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923화 (923/1,000)
  • 외전 49화 엘리뇨와 라니냐 (10)

    이산하와 솔레이크가 한창 엘리뇨와 싸우고 있을 당시.

    “……나는 바로 백도어(backdoor)를 가지.”

    백도어. 뒷치기. 빈집털이.

    적이 전방에 집중하고 있을 때 몰래 후미로 돌아 들어가 본진에 직접 치명타를 가하는 게릴라 전략이다.

    이산하와 솔레이크가 엘리뇨의 어그로를 끌고 있는 틈을 타 하해의 밑바닥으로 내려간 이우주.

    [그르륵- 끄륵- 끄르르륵……]

    달의 파편들 사이, 진흙바닥에 누워 숨을 헐떡이고 있는 라니냐가 눈에 들어온다.

    수없이 많은 해파리들에게 전기찜질을 당하고 난 터라 라니냐의 체력 게이지는 이미 바닥이었다.

    더군다나 그동안 엘리뇨의 옆에 계속해서 붙어 있었기 때문에 적조 현상의 피해를 제일 가까운 곳에서 직격당했던 터라 금방이라도 자연사하기 직전.

    “사적인 감정은 없어. 미안.”

    이우주는 인벤토리에서 꺼낸 철검으로 라니냐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이윽고, 라니냐가 죽자마자 이우주의 인벤토리에 변화가 생겼다.

    살인자의 백과사전이 시커먼 아우라를 뿜어내며 펼쳐졌다.

    츠츠츠츠츠츠츠……

    안쪽의 페이지들이 요란스럽게 넘어가며 자동으로 글자가 적히기 시작했다.

    -<살인자의 백과사전> / 마도서 / S

    죽은 자를 위한 죽인 자의 기록.

    사냥했던 대상의 살아생전 모습, 특징, 습관 등이 자세하고도 생생하게 저장되어 있다.

    <현재 기록: ‘라니냐/용권(龍卷)’>

    -특성 ‘살인자의 기억법’ 사용 가능 (특수)

    ‘살인자의 기억법’ 특성에 따라 라니냐가 가지고 있었던 ‘용권(龍卷)’, 혹은 ‘용오름’이라고도 불리는 강력한 특성이 이우주의 것으로 영구 귀속되었다.

    “좋았어.”

    이우주는 바로 특성을 발현했다.

    용오름 특성은 강력한 상승기류를 바탕으로 용이 하늘로 솟구쳐 오르듯 상공으로 뛰어오르는 스킬이다.

    말하자면 엄청나게 강력한 힘을 가진, 저돌맹진(猪突猛進) 타입의 점프 스킬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우와. 고전 영화 중에 이런 능력을 소재로 한 게 있었던 것 같은데…… 제목이 ‘점퍼(Jumper)’였던가?”

    물론 텔레포트 같은 공간이동 계열의 특성은 아니다.

    그저 강력한 상승기류를 다룰 수 있게 된 것 뿐.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반격의 기회를 잡기에는 충분했다.

    이우주는 라니냐의 힘을 사용해서 그 자리를 박차 올랐고 방심하고 있던 엘리뇨에게 막타를 먹였다.

    …콰쾅!

    두개골이 함몰된 엘리뇨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조차 깨닫지 못한 채로 심연의 밑바닥을 향해 침몰하고 말았다.

    풀썩-

    라니냐의 옆으로 포개진 엘리뇨의 시체.

    이우주는 곧바로 ‘살인자의 백과사전’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살인자의 백과사전> / 마도서 / S

    죽은 자를 위한 죽인 자의 기록.

    사냥했던 대상의 살아생전 모습, 특징, 습관 등이 자세하고도 생생하게 저장되어 있다.

    <현재 기록: ‘엘리뇨/홍해(紅海)’, ‘라니냐/용권(龍卷)’>

    -특성 ‘살인자의 기억법’ 사용 가능 (특수)

    라니냐의 ‘용권’ 특성에 이어 엘리뇨의 ‘홍해’ 특성까지 손에 넣었다.

