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918화 (918/1,000)
  • 외전 44화 엘리뇨와 라니냐 (5)

    “접속.”

    [음성 인식으로 보안 해제]

    .

    .

    [동기화 중입니다……]

    .

    .

    [동기화 완료!]

    -띠링!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당신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는 야심차게 로그인했다.

    입안을 빵빵하게 채운 채로 말이다.

    -<산소 돌> / 재료 / B

    알록달록 예쁜 색깔의 돌맹이.

    호흡에 필요한 각종 기체를 뿜어낸다.

    둥글고 알록달록한 산소 돌.

    입안에 넣고 있으면 물속에서도 호흡할 수 있게 해 주며 수압을 감소시키고 목소리 또한 또렷하게 낼 수 있게끔 도와주는 보조 아이템이다.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는 이 산소 돌을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이 가지고 온 상태였다.

    “레이드가 길어질 것 같으니 미리미리 대비해야지.”

    이우주는 입안을 가득 채운 것도 모자라 인벤토리 안에까지 꽉 찬 산소 돌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윽고, 시야가 적색으로 점멸하기 시작했다.

    <해류가 불안정해집니다>

    <유속이 급격히 증가합니다>

    <히든 던전 ‘네 자매 사육장’의 보스 몬스터가 눈을 떴습니다!>

    보스존으로 접근하자 어김없이 뜨는 경고음.

    동시에 눈앞으로 거대한 몬스터 두 마리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엘리뇨와 라니냐.

    두 마리의 거대 산갈치가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의 앞으로 흉악한 외형의 몸뚱어리를 드러낸다.

    …콰쾅! 쿠르르르륵!

    사방팔방으로 휘몰아치는 해류가 주변의 지형을 사납게 깎아 내고 있었다.

    먼저 움직이는 라니냐와 곧이어 따라가는 엘리뇨에 의해 주변은 온통 끓고 얼어붙기를 반복한다.

    순식간에 냉탕과 열탕을 몇 번씩이나 반복하다 보면 정신이 쏙 빠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으음, 어째 피부가 조금 좋아진 것 같기도 하고…….”

    이산하가 활시위를 당기며 중얼거렸다.

    이윽고, 레이드가 개시되었다.

    펑-

    이산하의 저격을 맞은 라니냐가 사방으로 고드름을 흩뿌리며 달려들었다.

    날카로운 고드름 끝과 극저온의 수류, 그리고 라니냐가 일으키는 해일은 하나하나가 천재지변이나 다름없는 재해.

    “으아아아아! 해류가 온다!”

    이산하는 날아드는 브리니클을 피해 잽싸게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궁수 특유의 민첩한 몸놀림으로도 해류의 영향권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오-오오오오오!]

    라니냐가 만들어 내는 고드름이 해류의 모양으로 빙글빙글 돌며 이산하를 포위한다.

    바로 그때.

    “산하! 도움!”

    고드름 속에 갇힐 위기에 처한 이산하를 향해 내밀어지는 커다란 손이 있었다.

    메카닉 골렘을 소환한 솔레이크가 이산하를 위험에서 끌어올리고 있었다.

    “와! 나이스! 황금 타이밍이었다! 이건 진짜 유툽각!”

    “Oh! 빨리. 나오기나! 나 힘드러!”

    이윽고, 골렘은 등에서 뜨거운 증기를 뿜어내며 강력한 수류를 만들어 냈다.

    콰-아아아앙!

    제트 분사와 함께 해류의 사정권을 벗어나는 골렘.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는 골렘의 팔과 등 부근의 뿔을 붙잡은 채 후퇴했다.

    “누나, 계속 쏴! 엘리뇨까지 끌어내야 해!”

    “오케이. 화살 노예는 오늘도 쉬지 않고 쏩니다!”

    이우주의 오더에 이산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산하의 화살이 시커먼 아우라를 뿜어내며 해류를 뚫고 나아간다.

    이윽고, 라니냐의 뒤에서 해류의 흐름을 읽고 있던 엘리뇨까지 전면부로 등장했다.

    두 마리의 산갈치가 거대한 입을 벌리며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를 추격해 오기 시작한다.

    솔레이크는 골렘의 기동력을 Max 단계까지 높였다.

    …콰쾅!

    레버를 당기자 골렘의 두 눈에서 황금색 빛이 폭사되며 등에서 제트기류가 일어났다.

