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63화 헤어(Hair)나올 수 없는 매력 (1)
TV에서는 9시 뉴스가 진행 중이다.
“외국과의 외교 문제가…….”
“여야는 오늘도…….”
“노사 간의 분쟁이…….”
“계층 간의 갈등이…….”
“세대 간의 차이가…….”
“남녀 간의 성별 대립이…….”
한참 동안이나 중요한 메인 시사들을 안내하던 아나운서는 이윽고 오늘의 가장 중요한 소식을 전했다.
핏-
뉴스 화면에 커다란 글씨와 화려한 특수효과들이 떴다.
<‘태양룡 군주’ & ‘오만의 악마성좌’의 부활! 그들이 귀환한다!>
아나운서는 열기 어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번 뉴스는 저도 아나운서를 떠나 한 사람의 게이머로서 참 기대를 하고 있는 내용인데요. 뎀2의 메인 대격변, 그러니까 3차 대격변의 리마스터 버전이 곧 오픈된다는 소식입니다.”
태양의 불길을 온몸에 휘감고 있는 금빛 비늘의 용.
그리고 검은 불길에 휩싸인 마차 위에서 불의 채찍을 휘두르고 있는 흑빛의 악마.
황금비늘 일족의 지존 ‘태양룡 바이어스’.
악마족의 정점 ‘오만의 악마성좌 루시퍼’.
두 마리의 고정 S+급 몬스터가 지상파 9시 뉴스의 메인을 장식했다.
“뎀 사는 앞으로 약 3개월 뒤, 최후의 확장팩을 출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벌써부터 게임 속 세계에서는 용과 악마 진영의 구성원들이 거대한 전쟁을 위해 각자의 집결지로 응집하고 있다는 보고들이 들려오고는 하는데요.”
아나운서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뎀 사의 전 총수였던 윌슨의 부정 개입과 실종으로 인한 여파로 휘발해 버린 3차 대격변이 이렇게 다시 유저들의 곁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에 기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때문인지 과거 뎀1에서 전성기를 구가했던 예전의 랭커들에 대한 관심 역시도 증가하고 있는데요.”
뉴스 화면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사진이 뜨기 시작했다.
전 세계 통합랭킹 1위 에드워드 튜더 프랜시스.
전 세계 통합랭킹 2위 비앙카 트럼프.
전 세계 통합랭킹 3위 페이사 릴레사.
전 세계 통합랭킹 4위 레프 다비도비치 트로츠키.
전부 다 뎀1의 전성기를 화려하게 이끌었던 구(舊) 하이랭커들이었다.
물론 그들의 산하에 있던 타파라, 구르무, 밸라이, 마루 마모, 존 호킨스, 올리버 마르코, 라치만 구룽, 토니토니 블레어, 오일러 심슨, 죠 올드만, 모노마흐, 알리타이슨 등의 쟁쟁한 강자들 역시도 뒤를 이어 소개되었다.
아키사다 아야카, 장마오 쉰, 핫세 다닐로바, 우에바라 아츠카네, 야마카미 시가쿠, 히데사토, 유키에, 스즈키 히카리, 빅토르 안, 올가, 표트르, 라스푸틴, 피반창, 주라이기, 구이룬메이, 리덩후이, 리우이하오, 탕쯔이, 팅위안, 커제, 구리, 카렐린 강, 오승훈, 최번개, 안티 니에미, 구라이 부랄 등등…….
그동안 명멸해 갔던 수많은 랭커들의 근황이 소개된다.
그중에는 여전히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이들도 있었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간 이들도 있었으며 추락해서 보이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게임을 떠난 이들은 없었다.
모두가 이 게임을 여전히 즐겁게 플레이하고 있다는 것만은 변함없었다.
“이것은 국내의 전 랭커들 역시도 마찬가지인데요.”
아나운서는 한국의 랭커들을 소개했다.
마태강, 이연호, 임요셉, 홍지노, 이준호, 류요원, 송병건, 최연석, 신창원, 유한방, 오달진, 장보람, 이근형, 오태식, 최무홍, 조현아, 금은동 자매…… 박보연, 윤두나, 배수지, 박소담, 니아 멤버들까지!
