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942화 (942/1,000)
  • 외전 68화 무릉도원 (1)

    <히든 퀘스트 ‘동방박사의 선물(The Gift of the Magi)’>

    <히든 퀘스트 발생 조건: ‘미용사 ‘짐 더 제임스 델링햄’의 호감도를 일정 수치까지 올릴 것.>

    <히든 퀘스트 수행 제한: ‘사연의 금시계’를 소지한 자.>

    <히든 퀘스트 완료 조건: ‘서큐버스 퀸’ 찾기>

    <※이 퀘스트는 메인 퀘스트 ‘3차 대격변-용마동맹(龍魔同盟)’과 연결됩니다>

    미용사 짐의 사연 히스토리를 열람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퀘스트를 클리어해야 한다.

    “이걸 깨야 호감도를 Max까지 올릴 수 있다는 것이로군.”

    “그래야 항아의 머리카락. 활시위로 가공 가능할 것 같다.”

    “놀랍네. 설마 이 퀘스트가 메인 스토리와 연결될 줄이야.”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3차 대격변, 용마동맹과 연계되는 히든 퀘스트라니.

    초보자 마을에 있는 까다로운 대머리 아저씨가 준 퀘스트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스케일이 아니던가.

    “……아마도 이 히든 퀘스트는 메인 퀘스트의 수많은 아래 지류들 중 하나겠지. 이걸 따라가다 보면 메인 스토리에 접근할 수 있을 거야.”

    이우주의 판단은 언제나 들어맞아 왔다.

    그래서 이산하 일행은 오늘 이곳 ‘악의 고성’에 온 것이다.

    <악(惡)의 고성> -등급: A+

    시커먼 계곡 위에 우뚝 솟아 있는 낡은 고성(古城).

    대격변 이후로 한층 더 높고 가팔라진 성벽은 마치 거대한 시체처럼 길게 늘어져 있다.

    닳고 무너진 성가퀴들이 노인의 이처럼 드문드문 올라서 있었다.

    낙엽이 부패해 축축해진 흙 위에는 음산한 폐가들이 즐비했다.

    한때는 번성했었던 이 마을은 역사의 사토에 파묻혀 완전히 썩어 문드러졌고 이제는 오로지 거미줄과 물안개만이 넘실거리고 있을 뿐이다.

    ‘문드러진 자’, ‘오물 자루’와 같은 언데드 몬스터들이 창궐하는 무시무시한 던전.

    심지어 대격변 이후로 평균 위험등급이 한 단계 더 올랐기에 더더욱 공략이 까다로워졌다.

    이곳이 오늘 이산하 파티가 공략할 대상이었다.

    “……‘서큐버스 퀸’. ‘어둠 대왕’과 함께 악의 고성에 서식하는 또 다른 보스 몬스터이지.”

    “어둠 대왕은 비밀 통로인 B루트로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히든 보스이고, 사실 악의 고성의 진짜 주인은 A루트의 끝에 있는 서큐버스 퀸이야.”

    “참고로 서큐버스 퀸을 최초로 공략한 사람은 우리 아빠라고. 아빠는 거기서 최초 클리어 특전으로 ‘하멜른의 피리’를 얻었지.”

    이산하와 이우주의 설명 끝에 죠르디의 첨언이 붙었다.

    그때.

    [너희들은 A루트의 서쪽 길로 가라. 나는 동쪽 길로 가지.]

    미용사 짐이 말했다.

    그는 커다란 빗을 짊어지고는 저만치 성큼성큼 걸어가 버렸다.

    최종 목적지 자체는 공유하되 그곳에 도달하기까지의 여정은 따로 하겠다는 의지가 굳건해 보였다.

    “그런데 짐은 왜 서큐버스 퀸을 찾는 걸까? 좀 뜬금없는 것 같은데.”

    “글쎄. 하지만 짐의 대사들 중에 서큐버스 퀸에 대한 언급이 있기는 있었어.”

    이산하의 질문에 이우주는 예전에 들었던 짐의 대사들을 떠올렸다.

    [어머? 형편없는 머릿결이네. 내가 아는 한 머리카락에 비하면 말이야.]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지. 여왕의 머릿결조차도 내 눈에 차지 않는다고 말하는 바람에 교수형을 당할 뻔하기도 했어. 웬일이니, 웬일이야~]

    [세상의 그 어떠한 머리카락이라고 해도 내 빗을 거치면 아름답게 찰랑거리게 되지.]

    [서큐버스 퀸의 머릿결이 세상 제일이라던데, 한번 만나 보고 싶어.]

