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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941화 (941/1,000)
  • 외전 67화 헤어(Hair)나올 수 없는 매력 (5)

    [나가!]

    뷰티 헤어 살롱의 지배인 짐이 격분해서 외치는 소리가 뒤로 아스라이 울려 퍼진다.

    미처 무어라 변명할 틈도 없이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 일행은 샵의 후문으로 내쫓겼다.

    “으아, 망했다! 호감도 왕창 깎였어!”

    “가뜩이나 까칠한 NPC에게 인신공격을 한 셈이 되었으니.”

    “뭐냐? 나 뭐 잘못? 해석 틀렸나?”

    “……너 사실 영어 못하는구나?”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굳게 닫힌 헤어샵의 문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이산하는 턱을 짚으며 말했다.

    “뭐, 원래 성격이 괴팍하게 설정된 NPC 같으니 한 번의 실수쯤이야 상관없어. 호감도가 원체 낮은 상태로 시작하게 되니 낙폭도 그리 크지 않을 거야. 또 저런 류의 캐릭터는 한 번만 딱 뭔가 특이점이 발생하면 호감도를 한 방에 만회할 수 있으니 너무 걱정 말자고.”

    “……문제는 호감도를 한 방에 높일 수 있는 그 특이점이 뭔지를 알아야 한다는 거겠지.”

    이우주의 지적은 합당한 것이었다.

    짐의 까칠한 성격은 한눈에 보기에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그때.

    “NPC의 호감도. 높이는 정석. 히든 퀘와 선물. 퀘스트 완료해 주거나 아이템을 선물하는 것이 국룰.”

    솔레이크가 정석적인 해답을 제시했다.

    뎀2의 NPC들 역시도 현실 세계의 사람과 거의 비슷한 정도의 지능과 행동 패턴을 보인다.

    사람인 이상 누가 선물을 주거나 필요한 일을 거들어 주면서 접근해 오면 호감도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그래도 문제는 여전하지. 무슨 선물을 줘야 할지 모르잖아.”

    이번에는 죠르디가 합당한 지적을 했다.

    NPC의 기호는 현실 세계 사람들의 취향만큼이나 다양하고 개별적이다.

    가령 같은 학교, 회사에 있는 안 친한 동료에게 어느 날 대뜸 과메기 무침을 선물한다면 어떨까?

    호감도가 오르기는커녕 떨어질 지도 모른다.

    그 사람이 과메기 무침을 평소 엄청 좋아한다거나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따라서 NPC에게 선물을 할 때에는 정말로 선물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쓰레기를 떠넘기는 것으로 여겨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죠르디는 솔레이크를 돌아보며 말했다.

    “선물을 뭘로 줄지를 잘 생각해 봐야 해.”

    “뻔하잖나. 뭘 좋아할지.”

    “뻔해? 난 잘 모르겠는데. 뭘 줄 생각이야?”

    “당연히 가발. 대머리 아닌가.”

    “……너는 PK당할 수도 있겠다 조만간.”

    이산하와 이우주 남매 역시도 이런저런 의견을 교환한다.

    “미용사니까 빗이나 가위? 아니면 샴푸나 트리트먼트? 페이스 커버 같은 소모품들?”

    “그런 것들이라면 이미 미용실에 많잖아. 거기에 있는 것보다 더 좋은 상등품을 구하기도 힘들고. 애초에 상대방이 잘 아는 분야의 선물을 주는 것은 보통 안목과 정성으로는 힘들다고.”

    “으으으으으음. 그럼 뭘 줘야 하지?”

    사실 돈 많고 잘 나가는 이들의 선물을 골라 주는 것은 어렵다.

    이미 다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흐음. 진짜 뭘 주지?”

    “아무리 생각해도 가발뿐.”

    “대머리라는 키워드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고.”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저마다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때.

    이우주가 입을 열었다.

    “나는 짐작이 가. 뭘 줘야 할지.”

    그 말에 세 여자의 시선이 이우주에게로 모인다.

    이우주는 맨 처음 미용실에 들어갔을 당시 짐이 은발 소녀를 쫓아내던 장면을 목격했었다.

    그 당시 손을 길게 뻗어 그녀를 밀어내던 짐의 손.

    이우주가 주목했던 것은 바로 그의 손목이었다.