“한국을 대표하던 하이랭커들 중에는 여전히 프로 선수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고 이제는 은퇴해 코치가 된 사람도 있고 아예 랭커에서 은퇴하여 평범한 삶을 꾸려 나가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 이번 대격변을 맞이해 다들 게임으로 복귀했다는 것인데요.”
아나운서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내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고는 입을 열었다.
“그 중에서도 단연코 모든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존재가 있습니다.”
동시에.
수십 년 전의 영상이 재현된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3차 대격변.
고정 S+급 몬스터가 두 마리나 나타나 플레이어 연합을 마구 짓밟고 있었던 그때.
…쾅!
혜성처럼 나타나 두 마리의 고정 S+급 몬스터를 날려 버렸던 존재.
고인물.
아마추어 랭킹에서 신으로 군림하던 자.
마동왕.
전 세계 모든 프로리그를 무패의 전적으로 제패한 황제.
그리고 이내 밝혀진 두 영웅의 충격적인 정체.
아나운서는 화면의 영상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뉴스를 끝맺었다.
“당시에 세상을 구했던 ‘그 영웅’은 지금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아직 그의 행방은 오리무중입니다. 이번 대격변을 맞이하여 다시금 그가 모습을 드러낼지, 만약 드러내지 않는다면 남겨진 사람들로만 대격변 클리어가 가능할지, 모든 것이 아직은 불투명하기만 합니다.”
모든 것은 앞으로 3개월 안에 결판이 나리라.
* * *
따르릉-
구식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누구세요?”
‘그 영웅’은 낮 1시가 되어서야 잠에서 깨어 배를 벅벅 긁으며 전화를 받았다.
핸드폰 너머에서는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안녕하십니까, 고인물…… 아니 마동왕…… 아니 Rotten water님.”
바로 튜더였다.
“뭐야. 왜 또 전화 걸었어? 요즘 자주 거네.”
“그냥 안부차 전화드렸습니다. 잘 지내시죠?”
그는 여전히 흥분과 설렘, 동경, 애정, 우정, 존경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안부를 물어 온다.
“언제 한번 식사 하셔야죠.”
“됐어. 나 50억 없어. 너랑 밥 먹으려면 돈 내야 하잖아.”
“하하하- 오히려 제가 내야죠. 형수님은 잘 계시고요?”
“늘 잘 있지. 근데 형수라니, 당신이 나보다 연상인데. 한국식 나이로 따지면야 동갑이지만.”
“게임 잘하면 형이라고 배웠습니다. 하하하하하-”
“여전하네.”
그때, 튜더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참. 얼마 전에 자녀분들이 회사로 찾아왔었습니다.”
“어어. 들었어.”
“들으셨나요? 자녀분들은 비밀로 하고 싶어 하는 듯했는데.”
“애들은 말 안 했지만…… 나도 귀가 있지.”
“누구한테 들으셨습니까?”
“조디악.”
“……그놈이랑도 연락하십니까?”
튜더가 삐죽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조디악 그 녀석은 아주 불길하고 음흉한 놈입니다. 어울리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보원이 필요하시다면 차라리 제가…….”
“나도 뭐 딱히 어울리는 것은 아니고. 안 물어봤는데도 말해 주더라. 걔 딸 낳더니만 엄청 팔불출 됐어. 자기 딸 근황 얘기해 주다가 얻어 들었지 뭐.”
“딸은 귀엽지요.”
“내 딸은 막 그렇게까지 귀엽지는 않은데. 워낙에 왈가닥이라.”
그 말에 튜더는 피식 미소 지었다.
“아무튼. 자녀분들을 참 잘 키우셨더군요. 제 딸은 너무 고지식하고 완고해서 탈인데, 참 자유로워 보여서 좋았습니다.”
“이거 신세를 졌네.”
“오히려 제가 자녀분들께 많이 배웠지요. 오랜만에 뉴비 시절의 열정을 되살릴 수 있었습니다. 참, 자녀분들은 이번 대격변에서 두각을 드러낼 것 같은데, Rotten water 님께서는 향후 계획이 어찌되십니까?”
