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66화 헤어(Hair)나올 수 없는 매력 (4)
Cool head and warm heart.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알프레드 마샬(Alfred Marshall)-
* * *
<뷰티 헤어 살롱 - ‘The Gift of the Magi’>
‘동방박사의 선물’이라는 이름의 뷰티 헤어 살롱.
쉽게 말하면 고급 미용실이다.
현재 그곳에서는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미용사 NPC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그 앞에는 은발머리를 길게 늘어트린 소녀 하나가 항의를 하고 있었다.
“이건 솔직히 확률공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돈을 냈는데도 원하는 헤어스타일을 할 수 없다니. 어느 게임에나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서비스를 유료 쿠폰에 의한 랜덤 시스템에 맡긴다는 것은 결국 사행성 짙은 도박이나 다름없잖나!”
고객 명찰에 적혀 있는 이름은 ‘튜앙카’.
아름다운 은발의 머릿결과 총기로 빛나는 눈빛은 그녀가 보통 고귀한 사람이 아님을 단숨에 알 수 있게끔 만들었다.
그녀는 자신이 원했던 헤어스타일이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 미용사 NPC에게 또박또박 항의하고 있었다.
“뎀2의 주요 수입원인 ‘랜덤 블랙라벨 헤어 성형’, ‘하이엔드 믹스염색’, ‘하이엔드 믹스렌즈’ 등의 캐릭터 코디는 너무 사행성 문제가 심하다. 실제 게임 플레이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해서 이렇게 마구잡이로 높은 가격을 책정해 놓고 원하는 헤어스타일을 골라서 사는 것이 아니라 랜덤한 확률로 뽑을 수 있게 해 놓은 것, 그리고 그 확률을 공개조차 하지 않는 것은 도박이나 다름없잖나.”
튜앙카는 NPC에게 계속해서 항의했다.
“그리고 내 머리카락은 모발이 가늘고 숱이 많은데 이런 식의 헤어스타일이 어울린다고 생각하나? 이런 것은 뎀2 세계관에서 최상의 머릿결을 가졌다는 서큐버스 퀸이나 소화할 수 있는 것인데. 어찌 이런 헤어스타일을 랜덤으로 팔 수가 있는 것이지? 누가 소화하라고?”
미용사 NPC는 그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할 뿐이다.
바로 그때.
[누가 이렇게 시끄럽니?]
안쪽에서 시니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Cool head and warm heart.
미용실 로비 중앙에 붙어 있는 커다란 글귀 밑으로 활짝 열린 내문 앞에 서 있는 남자.
대머리, 하트 모양의 선글라스, 쫙 달라붙는 스키니 진, 통이 지나치게 넓은 바짓단.
그리고 배꼽까지 파인 브이넥 셔츠와 온몸을 감싸고 있는 분홍색 깃털 코트는 그를 한 마리의 플라밍고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게다가 압권인 것은 등에 짊어지고 있는 거대한 황금의 빗.
그것은 빗이라 하기에는 너무나도 컸다.
엄청나게 크고, 두껍고, 무거웠다.
그것은 그야말로 철퇴나 다름없는 수준의 비쥬얼이었다.
“……무슨 베*세르크에 나오는 주인공의 무기 같군.”
튜앙카는 눈앞에 나타난 대머리 남자의 관록과 위압감에 저도 모르게 압도당하는 것을 느꼈다.
짐.
그는 이 뷰티 헤어 살롱의 주인으로 쉽게 만날 수 없는 인물이었다.
튜앙카는 마른침을 삼켰다.
“조사한 바 대로다. 미용실에서 ‘랜덤 헤어스타일 쿠폰(39,800 KRW)’의 확률 문제를 제기하면서 NPC와 싸우다 보면 확률적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게 역시 사실이었어.”
그녀는 메모장 스크린을 켜 보고서의 내용을 작성했다.
“좋았어. 이것으로 뎀2의 세계를 보다 자세히 알게 되었다. 이 정도 가치의 정보들을 계속 수집해 간다면 조만간 로얄 블러드 길드의 1급 정보원으로 승급하는 것도 꿈이 아니야.”