    “대머리와 선글라스, 근육과 쫄바지, 분홍색 깃털 코트의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 놓치기 쉽지만…… 그의 손목에는 사실 흥미로운 것이 채워져 있지.”

    이우주는 자신이 찍어 두었던 스크린 샷을 몇 배로 확대해서 보여 주었다.

    짐의 손목 부근을 말이다.

    그러자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의 눈이 조금 커졌다.

    “금으로 된 손목시계를 하고 있네?”

    “그런데. 시계 없다. 시곗줄만 있다.”

    “손목시계인데 시계는 없고 시곗줄만 차고 있다는 건가? 용케 이런 걸 발견했군.”

    언뜻 보기에는 잘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봤다고 해도 팔찌 정도로 착각할 법한 생김새.

    하지만 중간 부분에 시계와 연결되는 걸쇠가 달려 있는 것으로 봐서는 틀림없다.

    짐의 손목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것은 분명 금으로 된 시곗줄이었다.

    이우주의 놀라운 관찰력 덕분에 약간 실마리가 잡힌 것도 같았다.

    “그렇다면 손목시계를 선물로 주면 되겠다. 금으로 된 것을 말야.”

    “시곗줄. 시계 없이 차고 다닐 정도면. 소중한 물건. 시계만 따로 줘야 할 듯?”

    “그럼 시곗줄 없이 시계만 있는 손목시계를 구해 오면 된다는 건가? 그런 아이템이 어디 있어…….”

    세 여자는 고민했다.

    뎀2에 존재하는 손목시계들은 거의 대부분이 완제품으로 나온다.

    따로 시곗줄만 사거나 시계만 살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일부러 손목시계를 사서 분해해서 가져갈 수도 없는 일.

    그래 봐야 짐이 좋아할 리가 없으니까.

    그때.

    “……하나 있기는 해.”

    이우주의 입이 다시 열렸다.

    그는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세 여자를 향해 말했다.

    “시곗줄 없이 존재하는 손목시계. 그것도 금으로 만들어진 것.”

    그러자 비로소 세 여자들 역시도 알아들었다.

    이우주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 말이다.

    *       *       *

    이산하 일행이 찾은 곳은.

    [Take A Look.]

    이스마엘의 좌판이었다.

    이우주는 이스마엘에게로 가 말했다.

    “살 아이템을 정했어요.”

    [오, 결정했나? 내 비밀 좌판에 올라와 있는 것들은 다 좋은 것들뿐이지. 딱 하나만을 고를 수 있지만 어느 것을 고른다 해도 후회는 없을 거야. 부디 좋은 선택을 하기를 빌지.]

    일전에 봤던 수많은 레어 아이템들이 모두의 눈앞에 떴다.

    화살촉, 방패, 마도서 등등의 각종 화려한 히든 피스들.

    하지만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의 선택은 그것들이 아닌 다른 것을 고른다.

    -<줄 없는 손목시계> / 재료 / S

    금으로 만들어져 있는 최고급 시계로 어떤 상황에서든 완벽하게 정확한 시간을 알려준다.

    누군가가 급한 사정 때문에 매물로 내놓은 듯하다.

    S급 재료 아이템.

    다른 아이템들 중에서도 유독 등급이 높은 물건이다.

    “……다만 어디에 써야 하는 것인지를 몰라 고르지 않았었지.”

    이우주는 이 ‘줄 없는 손목시계’를 집어 들었다.

    금으로 만들어진 것이 한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럽다.

    “왠지 짐이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곗줄의 파트너가 이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느낌적인 느낌. 산하의 느낌. 잘 들어맞는다.”

    “나도 비슷한 생각이야. 어쩌면 운명일지도.”

    모두의 의견 하에, 이우주는 이스마엘에게서 시계를 샀다.

    [1골드 87실버일세.]

    이스마엘과의 호감도 덕분인지 시계의 가격은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뭔가 의미가 있는 가격인가?”

    “애매한 금액과 숫자. 아마 뭔가의 오마쥬.”

    “일단은 가 보자고.”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반짝반짝 빛나는 손목시계를 들고 다시 짐의 미용실로 향했다.