“글쎄. 흠, 우선은…….”
두 남자의 목소리는 살짝 작아졌다.
무슨 비밀스러운 대화라도 나누고 있는 양 말이다.
* * *
띠링-
핸드폰 메신저 알림이 울린다.
뎀2의 상태창 알림음 소리와 똑같은 소리였다.
오후 √1:03 읽음 동*모?-
오후 √1:03 읽음 동생 모해? 라는 뜻임ㅎ-
-1어 오후 √1:05 읽음
오후 √1:05 읽음 1어가 모야??-
-일어났다고 오후 √1:08 읽음
오후 √1:08 읽음 ㄴㄴ그렇게 줄여쓰면 안되지-
오후 √1:08 읽음 일*났 이라고 해야지ㅋㅋ-
-내*하 오후 √1:12 읽음
-내가 하고싶은 대로 할거임 오후 √1:12 읽음
오후 √1:08 읽음 맘*법-
오후 √1:08 읽음 맘대로 할거면 법은 왜 있냐는 뜻임ㅎ-
-조*까 오후 √1:12 읽음
-조까라는 뜻임 오후 √1:12 읽음
.
.
“넌 뒤졌다!”
이산하는 동생의 답장을 받자마자 핸드폰을 내던지고 침대를 박찼다.
…쿵!
방문을 열려고 밀었는데 어째서인지 문이 무겁다.
이산하가 씩 웃었다.
“이 자식! 깜찍하게 문 뒤에 침대를 놨구나! 어딜 늦잠을 자려고! 이-야아아아압!”
이산하는 두 손으로 문을 밀기 시작했다.
끼기기기기기긱-
무거운 문이 뒤로 밀리며 그 뒤에 있던 책상과 침대까지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히 엄청난 힘이었다.
방문을 힘으로 열고 들어가자 아직도 침대 속에서 꼬물거리고 있는 동생이 보인다.
“으으…… 문을 미닫이로 바꾸든가 해야겠어. 이건 사생활 침해야.”
이우주는 이불로 무덤을 만들어 놓은 채 죽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산하는 그런 것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기색으로 기운차게 소리쳤다.
“야! 오늘 삼촌네 캡슐방 가기로 한 날이잖아! 빨리 나와!”
“……방금 일어났잖아.”
“솔레이크 이미 요 앞이래! 빨리 나와!”
“그리고 만나기로 한 건 2시잖아. 왜 벌써 이래.”
“빨.리.나.와.!”
이산하가 동생을 이불채로 들어 올리며 힘차게 외치는 순간.
“안녕. 힘세고 강한 아침. 만일 내게 물어보면 나는 솔레이크!”
양반은 못 되는 솔레이크가 이우주의 방문을 재차 열어젖혔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이우주의 방 내부를 둘러보는 솔레이크.
“빨리 옷 입어! 늦겠어!”
“우주. 게을러. 소 된다. 마블링. 한우. 맛있어.”
“하아…….”
두 여자의 채근에 이우주는 깊은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뭐 하기로 했더라. 비몽사몽이라 생각이 안 난다.”
“오늘! 누나 활시위! 만들러 가기로! 했잖아!”
이산하의 활기 넘치는 목소리.
그제야 이우주는 왜 그녀의 텐션이 이렇게 높은지 알 수 있었다.
오늘은 그녀의 S급 활에 활시위를 달아 주러 가는 날이었다.
-<불완전한 용골궁(龍骨弓)> / 양손무기 / S
초심해에 서식하는 아룡(亞龍)의 척추를 엮어 만든 활.
현재는 활시위가 없어서 사용이 불가능하다.
-공격력 +2,500
-화염 속성 공격력 +500
-얼음 속성 공격력 +500
-특성 ‘융합’ 사용 가능 (특수)
-<항아의 머리카락> / 재료 / S
항아가 살아생전에 길게 길렀던 머리카락.
태양을 향한 올곧은 마음이 깃들어 있다.
-특성 ‘융합’ 사용 가능 (특수)
하해(下海)에서 얻었던 이 두 개의 아이템을 서로 융합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