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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935화 (935/1,000)
  • 외전 61화 후예사일(后羿射日) (5)

    봉몽은 피로 물든 자신의 몽둥이를 내려다보았다.

    “아, 아니야. 나, 나는 이러려던 게…… 이러려던 게…….”

    그럼 뭘 어떻게 하려던 것이었을까?

    봉몽은 스스로가 던진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허둥거렸다.

    “아아…… 나는 무슨 짓을…… 나는 대체…….”

    그는 머리카락을 피가 날 정도로 세게 쥐어뜯었다.

    바로 그때.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사립문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집을 비웠었던 스승이 돌아오고 있었다.

    용의 머리에 개의 몸을 가졌다는 괴물 ‘알유’를 퇴치하고 돌아오는 후예.

    봉몽은 다급해졌다.

    당장 항아를 어디론가 숨긴다고 해도 결코 스승을 속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이 지독한 피비린내를 무어라 설명한단 말인가?

    결국 봉몽은 선택을 내렸다.

    …타탁!

    봉몽은 기둥을 등지고 선 채 사립문 바깥을 향해 소리 질렀다.

    “스승님!”

    그러자 들려오던 발걸음 소리가 멎었다.

    이윽고, 스승의 자애로운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봉몽이구나. 무사한 것 같아 다행이다. 언제 돌아온 게냐?”

    “오지 마십시오!”

    “……?”

    봉몽은 스승을 보지도 않고 막아 세웠다.

    다행스럽게도 발걸음 소리는 다시 들려오지 않았다.

    뒤에서는 항아가 피를 흘리고 있다.

    봉몽은 이를 악물었다.

    “동정호의 큰 구렁이 ‘파사’를 퇴치하는 과정에서 심득이 있었습니다! 감히 청하건대 스승님께서 집에 들어오시기 전에 이를 확인해 주셨으면 합니다!”

    “허허허- 심득이 있었다니 다행이구나. 하지만 지금은 날이 늦었고 내가 많이 피곤하니 다음에 하자꾸나.”

    후예의 말을 들은 봉몽은 지금이 아니라면 도저히 다른 기회가 오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됩니다! ……천하의 스승님께서 피로를 핑계로 삼으시다니. 혹 저에게 추월당하실까 두려우신 것입니까!?”

    “……? 허허허-”

    사립문 밖 멀찍한 곳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후예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이윽고, 피로감이 느껴지는 후예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알겠다, 봉몽아. 내게 알유 퇴치를 마치고 남은 화살 아홉 발이 있으니 이것으로 너의 성취를 알아보자꾸나.”

    후예와 봉몽은 늘 이런 식으로 실력을 시험하고 또 시험받곤 했었다.

    봉몽이 먼저 후예에게 화살을 쏘면 후예는 뒤늦게 화살을 쏴 그 화살을 맞추어 떨어트리는 식이다.

    봉몽의 화살이 얼마나 빨라졌는지, 얼마나 정확해졌는지를 직접 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압도적인 실력의 우위가 있지 않으면 시도할 수 없는 위험천만한 시험법이었다.

    으득-

    봉몽은 이를 악물었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절대적인 여유를 부리는 스승의 저런 태도가 고마우면서도 미웠다.

    다행스러우면서도 또 원망스러웠다.

    후예는 말했다.

    “내 몸에 상처 하나라도 낼 수 있다면 네 승리다. 그때는 하산해도 좋다.”

    “…….”

    봉몽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활을 잡았다.

    후예는 아홉 발의 화살을 가졌다고 했다.

    봉몽 역시도 아홉 발의 화살을 집어 들었다.

    이윽고.

    펑-

    첫 번째 화살이 날았다.

    …따악!

    하지만 그것은 허공에서 꺾여 버렸다.

    후예가 늦게, 아주 뒤늦게 쏜 화살이 봉몽의 화살을 허공에서 꺾어 버렸기 때문이다.

    흡족한 웃음기가 섞인 스승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많이 좋아졌구나 봉몽아. 이 정도라면 충분히 동정호의 구렁이를 처치할 수 있었겠어.”

    “……아직 멀었습니다!”

    봉몽은 이를 악물었다.

    혼신의 힘을 가한 저격이었으나 스승의 발치에도 닿지 못했다.

    이윽고.

    펑-

    두 번째 화살이 날았다.

    …따악!

    하지만 이번에도 화살은 목적지까지 가지 못했다.

    중간에 격추당했기 때문이다.

    봉몽은 포기하지 않았다.

    식은땀이 천천히 살 위를 흐르는 것이 느껴진다.

    호흡을 멈추자 심장이 느리게 뛴다.

    주변의 시간이 극도로 천천히 흘러가기 시작했다.

    펑-

    세 번째 화살이 날았다.

    …따악!

    이번에도 화살이 부러졌다.

