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69화 무릉도원 (2)
이산하는 방송을 켰다.
“산하! 산하 하이라는 뜻! 안녕하세요! BJ눈누난나내가니누나네 입니다! 오늘은 ‘악의 고성’레이드를 돌아볼 건데요! 사실 이미 돌고 있걸랑요! 깜빡하고 방송을 중간부터 켰네요! 여러분들도 왜 그럴 때 있잖아요. 진짜 맛있는 음식을 마주했을 때 일단 숟가락부터 들었던! 그래서 막상 사진 찍어야지 하고 봤더니 이미 반쯤 먹었거나 다 먹었던! 제가 지금 딱 그런 상황이네요! 정신없이 레이드 돌다 보니 벌써 중간보스 나오는 데까지 와 버렸……!”
어느새 인기 스트리머가 된 이산하의 실시간 라이브 방송에는 오늘도 시청자들이 많다.
-산하
-산하 하이라는 뜻
-ㅎㅇㅎㅇ~
-오...오늘은 악의 고성 레이드? 여기 빡센데ㅋㅋㅋ
-아니 중간보스 루트까지 오셨어요 벌써????
-그만큼 깜빡하셨다는거지~
-진도 빠르네 리얼루다가
-왜 방송 지금 켜!!!!!!
.
.
그리고 시청자들은 이산하의 방송에 들어오자마자 충격적인 광경을 목도해야 했다.
그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뇌쇄적인 몬스터.
<서큐버스 ‘샴푸’> -등급: A / 특성: 어둠, 하수인, 이상성욕, 레이디 퍼스트, 양자택일, 융합, 침어낙안(沈魚落雁)
-서식지: 악의 고성, 자살 숲, 고독 못.
-크기: 1.8m.
-‘여왕’을 섬기는 시녀장(侍女長).
뜨거운 정열과 집착 때문인지 항상 체온이 높다.
어지간한 남자는 서큐버스들로 이루어진 하렘에 들어가는 즉시 몸이 녹아내린다.
미모만큼이나 대단한 전투력을 가진 엘리트 몽마로 용맹과감한 성격과 상급자를 향한 충성심은 타의 귀감이 된다.
<인큐버스 ‘린스’> -등급: A / 특성: 어둠, 하수인, 이상성욕, 젠틀맨 퍼스트, 양자택일, 융합, 침어낙안(沈魚落雁)
-서식지: 악의 고성, 자살 숲, 고독 못.
-크기: 1.8m.
-‘여왕’을 섬기는 시남장(侍男長).
뜨거운 정열과 집착 때문인지 항상 체온이 높다.
어지간한 여자는 인큐버스들로 이루어진 하렘에 들어가는 즉시 몸이 녹아내린다.
미모만큼이나 대단한 전투력을 가진 엘리트 몽마로 용맹과감한 성격과 상급자를 향한 충성심은 타의 귀감이 된다.
다소 민망한 복장을 하고 있는 미녀와 미남이 스크린을 꽉 채우고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가려진 가슴과 하반신의 중요 부위, 매끈한 굴곡과 잔근육 사이의 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보인다.
시청자들은 때 아닌 19금에 깜짝 놀란다.
-???
-모임?
-갑자기?
-퍄퍄퍄
-ㅗㅜㅑㅗㅜㅑ
-산하눈나...저희가 이런 것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셨다면 아주 크나큰 오예입니다...
-가관이다가관...
-ㄴ 가관이 아니라 장관 이 멍청아...
-갑자기 분위기 19금? 헤으응...
-서큐버스눈나...나주거...
-이 방송 짤리는 거 아니죠?
-본격) 좋은건 같이보자 방송
-와 서큐버스 언냐 몸매 미쳤다 뭐야....
-인큐버스 옵빠...나 처음 보는데...대박이네...
-ㄴ 아름답네요^^
-ㄴ 뭐야 나 몽마 좋아했네;;
.
.
이윽고, 전에 이산하가 서큐버스에게 항의했던 대로 인큐버스가 여자들을 담당하기 시작했다.