    [오-오오오오오오!]

    [그르르르륵……]

    엘리뇨와 라니냐가 무한궤도 모양을 그리며 세 사람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물이 끓어오르며 만들어지는 막대한 양의 열거품과 소용돌이 모양의 고드름이 양옆으로 뻗어 나가며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를 향해 뻗어 나가고 있었다.

    이산하가 소리쳤다.

    “으악! 이러다 또 잡히겠어! 고드름은 이제 싫어! 너무 추웡!”

    “Oh…… 이번에는 물거품도 함께. 그것도 뜨거운 물거품. Too hot한 수증기! 닿으면 바로 바비큐!”

    엘리뇨와 라니냐가 배출하는 열탕과 냉탕은 각기 다른 해류를 타고 왼쪽 오른쪽을 순환하고 있었기에 온도가 섞이지 않는다.

    그뿐만이 아니라 열에 의해 물의 순환이 이루어지면서 주변에는 온갖 종류의 파도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취송류, 밀도류, 경사류, 이안류, 보류 등등의 각종 해류들이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며 주변의 모든 것들을 빨아들인다.

    [오-오오오오오오!]

    [캬-아아아아악!]

    물론 그 핵심에는 모든 것들을 끓여 버리고 얼려 버리는 엘리뇨와 라니냐가 있었다.

    “빨려 들겠어! 골렘을 좀 더 다그쳐 봐!”

    “이것이 max! 마나 소모 격심!”

    이우주의 주문에 솔레이크는 난색을 표할 뿐이었다.

    어느덧 세 사람은 하해의 경계가 되는 거대한 퇴적층까지 올라왔다.

    엘리뇨와 라니냐 역시도 어마어마한 기세로 그들을 추격하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악!]

    성질 급한 라니냐가 이빨을 들이밀었다.

    와작!

    골렘의 발 끝부분이 조금 파손되었다.

    간발의 차이였다.

    “으아아아아! 이, 이러다 진짜 죽겠어! 동생! 빨리 그 비장의 수라는 것 좀 꺼내 봐!”

    “……조금만 기다려!”

    이우주는 조급한 기색으로 계속해서 위를 향해 헤엄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라니냐는 계속해서 이빨을 들이밀고 있었다.

    그 바로 뒤로는 엘리뇨가 이끌고 있는 거대한 해류의 소용돌이가 주변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중이다.

    쿠-르르르르륵! 꽈르릉! 콰쾅!

    심연이 통째로 휘몰아친다.

    거대한 회오리가 만들어지며 곳곳에서 천둥번개가 몰아치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태풍의 핵을 보는 듯한 그 광경에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입을 딱 벌릴 수밖에 없었다.

    “미쳤다 진짜, 저기 천둥 번개 치는 것 좀 봐!”

    “……천둥 번개?”

    순간, 이산하와 솔레이크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본다.

    “엥? 그러고 보니 웬 천둥 번개?”

    “바다 밑인데 왜 그런 게 치나?”

    하지만 틀림없다.

    엘리뇨와 라니냐가 만들어 내고 있는 거대한 소용돌이의 곳곳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시퍼런 스파크가 튀며 천둥과 번개가 몰아치고 있었다.

    우르릉! 꽈르르릉!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이상 전하(電荷) 현상은 점차 그 규모를 키워 나가더니.

    …콰쾅!

    급기야 거대한 번개 한 줄기가 이쪽을 향해 떨어져 내리기까지 했다.

    [캬아아아아아악!?]

    바로 해류의 주인인 라니냐를 향해서 말이다.

    엘리뇨는 옆에 있던 라니냐가 번개에 맞자 깜짝 놀랐는지 고개를 틀었다.

    쿠-오오오오오……

    주변에서 격렬하게 휘몰아치는 해류는 그 위세가 조금도 죽지 않았다.

    하지만 시커먼 파도자락 곳곳에서 불을 뿜어내고 있는 수많은 뇌전 줄기들은 분명 전에 겪어 보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번쩍! 콰쾅!

    또 한 줄기의 번개가 작살처럼 뻗어 나와 라니냐의 머리통 위로 떨어졌다.

    체적이 크고 넓을 뿐만 아니라 제일 앞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있었던 라니냐인지라 번개에 맞는 빈도수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더군다나 산갈치 특유의 일자로 서서 헤엄치는 기묘한 자세는 라니냐를 마치 피뢰침처럼 보이게 하고 있었다.

