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920화 (920/1,000)
  • 외전 46화 엘리뇨와 라니냐 (7)

    세 번째 노림수가 적중했다.

    “……기회다! 가자!”

    이우주는 잽싸게 엘리뇨를 뒤쫓았다.

    엘리뇨는 라니냐를 등에 업은 채로 도망치고 있다.

    아직 체력이 많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산하는 고개를 갸웃하며 동생을 뒤따랐다.

    “엘리뇨가 도망친 게 왜 기회야? 조금만 더 하면 잡을 수 있었는데, 오히려 엄청 안타까워해야 하는 상황 아닌가?”

    “엘리뇨는 어차피 못 잡았어. 라니냐라면 몰라도.”

    “오잉? 왜?”

    “해파리들의 상태를 봐.”

    이우주의 말에 이산하는 고개를 돌렸다.

    쿠르르르륵……

    해류에 휩쓸린 해파리들이 점점 흩어지고 있다.

    …빠직! …파지직! 피슈우욱-

    뿜어내고 있는 전류량도 예전만 같지 않았다.

    굵은 창처럼 떨어져 내리던 낙뢰들은 어느덧 따가운 스파크 정도로 너프된 뒤였다.

    “엘리뇨와 라니냐가 뿜어내던 시너지가 사라져 버렸으니 해류도 그만큼 약해지겠지. 자연스럽게 해류의 힘으로 발전하던 해파리들 역시도 힘을 잃어버릴 수밖에.”

    해파리 무리가 발산하는 빛은 점점 사그라들고 있었다.

    라니냐가 쓰러진 시점에서 해류가 급격히 약해졌고 그로 인해 해파리들이 뿜어내는 전류량 역시도 급감했다.

    해류의 힘이 약해졌으니 발전소의 효율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렇군. 적의 힘을 역이용하는 전략이었던 만큼 적이 약해진 지금은 사용하기 힘들다 이거지?”

    “더군다나 해파리들의 수. 전보다 Decreased. 훨씬 적어졌다. 번개. 이제는 별로 안 친다.”

    이산하와 솔레이크의 말대로 해파리들이 해류에 휘말려 죽어 가면서 번개의 빈도수 자체가 역시 눈에 띄게 줄어든 상태였다.

    이우주가 말했다.

    “어차피 해파리들의 힘으로는 라니냐 하나를 보내 버리는 게 한계였어. 그마저도 라니냐가 먼저 선두로 치고 나오는 공격패턴을 가지고 있지 않았더라면 힘들었을 거야. 엘리뇨와 라니냐가 딜을 나눠 받게 되니까 데미지 몰빵이 안 되거든.”

    성질 급한 라니냐가 먼저 나오고 그 뒤를 엘리뇨가 따르는 식이어서 다행이었다.

    둘의 공격 패턴까지 완전히 동일했더라면 정말로 공략이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우주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그 뒤 짝을 잃은 엘리뇨의 분노는 고스란히 우리 몫이었겠지. 그냥 싸웠다면 100% 우리가 전멸했을 거야. 솔직히 해파리 말고는 폭딜을 넣을 수단이 없었으니까.”

    엘리뇨는 S급 몬스터 중에서도 개체값이 준수한 편에 속한다.

    그런 몬스터가 작정하고 힘을 발휘한다면 현재의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로서는 당해 낼 도리가 없는 것이다.

    이산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하, 그래서 엘리뇨가 도망갔을 때 기회라고 했구나. 근데 왜 도망친 거지? 이제 해파리도 없는데.”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어. 그래서 행운이라고 말했던 거야. 원래 계획대로였다면 우리는 거기서 한번 전멸했어야 했거든. 그 뒤에 다시 레이드를 개시하는 것이 가장 베스트였는데.”

    이우주의 대답을 들은 이산하는 곰곰이 생각한 끝에 엘리뇨가 도망친 이유를 추측해 보았다.

    “으음, 내가 생각해 봤는데 말이야. ‘뺑소니’ 특성 탓도 있겠지만…… 아마 경험 부족 탓이 크지 않을까?”

