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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938화 (938/1,000)
  • 외전 64화 헤어(Hair)나올 수 없는 매력 (2)

    여기 한 플레이어가 시장에서 아이템을 구입하고 있다.

    그는 좌판 위에 있는 아이템을 보며 입을 열었다.

    “거기 엔피씨. 이거 ‘보석 갯강구’ 아이템 얼마야?”

    그러자 NPC는 무표정하고 고저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300만 골드요.]

    “뭐어? 아니 왜 이렇게 비싸?”

    [싫으면 다른 데 가서 사시오. 취급하는 좌판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허허- 아주 배짱 장사구만?”

    그때, 옆에 있던 다른 플레이어가 그를 만류했다.

    “야, 넌 푸줏간 동화 이야기도 모르냐?”

    “뭐? 그게 뭔데?”

    “그 왜, ‘돌쇠놈아~ 고기 한 근만 내오너라’하는 손님이 있었고 ‘돌쇠 사장, 고기 한 근만 주겠나?’ 하는 손님이 있었는데 둘의 고기 양이 달랐다는 거 말이야. 그래서 적게 받은 사람이 화를 내자 주인장이 ‘당신 고기는 돌쇠놈이 자르고 저분 고기는 돌쇠 사장이 잘라서 그렇다’라고 했다잖아.”

    “흐음. 그도 그렇군.”

    “뎀2의 NPC들은 인공지능이 뛰어나서 그렇게 다루면 안 돼. 호감도만 깎일 뿐이지. 내가 하는 걸 잘 보라고.”

    그는 짐짓 온화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기요 사장님~ 혹시 이 보석 갯강구의 가격이 얼마쯤 되나요?”

    그러자 NPC는 아까와 똑같은 어조로 대답했다.

    [300만 골드. 비싸다고 생각되면 다른 데로 가시오.]

    “뭐야, 나는 친절하게 말했는데 가격이 왜 똑같아?”

    두 플레이어가 항의하자 NPC는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이 시장은 다 가격 정찰제요. 말투 좀 다르다고 마음대로 물건의 양이나 가격의 정도를 조절해서야 안 되지. 누구에게는 싸게 주고, 누구에게는 제값 받고, 누구에게는 비싸게 받으면 결국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의 부담을 강제로 짊어지게 되는 것 아니오. 그것은 결국 다 재래시장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것.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같은 가격에 정량을 판매하오.]

    그러자 두 플레이어는 투덜투덜 거리며 결국 보석 갯강구를 300만 골드에 사 갔다.

    NPC는 그 모습을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바로 그때.

    “낙타 아저씨!”

    그 NPC를 부르는 활기찬 목소리가 있었다.

    그의 표정이 순간 생동감 있게 변했다.

    이스마엘은 자신을 부르며 나타난 이산하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그리고 어느새 합류한 죠르디가 그곳에 있었다.

    반짝-

    권태와 나른함만이 가득하던 이스마엘의 얼굴이 갑자기 활기가 돈다.

    그동안 불특정 다수를 향해 바닥을 치고 있었던 호감도 게이지가 갑자기 Max단계까지 쭈욱 상승했다.

    [오! 자네들이로군! 덕분에 내 그림자를 되찾을 수 있었어. 고맙네, 고마워!]

    아까 전의 두 플레이어를 대할 때와는 정반대인 환대였다.

    한편, 이우주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완료한 퀘스트 목록에는 흑해의 무영왕을 쓰러트렸을 당시에 저장된 레코드가 아직도 뚜렷하게 저장되어 있었다.

    <세계 최초로 ‘흑해(黑海)의 무영왕(無影王)’ 레이드에 성공하셨습니다!>

    <‘흑해의 무영왕’이 죽었습니다. 하해의 어둠이 저변의 아래에 봉인됩니다.>

    <바다 밑에 갇혀있던 모든 사념들이 천천히 흩어집니다.>

    <하해를 떠돌던 망령들이 해파리들의 몸에서 빠져나갑니다.>

    <히든 퀘스트 ‘그림자를 빼앗긴 사나이’를 완료하셨습니다.>

    <히든 퀘스트 완료 조건: ‘흑해(黑海)의 무영왕(無影王)’ 처치 1/1>

    <시추꾼 이스마엘이 자신의 그림자를 되찾았습니다.>

    .