    그는 세계제일의 미용사라는 설정답게 머릿결을 알아보는 안목이 대단했다.

    당연히 그것을 가꾸는 솜씨 역시도 일품일 것이다.

    그 오만하던 대장장이 헤파이스토스가 자신조차 다루지 못했던 ‘항아의 머리카락’을 가공할 수 있는 사람으로 추천했으니 그 실력은 얼추 짐작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멀어지는 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흠. 그러면 서큐버스 퀸을 만나보고 싶어 하는 것은 세계제일의 미용사가 가지고 있는 소원 같은 건가?”

    “머릿결에 대한 집착과 열망이 강하면 그럴 수도 있지.”

    “변태 같다. Transformation.”

    “외모로 평가하지 말고 장인 정신으로 평가해야지. 그리고 영어 단어도 틀렸어.”

    ……뭐, 아무튼.

    이산하 일행은 짐이 걸어간 방향의 반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찌되었든 간에 악의 고성을 돌파해 최종 보스인 ‘서큐버스 퀸’을 처치하면 그만 아닌가.

    “당장 모가지를 따서 머리카락을 수거해 주지. 후후후후후! 목숨을 내놔라, 서큐버스 퀸!”

    이산하는 활과 단도를 든 채 눈을 빛내며 앞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항아의 머리카락을 가공하고 싶어 안달이 난 기색으로.

    *       *       *

    [으으으으으……]

    [우어어어어어……]

    [그르륵- 그르르륵-]

    수많은 좀비들이 득실거리는 악의 고성.

    그 한복판에서 이우주가 베개를 찢었다.

    [SKIP]

    <험담쟁이 카밀라> -등급: B / 특성: 어둠, 언데드, 독

    -서식지: 악의 고성

    -크기: 1.6m.

    -남의 말을 전하고 다닌 죄로 혀가 뽑힌 채 생매장된 여자.

    어둠에 오염된 것은 오히려 그녀에게 있어서는 축복이었을지도.

    ……[SKIP]

    -띠링!

    <히든 퀘스트 ‘험담의 대가’를 발견하셨습니다>

    <험담쟁이 카밀라를 도와 깃털을 모으자!>

    -흰 깃털 모으기 0/19,910,321

    ……[SKIP]

    [신부님은 험담쟁이인 제게 벌을 주셨어요. 성당 지붕에 올라가 베개를 칼로 찢은 뒤 흩날린 깃털들을 모두 주워 모으는 것이에요. 저는 그것을 완수하지 못하고 죽었지요. 그게 한이네요.]

    ……[SKIP]

    -띠링!

    <험담쟁이 카밀라를 도와 깃털을 모으자!>

    -깃털 모으기 31/31

    ……[SKIP]

    [고마워요! 덕분에 깃털을 모두 모을 수 있었어요!]

    [찢어진 게 흰 베개라서 다행이에요. 만약 검은 베개였다면 큰일이 났을 걸요?]

    ……[SKIP]

    -<험담쟁이 카밀라의 검은 보따리> / D

    카밀라는 자기 전 베개에 대고 수다를 떠는 습관이 있었는데 좋은 소문은 흰 베개에 대고 털어놓고 나쁜 소문은 검은 베개에 대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미담은 느리게 퍼지지만 험담은 그보다 훨씬 더 빨리 퍼진다.

    ……[SKIP]

    이우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악의 고성을 쉽게 클리어하는 방법은 낮에 오는 것이지. 낮이면 필드를 배회하는 언데드 몬스터들의 스탯이 감소하니까. 그리고 험담쟁이 카밀라라는 이름의 필드보스를 잡으면 낮을 밤으로 바꾸는 아이템이 나오고 이것을 쓰면 비로소 보스방으로 통하는 길이 열리는 거야. 보스방은 밤에만 열리는데 그때는 또 잡몹들의 스탯이 상승하게 되니 엄청 귀찮…….”

    “아, 이거 모르는 사람이 여기 어딨어. 카밀라 찾아내서 잡는 것도 시간 엄청 오래 걸렸는데. 빨리빨리 진행하자고.”

    “그래도 나름대로 빨리 하려고 다 스킵한 거잖아. 깃털도 죄다 불태워 버렸고.”

    “그래도 너무 시간 낭비! 분량 낭비야!”

    “음. 그건 그래. 일단 알겠으니까 가자고.”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눈앞에 생겨난 하늘다리 위로 내달렸다.

    뿌연 안개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곳에는 저 멀리 솟구쳐 있는 첨탑으로 향하는 돌다리가 세워져 있었다.

    실로 좁고 가파르며 아득한 높이의 아치형 교각.

