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925화 (925/1,000)
  • 외전 51화 Fly me to the Moon (2)

    결국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는 CEO실로 직통으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의 최상층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건물 1층의 로비에서 미팅을 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몰라뵈어서 죄송합니다. 바로 미팅을 잡았으니 편하게 업무를 보시지요. 참고로 마스터는 손님들의 방문 사실을 듣고는 오늘의 모든 일정들을 캔슬했습니다. 덕분에 오늘 미국의 부통령은 헛걸음을 하게 생겼지만요. 허허허-”

    비서관은 한층 더 정중해진 태도로 고개를 숙인다.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는 얼떨떨한 기색으로 고개를 마주 숙였다.

    통유리로 된 엘리베이터 밖으로 런던의 전경이 한눈에 보인다.

    “으와, 하늘까지 올라가는 것 같다.”

    “……멀미 나. 기압 차가 느껴져.”

    “타는 것만으로도 뭔가 신분 상승. 그런 느낌적인 느낌.”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비서관의 뒤를 따라갔다.

    이윽고. 세 사람이 자동문 안으로 들어가자 널찍하고 깔끔하게 꾸며진 사무실이 보인다.

    맨 위 3개의 층을 통합한 통유리 공간.

    시원하고 보기 좋은, 전형적인 젊은 CEO의 공간이다.

    “우와, 풍경 좋다.”

    “엄청 비싼 건물.”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런던 시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창밖을 보며 연신 감탄했다.

    한편 이우주는 벽에 걸려 있는 가족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뉴스에서 봤던 사진보다 조금 더 나이 든 중년 남녀, 그리고 이우주의 또래로 보이는 소녀가 뚱한 표정으로 사진 안에 담겨 있다.

    튜더와 비앙카.

    긴 은발머리의 딸 하나를 슬하에 둔 가족.

    ‘……이분들 역시 뎀1의 전설적인 하이랭커 출신. 한때 아빠와 겨뤄 봤던 파이오니아들 중 하나였지?’

    특히나 비앙카라는 저 인물은 골렘 메타의 시조 격 되는 인물.

    솔레이크와 비교하면 여러모로 상위호환에 있는 것이다.

    ‘옛날 세계리그 당시의 동영상을 봤었지. ‘대공황 골렘’이라고 했었던가? 말도 안 되는 메타였어. PVP 리그에서 어찌 저런 전략이 나올 수 있는지 몇 번이나 감탄했었지. 역시 세계는 넓고 강자는 많아.’

    이우주가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문 옆에 서 있는 비서관의 옆으로 불쑥 튀어나오는 얼굴이 있었다.

    “하하하- 이거 VIP들을 기다리게 했군. 미안해서 어쩌지.”

    튜더. 에드워드 튜더 프랜시스.

    장년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빛만큼은 여전히 청년의 그것이다.

    영화배우 뺨치게 잘생긴 얼굴과 모델처럼 뻗은 기럭지, 그리고 사람 자체에게서 느껴지는 밝고 따듯한 아우라는 과연 ‘인간 중의 인간’이라는 그의 별명을 새삼 상기시키게끔 한다.

    튜더는 호쾌한 웃음과 함께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를 찾았다.

    “이어진 님과 유다희 님의 자제분들 맞지? 이쪽은 드레이크 님과 윤솔 님의 따님이시고. 얼굴을 마주보는 것만으로도 알겠구나. 그분들을 쏙 빼닮았어. 아, 비서관님. 간단한 다과를 준비해 주시겠습니까? 부탁드립니다.”

    튜더는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세 사람을 자리로 안내했다.

    푹신한 소파 위에 앉은 튜더는 손수 세 개의 찻잔에 차를 따라 주며 말했다.

    “오면서 비서관에게 들었어. 승패 전적을 가지고 논란이 있었다면서?”

    그는 시원시원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우리 길드 사람들은 내 PVP 전적을 전승무패로 알아. 왜? 그게 사실이거든. 나는 실제로 사람 대 사람의 전투에서는 져 본 적이 없어.”

