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65화 헤어(Hair)나올 수 없는 매력 (3)
-<항아의 머리카락> / 재료 / S
항아가 살아생전에 길게 길렀던 머리카락.
태양을 향한 올곧은 마음이 깃들어 있다.
-특성 ‘융합’ 사용 가능 (특수)
이산하가 내민 머리카락을 본 헤파이스토스는 다소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이게 뭐야. 머리카락이잖나?]
“네. S급 재료 아이템이에요.”
[S급이고 뭐고, 여인네의 머리카락 아니야. 나는 그따위 것은 취급하지 않는다.]
헤파이스토스는 매우 불쾌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흥. 계집의 머리칼을 다루라고? 나 같은 상남자에게? 어처구니가 없군. 부정 탄다. 썩 도로 가져가!]
“돈 드릴게요.”
[흥. 돈 따위로 나의 신념을 살 수 있을 것이라……]
“따불.”
[흐, 흥……]
“따따불.”
[거, 일단 보기나 하지. 크흠. 꼭 한다는 것은 아니고.]
거절하기에는 쫌 많은 액수였나 보다.
헤파이스토스는 못 이기는 척 슥- 고개를 빼고 이산하가 내민 머리카락을 살폈다.
[흐음. 살펴보니 S급 재료 아이템이 맞군. 허풍을 치는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허풍을 왜 쳐요. 빨리 제련이나 해 주세요.”
[그래, 뭘 하면 되나? 내 후딱 만들어 주지.]
“활시위를 만들 거예요.”
[뭐? 활시위? 머리카락으로? 하하하- 끊어 먹기 딱 좋겠군. 머리카락으로 활시위라니 말이야.]
헤파이스토스는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를 쭉 돌아보며 말했다.
[풋내기 모험가들이 이 몸을 몰라보고 의뢰를 맡긴 모양인데, 자네들은 아주 운이 좋은 걸세. 나는 쉽게 만날 수 있는 몸이 아니라 이거야.]
그 말대로였다.
그가 어떤 인물인가?
1차 대격변과 2차 대격변이 일어났을 당시에도 유일하게 완파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던 최후의 요새 토치카를 설계한 장본인이자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제련에 실패해 본 경험이 없는 명장 중의 명장이다.
-dldj***
★★★★★
제련하기 힘든 재료로 훌륭한 무기를 만들어 주셨어요! 만족만족 >ㅁ
-소라게***
★★★★★
사장님이 맛있고 용광로가 친절해요~~~대장간 맛집 인정^^
-캡띤땃쥐***
★★★★☆
대장장이님 솜씨가 좋아요. 대장간 내부도 깨끗하고 위생적이에요. 가격이 조금 부담스러운 것만 빼면 인생 대장간 찾음ㅇㅇ
-아이템이잘만들어지면우는사이렌***
★★★★★
웨에에ㅇ에에ㅔ에ㅔㅔ에ㅔ에ㅔᅟᅦᆼㅇㅇ에에엥에에에에에애ㅔ에엥ㅇ에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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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들의 별점도 후기도 모두 깨끗한.
비록 돈을 조금 밝힌다는 성격적인 결함이 있기는 하지만 실력 하나는 정말로 확실한 NPC였다.
헤파이스토스는 으쓱거리는 몸짓으로 항아의 머리카락을 받아들었다.
[이런 유약한 머리카락을 가공하라니. 자칫 힘조절에 실패하면 끊어져 버릴지도 모르겠군. 하하하-]
온몸이 근육질인 헤파이스토스는 참고로 유토러스 근육맨 선발대회에서 2등이라는 성적을 거두어 은메달을 획득한 적이 있기도 하다.
이윽고.
[그럼 조금만 구부려 볼까? 유연하게 만들어 놔야 활시위로 가공할 수 있을 테니까.]
헤파이스토스는 항아의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구부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꾸드드드드드드득!
요란한 소리와 함께 헤파이스토스의 이마와 전신 근육 위로 핏줄이 불거져 나왔다.
마치 구렁이처럼 꿈틀거리는 핏줄.
…우드드드드드드득!
하지만 어째서인지 소음은 헤파이스토스의 손아귀 속에서만 나고 있었다.
항아의 머리카락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구부러지지도 않았고 휘어지지도 않았다.
얼굴이 벌개진 채 한참 동안이나 머리카락과 씨름을 하던 헤파이스토스는 이내 온몸이 땀범벅이 된 채로 늘어졌다.
[허억, 헉! 마, 말도 안 돼. 내가 3대를 몇이나 치는데 겨우 이런…… 헉!]
헤파이스토스는 중얼거리다 말고 슬쩍 이산하의 눈치를 본다.
“…….”
“…….”
“…….”
“…….”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의 시선이 헤파이스토스를 빤히 응시한다.
아무런 말도 없는 그 침묵 속에서 헤파이스토스는 참을 수 없는 굴욕을 느꼈다.
