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59화 후예사일(后羿射日) (3)
콰-쾅!
하늘을 떨어 울리는 굉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시뻘건 핏물이 지면을 소낙비처럼 때린다.
후두둑- 후두둑- 후두둑- 후두둑-
용광로 같은 심장, 쇳물 같은 피.
그 어떤 것에도 상처 입거나 찢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용의 심장이 속절없이 터져 나간다.
…쿵!
태양룡의 거체가 떨어져 내렸다.
마치 쓰레기처럼.
후예(后羿).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영웅.
그는 커다란 활 한 자루와 열 대의 화살을 들고 땅 위에 우뚝 서 있었다.
후예가 활과 화살을 들어 하늘을 향해 쏘자 하늘을 날아다니던 열 마리의 태양룡 중 한 마리가 땅을 향해 거꾸러진 것이다.
쿠르르르륵!
열 개나 되었던 태양이 아홉 개로 줄어들자 세상에는 변화가 일어났다.
산목숨들을 장작 삼아 타오르던 불길이 조금 잠잠해졌고 하늘까지 닿을 기세로 번지던 매연 역시도 천천히 가라앉는다.
“……세상에.”
“태양을 쏘아 떨어트렸어.”
“그것도 단 한 발의 화살로.”
“이건 기적이다.”
마을 사람들, 아니 세상 사람들 모두가 몰려들어 그 광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홀연히 나타난 영웅 하나가 태양을 죽이는 것을 보며 넋 나간 표정으로 경배를 올린다.
까드득-
후예는 아무런 말없이 다음 화살을 장전했다.
콰-쾅!
또다시 한 발의 화살이 폭사된다.
어지간한 작살만큼이나 커다란 이 화살은 눈이 멀어 버릴 듯 아득한 황금빛 궤적을 그리며 날아갔고.
퍼-억!
이번에도 어김없이 태양룡 한 마리의 심장을 찢어발겼다.
…쿵!
태양룡의 거체가 떨어져 내렸다.
벌써 두 마리째였다.
“그동안 세상을 불바다로 만들어 왔던 대가를 치르거라.”
후예는 강하고 단호하며 뜨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세 번째 화살도 하늘 높이 날아갔고 역시나 태양룡 한 마리의 심장을 꿰뚫었다.
[……!]
태양룡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지금껏 세상을 마음대로 유린해 오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었던 느낌.
공포와 두려움.
그간 세상 인과율의 정점에 서 있었던 존재들에게는 낯설면서도 적응되지 않는 감각이었다.
태양룡들은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갈등했다.
이대로 도망칠 것이냐, 아니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맞서 싸울 것이냐.
세 마리의 형제가 죽었을 때만 하더라도 태양룡들은 후자를 택했었다.
오-오오오오오오!
살아남은 일곱 마리의 태양룡들은 후예를 향해 날아들었다.
불타는 궤적 여덟 줄기가 하늘을 시뻘겋게 끓이기 시작했다.
가히 세상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어 버릴 수 있을 정도의 화력이었다.
……그러나.
펑! 퍼엉! 펑! 펑! 퍼엉!
후예가 네 발의 화살을 다섯 손가락에 걸고 한꺼번에 발사해 버리자 상황은 달라졌다.
콰콰콰콰쾅!
네 개의 심장이 창졸간에 터져 나갔고 동시에 네 마리의 태양룡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
…쿵!
넷이 떨어졌지만 소리는 한 번이었다.
모두가 동시에 땅에 처박혔기에 그렇다.
태양룡이 세 마리 남았을 때, 그것들은 비로소 깨달았다.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적은 감히 항거할 수 없는 태양살(太陽殺)의 괴물.
오로지 태양을 죽이기 위해서 이 땅에 강림한 존재라는 것을.
살아남은 세 마리의 태양룡들은 그제야 비로소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거리를 좁히기도 전에 끔살당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예는 나머지 태양룡들도 결코 봐주지 않았다.
“남은 건 셋. 전의를 잃고 도주하는 쪽인가. 그렇다면 하나하나 신경 써서 잡아야겠군.”
알아서 달려드는 적은 처리하기 편하지만 전력으로 도망에만 임하는 적은 잡기가 어려운 법이다.
후예는 한 발의 화살을 시위에 먹였고 그대로 발사했다.
쾅!
어김없이 한 마리의 태양룡이 지면에 처박혔다.