    “……홍해(紅海). 하필 이게 들어왔나. 나쁘지는 않지만 공멸기(共滅技)라는 점에서 좀 그렇네.”

    홍해 특성은 자신의 전투력을 폭증시키는 대신 자신을 포함한 주변의 산소를 말려 버리는 부작용이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

    이우주는 입맛을 다시며 백과사전을 인벤토리로 회수했다.

    <이우주>

    LV: 56

    레벨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한편.

    “우와! 대박이다!”

    이산하는 자신에게 떨어진 아이템을 보며 환호하고 있었다.

    -<불완전한 용골궁(龍骨弓)> / 양손무기 / S

    초심해에 서식하는 아룡(亞龍)의 척추를 엮어 만든 활.

    현재는 활시위가 없어서 사용이 불가능하다.

    -공격력 +2,500

    -화염 속성 공격력 +500

    -얼음 속성 공격력 +500

    -특성 ‘융합’ 사용 가능 (특수)

    엘리뇨의 척추뼈와 라니냐의 척추뼈가 반반씩 섞여 만들어진 골각궁이다.

    다만 S급 활임에도 불구하고 특성이 하나밖에 붙어있지 않을뿐더러 이산하가 원래 쓰던 A+급의 활인 ‘해골왕의 빗장뼈 장궁’보다 공격력이 훨씬 낮다는 점이 이상한 부분이었다.

    이우주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아이템 이름부터가 ‘불완전한’이라고 되어있네. 거기에 S급 치고 공격력도 별로에 특성도 하나 뿐…… 그런데 그 특성이 ‘융합’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완전하게만 만들 수 있으면 대박이라는 얘기네.”

    “네 말이 맞다 동생아. 이 활 애초에 시위가 없어!”

    이산하는 활을 한번 흔들어 보였다.

    활에는 시위가 없었다.

    활대가 억세고 강인해서 어지간한 시위로는 이 활을 감당해 낼 수 없을 듯하다.

    “활시위로 쓸 만한 재료 아이템을 찾아봐야겠네. ‘융합’ 특성이 붙어 있는 걸로.”

    이산하는 다음 목표가 생겼다는 듯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그 외, 엘리뇨와 라니냐는 A+등급의 무기 몇 개를 떨어트렸다.

    대부분 방패나 창 등 다른 메타에 필요한 아이템들이었기에 경매장으로 향하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도 성능 좋은 것들만 떨궜네.”

    “팔면 쏠쏠하겠군.”

    이산하와 이우주는 아이템을 수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나만 거지다.”

    솔레이크는 울상을 짓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에게 떨어진 아이템은 고작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월궁함의 부러진 열쇠조각 B> / 재료 / S

    월궁(月宮)에 존재하는 함의 열쇠.

    두 조각으로 부러져 있다.

    -특성 ‘융합’ 사용 가능 (특수)

    무려 S급 아이템.

    하지만 재료이니만큼 특별한 능력은 없다.

    다만 무언가와 융합하여 더 상위의 보상을 노릴 수 있다는 가능성만을 열어 놓고 있을 뿐.

    당장 가치가 눈에 보이는 아이템이 아니었기에 어느 정도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산하가 솔레이크의 등을 토닥거렸다.

    “짜식, 진정해. 이 언니가 뿜빠이해 줄게.”

    “흑흑. 고맙다. 산하. 돈 주는 사람, 좋은 사람.”

    둘은 서로의 상태창을 확인하며 얼싸안았다.

    <이산하>

    LV: 68

    <솔레이크>

    LV: 68

    둘 다 레벨업을 거쳐 68레벨에 이르렀다.

    데스나이트 봉몽 사냥 당시 경험치를 많이 받았던 이산하는 엘리뇨와 라니냐를 잡는 과정에서 경험치를 상대적으로 적게 받았고, 반대로 데스나이트 봉몽 사냥 당시 경험치를 적게 받았던 솔레이크는 엘리뇨와 라니냐를 잡는 과정에서 경험치를 상대적으로 많이 받았기에 둘의 레벨이 같은 수치로 맞춰진 것이다.