[어, 어험! 제법 강한 머리카락이군! 재료가 될 자격이 있어! 하지만 이런 것을 맨몸으로 제련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 모름지기 대장장이라면 도구를 써야 하는 법이야.]
이윽고, 헤파이스토스는 대장간의 구석으로 향했다.
살벌하게 생긴 쇠기둥과 톱니바퀴들이 보인다.
[이 쇠기둥으로 일단 머리카락을 구부려 보기로 하지. 그 다음에는 톱니바퀴로 머리카락을 절단할 걸세.]
헤파이스토스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거대한 공장기구들을 돌아보았다.
[중장비 제련용으로 설계된 이 최신 설비라면 이깟 머리카락쯤이야……]
그러나.
…깡! …파캉! …와지직! …콰콰콰쾅!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항아의 머리카락이 끼인 쇠기둥은 일그러지다가 그만 터져 나가 버렸고 톱니바퀴들은 죄다 이가 부러진 채 헛돌기 시작했다.
퍼-억!
헤파이스토스는 자신의 코끝을 스치고 날아가 벽에 박힌 쇠기둥의 파편을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그…… 가끔 있지. 물리력으로 다루기 힘든 녀석들이. 그럴 때는 역시 불이 최고야.]
물론 머리카락을 불에 태워 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헤파이스토스는 머리카락을 가져다가 불에 가져다 대 보았다.
이산하가 걱정스럽다는 듯 물었다.
“불에 닿으면 머리카락이 타지 않을까요?”
[적어도 끝부분이 돌돌 말리기야 하겠지.]
헤파이스토스는 기필코 이 머리카락의 형태를 바꾸어 보겠다는 집념으로 머리카락을 화로에 넣었다.
그러나.
쿠르르르륵!
끝없이 올라가는 불길 속의 온도에도 불구하고 항아의 머리카락은 조금도 변화가 없었다.
아무리 불에 지져도 말이다.
“변화가 없네. 끓는 물에 삶아 봐야 하나?”
“불에 지졌는데도 변화가 없는데 끓는 물에 반응할 리가.”
이산하와 이우주가 중얼거린다.
그때, 헤파이스토스가 남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래. 불에도 반응을 안 보이는데 펄펄 끓는 물에 넣어봤자 뻔하지. 하지만 적어도 물을 이용한다는 발상 자체는 쓸 만했다. 따라오도록!]
헤파이스토스가 이산하 파티를 안내한 곳에는 처음 보는 거대한 장비가 세워져 있었다.
그것은 마치 대포처럼 생긴 것이었는데 거북이의 껍질 위에 두 개의 포신이 돋아나 있는 모습이었다.
[우리 대장간은 말이야. 전 대륙의 대장간 최초로 물을 다루는 시스템을 도입했지. 다른 대장간들처럼 단지 불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헤파이스토스의 자랑을 들은 이산하가 이우주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동생아. 이거 아무리 봐도…… 그거지? 그거 맞지?”
“음. 오마쥬겠지. 포켓*스터의 거북*을 꼭 닮았군. 물대포나 하이드로펌프라는 기술을 쓸 것처럼 생겼네.”
그 말대로였다.
헤파이스토스는 현실 세계에 실제로 있는 ‘워터젯’이라는 기계처럼 눈앞에 있는 거대한 대포를 작동시켰다.
헤파이스토스는 낄낄 웃었다.
[이 고압의 물대포는 암석 가루를 섞은 물을 쏴서 다이아몬드조차도 잘라 내지. 두께 10센티미터의 철반을 0.0043초 만에 절삭할 수 있다네. 파괴력만으로 따지자면 씨어데블의 공격과도 맞먹는다고.]
강력한 제트수류를 뿜어내는 이 거대한 기계는 헤파이스토스의 자랑이기도 했다.
[원래는 일반인들에게 쉽게 보여 주지 않는 것인데…… 간만에 기분이다! 이것으로 가공을 해 주지!]
헤파이스토스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눈앞에 있는 항아의 머리카락을 노려보았다.
이윽고.
퍼퍼퍼퍼퍼퍼펑!
초고압의 물대포가 뿜어져 나와 항아의 머리카락을 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촤아아아악!
처음에는 강맹하게 뿜어져 나오던 물대포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사그라든다.
그리고 결국에는.
졸졸졸졸졸……
물이 다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이산하는 실망한 어투로 말했다.
“뭐야, 바뀐 게 없잖아?”
항아의 머리카락은 물에 약간 젖었을 뿐 그대로였다.
부들부들부들부들……
헤파이스토스가 분노로 몸을 떨기 시작했다.
[이럴 수는…… 이럴 수는 없어! 어떻게 머리카락이 나의 장비들을……!]
이윽고, 헤파이스토스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제 2용광로를 가동해라!]
그러자 드넓은 대장간에 있던 모든 대장장이들이 화들짝 놀랐다.
[스, 스승님! 그것은 과거 죽음룡의 광산에 있었던 그 용광로가 아닙니까!]