    .

    이산하가 후련하다는 듯 말했다.

    “퀘스트 끝나고 확인하러 오길 잘했네. 아저씨가 밝아진 것을 보니 기뻐요.”

    [덕분에 동료들의 원혼도 성불할 수 있었어. 이 감사를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그때.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의 머리 위로 느낌표 모양의 이모티콘 하나씩이 떠올랐다.

    -띠링!

    <시추꾼 이스마엘의 호감도가 Max 단계입니다.>

    <노점상의 비밀좌판이 개방됩니다.>

    <지금까지는 살 수 없었던 희귀 아이템들을 열람 및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모두의 얼굴에 화색이 감돈다.

    “엇 뭐지? 히든 피스를 구할 수 있는 건가?”

    “오, 이런 추가 보상이 있었을 줄이야.”

    “대박. Big gourd. 다 산다. 여기 있는 것. Must-have item.”

    “처음이군. 너희들하고 같이 있기를 잘한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은.”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그리고 솔직하지 못한 죠르디는 두근거리는 심경으로 이스마엘의 좌판을 열어 보았다.

    츠츠츠츠츠츠츠츠츠……

    이윽고, 숨겨져 있던 좌판이 드러났다.

    -<희토류 화살> / 화살 / A+

    희귀한 금속으로 만든 화살.

    강력한 폭발을 일으켜 주변에 추가 데미지를 흩뿌린다.

    -<악령껍데기 골렘방패> / 방패 / A+

    골렘이 장비할 수 있는 무형(無形)의 방어구.

    방어력은 낮지만 무게가 0이며 다른 방패에 덧대어 두 겹으로 장비할 수 있다.

    -<죽은 말 조련법> / 마도서 / A+

    다수의 유령군마를 부리는 끔찍한 흑마법이 기록되어 있는 마도서.

    평범한 마법사라면 읽는 것만으로도 미쳐버릴 것이다.

    -<줄 없는 손목시계> / 재료 / S

    금으로 만들어져 있는 최고급 시계로 어떤 상황에서든 완벽하게 정확한 시간을 알려준다.

    누군가가 급한 사정 때문에 매물로 내놓은 듯하다.

    .

    .

    원래는 열람할 수 없었던 비매품들.

    하나같이들 희귀한 레어 아이템 수십 종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력한 데미지 옵션이 박혀 있는 화살이나 골렘의 속성 방어력을 대폭 증가시켜 주는 방패, 흑마법사나 흑마검사라면 누구나 탐낼 법한 마도서 등등 수많은 히든 피스들이 가득하다.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기 시작했다.

    “우와, 다 좋은 것들뿐이네!”

    “옵션. 대단하다! 시중에서 파는 상점템. 비교조차 안 되는!”

    “……여기 있는 것들을 싹 다 사서 경매장에 올려도 훨씬 남는 장사겠는데?”

    하지만.

    [살 수 있는 것은 이것들 중 하나뿐이라네.]

    이스마엘은 부드럽지만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그는 아이템을 전부 다 팔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에? 뭐야, 쩨쩨해. 다 팔아요 그냥~”

    “감사하댔으면서 너무한다. 쓸 거면 확실하게 써라.”

    “맞아. 우리가 흑해의 무영왕을 잡느라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투덜댔지만 이스마엘은 요지부동이었다.

    이우주가 신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꼭 지금 골라야 하나요?”

    [그럴 리가. 무엇을 고를 것인지 판단이 선다면 언제든지 내게 다시 오게나. 이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지.]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조금 더 고민해 보고 올게요.”

    이우주는 파티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한 아이템을 고르면 좌판이 닫히나 봐. 나머지는 영영 못 사게 되는 모양이야.”