    한편, 이우주는 솔레이크의 손에 떨어진 열쇠조각에 주목하고 있었다.

    “……흐음. 월궁함의 열쇠라고?”

    월궁이란 무엇이냐?

    직역하자면 달에 있는 궁전을 뜻한다.

    그리고 함은 상자 같은 것을 뜻하는 말.

    뜻하면 ‘달’에 위치한 ‘궁전’에 있는 ‘보물상자’라는 의미가 된다.

    “달에 있는 보물상자? 근데 그것의 열쇠가 왜 여기서 드랍되지? 여긴 바다잖아?”

    이윽고.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가 동시에 외쳤다.

    “……설마!?”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향한 곳은 바로 하해의 밑바닥 골짜기, 달의 파편들이 가라앉아 있는 해역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의 보스는 산갈치를 모티프로 만들어진 몬스터였지. 산갈치의 옛 별명이 ‘바다에 떨어진 하늘의 별’이었고 분명?”

    “그리고 과거 세계리그 당시에 파괴된 달의 파편들이 이곳 하해에 떨어져 가라앉았다 이 말이야.”

    “……바다에 떨어진 하늘의 별. 그리고 진짜 떨어진 달. 무언가 의미심장하다. It smells Jackpot.”

    세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달이 이곳 바다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것을 수호하듯 지키고 있었던 존재가 바로 두 마리의 산갈치.

    다정했던 잉꼬 부부.

    “……뭔가 상징하는 바가 있을 것만 같아. 촉이 왔어.”

    이산하의 예리한 눈빛을 따라 이우주와 솔레이크는 부서진 달의 조각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그들은 깜짝 놀라야 했다.

    “아니!? 아무것도 없잖아!?”

    정말 깜짝 놀랄 만큼 아무것도 없다.

    하해의 저변은 그저 텅 비어 있을 뿐이었다.

    “이상하다. 분명 촉이 왔는데?”

    “산하. 똥 촉.”

    “야! 니도 뭐 잭팟 냄새 맡았다며!”

    “나 축농증.”

    또 티격태격 툭탁거리는 이산하와 솔레이크를 뒤로한 채, 이우주는 턱을 짚고 고심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너무 신경이 쓰여. 여기보다 더욱 더 밑바닥에 있다는 흑해의 무영왕을 건드릴 때가 아니야. 그걸 잡기 전에 먼저 이것부터 짚고 넘어가야겠어.”

    부서진 달의 파편.

    그것이 이곳에 침몰해 있는 것과 이 부러진 열쇠조각과의 상관관계를 조금 더 면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었다.

    ‘뎀2의 아이템은 뭐 하나 그냥 떨어지는 게 없다지? 분명 뭔가가 있다. 분명 뭔가가……’

    이우주가 고민에 빠져 있을 때.

    “근데 어떻게 조사하게? 여기를 더 뒤져 보려고? 아무것도 없었잖아?”

    이산하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이우주는 고심 끝에 입을 열어 대답했다.

    “그건 그렇지. 더 뒤지면 뭔가가 추가적으로 발견될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좀 오래 걸릴 것 같으니 그냥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도록 하자.”

    “뭐? 물어본다고? 여긴 우리가 처음 공략한 곳이잖아? 심지어 아빠도 여기에 대해서는 잘 모를걸?”

    “누가 아빠한테 물어본대?”

    이우주의 말에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이우주가 입을 열었다.

    “엄마 아빠, 그리고 우리 말고도 이곳에 왔던 사람이 있잖아. 그 사람이라면 이 열쇠조각과 달의 파편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몰라.”

    “아니, 그러니까 누구? 누가 여기에 우리보다 먼저 왔다는 건데?”

    답답한 듯 재차 물어보는 이산하.

    그런 누나를 향해 이우주는 씩 웃으며 눈앞에 인터넷 검색창 하나를 띄웠다.

    “바로 이 사람 말이야.”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동시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스크린 속의 인물은 그녀들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유명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