 떴다. 서큐버스랑 인큐버스 나왔을 때?”

“응. ‘여왕의 침소’가 얼마 안 남았다고 했어.”

“Good. 그곳에 있다. 추정된다. 서큐버스 퀸이 있는 곳. 앞으로 직진 합니다?”

이우주와 솔레이크는 계속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 뒤로 이산하와 죠르디가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며 따라온다.

…탁!

이윽고, 이산하가 돌다리의 끝에 발을 디뎌 놓는 순간.

[호호호호호-]

간드러지는 웃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문맥상 이제 여왕이 나올 차례군. 서큐버스 퀸의 목소리인가 보다!”

이산하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서큐버스 퀸은 바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감히 내 부하들을 건드리다니, 간도 크구나.]

동시에.

스스스스스스스……

물안개가 점점 더 짙어지는가 싶더니 서서히 검보라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끼기기기긱-

저 앞, 다리가 완전히 끝나는 부분에 있던 커다란 문이 반쯤 열렸다.

[내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는 용기와 절제력이 있다면 어디 들어와 보거라.]

깊은 어둠 속으로의 초대.

보스방의 통로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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