[Baby들. 내가 너희들을 직접 담당해 주겠어. 오늘 밤 몸 성히 돌아갈 생각 말라고~]
-윽;; 뭐야 대사 존나 구려;;;;
-대사는 구린데 얼굴이 이걸 캐리하네
-멘트 진짜 에반데...
-ㄴ오반데...
-ㄴ오바만데...
-ㄴ버락이네요 이거
-저것도 딥러닝으로 수집한 데이터겠지?
-ㄴ ㅇㅇ들었을 때 좋아할 만한 멘트를 학습한다던데
-ㄴ ai야...인간이 미안해...
-ㄴ 좃간이미아내...
-인큐버스한테 이런거 학습시키지 마라;;;
.
.
하지만 정작 인큐버스를 눈앞에 두고 있는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
“…….”
“…….”
셋 다 인큐버스와 시선을 마주치지 못한 채, 그저 슬쩍 눈을 피해 다른 신체부위만 바라보고 있다.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채로.
……그러니 당연히 정면으로 날아드는 공격조차 피할 수가 없는 일이다.
콰콰콰쾅!
인큐버스 린스가 흩뿌린 마법이 세 여자에게 적중했다.
“으악! 뜨거워! 이게 뭐야!”
“끓는 물! Hard boiled water! 개뜨거!”
“크윽! 이런 평타 따위에 맞다니!”
세 여자는 수계(水系) 공격에 당하자 바로 제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앗! 물 마법을 썼더니 나도 그만 흠뻑 젖어 버리고 말았잖아!?]
인큐버스 린스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앞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긴다.
짙은 눈썹, 커다란 눈, 칼날처럼 오똑한 콧날, 선명한 턱선, 목젖부터 이어지는 쇄골 라인에 잡티 하나 없는 무결점 피부.
“…….”
“…….”
“…….”
세 여자는 수(컷)계 공격에 당하자 바로 제정신을 못 차리기 시작했다.
[……무릉도원이세요?]
“……네. 무릉도원이네요.”
[아니. 물 온도 어떠시냐구요!]
인큐버스 린스의 수계 마법이 또다시 펑펑 뿜어져 나온다.
펄펄 끓는 물이 뿌려지자 세 여자는 또다시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악! 뜨거워!”
“하태하태!”
“큭! 이딴 공격에 두 번이나……!”
뜨거운 물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
하지만 그에 반해 채팅창의 분위기는 싸늘하기만 하다.
-...데미지 입고 있는 거 맞아?
-ㄴ 약간 좋아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ㄴ 사실상 포상을 받고 있다는게 학계의정설
-인큐버스 횽아...저한테도 끼얹어 주세요...뜨거운 물...
-ㄴ 근데 물이 약간 뿌연 것 같은데?
-ㄴ 그거 린스임. 물에 린스가 풀어져 있는 것 같음ㅇㅇ
-ㄴ 엄청 미끌거리겠다, 저거 밟고 미끄러지면 바로 다리 밑으로 수직다이빙 각임?
-ㄴ ㅇㅇ그래서 저 중간보스들 공략 난이도가 꽤 높음
-인큐버스 오빠 마법 쓸 때 쵸섹시...★
-흐아... 공격할때마다 쇄골파이는거 치인다진짜루ㅠㅠㅠㅠ
-근데 저 인큐버스 네임드임? 스탯이 좀 높아 보이는데?
-ㄴ 네임드라고 해도 A급 정도인데...산하눈나 정도면 잡을 수 있을 거 같은데?
-ㄴ 충분히 잡지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본격 사리사욕 채우는 레이드
-ㄴ 산하야...헌팅을 하지 말고 사냥을 해라....
.
.
하지만 이산하는 언제나 솔직하다.
“아아! 하지만 저 얼굴을 어떻게 때려요! 섹시함과 귀여움과 듬직함과 공과 수가 동시에 존재하는 저 완벽한 얼굴을! 꺄악! 스크린샷 모아야지!”
-...
-......
-그래 이산하... 그거면됐다...
