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58화 후예사일(后羿射日) (2)
산맥이 불타오른다.
살아 숨 쉬는 모든 것들이 장작이 되었다.
강과 호수는 끓다 못해 말라붙었고 바다 역시도 소금사막으로 변해 버렸다.
오-오오오오오!
연기와 수증기로 뒤덮인 하늘에서는 매일 우레와도 같은 용의 울음소리와 날갯짓 소리만이 들려올 뿐.
열 마리의 태양룡.
그것들은 작렬하는 불꽃과 눈이 멀어 버릴 듯한 빛을 뿌리며 온 세상을 날아다녔다.
사람들은 신음했다.
농작물은 불타 버렸고 사냥할 짐승과 물고기들은 씨가 말랐다.
태양룡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외곽의 황무지에 숨어 그저 목숨만 부지하며 사는 것이 고작이었다.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고 약속받지도 못 하는 시대.
하늘이 부여한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목숨이 가장 사치스러운 것이 된 세상.
길거리 도처에 인간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었다.
……지금 이곳 황무지에 쓰러져 있는 남자처럼 말이다.
“…….”
장신의 남자 하나가 황무지에 쓰러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등에는 커다란 활을 멨고 허리춤에는 화살이 담긴 쑥대나무 전통이 보인다.
까 악
악 까
까 까 악
악 악 악 까
까 까 까 악
악 까... 악 까
까 악 까 악
악 까 악 까
까 악
악 까
눈알 하나 달린 까마귀들이 하늘에 모여들어 불길한 소용돌이를 그리고 있었다.
곧 벌어질 진수성찬에 잔뜩 흥분한 것처럼.
그리고 까마귀들이 한껏 기대하고 있는 바와 같이, 그는 분명 죽어 가고 있었다.
피로와 탈수로 인해 쓰러진 채 며칠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물 한 방울 입에 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죽어 가는 남자를 발견한 이가 있었다.
“어?”
은색의 머리칼을 가진 소녀 하나가 고사목들로 가득한 숲에서 나오던 길에 남자를 발견하고 멈춰 섰다.
항아.
이 근처 마을에 사는 산지기의 딸이다.
그녀는 쓰러진 남자를 향해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다가갔다.
“저기요. 아직 살아 계신가요?”
“…….”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손가락을 가볍게 꿈틀거렸을 뿐이다.
항아는 그런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요 근래 부쩍 이런 시체들이 많아졌다.
마음 착한 그녀는 힘들고 피곤한 와중에도 그런 이들의 마지막을 수습해 땅에 묻어 주고는 했다.
“……이상하신 분이네.”
항아는 남자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눈앞에 있는 남자는 일반적인 부랑자들과는 달랐다.
보통의 부랑자들은 쓰러진 곳에 발자국을 남긴다.
발자국의 방향을 보면 그가 옆 마을에서 왔는지, 산맥을 넘어 왔는지, 아무튼 어디서 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남자의 주변에는 그 어떠한 발자국도 없었다.
마치 까마득하게 높은 곳에서 지면을 향해 떨어져 내린 듯, 그의 주위에는 커다란 분화구만이 패여 있을 뿐이었다.
항아는 이 근처에 오를 만한 절벽이나 나무가 있는지 두리번거려 보았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그저 광활한 황무지와 뙤약볕이 이글거리는 하늘만이 끝없이 펼쳐져 있을 뿐.
“……하늘에서 떨어지기라도 하셨나.”
항아는 혼잣말을 하고는 저 스스로도 황당한지 쓰게 웃었다.
딸깍-
이윽고, 그녀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대나무 통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던 물을 남자의 입에 흘려 넣어 주었다.
“밤새 모은 이슬이에요. 이 정도밖에 없어서 미안해요.”
항아는 남자의 입에 자신이 가진 모든 이슬을 먹여 주었다.
“정말 미안해요. 제 힘으로는 이 정도밖에 도와 드릴 수 있는 게 없어요. 저희 마을도 몹시 곤궁한 상태인지라…… 부디 이 물이 마지막 가시는 길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해요.”
그녀는 두 손을 모아 기도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그때.
“야, 항아!”
뒤에서 그녀를 부르는 소년이 있었다.
비슷한 또래의 개구쟁이로 보이는 소년.
허리춤에는 조악한 솜씨로 깎아 만든 나무 활과 화살통이 매달려 덜렁거리는 것이 보인다.
숲에서 달려 나오는 소년을 향해 항아는 옅게 미소 지었다.
“봉몽. 너도 숲에 갔었구나?”
“어. 사냥하러. 이것 봐. 많이 잡았다고!”
봉몽이라는 이름의 소년.
그는 허리춤에 주렁주렁 매단 작은 도마뱀 아홉 마리를 보여 주며 으쓱거렸다.
“원래는 열 마리를 채울 수 있었는데, 마지막에 화살 하나가 빗나가는 바람에 놓쳐서 아홉 마리뿐이야. 나는 꼭 이상하게 열 발째에 집중력이 흐트러지더라고?”
“와아! 그래도 대단해, 아홉 마리나 잡다니! 역시 우리 마을 제일의 명궁이야.”
“흐응- 뭘 이 정도 가지고.”
항아의 칭찬에 으쓱거리던 봉몽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눈에 쌍심지를 켰다.