    이우주는 씩 웃으며 돌아섰다.

    “그 길쭉한 몸으로 맨 앞에서 설쳐 대니까 그렇게 되는 거다.”

    이산하와 솔레이크가 반색을 하며 외쳤다.

    “역시 나의 동생! 믿는 구석이 있었구나!”

    “그런데 무엇이냐? 이 thunder? 우주 전격계열 마법사?”

    하지만 이우주는 고개를 저었다.

    “잘 봐, 누나들. 해류에 뭐가 섞여 있는지.”

    그 말에 두 여자는 고개를 돌렸다.

    격렬하게 요동치는 해류 속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아무것도 없는 어둠 속에서는 별안간 불이 번쩍 튀며 스파크가 흐르고 있다.

    순간.

    “……!?”

    눈에 힘을 주고 있던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어둠 속에서 흐릿하게 움직이는 무언가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해가 너무나도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던, 게다가 투명한 육체를 가지고 있는지라 더더욱 구분이 쉽지 않았던 존재.

    해파리.

    막대한 전력을 가지고 있는 이 무수한 몬스터들이 지금 엘리뇨와 라니냐가 만들어 내고 있는 파도에 휩쓸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까지 끌고 오면 어떻게든 될 거라 생각했지.”

    이우주는 하해의 상층부를 드글드글 메꾸고 있는 전기 해파리들을 보며 씩 웃었다.

    생각대로, 해파리들은 하나하나가 강력한 전력을 머금고 있었다.

    어떤 플레이어도 하해로 사냥을 오지 않는 바람에 비정상적으로 불어나 버린 해파리.

    게다가 천적이었던 곰치 네 자매가 엘리뇨와 라니냐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두 배로 급증하게 된 개체수.

    그 결과 어마어마하게 많아진 해파리들이 해류에 잡혀 엘리뇨와 라니냐에게로 끌려간다.

    빠지직! 빠직! 뿌지지지지직!

    온 사방에서 강력한 전격을 발산하면서 말이다.

    콰쾅!

    맨 앞쪽으로 나와 있던 라니냐가 또다시 번개를 맞았다.

    [크-아아아아악!]

    라니냐는 입을 쩍 벌리며 포효했다.

    애초에 전기 해파리들을 잡아먹고 사는 몬스터이니만큼 전기 저항력이 상당히 높은 축에 속했지만…….

    빠지지지지지지지지지직!

    눈앞으로 빨려드는 해파리들의 수는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엘리뇨와 라니냐가 자신들이 만들어 낸 폭풍에 집어 삼켜지는 것을 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와! 해파리들이 모이니까 진짜 쎄구나! 역시 물량 앞에 장사 없어! 다구리가 최고야!”

    “Why. 지금껏 아무도 시도하지 못 했는가. 이런 Good Idea!”

    이우주 역시도 미소지었다.

    “다른 플레이어들도 종종 하해로 사냥을 오곤 하던 시절에는 해파리들의 수가 이렇게까지 많지 않았겠지. 그래서 그때는 아무도 엘리뇨와 라니냐의 공략에 해파리들을 이용할 생각을 못 했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하해에 오는 플레이어들의 발길이 뚝 끊긴 상태, 자연스럽게 해파리들의 개체수가 최고점을 찍었을 테니까 지금 우리가 하는 이런 사냥법이 가능해진 거지.”

    예전에 ‘홍옥의 파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인적이 드물어진 던전에는 자연스럽게 잡몹들이 득실대기 마련.

    이곳 하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오오! 한마디로 후발주자라서 개이득 봤다 이거네!”

    “맞다! 선발주자. 파이오니아들이었다면 오히려 이런 공략. 불가능!”

    가끔은 늦게 출발해서 좋은 일도 있는 모양이다.

    이것이 바로 뎀2의 묘미!

    ……심지어.

    빠지지지지직!

    라니냐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는 번개 줄기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굵고 강력해지고 있었다.

    “어라? 기분 탓인가?”

    “해파리들의 전력. 전보다 더 강해졌다?”

    해파리들의 힘은 새삼스럽게도 더 강력해져 있다.

    앞서 해파리들의 전력을 한번 겪어 본 적이 있었던 이산하와 솔레이크도 고개를 갸웃할 정도로.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이우주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군.”

    두 번째 노림수가 멋지게 적중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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