-즐기시게 냅둬
-하지만 행복하다면 OK입니다
-아ㅋㅋ저얼굴을 어떻게 참냐고ㅋㅋㅋ
-ㄴㄹㅇㅋㅋ 얼굴잘생긴건 못참지ㅋㅋ
-산하언니 나가뒤지십쇼;;
-역시 산하눈나는 뭔가 틀리다
-ㄴ 틀리다가 아니라 다르다임
-ㄴ ㄴㄴ저건 진짜 틀린거임. 틀려먹음
-아니 레이드를 뛰라고 레이드를!!!!!!!
.
.
채팅창의 민심이 조금 주춤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꺄아아아아악!?]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시청자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확 잡아끌었다.
그곳에는 절망한 표정을 지은 채 연신 뒤로 밀려나고 있는 서큐버스 샴푸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무표정한 얼굴로 데미지 딜링을 퍼붓고 있는 이우주가 보인다.
“어쩌자고 그렇게 구멍이 뻥뻥 뚫린 옷을 입고 왔지? 방어력을 올리겠다는 생각 자체가 없는 것인가? 가슴과 허리, 엉덩이의 꼴이 그게 뭐냐. 그렇게 해서 외부로 가해져 오는 물리 데미지를 막을 수 있겠어? 명색이 네임드 몬스터라면 룩에만 신경을 쓰느라 성능을 포기하는 우를 범하면 안 되지.”
서큐버스를 향해 훈계를 늘어놓고 있는 이우주.
그리고 서큐버스의 공격을 모조리 피해 버린 뒤 자신의 공격을 모조리 꽂아 넣는 그의 미친 피지컬.
-아니;;; 저쪽은 애로영화 짝고 있는데 이쪽은 무슨 매드무비를 찍고 계시네;;;
-ㄴ ㄹㅇㅋㅋ 왜 저기만 액션영화냐고ㅋㅋㅋㅋ
-ㄴ 서큐버스입장에선 매드무비가아니라 데드무비수준ㅋㅋㅋㅋㅋㅋ
-컨트롤 미쳤다 진짜...저게 뉴비의 움직임이냐?
-레벨이 대체 몇임? 벌써 A급 몬스터를 압도한다고?
-ㄴ 이분 얼마 전에 게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B+급 몬스터 잡몹처럼 펑펑 잡으시던 분임ㅋㅋㅋㅋㅋ
-ㄴ 피지컬이랑 뇌지컬이 둘 다 탈인간급...
-ㄴ 한쪽이랑 능지차이 오지게나네
.
.
퍼포먼스 한 방으로 시청자들의 불만을 모두 잠재워 버린 이우주는 그대로 서큐버스 샴푸를 빨피로 몰고 간다.
“나를 상대로 그렇게 노출 많은 옷을 입고 왔다는 것은…… 도발의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겠지? 나를 상대할 때는 방어력 따위는 신경 안 써도 상관없다는 거잖아. 그러니까 그렇게 얇고 가느다란 끈으로 중요부위만 가리고 온 것이겠지? 응? 한 대도 안 맞을 자신이 있어서 말이야. 몽마란 실로 오만하기 그지없는 족속이구나. 죽.여.주.마.”
-이우주의 살.인.예.고.
-도발이 그런 의미의 도발이 아닐텐데;;;
-섹.도.시.발
-님네 아버지도 근데 노출 많은 옷 입고 돌아다니시던데...?
-ㄴ패드립 신고함
-ㄴ미친놈아 패드립이 아니라 팩트야
-ㄴ않이 사실적시죄 모르냐고ㅋㅋㅋ
-아ㅋㅋㅋㅋ고인물은 노출할 자격이 있다고~ 한 대도 안맞으니까~
-진짜 게임 잘하는 사람만 벗을 수 있게 해야됨
-ㄴ 게임 속에서 벗고 다닌다=나는 한 대도 안맞을 자신 있다
-ㄴ 게임 플레이 타임 일정 시간 이상인 사람만 노출할 수 있게 법규 제정해 주세요~~~
.
.
바로 그 순간.
퍼-억!
이우주가 서큐버스에게 결정타를 꽂아 넣었다.
태양살의 화살을 작살처럼 휘두른 이우주는 서큐버스의 양 날개를 모두 찢어 낸 뒤 돌다리의 바닥에 내팽개쳤다.
[크윽! 어, 어찌 나의 이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도 그렇게 함부로 굴 수 있는 것이냐, 인간!]
