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919화 (919/1,000)
  • 외전 45화 엘리뇨와 라니냐 (6)

    …콰쾅! 꽝! 우르릉! 쾅! 꽈르르릉!

    시퍼런 번개들이 마치 작살처럼 쏟아져 내린다.

    그것들은 거대한 산갈치형 몬스터 라니냐를 향해 계속해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제아무리 전기 저항력이 높은 라니냐라 할지라도 서슬 푸른 낙뢰에 계속해서 관통당하다 보니 점차 데미지를 입고 있었다.

    [캬-아아아아악!]

    거대한 전자 폭풍의 한가운데에서 라니냐는 계속해서 지져진다.

    하필이면 수직으로 꼿꼿하게 선 채 헤엄치는 것이 산갈치의 특성.

    때문에 휘몰아치는 번개 폭풍은 핵심의 정중앙에 솟구쳐 있는 이 커다란 피뢰침을 향해 모여들 수밖에 없었다.

    빠지지지직!

    해파리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전기를 뿜어내고 있었고 그것은 라니냐를 계속해서 지진다.

    엘리뇨와 라니냐는 자신들이 패시브로 만들어 내는 해류들을 흩어 버리려 했지만 이미 한번 회전하기 시작한 급물살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게다가.

    콰쾅!

    해파리들이 뿜어내는 전격은 어째 전보다 훨씬 더 강맹해져 있는 상태였다.

    이산하가 뭔가 깨달은 듯 소리쳤다.

    “그렇군! 해파리들이 파워업한 이유를 알겠다!”

    “뭔가, 산하! 궁금!”

    “그건 바로 ‘적의’ 때문이야! 저 산갈치들은 그동안 해파리들을 잡아먹고 살았잖아? 해파리들은 산갈치를 피해 하해의 상층부에 몰려 살았고. 그동안 먹잇감 취급당하며 숨어서 산 울분이 이제야 터져 나오는 거지!”

    “오오! 민중의 힘! 한의 정서! 대규모의 쿠데타! 그럴 듯하다!”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이우주를 바라보았다.

    “그럴 리가.”

    물론 이우주는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적대감을 품는다고 파워가 세지는 게 어딨어. 무슨 손오반도 아니고.”

    “하, 하지만 분노가 내면 속에 봉인되어 있던 잠재파워를 일깨웠을 수도…….”

    “드래곤볼을 너무 많이 봤군. 저 해파리들은 그렇게까지 심층적인 AI가 아니야. 누나들의 말은 가전제품이 고장 났을 때 몇 번 때려 주면 잘 된다는 수준의 주장과 똑같다고.”

    “어? 그런 거 아니었나?”

    “…….”

    이우주는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

    “게임은 감성으로 하는 것이라지만, 이럴 때에는 이성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지.”

    이윽고, 이우주의 설명이 이어졌다.

    “저 해파리들의 힘을 업그레이드 시킨 것은 바로 나야.”

    “뭣!? 너라고!?”

    “우주! Hoxy 해커!?”

    이산하와 솔레이크의 말에 이우주는 피식 웃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저기 있는 ‘엘리뇨’와 ‘라니냐’ 본인들이라고 해야겠지.”

    “……?”

    세 사람은 고개를 돌렸다.

    엘리뇨와 라니냐가 만들어 내고 있는 격렬한 수류, 거대한 파도, 엄청난 유속으로 회전하는 회오리.

    그리고 그것에 휘말린 해파리들은 전에 없이 강력한 전류를 방전하고 있다.

    이우주가 입을 열었다.

    “누나가 예전에 말했던 적 있지? 해파리들은 무전기나 라디오와 같을지도 모른다고.”

    “어어? 내가 그랬나?”

    “그때 왜, 하해로 내려올 때 해 줬던 괴담 말이야. 익사체의 영혼이 해파리에게 깃든다는 거.”

    “아니, 진짜 기억이 안 나는데?”

    “…….”

    아무튼 다행이다.

    이우주는 오컬트 마니아인 이산하가 예전에 했던 말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들은 적이 있어. 바다의 해파리들은 익사체의 영혼이라는 괴담을.’

    ‘그거 알아? 만물은 곧 에너지. 사람의 영혼도 결국은 음(-)과 양(+)의 전하라는 거. 사람이 죽으면 보통 그게 흩어져 사라지는데 가끔 근처에 물이 있으면 그것을 타고 흐른다나 봐. 그래서 수맥이 있는 곳에는 귀신이 있다잖아.’

