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927화 (927/1,000)

외전 53화 Fly me to the Moon (4)

그 뒤로 며칠이 지났다.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세 사람은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청국장 맛집으로 향했다.

“역시 한국인은 백반을 먹어야지. 아, 영국은 다 좋은데 음식들이 취향에 안 맞는다구.”

“난 오히려 한식보다 영국 음식이 입에 맞던데.”

“우주. 피쉬앤칩스. 좋아하는 것 같았다. But. 난 청국장이 먹고 싶었어.”

그들은 밥을 먹으며 영국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논의했다.

“튜더 씨 말이야. 괜찮은 사람 같았지?”

“응. 아빠도 예전에 말했었어. 좀 호구끼가 있어서 그렇지 착한 사람이라고.”

“헐, 아빠가 그런 말을 했었어?”

“예전에 아빠가 튜더 씨에게 아이템을 대여해 주고 정작 아빠가 그걸 뽀개먹은 적이 있대. 그래 놓고서 나중에는 피해보상금까지 받았다나.”

“아! 나도 들었던 것 같다. 그 아이템 이름이 엑스칼리버였나? 그랬을걸. 근데 그건 아빠가 잘못한 거 아니냐?”

“잘못한 거 맞지. 그래서 아빠가 나중에 정체를 밝힌 뒤에 따로 사과했는데 튜더 씨는 그냥 허허 웃고 말았댔어. 역시 영웅의 사고방식은 비범하다면서.”

“그냥 우리 아빠가 잘못한 거네 그건…… 오히려 튜더 씨 쪽이 더 영웅 같은데?”

이산하는 숟가락을 빨면서 대답했다.

한편, 이우주는 튜더에게서 받은 아이템을 회상했다.

-<월궁함의 부러진 열쇠조각 A> / 재료 / S

월궁(月宮)에 존재하는 함의 열쇠.

두 조각으로 부러져 있다.

-특성 ‘융합’ 사용 가능 (특수)

-<월궁함의 부러진 열쇠조각 B> / 재료 / S

월궁(月宮)에 존재하는 함의 열쇠.

두 조각으로 부러져 있다.

-특성 ‘융합’ 사용 가능 (특수)

튜더는 부러진 열쇠조각의 나머지 절반을 간직하고 있었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말이다.

그는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에게 열쇠를 맡기며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어쩌면 운명일지도 모르지. 다음 세대에게 바톤을 넘길. 그 역할을 내가 수행하게 되어 영광이다.’

튜더는 세계리그 당시 발록으로 변한 마동왕의 주먹에 맞아 달까지 날아갔었다.

엄청난 속도로 튕겨져 나간 튜더는 그 기세 그대로 달에 가 부딪쳤고 그 결과 달은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아래로 추락하는 결과를 맞이했다.

그때.

튜더는 정신을 잃기 전 어떠한 노랫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내가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이는 당신뿐이에요.’

알 수 없는 여자의 목소리.

그것은 웃는 듯 우는 듯, 다만 어딘가 서글프고 처연한 어조로 귓가를 맴돌았다.

그 목소리가 들려온 직후 튜더는 곧바로 정신을 잃어버렸고 이후 다시 게임에 접속했을 때는 ‘월궁함의 부러진 열쇠조각 A ’라는 정체불명의 아이템이 인벤토리에 들어와 있었다.

그 후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튜더는 끝끝내 이 아이템의 용도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했다.

……과거 튜더를 달로 날려 보내 이 아이템을 얻게끔 해 주었던 남자의 후계자인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가 그를 찾아오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세 사람은 영국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한 회상을 종료했다.

“그때 찍혔던 바디캠 영상에는 검은 화면뿐이었는데 말이야.”

“그 목소리는 잡음들 사이에서도 또렷하게 들렸어.”

“무섭다. 귀신의 노래. I hate ghosts. 그래서 좋아하던 작가. 레고밟았어. 그의 차기작. 안 봐. 좀비물. 싫어.”

하지만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 봤자 뚜렷한 추리가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이우주가 상황을 정리했다.

“어쨌든. 열쇠 아이템을 손에 넣었으니 이제 다시 하해로 내려가는 일만 남았어. ‘흑해의 무영왕’을 잡고 이스마엘 씨에게 외상값을 갚아야겠지.”

중간 보스 역할을 하고 있었던 엘리뇨와 라니냐를 잡았으니 이제는 최종 보스만이 남았다.

“좋았어! 출발!”

“마침 밥도 다 먹었다. 청국장 좋아.”

이산하와 솔레이크 역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당 바깥을 향해 희망찬 발걸음을 옮기는 세 사람.

……그리고.

“하해라고?”

그들의 뒤, 산세베리아 화분에 가려져 있던 그림자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탁-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혼혈인.

창백한 피부에 푸른 눈을 가진 소녀가 깍두기를 뜨던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런가. 그곳으로 가나.”

이윽고, 그녀 역시도 계산을 마친 채 식당 바깥으로 나갔다.

먹던 청국장을 반이나 남긴 채로.

*       *       *

“접속.”

[음성 인식으로 보안 해제]

.

.

[동기화 중입니다……]

.

.

[동기화 완료!]

-띠링!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당신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는 또다시 하해로 접속했다.

“어우, 맨날 심해만 돌아다니려니 이거 칙칙해서 살겠나.”

“이제 마지막 레이드야. 조금만 더 힘내자고.”

“Last dive. 영화 제목 같다.”