    *       *       *

    [어머? 형편없는 머릿결이네. 내가 아는 한 머리카락에 비하면 말이야.]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지. 여왕의 머릿결조차도 내 눈에 차지 않는다고 말하는 바람에 교수형을 당할 뻔하기도 했어. 웬일이니, 웬일이야~]

    [하지만 그 뒤, 여왕은 내가 아니면 아무에게도 머리카락을 맡길 수 없는 몸이 되었지. 나는 이 세상의 그 어떤 머리카락이라고 해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거든. 지금은 우리 살롱의 단골이 되었단다.]

    [세상의 그 어떠한 머리카락이라고 해도 내 빗을 거치면 아름답게 찰랑거리게 되지.]

    [서큐버스 퀸의 머릿결이 세상 제일이라던데, 한번 만나 보고 싶어.]

    NPC 짐의 대사들은 일관적이다.

    그는 여전히 까칠했고 손님들의 머릿결에 대해서 이런 저런 불만과 투정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실력 하나만큼은 가히 최고인지라 그의 살롱은 여전히 VVIP손님들로 미어터지고 있었다.

    이윽고, 짐은 살롱의 로비에서 어물쩍거리고 있는 이산하 일행을 발견했다.

    [뭐니 너네? 또 왔니? 나가라고 했……!]

    하지만 짐은 호통을 끝맺지 못했다.

    단도직입(單刀直入).

    이산하가 혼자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와 대뜸 금시계를 짐의 턱밑으로 내밀었기 때문이다.

    “이거 줄 테니 좀 잘 봐줘요.”

    […….]

    이것저것 귀찮은 연출들을 모조리 생략해 버리는 이산하.

    그리고 그녀의 돌직구 앞에 짐은 잠시 얼어붙었다.

    그의 시선은 이산하의 손 위에 놓인 금시계에 닿아 파르르 떨린다.

    이윽고, 짐은 이산하의 손에 들린 시계를 조심조심 받아들었다.

    [너, 너희들 진짜 뭐니? 이, 이, 이 시계는 어디서 났니? 응? 으응? 얼른 대답해!]

    하지만 짐의 호감도 게이지가 조금씩 조금씩, 아니 쭉쭉 차오르는 것을 본 이상 대답을 서두를 필요는 없어 보인다.

    “흐응~ 얼른 대답해? 어얼르은 대다압해애애애애?”

    “말이 짧다. 호감도 올랐으니. 이젠 이쪽이 갑.”

    “……너희들은 진짜 우위에 서면 안 되는 타입이구나.”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짐을 애타게만 만들고 있었다.

    이윽고. 이우주가 대답했다.

    “당신의 사연을 듣고 싶습니다.”

    짐의 히스토리 열람.

    NPC의 배경 설정을 이해하는 것은 호감도 작업에 있어 필수적이다.

    이우주가 호감도 작업을 위한 첫 발자국을 내딛는 순간.

    -띠링!

    모두의 귓가에 알림음이 떴다.

    <트레일러 영상 ‘동방박사의 선물(The Gift of the Magi)’을 열람하시겠습니까?>

    “……아빠였다면 무조건 스킵을 눌렀겠지만, 나는 볼 거야.”

    이우주는 결연한 표정으로 ‘YES’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띠링!

    <트레일러 영상 ‘동방박사의 선물(The Gift of the Magi)’을 열람하기 위해서는 선행 조건이 필요합니다.>

    <미용사 ‘짐 더 제임스 델링햄’의 히든 퀘스트 수행 [0/1]>

    동시에.

    [……어쩌면. 어쩌면 너희들이라면 믿을 수 있을지도.]

    짐의 독백과 함께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의 머리 위로 퀘스트를 알리는 느낌표 표시가 떠올랐다.

    -띠링!

    <히든 퀘스트를 발견하셨습니다!>

    <히든 퀘스트 ‘동방박사의 선물(The Gift of the Magi)’>

    <히든 퀘스트 발생 조건: ‘미용사 ‘짐 더 제임스 델링햄’의 호감도를 일정 수치까지 올릴 것.>

    <히든 퀘스트 수행 제한: ‘사연의 금시계’를 소지한 자.>

    <히든 퀘스트 완료 조건: ‘???’ 찾기>

    <※이 퀘스트는 메인 퀘스트 ‘3차 대격변-용마동맹(龍魔同盟)’과 연결됩니다>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입을 모아 같은 말을 외칠 수밖에 없었다.

    “대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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