이제 남은 태양룡은 두 마리.
그 둘은 꼭 붙어서 도망치고 있었다.
마치 큰 녀석이 작은 녀석을 보호하려는 듯이.
하지만 후예에게는 그 점이 오히려 나은 일이었다.
“붙어 있으니 잘 됐군.”
그는 손을 뻗어 두 발의 화살을 한꺼번에 잡아들려 했다.
그러나.
…탁!
후예보다 먼저 화살을 잡아든 다른 손길이 있었다.
항아.
그녀는 넋이 나간 채 그저 엎드려 빌고만 있는 마을 사람들의 앞으로 나섰다.
“다 죽이면 안 돼요. 이 정도만 해도 물값으로는 충분하니까…….”
항아는 후예를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후예는 침음을 삼켰다.
“……그런가. 알겠다.”
태양룡이 모두 죽으면 그 또한 문제가 될 것이다.
추위와 어둠이 번성하고 역병이 창궐하며 태양을 등진 족속들이 기승을 부리게 될 테니까.
결국 후예는 한 발의 화살만을 들어 올렸다.
…펑!
한 줄기 황금빛 궤적이 날아 날아가는 태양룡의 심장을 꿰뚫었다.
큰 태양룡이 피를 뿜으며 지면으로 떨어져 내린다.
콰콰쾅!
산어귀에 있던 거대한 바위가 부서지며 마지막 불길이 피어올랐다.
모든 것을 장작으로 삼던 거대한 불꽃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몸을 태워 빛을 발하다가 이내 허무하게 꺼져 버렸다.
한편.
[…….]
그 품에 안겨 있다시피 했던 작은 태양룡은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다가 이내 쏜살같이 달아나 버렸다.
비록 아홉 개의 태양이 사라졌지만 아직 한 줄기의 빛이 살아남았다.
후예는 마지막으로 남은 작고 비루먹은 태양룡이 사라져 가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보았지만 이미 아홉 발의 화살을 모두 써 버렸기에 어찌할 수는 없었다.
남은 한 발의 화살은 항아가 꼭 끌어안고 있었으니까.
……이윽고.
열 마리의 태양룡 중 아홉 마리의 태양룡이 죽어 사라졌다.
대지를 불태우던 불길은 가라앉고 세상에는 딱 알맞은 온도의 평화가 찾아왔다.
하늘 위로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후예 님이 세상을 구하셨다!”
“영웅의 탄생이야!”
“오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이들이 후예가 행한 위대한 업적에 경의와 존경, 사랑과 애정을 표했다.
그리고 그중에는 항아도 있었다.
“……후예 님. 제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그녀는 후예를 끌어안은 채 눈물을 흘렸다.
후예는 그런 항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저 난처하다는 듯한 미소를 띨 뿐이다.
모든 이들이 이 자리를 빌어 둘을 축복했다.
온 세상을 위협하던 열 개의 태양을 하나로 줄여 버린 대영웅.
그리고 자칫 모든 태양이 사라질 뻔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처녀.
그 둘은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썩 잘 어울렸으며 모든 이들이 이 둘을 응원하고 또 축복했다.
……오직 한 사람.
허리춤에 아홉 마리의 도마뱀을 매달고 있는 한 소년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봉몽.
조악한 솜씨로 깎아 만든 나무 활을 짊어진 소년.
마을에서 가장 활을 잘 쏘던 아이.
“…….”
그는 고개를 들어 저 멀리 쓰러진 태양룡들의 거체를 바라보았다.
부글부글 끓는 피를 콸콸 뿜어내며 붉은 강을 이루고 있는 거대한 용의 시체들.
그에 반해 자신의 허리춤에 걸려 말라붙은 채 대롱거리고 있는 작은 도마뱀들의 시체는 얼마나 작고 한미한가.
“…….”
봉몽은 다시 고개를 돌려 수많은 인파들의 저편을 바라보았다.
모든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영웅 후예.
그리고 그런 후예의 옆에서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표정을 짓고 있는 항아.
꽈악-
봉몽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그러고 서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 * *
이후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마을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산에는 꽃이 피었고 맑은 물에는 물고기들이 헤엄치게 되었다.
황무지가 초원으로 변해 그 위로 나비가 날아다닐 무렵.
그때쯤 해서 후예는 마을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 누구에게도 상의한 적 없었던 일이었다.
“…….”