    하지만 첫 번째와 두 번째보다 소리가 조금 더 늦게 들려왔다.

    ‘됐다! 나아가고 있다!’

    봉몽은 자신의 화살이 전보다 더욱 빠르고 강해졌음을 느꼈다.

    펑-

    네 번째 화살이 날았다.

    …따악!

    네 번째 화살은 첫 번째와 두 번째 화살보다 더 멀리, 심지어 세 번째 화살보다도 더욱 더 멀리 날아갔다.

    비록 후예의 화살에 꺾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펑-

    다섯 번째 화살이 날았다.

    …따악!

    여섯 번째.

    펑-

    역시나 꺾인다.

    …따악!

    일곱 번째, 여덟 번째 화살 역시도 결국 목표에 닿지 못했다.

    이윽고.

    까드득-

    봉몽은 아홉 번째 화살을 시위에 먹였다.

    ‘스승님은 지쳐 계신다. 벌써 많은 집중력을 소모하셨어. 그러니 할 수 있다. 지금이라면 스승님을 뛰어넘을 수 있어.’

    극한의 집중력이 화살촉 끝에 어린다.

    이윽고.

    펑-

    마지막, 아홉 번째 화살이 날았다.

    하지만 봉몽의 기대는 무참하게 꺾여 버렸다.

    …따악!

    지금까지와 다름없이, 아홉 번째 화살 역시도 부러져 버렸다.

    그것은 심지어 첫 번째 화살보다도 나아가지 못한 채 곧바로 제압당했다.

    봉몽은 그제야 깨달았다.

    후예가 방금, 심지어 지금 이 순간까지도 자신을 한없이 봐주고 있었음을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허허허- 이 스승을 떠나려거든 아직 멀었느니라 이놈아.”

    인자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나지막한 목소리에 깃든 여유를 읽는 순간, 봉몽의 머릿속에서 어떤 기억 하나가 떠올렸다.

    그것은 태양이 몰락할 때의 기억.

    지면으로 떨어져 죽은 아홉 태양과 아직 어렸던 자신의 허리춤에서 달랑거렸던 도마뱀 아홉 마리.

    그 격차는 실로 용과 도마뱀의 차이만큼 컸다.

    죽었다 깨어나도 극복할 수 없는 압도적인 격차였다.

    ‘……그렇게 노력했는데. 결국 하나도 좁혀지지 않았던 건가.’

    봉몽은 허탈함에 입을 반쯤 벌렸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멎었던 발자국 소리가 다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이제 곧 사립문을 열고 스승이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그는 피 흘리며 죽은 항아를 보게 되겠지.

    ……그렇다면 그 후에 자신은 어떻게 될 것인가?

    봉몽은 덜컥 겁이 났다.

    ‘수, 숨겨야…… 아니, 내가 숨어야…….’

    하지만 스승을 피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의 눈썰미를, 그의 시선을, 그의 화살을, 흡사 태양의 빛처럼 만물을 비추는 그의 위엄을 어찌 피해 숨을 수 있겠는가.

    ‘피할 수 없다. 숨지도 못한다.’

    봉몽이 흔들리는 눈동자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쓰러져 있는 항아의 옆으로 널브러져 있는 상자.

    그곳에는 화살 한 대가 빛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과거 스승이 태양룡을 잡을 때 썼던 무적의 병기.

    ‘태양살(太陽殺)의 화살’ 한 대가 그곳에 있었다.

    …덥썩!

    생각하고 말고 할 겨를도 없었다.

    봉몽은 항아가 신주단지처럼 모시던 상자를 부숴 버리고는 그 안에 있던 화살을 끄집어냈다.

    까라락-

    활에 예정이 없었던 열 번째 화살이 장전되었다.

    덜덜덜덜……

    손가락이 힘이 풀린다.

    호흡이 가빠지고 시야가 어지러웠다.

    과연 할 수 있을까? 상대방은 스승이다. 천하를 구한 태양살의 영웅이다.

    한낱 나 따위가 그의 털끝이나 해칠 수 있을까?

    봉몽은 혼란과 자기혐오에 빠진 채 그저 몸만 떨고 있을 뿐이다.

    바로 그때.

    “……안 돼!”

    봉몽의 손을 잡아당기는 다른 손길이 있었다.

    항아.

    그녀는 피를 흘리면서도 가물거리는 눈을 들어 봉몽을 올려다본다.

    그 원독 어린 시선을 본 봉몽은 아득해지려던 정신을 바짝 다잡았다.

    ‘여기서 물러났다간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

    어차피 항아에게 이렇게까지 미움받게 된 이상 더는 물러날 곳이 없었다.

    “비켜!”

    봉몽은 달라붙는 항아의 배를 걷어찼다.

    항아는 창백해진 낯빛으로 주저앉았다.