    엘리뇨와 라니냐는 지금껏 한 번도 잡힌 적이 없다.

    아마도 플레이어들과 전투를 벌인 횟수 자체도 극히 적을 것이다.

    하해까지 내려왔던 파이오니아들 자체가 극히 드물었을 테니까.

    본디 뎀2 안의 몬스터들은 스스로 학습하고 발전해 나가는 존재.

    정(正), 반(反), 합(合)의 논리에 따라 수많은 도전자들을 물리쳐 가는 딥러닝(Deep Learning)의 과정에서 보다 더 강한 상위의 개념으로 진화해 나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산하 역시도 오랜 시간 뎀2를 즐기며 이 개념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었던 해파리들의 집단 파워업, 거기에 파트너의 부재까지. 이 모든 변수들을 갑작스럽게 만난 탓에 당황해서 일단 뒤로 빠졌을 거야. 물러나서 파트너를 회복시킨 뒤 차차 변수들에 대비하자고 생각했겠지. 상대방과 전장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것이 많으니 만큼 당연한 판단이야.”

    “합리적이고 뛰어난 AI지만…… 그래서 오히려 우리에게 기회를 만들어 줬다 이거군. 설득력 있어.”

    이우주는 방전된 해파리 하나의 갓을 밟고 뛰어올랐다.

    태앵-

    해파리 갓은 도약을 위한 훌륭한 발판이 된다.

    태앵- 태앵- 태앵-

    이우주는 눈앞에 있는 해파리들을 연달아 밟으며 눈 깜짝할 새에 앞으로 치고 나갔다.

    쿠르르르륵-

    저 앞으로 엘리뇨가 만들어 내고 있는 뜨거운 수류가 와닿고 있었다.

    놈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도망치고 있는지 피부에 와닿는 해수의 온도는 벌써 어느 정도 식어서 그저 살짝 따듯한 정도였다.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골렘에 탄 채로 물었다.

    “저렇게 빠르게 도망치고 있는데 우리가 따라잡을 수 있을까? 그리고 따라잡는다고 해도 그 뒤는 어떻게 해? 이제는 해파리도 없잖아.”

    “우리가 저 놈들의 소굴. 도착했을 때. 라니냐, 이미 회복된 상태. 그러면 어떡한다?”

    S급 몬스터는 HP 회복량이 높다.

    조금만 안정을 취해도 금방 되살아나니 만큼 앞으로의 계획이 걱정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우주는 그저 빙긋 웃을 뿐이었다.

    “놈들은 그리 멀리 가지 못할 거야. 이제 시한부 목숨이거든. 느긋하게 따라가면서 기다리면 돼.”

    “……?”

    이산하와 솔레이크가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

    쿠르륵!

    정면의 바닷물이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다.

    엘리뇨가 가깝다는 뜻이었다.

    “어!? 진짜다! 얼마 가지 못했어!”

    “저기 보인다! 점점 느려짐! 곧 따라잡는 것. 가능!”

    이산하와 솔레이크가 놀라서 외쳤다.

    하해의 저변, 부서진 달의 잔해들이 가라앉아 있는 구역.

    발광 산호들이 모여 있는 해저 협곡으로 파고드는 긴 꼬리가 보였다.

    라니냐를 업고 있는 엘리뇨가 파편과 파편들 사이의 깊고 좁은 해역으로 숨어드는 것이리라.

    이산하가 막 더 깊은 곳을 향해 몸을 트는 순간.

    …훅!

    얼굴로 뜨끈하고 비릿한 물결이 와닿았다.

    어슴푸레한 산호 불빛에 비친 해수의 색깔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산하는 시야를 뻘겋게 물들이는 심층수를 손으로 저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이 빨간 물살은? 피?”

    하지만 피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양이었다.

    더군다나 엘리뇨와 라니냐는 낙뢰로 인한 화상 데미지는 심하게 입었을지언정 딱히 출혈이 크게 일어날 만한 자상을 입은 적은 없다.

    아래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물 전체가 따듯하고 붉게 변하고 있었다.