[수많은 희생을 치러가며 잔해더미 속에서 발굴해 냈던 그 저주받은 용광로를!]
[죽음룡 오즈의 불카노스 비늘을 제련했던 그 전설의 용광로에 불을 지피시는 것입니까!?]
[전원 준비태세! 대장간의 모든 문을 닫아라! ‘그 괴물’이 가동된다!]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에서 가장 큰 용광로가 달궈지기 시작했다.
이우주는 눈앞에 있는 거대한 용광로를 보며 감탄했다.
“이거 아빠의 동영상에서 본 적 있어. 과거 죽음룡 오즈가 숨어있었던 던전 ‘죽음길 나락’. 그곳에 있던 세 개의 용광로들 중 하나로군.”
‘죽음길 나락’.
투르크메니스탄의 카라쿰 사막 한복판에 실제로 있는 구멍 '더웨즈(Derweze)'를 모티프로 만들어진 무시무시한 던전으로 한때 고정 S+등급의 몬스터가 잠들어 있었던 곳이다.
‘‘보글보글’이라는 게임 알아?’
‘거품이 참 예쁘다.’
‘드디어 다 모았군. ‘EXTEND’를!’
‘……빠요엔.’
아빠가 처음으로 고정 S+급 몬스터를 공략하기 직전에 통과했던 장소이기도 했다.
“그 당시에 이곳을 지키고 있었던 중간 보스 몬스터가 바로 밴시 퀸이었지. 아니, 리자드맨 유저들이 일일퀘를 하던 곳이었나? 어느 쪽 용광로인지는 모르겠네.”
“아무튼 그곳에 있던 오브젝트가 이곳으로 옮겨져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야.”
이우주와 이산하는 동경이 섞인 시선으로 눈앞에 있는 거대한 용광로를 내려다보았다.
본디 3800㎥에 불과했던 기존 용량이 6000㎥로 개수된 제 2용광로.
그것은 1년에 565만 톤의 쇳물을 생산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전 세계 최대의 용광로인 포스코 광양제철소의 제 1고로를 모티프로 만들어진 것이니만큼 그 위용이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쿠르르르륵!
화입식(火入式)이 이루어지고 있는 용광로는 점차 뜨겁게 달아오른다.
……그러나.
푸슈슈슈슉……
시간이 지나 용광로의 불이 꺼져 버린 뒤에도 항아의 머리카락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
“…….”
“…….”
“…….”
“…….”
헤파이스토스뿐만이 아니라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 역시도 어이가 없어 말을 잇지 못한다.
그 뒤로 헤파이스토스의 눈물겨운 노력들이 쭉 더 이어졌다.
항아의 머리카락에 키위즙과 배즙, 무즙, 파인애플즙 등을 발라 보기도 했고 마사지 의자에 앉혀 놓고 클래식을 연주해 주기도 했지만 항아의 머리카락은 전혀 부드러워지지 않는다.
눈꼽만큼도 이완되거나 구부러지지 않는 항아의 머리카락을 보며.
[봐, 봐라! 성공했다! 드디어 이 머리카락을 구부러트리는 데에 성공했어! 여기 유리잔에 물을 붓고 이렇게 머리카락을 넣으면! 쨘! 구부러져 보이지!? 굴절되어 보이잖아! 하하! 내가 이겼어! 내가 이겼다고!]
헤파이스토스는 이제 가벼운 정신 착란 증세마저 보이고 있었다.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저었다.
“맛이 갔네, 맛이 갔어. 어휴, 후불제라서 다행이다. 제련도 못 했는데 돈만 낭비할 뻔했네.”
“그런데. 이 머리카락. 어떻게 하나? 제련이 불가능.”
“이 대장간은 데린쿠유에 있는 대장간 다음으로 시설이 좋은 곳이야. 여기서 안 된다면 아마 어디서도…….”
헤파이스토스는 돈을 조금 밝히기는 하지만 실력 하나만큼은 명장 중의 명장이다.
그것은 데린쿠유에 있었던 마몬이 보증한 사실이기도 하다.
이우주는 턱을 짚고 고심했다.
“흐음. 어쩌지. 다시 마몬 씨를 찾아가 봐야 하나…….”
그때.
[자, 잠깐. 어쩌면…… 어쩌면 그곳에 간다면……]
제정신을 차린 헤파이스토스가 이우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템’으로서가 아닌 ‘머리카락’으로서라면…… 차라리 ‘대장간’ 말고 다른 장소를 찾아가 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군.]
“다른 곳?”
[병은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철은 대장장이에게…… 그리고.]
헤파이스토스는 결연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머리카락은 미용사에게.]
그가 손을 뻗어 가리킨 곳은 대장간의 창 밖, 수많은 사람이 오가고 있는 사거리 한복판.
<뷰티 헤어 살롱 - ‘The Gift of the Magi’>
한눈에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간판이 붙어 있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