튜앙카는 계속해서 미용사 짐의 대사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짐은 심드렁한 어조로 튜앙카의 머릿결을 내려다보았다.
[어머? 형편없는 머릿결이네. 내가 아는 한 머리카락에 비하면 말이야.]
“이 NPC 특유의 고정 대사인가? 으음…… 유저를 멸시하는 타입의 NPC인가 보군. 하긴, 헤어스타일을 랜덤 확률로 팔아먹을 때부터 느끼긴 했지.”
튜앙카는 계속해서 짐의 대사 패턴을 관찰했다.
뷰티 헤어 살롱의 지배인인 짐은 머릿결에 대한 안목이 굉장히 대단했고 또한 남의 머릿결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 버릇이 있었다.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지. 여왕의 머릿결조차도 내 눈에 차지 않는다고 말하는 바람에 교수형을 당할 뻔하기도 했어. 웬일이니, 웬일이야~]
[하지만 그 뒤, 여왕은 내가 아니면 아무에게도 머리카락을 맡길 수 없는 몸이 되었지. 나는 이 세상의 그 어떤 머리카락이라고 해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거든. 지금은 우리 살롱의 단골이 되었단다.]
[세상의 그 어떠한 머리카락이라고 해도 내 빗을 거치면 아름답게 찰랑거리게 되지.]
[서큐버스 퀸의 머릿결이 세상 제일이라던데, 한번 만나 보고 싶어.]
튜앙카는 짐의 대사 패턴을 계속해서 정리하기 시작했다.
#뷰티 #세련 #패션 #난해 #장인 #명장 #오만 #꼰대 #꼬장꼬장 #깐깐 #신경질적 #외모 #기괴 #대머리……
이윽고, 짐의 성격과 설정을 어느 정도 파악한 튜앙카는 짐에게 말했다.
“그래서. 당신에게 머리카락을 관리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 커다란 빗은 또 뭐야, 심상치 않은데. 그것으로 내 머리카락을 관리해 주는 건가?”
튜앙카는 짐이 들고 있는 거대한 황금빗에 관심을 보였다.
저건 또 뭐 하는 히든 피스일까?
……바로 그 순간.
짐은 표정을 구기며 노골적인 불쾌감을 드러냈다.
[뭐라고 지껄이는 거니?]
당황하는 튜앙카에게 짐은 따따따 쏘아붙였다.
[내 빗은 너 같은 뜨내기를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니란다?]
[나에게 머리카락을 관리받고 싶다면 그만큼 가치 있는 머리카락을 가꿔서 오렴!]
[돈은 전부 환불해 줄 테니 이만 나가 줬으면 좋겠어! 우리 미용사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말고!]
그것이 끝이었다.
“으음, 성격이 장난 아니게 까탈스러운 사람이군.”
튜앙카는 미용실에서 내쫓기면서도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바뀐 헤어스타일이 마음에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짐을 만나보기 위해 억지로 항의를 했던 것이 패인이었나……. 그렇다면 다음에는 꼭……!”
그리고 그녀가 미용실의 뒷문으로 내쫓기는 순간.
딸랑-
미용실의 앞문으로 들어오는 네 명의 사람이 있었다.
* * *
“접속.”
[음성 인식으로 보안 해제]
.
.
[동기화 중입니다……]
.
.
[동기화 완료!]
-띠링!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당신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게임에 접속하자마자 뷰티 헤어 살롱 ‘동방박사의 선물’을 찾았다.
목적은 처음에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을 찾아갔을 때와 같다.
‘항아의 머리카락’, 유토러스 최대의 대장간에서조차도 제련을 포기한 이 S급 재료 아이템을 가공하기 위해서였다.
딸랑-
문에 매달린 방울이 울리는 소리.
이산하 일행이 미용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모두의 눈에 짐의 손에 의해 끌려 나가고 있는 은발의 소녀가 보인다.
“로얄 블러드 길드…… 아버님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꼭 성과를 내서…… 조만간 1급 정보원으로 승급…… 절대 초심을 잃지 말고…… 일일퀘스트부터 메인퀘스트까지 하나하나…… 게임은 완벽하게…… 철저하게…… 3차 대격변까지 남은 시간은…… 이대로라면 성장치가 미달…… 일일퀘를 하나 더 늘려야…… 그러려면 잠자는 시간을 조금 줄여야 하겠…….