    “이쯤에서 산소 돌을 새것으로 교체하고 하자.”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는 그동안 입에 물고 있었던 산소 돌을 뱉고는 새로운 것으로 바꿔 물었다.

    산소 돌은 이우주의 인벤토리에 꽉 채워 왔기에 모자랄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다.

    세 사람은 제트 기류를 뿜어내는 골렘의 뿔에 매달려 더욱 더 깊숙한 곳, 하해의 저변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이윽고. 해저의 골짜기 깊숙한 곳 바닥에서 노랗게 타오르는 눈알이 보인다.

    엘리뇨.

    그것이 죽기 일보 직전인 라니냐를 진흙 바닥에 눕힌 채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적에게는 무시무시한 증오를, 영혼의 동반자에게는 한없는 애틋함을 담아 보내는 시선.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의아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니, 라니냐가 저 정도로 HP가 떨어졌었나? 숨 엄청 헐떡이네. 당장 죽을 것 같은데?”

    “그런데 엘리뇨도 숨을 헐떡이고 있다. 저 녀석. 데미지 얼마 안 입었었다. 근데 Why?”

    그녀들의 말처럼 엘리노와 라니냐는 모두 호흡이 곤란한 듯 보였다.

    가뜩이나 HP가 많이 깎여 나갔었던 라니냐는 아예 사망하기 직전까지 몰려 있다.

    심지어 데미지를 얼마 입지 않았었던 엘리뇨조차도 숨 쉬는 것을 힘겨워하고 있었다.

    아무리 빠른 속도로 여기까지 헤엄쳐 왔다고 해도 저것은 지나친 체력 손실이었다.

    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

    엘리뇨와 라니냐의 주위로는 부글부글 끓는 수증기와 붉은 해류가 모여들고 있었다.

    피도 아닌데 따듯하고 붉은 빛깔을 띠는 기묘한 바닷물이 깊고 좁은 해구를 점차 가득 채워 가고 있다.

    그리고 이 붉은 바닷물 속에 갇힌 엘리뇨와 라니냐는 점차 거세게 숨을 헐떡이고 있는 것이다.

    “흑!? 뭐야, 나도 뭔가 숨이 가빠지는데?”

    “산소! grave! 부족하다! 이 빨간 물 때문!?”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황급히 입에 물고 있던 산소 돌을 뱉어 냈다.

    불량품인가 했지만 아니었다.

    다만 안에 내장되어 있는 막대한 양의 산소가 순식간에 모두 소모되었을 뿐.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황급히 인벤토리를 열어 새로운 산소 돌을 입에 물었다.

    “우, 우와…… 산소 줄어드는 것 좀 봐. 이거 많이 짊어지고 오길 진짜 잘했다.”

    “급격한 산소 감소! 하마터면 익사할 뻔!”

    원래 색깔을 띤 검푸른 바닷물에 닿아 있을 때는 별 이상이 없었지만 지금 눈앞을 물들이고 있는 적색의 바닷물에 닿았을 경우 산소 돌 속의 산소가 엄청난 속도로 증발해 버린다.

    그리고 엘리뇨와 라니냐는 그 붉은 바닷물의 심층부에 가라앉아 있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숨을 헐떡일 수밖에.

    이윽고, 이우주의 입이 열렸다.

    “누나들 기억해? 엄마가 우리에게 시켰던 심부름.”

    “어어, 기억하지. 니가 안 하고 튄 물레방아 설치 말이지?”

    “그거 말고. 하나 더 있었잖아.”

    “뭐 말야? 아, 황토볼 뿌리는 거?”

    이산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면 위로 올라와 헐떡이는 잉어들을 위해 뿌려 주었던 황토 말이다.

    순간.

    “……아하!”

    “……Oh!”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동시에 탄성을 질렀다.

    이제야 이우주가 노리는 바가 무엇인지, 엘리뇨와 라니냐를 한꺼번에 시한부 목숨으로 전락시켜 버릴 비장의 무기가 무엇인지 감을 잡은 모양.

    그녀들의 표정을 본 이우주는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바로 적조(赤潮) 현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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