세 사람은 입에 산소 돌을 물고는 계속해서 아래로 헤엄쳐 내려갔다.

네 자매 사육장을 지나자 가파른 경사로가 이어진다.

심연 밑에는 더더욱 짙은 심연이 도사리고 있었다.

밑바닥인 줄 알았지만 늘 지하실이 있다는 게 주식과 심해 지형의 공통점이다.

…딱!

야광 산호 하나를 더 꺾자 비로소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부터는 다른 몬스터들이 빛에 이끌려 올 일도 없기에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는 마음 놓고 산호 불빛을 비추었다.

산호가 발광하는 어스름한 녹빛이 주변의 풍경을 밝혀 준다.

부서진 달의 잔해들이 점점 더 빽빽하게 쌓여 있는 곳.

그 외 돌아다니는 생물이나 해초류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었다.

과거 하해대왕 레비아탄이 지배하던 깊은 해역.

세 사람은 이곳에 수북하게 쌓인 달의 파편들 사이를 헤치고 아래로 내려갔다.

“우와. 이게 다 달의 파편들인가? 엄청난 규모네. 위에서 본 것은 빙산의 일각이었구나.”

“엇! 저기 사람 모양의 자국도 있다!”

“저것은 maybe 미스터 튜더가 박혔던 자국. 어마어마해.”

아래로 내려가던 도중에 큼지막한 파편 하나가 세워져 있는 것이 보인다.

산처럼 솟구쳐 있는 파편이 하나, 그리고 가장 위에 송곳처럼 솟구쳐 오른 봉우리에는 사람 하나가 박혔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어찌나 깊게 박혔는지 그 형태가 아직도 뚜렷하다.

파편의 뒷부분은 수없이 많은 균열로 뒤덮여 있었는데 그것이 아마 달 붕괴의 시초가 되었을 것임에 분명하다.

저것이 아마도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역사를 통틀어 최초로 달에 간 인간.

얼마 전에 만나고 왔던 ‘에드워드 튜더 프랜시스’의 흔적이리라.

“사람을 하늘로 날려 보내서 달을 부수게 만들 정도면 대체 공격력이 얼마나 강해야 하는 걸까.”

이우주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빠의 전성기 시절 힘을 가늠해 보려 했지만 도무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

바로 그때.

‘……내가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이는 당신뿐이에요.’

귓가를 스치고 가는 노랫소리.

깊고 외진 곳에 갇혀 휘도는 차가운 해류 한 자락에 실려 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한 여자가 내는 가냘프고 여린 음성에 이우주는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고개를 돌려보니 이산하와 솔레이크 역시도 같은 목소리를 들은 듯했다.

“들었어?”

“……응.”

“야나두.”

그것은 분명 튜더의 회상 속에 있었던 목소리.

튜더가 정신을 잃은 와중에 녹음했던 노래가락이었다.

그리고 이내, 이산하는 이 멜로디가 어떤 노래의 한 구절인지를 기억해 냈다.

“이건 설마 1954년에 발표된 고전 명곡 ‘Fly me to the moon’인가?”

“뭐야 그게?”

“우주. 애송이. 재즈를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느리고 슬픈 version의 편곡. 모를 수 있다.”

천천히 들려오는 노래소리에 따라, 이산하는 노래를 불렀다.

-Fly me to the moon

나를 달로 보내 주세요

-And let me play among the stars

저 별들 사이를 여행하게 해 주세요

-Let me see what spring is like on Jupiter and Mars

목성과 화성의 봄을 내게 보여 주세요

-In other words, hold my hand

다시 말해, 내 손을 잡아 주세요

-In other words, baby kiss me

다시 말해, 내게 입 맞춰 주세요

-Fill my heart with song

내 마음을 노래로 채워 주세요

-And let me sing forevermore

영원히 노래할 수 있게 해 주세요

-You are all I long for, all I worship and adore

내가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이는 당신뿐이에요

-In other words, please be true

다시 말해, 언제나 진실해 줘요

-In other words, I love you

다시 말해, 그대를 사랑해요

바로 그때.

지이이잉……

기묘한 현상이 일어났다.

이우주의 인벤토리 안에 잠들어 있던 부러진 열쇠조각들이 이산하의 노래에 맞추어 공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내…… 사랑…… 그리워…… 이…… 당신뿐…… 요……’

느리고 무겁게, 그리고 슬프고 처연하게 들려오던 목소리가 뚝뚝 끊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끊긴 마디마디로 시커멓고 시뻘건 경고음들이 끼어들고 있었다.

.

.

어두운 심해 속이 핏빛으로 점멸한다.

그리고 요란하게 깜빡거리는 비상등이 만들어 내는 적과 흑의 소음들 아래로 거대한 무언가가 융기해 오르기 시작했다.

꾸르르르르르륵……

엄청난 규모의 물거품들이 피어오름과 동시에, 세 사람의 귓가에 알림음이 떴다.

-띠링!

<곧 세상의 끝 ‘하해의 저변’에 도달합니다>

<‘진(眞) 보스’가 눈을 떴습니다!>

달조차 삼켜 버린 심연의 끝에 도사리고 있는 거대한 어둠.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는 일제히 고개를 내렸다.

“……!?”

빛도 그림자도 없는 곳에 외따로 떨어져 격리된 존재 하나가 세 사람이 있는 곳을 향해 기어 올라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흑해의 무영왕 ‘항아(嫦娥)’.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가 최후의 레이드를 벌여야 하는 대상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