    “네? 하지만 옛날의 세계대회 때는……?”

    “아, 이어진 님에게 패배한 것? 그건 패배했다고 볼 수 없지.”

    튜더는 빙긋 웃고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나도, 그리고 내 비서관도 말했잖니. ‘사람 대 사람의 전투에서는’ 진 적이 없다고.”

    “……?”

    “고인물, 마동왕, 그리고 이어진. 그들은 그 시대의 신이었단다.”

    “……!”

    튜더의 진지한 어조에 세 사람의 표정이 변했다.

    뒷 세대의 사람들은 체감하지 못하는 그 시대, 그 시절 스타들의 명성.

    튜더는 추억을 회상하듯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했다.

    귓가는 벌써부터 수억의 인파가 내지르는 함성 소리로 먹먹하다.

    [진짜 믿겨지지가 않는 상황입니다! 세상에 이런 게 가능한가요!]

    [분명 이 ‘적도의 쌍심’은 코리올리 특성으로 인해 마동왕에게 불리한 맵입니다! 마동왕 죽이기 맵이라 이거예요!]

    [그런데 마동왕은 보란 듯 비웃고 있습니다! 와류 특성을 봉인한다고? 까불지 마라! 네놈들은 평타로도 잡는다!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아요!]

    [마동왕! 겜계의 역사 한 자락을 아예 새로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게임이 출시된 이래 세계 통합 랭킹 1위를 줄곧 고수하고 있는 신화적인 존재 에드워드 튜더 프랜시스! 그가 나섭니다!]

    그랬다.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지나간 세대는 이제 유튜브에서 지난 방송 다시보기로만 볼 수 있는, 이제는 그나마 조회수도 잘 올라가지 않고 있는 낡고 오래된 동영상.

    [아아! 마동왕 선수! 선공을 빼앗겼습니다!]

    [이거 빅매치가 시작되자마자 끝나 버리는 것 아닌가요오! 튜더 선수! 초장부터 기선을 확실하게 제압합니다!]

    [마동왕 선수가 제아무리 대단한 플레이어라도 결국엔 언랭이거든요! 진짜배기 랭킹 1위에게는 당할 재간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작부터 어렵습니다 마동왕 선수! 과연 살아남았을까요!?]

    [아앗!? 마동왕 선수! 생존해 있습니다! 생존해 있어요! 놀랍습니다! ‘그 튜더’ 선수가 혼신의 힘을 다해 쏘아낸 일격에 피격당하고도 멀쩡한 모습이에요!]

    [다들 현황판 좀 보시죠! 마동왕 선수의 HP는 1도 깎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신입니다!]

    [……어? 아니, 근데. 저게 뭐죠? 저 사람 마동왕 선수 맞나요?]

    [에? 저게 뭐야? GM! 처리반! 저게 뭡니까? 왜 필드에 몬스터가……?]

    그날, 그때의 현장을 어찌 잊겠는가?

    접신(接神), 신내림을 받던 그 순간의 기억.

    게임의 신을 실제로 영접하던 그날의 감격을.

    “……남자 키 13미터 이하는 전부 루져라고 하셨었지. 후후후-”

    튜더는 옅은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그때의 이어진 님은 사람이 아니라 신이고 자연재해였단다. 사람이 맨몸으로 토네이도에 휘말려 죽었다고 해서 그걸 자연에 패배했다고 여기지는 않지 않겠니? 그때의 이어진 님은 그랬지. 그분을 상대로 싸울 때는 이기고 진다의 개념이 없었어. 대체로 그렇게 겪은 1패는 무효로 치는 분위기였고. ……그거 아니? 미국과 영국의 지방에는 그분을 신으로 추앙하는 종교도 있단다.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 교’만큼이나 독특한 종교지만 말이야.”

    그의 목소리에서는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 그리고 지금도 변치 않은 애정과 존경심이 묻어나고 있었다.

    이우주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초대형 기업의 CEO조차도 아빠를 엄청 존경하는구나.’