    까딱 잘못하면 곧바로 아래로 추락사할 정도의 높이다.

    이것이 악의 고성 보스방으로 통하는 A루트였다.

    “참고로 B루트의 중간 보스는 ‘잭 오 랜턴’ 씨였지.”

    “아빠는 그곳에서 죠디악 씨를 처음 만났다고 했어.”

    “악연. 그곳에서부터 시작되다?”

    “너네 아빠가 우리 아빠를? 진짜야?”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으며 까마득히 높은 돌다리 위를 건넜다.

    바로 그때.

    -띠링!

    <곧 악의 고성 ‘여왕의 침소’에 도달합니다>

    <‘중간 보스’가 눈을 떴습니다!>

    눈앞이 붉고 검게 점멸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츠츠츠츠츠츠츠……

    몽환적인 물안개 저 너머로 몬스터의 실루엣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호호호호호- 제 발로 기어 들어오는 먹잇감들이 여기에 있네? 귀여워라~]

    몽마(夢魔) ‘서큐버스’.

    아름다운 얼굴과 육감적인 몸매를 가진 몬스터가 등에 난 검은 날개를 쫙 펼친 채 이우주의 앞을 가로막았다.

    작정하고 입은 뇌쇄적인 패션, 꿀이 떨어지는 듯한 목소리, 붉게 달아오른 홍조와 기이한 열기가 묻어 있는 목소리까지.

    오직 남심(男心)만을 저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색정형 몬스터의 등장에 이우주는 잠시 멈칫했다.

    “……으음. 서큐버스인가.”

    이우주는 침음을 삼키며 눈앞에 있는 서큐버스의 전신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서큐버스는 이우주를 향해 야릇한 시선을 보내며 교태를 부렸다.

    [아잉~ 너무 그렇게 뚫어져라 보면 부끄럽잖아~ 이 귀여운 변태 색마 같으……]

    “위험등급이 대략 B~B+급으로 책정되어 있는 서큐버스에 비해 스탯이 조금 더 높고 보유한 특성 수도 더 많아 보이는군. 일반적인 몽마 계열 몬스터보다 개체값이 준수하고 특성의 범용성이 넓은 것으로 보아 네임드급이라고 할 만해. 하지만 보스전 직전에 도전자의 체력을 빼놓고 소모품 아이템들을 소모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는 중간보스라고 하기에는 살짝 부족함이 있어 보이는데, 설마 복수의 개체가 출현하도록 설정되어 있는 건가? 그렇다면 큰일이다.”

    하지만 이우주는 서큐버스의 외모나 복장에는 눈꼽만큼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격한 반응을 보이는 쪽은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 쪽이었다.

    “아, 뭐야! 뭔 헐벗은 언니가 나와서 귀찮게 굴어! 우리가 그딴 것에 동요할 것 같애!? 유혹을 하려면 좀 똑바로 하던가!”

    “이 파티. 남자 한 명. 여자 세 명이다. 똑바로 안 합니까? 개발진?”

    “…….”

    세 여자의 항의를 들은 서큐버스는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것도 그래. 나도 동성을 유혹하는 취향은 아니라서. 그렇다면……!]

    서큐버스는 두 팔을 벌려 마법진을 그렸다.

    그러자.

    -띠링!

    <곧 악의 고성 ‘여왕의 침소’에 도달합니다>

    <다른 ‘중간 보스’도 눈을 떴습니다!>

    물안개 너머로 또 다른 실루엣이 그려진다.

    몽마(夢魔) ‘인큐버스’.

    미친 듯이 잘생긴 얼굴과 조각 같은 몸매를 가진 몬스터가 등에 난 검은 날개를 쫙 펼친 채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의 앞을 가로막았다.

    작정하고 입은 뇌쇄적인 패션, 꿀이 떨어지는 듯한 목소리, 붉게 달아오른 홍조와 기이한 열기가 묻어 있는 목소리까지.

    오직 여심(女心)만을 저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색정형 몬스터의 등장에 세 여자들은 잠시 멈칫했다.

    “오우…….”

    “Finally. 옳게 된 배치.”

    “…….”

    왜인지 상대해야 할 보스 몬스터가 하나 더 늘어나서 공략이 더 어려워진 것 같았지만 그녀들은 개의치 않았다.

    “자! 그럼 어디 눈호강…… 이 아니라! 레이드를 시작해 볼까! 라이브 방송 켜!”

    “나. 의욕. MAX. 지금까지 이렇게 진지했던 적. Never before. 없어.”

    “…….”

    ‘항아의 머리카락’을 가공하기 위한, 본격적인 악의 고성 레이드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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