“아, 그건 그렇고. 너 또 밤새 모은 이슬을 부랑자에게 줘 버린 거냐? 너 오늘 물 한 방울도 못 먹었잖아!”
“하지만 너무 가엾은걸.”
“뭐? 야! 네 몸이나 신경 써! 곧 죽을 인간에게 뭐 하러 물을 나눠 줘! 그것도 이런 정체 모를 부랑자한테! 이 자식! 아까 줬던 물 돌려줘라!”
봉몽은 옆에 쓰러져 있는 남자의 팔을 퍽 걷어차며 소리쳤다.
그러자 항아가 깜짝 놀라 봉몽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그만해!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돕기는! 보니까 얼마 못 가겠구만. 요즘 세상에 이런 시체가 한둘이야? 제발 쓸데없이 물 낭비하지 말고 네 몸이나 좀 챙겨! 그렇게 해서 나한테 시집오겠냐!?”
“누가 너한테 시집간대!?”
“그럼 이 마을에서 또래는 너랑 나밖에 없는데 어떡하냐?”
“…….”
항아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노려보자 봉몽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곧 내 마누라가 될 여자인데 내가 지켜 줘야지.”
“어휴. 빨리 가기나 해.”
항아는 봉몽의 등을 떠밀며 마을을 향해 걸어갔다.
뒤에 남겨진 남자를 몇 번이나 돌아보면서.
* * *
마을의 사정은 항아와 봉몽의 생각보다도 훨씬 더 심각한 수준이었다.
어느 정도로 심각했냐 하면 한밤중의 마을 월례회의에서 다음과 같은 논의를 하고 있을 정도였다.
“……식량이 너무 부족하오.”
장로의 말에 마을의 어른들 모두가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너무 야만적이기에 이 방법만은 쓰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어쩔 수 없게 된 것 같소. 애초에 다른 마을에서는 진작부터 하던 일이니…….”
마을 사람들 중에는 눈물을 떨어트리는 이들도 있었다.
장로는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말 그대로요.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입을 줄이기 위해서는. 그리고 남은 이들이라도 살기 위해서는.”
“하지만…… 하지만 어찌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을…….”
한 여인이 울기 시작했다.
장로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어찌 사람된 도리로 자신의 자식을 해칠 수 있겠소. 그러니 서로 바꿔서 합시다. 아이를 가진 집끼리…….”
대기근의 시대. 멸망을 앞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 치고는 그렇게 드문 것도 아니었다.
입을 줄이고 또 남은 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노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 어린아이들이 첫 희생물이 되었다.
“아이는 또 낳으면 되니까, 여보.”
“흑흑흑…….”
“우리 집 갓난애를 그리로 보내겠소.”
“그럼 우리 집 아이도…….”
끔찍한 협동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어느 누구 하나 울지 않는 이가 없다.
……그것은 병풍 뒤에 숨어 있는 두 아이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
항아.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가 자신을 버렸다.
하지만 정말로 힘든 상황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정도로 그녀는 성숙했다.
그때.
…턱!
항아의 손목을 잡는 손길이 있었다.
봉몽. 항아를 향해 두 눈을 부릅뜬 채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있는 소년.
“도망치자.”
봉몽은 항아에게 말했다.
“나는 죽기 싫어. 이대로 마을 사람들에게 먹힐 수는 없어. 그리고 너를 그렇게 놔둘 수도 없고.”
“……하지만 도망치면 어디로 갈 수 있겠어.”
“어디로든. 여기만 아니면 돼. 너 하나쯤은 내가 지켜 줄 수 있어. 나 못 믿냐?”
봉몽은 등에 멘 조악한 나무 활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하지만 항아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여기에 남을래.”
“뭐!? 너 미쳤어!?”
“나로 인해 내 부모님이 살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라도 하겠어.”
“미친 소리 하지 마!”
봉몽은 항아를 붙잡으려 했으나 항아는 봉몽의 손길을 뿌리쳤다.
이윽고 항아는 병풍을 걷고 회의장으로 나갔다.
울고 있던 어른들은 항아의 등장에 깜짝 놀란다.
항아 역시도 눈물을 떨어트리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어른들의 결정에 따르겠어요. 제 희생으로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면…….”
그러자 어른들은 더더욱 슬피 울기 시작했다.
“내 새끼! 내 새끼야…… 내 어찌 너를…… 차라리 내가…… 차라리 내가…….”
항아의 부모는 항아를 끌어안은 채 피눈물을 흘리며 통곡했다.
장로를 비롯한 다른 이들 역시도 침중한 안색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바로 그때.
쿵-
회의장의 문이 열렸다.
이윽고, 큰 키의 남자 하나가 장내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등에 커다란 활을 메고 허리춤에는 쑥대나무 화살통을 늘어트린 나그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입을 줄이려거든 그대들의 얼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을 줄이는 것이 맞겠지.”
항아는 활을 짊어지고 온 남자의 얼굴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며칠 전, 황무지에 쓰러져 죽어 가고 있던 바로 그 남자였다.
“……내 이름은 후예(后羿)라 하오.”
이윽고, 그는 고개를 들어 회의장 중앙을 바라보았다.
“물값을 지불하러 왔소.”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항아에게 한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