    후두둑- 후두둑- 후둑!

    머리에서 전보다도 훨씬 더 많은 양의 피가 쏟아져 내렸지만 봉몽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까라라락-

    봉몽은 온 힘을 다해 시위를 당겼고 사립문 밖으로 막 돌아 들어오는 그림자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그리고.

    퍼-억!

    그 옛날 열 개 중 아홉 개의 태양에 그랬듯, 이 화살 역시도 목표물에 정확히 꽂혔다.

    바로 후예의 심장에.

    “……?”

    후예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순간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몸의 반응은 정신의 반응보다 훨씬 빠르고 정직했다.

    …쿵!

    후예는 허리를 굽히며 땅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으득-

    봉몽은 이를 갈았다.

    후예는 심장을 관통당하고도 죽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죽지 않았다는 것은 곧 자신의 죽음을 뜻한다.

    ‘……항아! 이 녀석 때문에 조준이 흔들렸던가!’

    아마 마지막 순간에 항아의 방해를 받았기 때문에 화살촉이 심장을 조금 빗겨 간 것 같았다.

    봉몽은 버릇처럼 화살통을 뒤적였다.

    하지만 방금 전의 일격으로 인해 화살은 모두 소진되었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콰악!

    봉몽은 복숭아나무 몽둥이를 꺼내 들었다.

    뱀의 심장에서 묻은 피가 손아귀부터 시작해 봉몽의 몸을 점차 검게 물들이고 있었지만 그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끝장을 내야 해. 끝장을 내야해. 끝장을내야해. 끝장을내야해끝장을내야해끝장을내야해끝장을내야해끝장을내야해끝장을내야…….’

    스승은 영웅이다. 아니, 괴물이다.

    죽이지 않으면 후에 무슨 꼴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한편.

    “…….”

    후예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건 그때의 화살. 항아가 보관하고 있던 것인가? 어째서 이것이 여기에…….”

    그런 후예의 앞에 시커먼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봉몽. 온몸이 검게 물든 그가 손에 방망이를 움켜쥔 채 서 있었다.

    고개를 드는 후예에게 봉몽이 말했다.

    “항아가 그 화살을 내게 주었어. 당신을 죽이라고.”

    “…….”

    “나는 천하제일궁이 되어 그녀를 맞이하러 가겠다고 약속했었거든.”

    뱀의 혓바닥이 제멋대로 움직인다.

    봉몽은 홀린 듯 목소리를 냈다.

    “태양룡의 용옥은 나와 항아가 나누어 먹기로 했어. 모든 것은 처음부터 약속되어 있었던 일이야.”

    “…….”

    “당신이 끼어든 거야. 당신이! 당신이 나와 그녀 사이에 끼어들었던 거라고!”

    봉몽의 목소리는 이제 흡사 절규에 가까웠다.

    …퍼억!

    몽둥이가 후예의 머리를 강타했다.

    처음 한 번이 어려웠다.

    …퍼억!

    이어지는 두 번째는 더욱 쉬웠고, 세 번째는 더더욱, 네 번째부터는 무아지경으로 몸이 움직였다.

    …퍼억! …퍼억! …퍼억! …퍼억! …퍼억! …퍼억! …퍼억!

    이윽고, 뜨거운 피가 흙에 스며들게 되었다.

    후예는 쓰러진 채 쓰게 웃었다.

    이윽고, 그의 입술이 조그맣게 까닥였다.

    능히 열 개의 해를 떨어트릴 힘과 기개를 지녔으나.

    한 명의 제자를 알아보지 못했고, 또한 한 명의 여자를 알아보지 못했다.

    하늘의 일족으로 태어나 땅에서 죽어 가니.

    이 비루했던 삶도 이제는 안녕이리라.

    태양을 쏘려 했던 자가 달을 올려다보며 죽어 가나니.

    이 얼마나 기묘한 운명이 아닐 수 있겠느뇨.

    후예는 그 말을 남기고는 더는 움직이지 않게끔 되었다.

    그리고.

    “아아…….”

    사립문 앞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이가 있었다.

    항아.

    그녀는 땅을 엉금엉금 기어 후예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이미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 버린 후예는 그녀를 물끄러미 응시하고만 있을 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봉몽이 항아를 돌아보며 외쳤다.

    “우, 움직이지 마! 움직이면 출혈이 더……!”

    하지만 항아는 봉몽의 말을 듣지 않았다.

    아니, 듣지 못했다.

    그녀의 시선은 점차 흐려져 가는 와중에도 후예의 정지된 동공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한 여인의 마지막 넋이 끊어질 듯 말 듯 가물거린다.

    마치 태양을 바라보는 달처럼, 그녀는 후예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내가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이는 당신뿐이에요.’

    그것이 극(劇)의 마지막.

    무대가 암전되고 장막이 내려오기 직전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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