후예는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 활 한 자루만을 메고 마을을 나섰다.
평소 목적을 이루고 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여정에 오르던 그가 이 마을에 그토록 오래 머물렀던 것은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후예 스스로도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하였다.
마을을 완전히 등졌을 때쯤, 후예는 어쩐지 목이 마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디 이 물이 마지막 가시는 길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해요.’
누군가가 입으로 흘려 넣어 주던 그때의 시원한 물이 마시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마을을 떠나기 직전, 마지막으로 멈춰서 뒤를 돌아보았다.
약간의 갈증과 함께 곧 털어 버릴 작은 미련이었다.
……하지만.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섰을 때.
“……!”
그의 시야 안으로 한눈에 들어오는 존재가 있었다.
“후예 님!”
그를 따라 달려오고 있는 작은 소녀 한 명이 있었다.
항아.
그녀는 가쁜 숨을 내쉬며 뛰어왔고 후예는 그녀를 묵묵히 기다려 주었다.
이윽고, 후예의 앞까지 달려온 항아는 달뜬 얼굴로 말했다.
“결혼해 주세요.”
“…….”
‘왜 마을을 떠나세요’, ‘이곳에서 함께 살아요’, ‘말도 없이 가시면 어떻게 해요’, ‘떠나지 마세요’ 등등의 수많은 밀고 당기기들이 모조리 생략된 돌직구.
일직선으로 뻗어 나가는 화살만큼이나 곧고 직선적인 그녀의 감정에 후예는 황당하다는 듯 입을 반쯤 벌렸다.
하지만 항아는 굴하지 않았다.
“저는 원래 죽을 몸이었잖아요. 이렇게 살려 놓으셨으니 평생 책임져 주셔야지요.”
“……거절한다.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
“앗, 또 그 핑계. 정확히 아홉 번째네요.”
항아는 그간 벌써 아홉 번이나 후예에게 감정을 표현했었고 그때마다 번번이 거절당한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아는 꿋꿋하게 입을 열어 한 번 더 마음을 전했다.
“부탁드려요. 그러면 후예 님을 따라가는 것이라도 허락해 주세요.”
“……왜 그렇게까지 하는 것이냐.”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고, 열 발 쏴서 안 떨어지는 해 없다잖아요?”
항아의 당돌한 말에 후예는 실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한때는 마을 사람들에게 잡아먹힐 뻔했던.
부모가 흘리는 피눈물을 손수 닦아 주었던 가엾은 아이.
그런 아이가 어떻게 이토록 맑고 꿋꿋한 눈빛을 보내올 수 있을까.
후예는 자신의 목을 타고 흘러들던 맑은 이슬을 떠올렸다.
그 촉촉함이 지금 항아의 시선을 통해서도 전해져 오고 있었다.
“……뒤쳐지지 마라. 떼어 놓고 갈 수도 있다.”
“네!”
한참을 고민한 끝에 나온 후예의 말에 항아가 눈시울을 붉히며 반색했다.
그때.
“저도 데려가 주십시오!”
고개 너머에서 목소리 하나가 더 들려왔다.
후예는 고개를 돌렸다.
검게 말라죽은 나무 옆에 한 소년이 서 있었다.
조악한 솜씨로 깎아 만든 나무 활을 등에 짊어진 봉몽이 후예와 항아를 향해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당신에게 활을 배우고 싶습니다! 부디 저를 제자로 받아 주십시오!”
“…….”
후예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항아가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봉몽! 네가 어떻게 여기에……?”
“너만 그냥 보낼 줄 알았냐? 우린 소꿉친구잖아.”
봉몽은 항아의 앞으로 다가오며 씩 웃었다.
“나도 기근 때문에 마을에서 내쳐질 뻔했던 몸이니만큼 그들하고 계속 어울려 사는 것은 껄끄럽지. 너처럼 말이야.”
“……아아, 생각해 보니 그렇네. 너도 같은 심경이었겠구나. 동향 사람이 생기면 기쁘긴 하겠는데.”
항아는 살짝 눈치를 보며 후예를 바라보았다.
그런 항아의 시선에 후예는 끙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겠다. 둘 다 따라와라.”
“야호!”
“…….”
이윽고, 세 개의 그림자가 마을의 반대편으로 길게 늘어졌다.
동로이몽(同路異夢).
같은 길 위로 각기 다른 생각을 품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