앞으로의 계획을 짜는 데 여념이 없어 보이는 소녀.
이우주는 고개를 갸웃했다.
“방금 저 머리카락, 그리고 얼굴…… 어디서 봤었는데…… 어디서 봤더라?”
낯이 익은 것으로 보아 분명 최근에 봤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런 이우주의 중얼거림 따위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우와!”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반짝거리는 시선으로 뷰티 살롱 내부를 돌아보고 있었다.
“대박! 완전 럭셔리하다! 유토러스에 이런 건물이 있는 걸 이제야 알았다니! 게임 플레이 절반 손해 봤어!”
“세련. 그 자체. 어쩐지 위축될 정도. 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음. 두근거리는 것.”
“……흥. 촌년들 같으니. 뉴욕에는 이런 미용실이 몇 개는 있다고. 뭐, 감각적으로 잘 꾸며 놓기는 했네.”
여자들은 기본적으로 미(美)적인 것에 관심이 많다.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맨날 살벌하게 생긴 던전만 돌아다니다가 이런 아름다운 공간에 오자 몹시 기뻐하는 듯했다.
반면 이우주는 뷰티 헤어 살롱의 분위기가 별로 맞지 않는지 미간을 미미하게 찌푸리고 있었다.
“내게는 조금 부담스러운 장소인데? 나는 맨날 레드클럽에 가서 7천원 주고 커트만 해서…….”
“에이! 이건 게임 캐릭터 커스터마이징하고도 비슷하지! 룩덕 몰라? 룩덕!”
“나는 게임을 할 때도 그냥 기본 아바타에 상점 템만 두르고 해 버릇 한지라.”
“너어는 정말~ 감성이 황태껍질튀각마냥 말라비틀어졌구나~”
이산하 이우주 남매가 티격태격 싸우고 있을 때.
[너희들은 또 뭐니? 오늘 왜 이렇게 뜨내기들이 많아?]
안쪽에서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모두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이 뷰티 헤어 살롱의 지배인인 짐이 서 있었다.
“……!”
순간. 이우주의 시선이 짐의 등 뒤, 분홍색 깃털이 풍성하게 돋아나 있는 코트 자락에 숨겨져 있는 거대한 빗에 고정되었다.
“저 사람이구나. 헤파이스토스가 말했던 사람이.”
아마도 유토러스에서 머리카락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을 전문가.
또한 유토러스 근육맨 선발대회에서 1등이라는 성적을 거두어 금메달을 획득한 적이 있는 기인(奇人).
이것이 바로 그의 진짜 이름이었다.
이우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남자의 솜씨라면 분명 항아의 머리카락도 다룰 수 있을 거야. 유토러스의 날고 기는 명장(名匠)들 사이에서도 깐깐하고 신경질적이라고 소문 난 남자이니만큼 대뜸 부탁을 하면 안 통하겠지. 그렇다면 처음에는 호감도 작업을 통해서 라포(Rapport)를 형성해야…….
하지만 짐은 아까부터 계속 심기가 불편한지 짜증스러운 기색이다.
[어휴, 시간 없어 죽겠는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붐비는 거람? 예쁜 머리카락을 가진 손님도 전혀 못 만났고. 어쩜~ 오늘처럼 피곤하고 짜증스러운 날은 오랜만인걸?]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짐의 외모와 성격, 대사들로 미루어 짐작건대 이우주는 앞으로의 작업이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응?”
솔레이크가 무언가를 발견한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짐의 머리 위, 화려한 로비 중앙에 있는 커다란 현판에 적혀 있는 글귀가 솔레이크의 시선을 잡아끌고 있었다.
Cool head and warm heart.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라는 뜻을 가진 명언.
하지만 솔레이크는 그것을 조금 다르게 해석했다.
“……대머리의 마음은 타들어 가고 있다?”
옆에 있던 이산하, 이우주, 죠르디가 미처 만류할 틈도 없었다.
…뚝!
이 커다란 굉음이 무슨 소리냐 하면……
[나가!]
짐의 호감도가 떨어지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