    그리고 이우주는 이런 비밀 상점에서 살 수 있는 아이템들은 대개 이곳이 아니면 다른 어디에서도 구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즉, 이 좌판 위의 아이템들은 이 게임 속에서도 유일무이(唯一無二)한 것들이라는 뜻이지. 그러니까 아주 신중하게 골라야 해.”

    “에엥- 나는 화살촉이 갖고 싶은데.”

    “나는 골렘 파츠.”

    “이 몸은 유령 군마를 부리는 마도서가 탐나는군.”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가 티격태격거리기 시작했다.

    “화살촉! 화살촉 사게 해 줘! 으앙!”

    “내 골렘도! 고생 많이 했다! I wish his body more 튼튼데스네!”

    “유령 군마를 더 늘리고 싶긴 한데…….”

    셋 다 자기가 쓸 아이템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딱히 의견이 하나로 모일 여지가 없었기에, 일단 이우주는 세 여자 사이를 중재했다.

    “흠. 당장 결정하기는 힘든 문제네. 나중에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니까 일단 선택을 보류해 두자고. 나중에 개인방송 켜서 시청자 분들에게 함께 골라 달라고 부탁해도 되니까.”

    어차피 예상한 것 외의 추가 보상이었기에 다들 그렇게 절실한 것도 아니었다.

    “좋아. 나중 레이드 때 공평하게 정하기.”

    “우주. 합리적. agree 한다.”

    “나중에 먼저 와서 슬쩍 사는 건 아니겠지?”

    결국 이우주의 의견에 따라 살 아이템을 정하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자, 그럼 당초의 목표대로 가자고.”

    이우주의 말에 세 여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오늘의 메인 목표는 하해에서 얻은 ‘항아의 머리카락’을 가공해서 활시위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항아의 머리카락> / 재료 / S

    항아가 살아생전에 길게 길렀던 머리카락.

    태양을 향한 올곧은 마음이 깃들어 있다.

    -특성 ‘융합’ 사용 가능 (특수)

    이 머리카락을 이용해 활시위를 제작한다면 그것을 활과 융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산하는 항아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와, 새삼 느껴지는 건데…… 진짜 엄청나게 빳빳하다. 무슨 국수 가락 같은데?”

    머리카락은 마치 삶기 전의 국수나 스파게티 면처럼 머리카락은 빳빳하고 단단하기 그지없었다.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항아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근처의 제련소로 향했다.

    뜨거운 용광로가 365일 24시간 연중무휴로 돌아가는 곳.

    그곳에는 털복숭이 근육마초 대장장이가 땀을 뻘뻘 흘리며 망치를 두들기고 있는 것이 보인다.

    유토러스 중심가 최고라고 불리는 레전드급 대장장이가 그곳에 있었다.

    “오, 저 대장장이를 만나다니 운이 좋네. 저 사람은 랜덤 출근이라서 은근히 만나기 힘들다던데.”

    이산하는 콧노래를 부르며 헤파이스토스의 앞에 가 섰다.

    이윽고, 헤파이스토스는 고고하며 오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파티원들을 내려다본다.

    [무슨 일이신가? 풋내기 모험가들.]

    “아이템 제련을 좀 맡기고 싶어서요.”

    [훗. 유토러스 최고의 대장장이인 이 몸에게 제련을? 물론 그만한 가치와 급이 있는 아이템이겠지? 이 몸을 부리는 삯은 아주 비싸다네.]

    헤파이스토스는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를 약간 무시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만큼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뜻이니 아이템 제련을 의뢰하는 입장에서는 썩 불쾌할 만한 일만은 아니었다.

    이윽고.

    이산하는 헤파이스토스에게 오늘의 핵심 목적을 내밀었다.

    “이 머리카락을 가공해 주세요.”

    순간, 이산하의 손바닥 위에 올려져 있는 ‘항아의 머리카락’을 본 헤파이스토스의 두 눈이 조금 커졌다.

    [……이건?]

    다소 의외의, 예상치 못했던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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