    ‘들어봐. 그런데 사람이 바다에서 죽으면? 영혼의 전기적 신호는 어디로 갈까? 죽기 직전의 그 강렬한 메시지는 어디로 향할까? 물은 전기가 잘 통하지. 그것은 하염없이 어디론가 퍼져 나갈 거야. 그리고 라디오처럼 수신이 가능한 곳에서 붙잡히겠지.’

    ‘이 해파리는 말이야, 몸의 98% 이상이 물이야. 그리고 나머지 몸체에는 발전 세포가 있지. 전기를 만들어 내고 보관할 수 있단 말이야. 어떻게 보면 떠돌아다니는 주파수를 잡을 수 있는 라디오랄까?’

    ‘만약 사람이 물에 빠져 죽기 직전 강렬한 전기적 신호, 최후의 메시지를 사념처럼 남겼다면? 그리고 그 근처에 마침 몸의 대부분이 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발전 세포까지 가지고 있는 해파리가 있었다면? 그 익사체의 마지막 사념은 어디에 수신되어 깃들까?’

    ‘그러고 보니 한국전쟁 때 남한군이 보냈던 구조 신호가 수십 년 동안 주파수로 떠돌다가 우연히 한 초소의 무전기로 송신되었다는 괴담을 들었던 것 같아. 아빠한테서.’

    ‘으으으으…… I hate ghosts…… I hate jellyfish.’

    스쳐 지나가듯 나눴던 그때의 말들이 머릿속에 고스란히 떠오른다.

    이우주는 말했다.

    “저번에 관찰해 본 결과, 하해의 해파리들은 대부분 몸속에 발전 세포를 내장하고 있었지. 정체불명의 동력으로 자체 전력을 생산하고 있어.”

    말 그대로다.

    해파리들은 하나하나가 크고 작은 발전소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것들이 어떤 원리와 구조로 인해 전력을 발산하고 또 충전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그동안 어떠한 연구도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하해까지 내려온 이들은 대부분 하이랭커들이었고 그들은 이곳에 둥둥 떠다니는 해파리들을 귀찮은 장애물, 하잘것없는 잡몹 정도로만 여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우주는 달랐다.

    같은 쪼렙 처지여서일까? 이우주는 해파리들 하나하나를 면밀히 관찰하고 연구했다.

    ‘아마도 주변에 흐르는 해류의 위치 에너지와 운동 에너지를 이용해 발전하고 충전하는 것 같은데…… 이건 좀 시간을 들여 연구해 볼 가치가 있겠군.’

    그리고 그 결과, 이우주는 답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말 그대로야. 해파리들은 하나하나가 작은 발전소와 같지. 그렇다면 발전소들 중에서도 어떤 발전소와 닮아 있을까?”

    난데없이 시작된 퀴즈 타임에 이산하와 솔레이크가 손을 들어 올리며 대답했다.

    “정답! 화력 발전!”

    “산하! 바닷속에서 무슨 화력인가! 아는 거 아무거나 말하지 마라!”

    “미안. 내가 화력 덕후라서. 그럼 수력?”

    이산하의 말에 이우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력 발전이 맞아. 얼마 전에 엄마가 우리한테 설치하라고 했던 물레방아처럼 말이야. 그리고 수력 발전 중에서도 해류 발전, 파력 발전, 조력 발전 쪽에 속하지.”

    “아, 완벽히 이해했어.”

    전혀 이해 못했다는 뜻이다.

    이우주는 조금 더 설명을 이었다.

    “해류 발전은 유속이 강한 해류가 흐르는 곳에 터빈을 설치해서 전기를 얻는 구조로 되어 있어. 프로펠러식, 낙하산식, 수차식이 있지. 파력 발전은 파도의 상하 운동에서 전기를 얻어. 가동물체형, 진동수주형, 월파형 등으로 나뉘고. 조류 발전은 해수의 유동에 의한 운동에너지를 이용해서 전기를 얻지. 수평축 터빈, 수직축 터빈, 파일고정식, 착저식, 계류식 등등으로 나뉘어.”

    “?”

    “?”

    세 사람의 시선은 눈앞에서 해류를 향해 끌려가는 커다란 해파리를 향해 고정되었다.

    해파리는 안쪽의 내장들이 그대로 들여다보일 정도로 투명한 몸을 가지고 있었고 촉수의 끝에서 희미하게나마 발광까지 하고 있었기에 관찰이 용이했다.

    입수공을 통해 빨아들인 물이 전신을 몇 바퀴나 돌아서 다시 출수공을 통해 나간다.