    런던의 핵심 지역에서 어마어마한 규모의 회사를 운영하는 성공한 자산가조차도 먼 한국 땅에 있는 아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다.

    <고인물: 위대한 개척자, 전 세계의 자랑.>

    문득 공항에서 택시를 잡을 때 보았던 동상이 생각나는 이우주였다.

    한편, 이산하는 튜더를 상대로 본론을 꺼내 들고 있었다.

    “이번에 하해로 레이드를 가게 되었는데요.”

    “……하해로?”

    그 말에 튜더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곳은 버려진 맵으로 알고 있는데? 이상증식한 해파리들 때문에 사냥의 효율이 너무 떨어져서 어지간한 하이랭커들도 모두 외면했지. 우리 로얄블러드 길드에서도 몇 번인가 개척 시도를 했다가 포기했었던 바 있다.”

    “네. 저희는 그곳을 개척하고 그 너머에 있는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에 성공했어요. 다 이 녀석 덕이죠.”

    이산하는 옆에 있던 이우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씩 웃었다.

    튜더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대단하구나. 그곳을 공략하기까지 쉽지 않았을 텐데.”

    “몇 번인가 죽었죠. 진입하는 것에만요.”

    이우주는 이산하에게서 바톤을 넘겨받았고 이내 하해에서 있었던 레이드의 전말을 간략하게 요약해 주었다.

    튜더는 조용히 그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때로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눈을 감고 침묵에 잠겼다가 가끔 수첩에 무언가를 메모하곤 했다.

    이윽고, 이우주가 ‘엘리뇨와 라니냐’를 잡았던 대목까지 들은 튜더는 박수를 쳤다.

    “대단하다. 정말로 대단하구나. 그 말밖에는 할 수가 없군. 과연 그분의 자녀들다워. 우리 로얄블러드 길드의 돌격대 전원보다 너희 셋이 낫구나.”

    평소 아빠의 명성 아래로 엮이는 것을 싫어하던 이우주였지만 튜더의 진심 어린 칭찬은 상대방을 기쁘게 하는 힘이 있었다.

    ‘이래서 높은 자리에 올라 있는 사람은 뭔가 다른 건가?’

    이우주는 저도 모르게 이런 저런 말들을 다 얘기해 버릴 뻔한 것을 꾹 참았다.

    이윽고, 이산하는 핵심적인 질문을 꺼내 놓았다.

    “저희는 하해의 저변에서 부서진 달의 잔해들을 봤어요.”

    “……달? 잔해?”

    “네. 아마 세계리그 당시 부서져 떨어진 구월(舊月)의 잔해로 추정돼요.”

    현재 이 세상에는 해와 달이 하나뿐이다.

    원래 두 개 있었던 달 중에 하나가 인재(人災)에 의해 떨어졌기 때문.

    대격변 당시 부서졌던 해와 달은 복구되었지만 세계리그 당시에 파괴된 달은 복구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또한 이어진 님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한 일이었지. 사라진 달을 복원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는 것 역시 말이야.”

    “네. 저희도 그렇게 알고 왔어요.”

    “한데 그 달의 파편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지? 지금은 그저 지형지물로 분류되는 오브젝트일 텐데? 하해에서는 뭔가가 다른가?”

    “저희도 그런 줄 알았는데. 아마도 그게 아닌 모양이에요.”

    이산하는 비밀을 밝히기로 했다.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듣기 위해서는 이쪽이 가지고 있는 정보도 어느 정도 풀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이산하의 스마트 워치에서 홀로그램 이미지가 떴다.

    게임 속의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인벤토리와 연동되어 있는 증강현실 VR이었다.

    -<월궁함의 부러진 열쇠조각 B> / 재료 / S

    월궁(月宮)에 존재하는 함의 열쇠.

    두 조각으로 부러져 있다.

    -특성 ‘융합’ 사용 가능 (특수)

    이번 하해 레이드에서 얻었던 히든 피스.

    아직은 그 정체를 짐작할 수 없는, 그러나 차후의 스토리 진행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짐작되는 ‘키 아이템(Key item)’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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