서큐버스는 어깨를 가리고 있는 끈을 슬쩍 내려서 쇄골 라인을 어필해 보았으나.
“음? 나를 상대로 한 번 더 노출을? 대체 방어력에 대한 그 끝없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지?”
빈 공간에는 어김없이 이우주의 막타가 꽂힐 뿐이었다.
-자~ 바로 공략 드가자~~~
-ㄴ 아니 쟤는 진짜 게임밖에 모르냐고ㅋㅋㅋㅋ
-ㄴ ㄹㅇ 실력만 보면 누나보다 훨씬 낳은 듯
-ㄴ 낳다 낫다 아직도 구분 못하는 애가 있냐;;
-ㄴ 뭘 낳으시려고요 선생님...
-우주쟝...게임은 잘하는데...
-ㄴ 게임만 잘하는구나...
-ㄴ 게임 잘하면 됐지 뭐
-ㄴ 맞아 으른들이 하나만 잘해도 먹고산다고했어
-여심을 하나도 모르네ㅋㅋㅋㅋ
-ㄴ 남심만 잘 알면 됨
-ㄴ 그래 하나만 잘하자
-ㄴ 맞아. 하나라도 확실히 하는게 나음
-ㄴ 우주야 우린 너편인 거 알지??(덜렁)
-여자가 한을 품으면 한겨울에도 눈이 내리는 법!!!
-ㄴ 얘도 좀 모자란 애인가 보다
-ㄴ ㅋㅋㅋㅋㅂㅅ 한겨울에 눈이 어떻게 내리냐
-ㄴ 그것이...겨울이니까...(끄덕)
-우주 나이가 몇 살이니?
-아직 이성에 관심이 없을 나이인가?
-저번에 산하눈나가 동생 뭐 2차성징도 아직 안왔다고 놀리던데
-인신공격 사생활폭로 거침없는걸 보니 찐남매ㅇㅈ ㅋㅋㅋㅋ
-그래도 저정도면 남매치고 사이좋은거지 리얼루ㅋㅋㅋㅋ
.
.
그 와중에도 이우주는 날아드는 공격을 모조리 피해 내고 있었다.
…탁!
날개가 찢어진 서큐버스는 발을 헛디뎌 그만 다리 아래로 추락하고 말았다.
그때.
터억!
그런 서큐버스의 손을 잡아 주는 손길이 있었다.
“‘자살’의 반대말은 ‘살자’지.”
바로 이우주였다.
[……너?]
적인 자신을 구해주는 이우주의 손길에 서큐버스는 얼굴을 붉히며 처음으로 진심을 내보였다.
“하지만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물론 이우주는 왜구를 상대하는 충무공만큼이나 가차 없었다.
서큐버스가 다리 아래로 추락해 죽게 되면 아이템을 회수할 수 없으니 다리 위로 끌어올려 준 것뿐.
…쿵!
서큐버스가 바닥을 나뒹구는 것을 본 이우주는 한 치의 동요도 없이 말했다.
“이제 종료할 시간이다. 빨리 아이템을 내놓고 죽어라.”
눈꼽만큼의 자비도 온기도 없는 몬스터 도살자.
결국 서큐버스는 몸을 덜덜 떨며 외쳤다.
[이, 이 자식! 더 이상은 못 참겠다! 죽여 주마!]
“나를 죽이겠다고? 어떻게 죽이겠다는 것이지? 그런 노출 심한 복장으로는 방어력을 챙길 수 없다. 당연히 전투도 불가능할…….
그러나, 곧바로 뒤이어진 상황에 이우주는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파아앗!
서큐버스 샴푸의 몸에서 별안간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파아앗!
인큐버스 린스의 몸에서도 뜨거운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윽고.
파라라라라락-
가뜩이나 헐벗고 있던 두 남녀가 환한 빛무리 속에서 그나마 입고 있던 얼마 안 되는 것들까지도 완전히 탈의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두 몬스터의 특성 하나가 발동되었다.
[융합(融合)한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이우주는 절대적이고도 확실한 ‘죽음’을 직감했다.
‘……누나 방송 짤리겠네.’
그것은 사회적인 죽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