    그 과정에서 해파리의 내장들은 펄떡펄떡 뛰며 왕성한 생명유지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파지직-

    투명한 해파리의 내장 속에서 발생한 푸른 전류가 촉수를 향해 뿜어져 나오는 것이 실시간으로 관찰된다.

    이우주가 입을 열었다.

    “저 해파리는 연안, 또는 심해의 파랑 에너지를 이용해서 전기를 생산하는 신체 구조를 가졌군. 몸 외부의 형태와 내장의 배치배열로 미루어 짐작컨대 파력 발전, 그중에서도 진동수주형과 월파형, 그리고 가동물체형에 유리하게끔 디자인 되었어.”

    “??”

    “??”

    “해파리의 입수공을 통해 내부로 유입된 파랑에 의하여 생기는 공간적 변화를 내부공기의 유동으로 변환, 그 이후 수관을 통해 공기의 흐름을 생성시키고 이를 이용해 내장 내부에 있는 발전 세포를 터빈처럼 돌려서 전기를 발생시키지. 진동수주형 발전세포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어. 또한 몸의 구조상 갓 쪽의 파도가 사면을 넘어서 지나갈 경우 진공 상태였던 갓 안쪽의 빈 공간에 물이 고이게 되면서 이 고인 물이 출수공으로 떨어질 때 생기는 위치 에너지 역시도 전력으로 변환되는 구조야. 이를 보아 월파형임을 짐작할 수 있지. 심지어 촉수 끝자락에 붙어 있는 저 희미한 발광세포는 분명 파도의 높낮이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을 거야. 아마도 파랑의 에너지 파동을 몸 내부에 있는 발전 세포에게 직접 전달하는 역할을 띠고 있겠지. 아마 저것이 가동물체형의 진수일지도 모르겠군.”

    “???”

    “???”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해파리는 주변에 강한 파도가 있을수록 강한 전력을 내뿜는다는 거야. 지금은 우리가 유인한 엘리뇨와 라니냐가 하해의 상층까지 와 있는 상태잖아? 저 녀석들이 열탕과 냉탕을 번갈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한 강력한 순환해류가 해파리들의 발전 세포를 자극한다 이거지. 그리고 해파리들은 원래 외부 침입자를 별로 안 좋아하니까…….”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꽈르릉!

    해파리들이 뿜어낸 번개는 계속해서 라니냐를 향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 했던가, 끝 간 데를 모르던 라니냐의 긴 HP바가 점차 붉은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지금이다! 계속해서 버스트 딜!”

    이우주의 오더에 이산하와 솔레이크 역시 신이 나서 앞으로 나섰다.

    강력한 화살과 골렘의 파괴광선이 라니냐를 집중 공략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꾸르르르륵……

    그토록 무시무시하던 라니냐의 거체가 침몰하기 시작했다.

    “야호! 잡았다!”

    “라니냐! 너의 목숨 The end!”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서로 얼싸안으며 기뻐한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휘리리릭-

    쓰러지는 라니뇨의 길고 거대한 몸을 휘감는 존재가 있었다.

    엘리뇨.

    놈은 해파리들이 뿜어내는 낙뢰의 작살 소나기 속에서도 꿋꿋하게 라니냐를 지켜 내고 있었다.

    촤악-

    이윽고, 엘리뇨는 라니냐를 휘감은 채 물러나기 시작했다.

    한번 도주하기로 마음먹은 엘리뇨는 엄청난 속도로 해저 깊숙한 곳을 향해 도망친다.

    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

    아까보다 훨씬 더 뜨거워진 물거품과 수증기가 놈이 얼마나 다급했는지를 증명하고 있었다.

    좋아했던 것도 잠시,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아쉽다는 듯 탄식했다.

    “아아, 아깝다. 거의 다 잡았었는데! ‘뺑소니’ 특성인가? 저렇게 빠르게 도망가는 놈을 무슨 수로 쫓아가겠어.”

    “라니냐. Kill. 실패. 빨피. 극한의 아쉬움.”

    ……그러나 이우주의 반응은 달랐다.

    “믿을 수가 없어, 거기서 왜 도망가지?”

    엄청난 속도로 도망치는 엘리뇨를 보며 내심 추격을 포기하고 있었던 이산하, 솔레이크와 달리 이우주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몸을 날렸다.

    “하늘이 도왔다! 빨리 따라가자!”

    잡을 수 있다.

    확실하게 사냥할 수 있다.

    사냥꾼의 눈빛은 더없이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세 번째 노림수가 적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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