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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917화 (917/1,000)

외전 43화 엘리뇨와 라니냐 (4)

-띠링!

[로그아웃 하셨습니다]

[다음에 또 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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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주는 캡슐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눈앞에 이산하와 솔레이크가 앉아서 제육쌈밥을 우물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캬, 이걸 죽네. 누님들이 목숨 바쳐 살려 보냈더니.”

“그래도 우주. 버텼다. 상당히 오래. 주문한 음식. 아직 안 식었다.”

이우주는 머리를 긁적였다.

“제육쌈밥이 식기 전에 돌아왔네.”

“님 관운장임?”

“사실 좀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도주로가 중간에 막히는 바람에…….”

이우주는 하해에서 마지막으로 본 풍경을 이산하와 솔레이크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이산하는 우렁이를 우물거리며 말했다.

“야, 말이 되냐? 바다 밑에 왜 달이 있어. 그것도 뽀개져서.”

“진짜 있었어. 부서진 달의 조각이 앞을 막아서는 바람에 오도 가도 못했다고. 덕분에 냉열탕 사우나를 죽을 때까지 즐겨야 했지. 자, 이건 그때의 스샷.”

스크린샷까지 띄워 주는 이우주의 해명에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산산조각으로 파괴된 채 하해의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별의 정체.

그것은 바로 달……?

그때, 이산하는 뭔가가 생각났다는 듯 무릎을 탁 쳤다.

“그러고 보니까 아주 오래 전에, 그러니까 뎀 세계리그 당시에 뭔가 사건 하나가 있었던 것 같은데?”

“맞다. 산하네 아빠. 달을 부순 적 있다.”

이산하와 솔레이크의 말에 이우주 역시 눈을 빛냈다.

“맞아. 제 1회 WUO 당시에 있었던 일이지. 마동왕 메타로 경기에 나갔던 아빠는 주먹 한 방으로 상대방을 달까지 날려 보냈고…… 그때 분명 달이 파괴되어서 추락했었어.”

“그때 상대가 누구였더라? 그 당시 세계랭킹 1위였던 사람인데.”

“에드워드 튜더 프랜시스였나. 그럴 거다. 영국인.”

그렇다면 결국 오래 전, 하이랭커들의 싸움으로 인해 달이 파괴되었고 그 조각이 바다로 떨어져 하해까지 가라앉았다는 뜻이다.

“아빠가 싸운 흔적…… 그 거대했던 오브젝트가.”

이우주는 충격을 받은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달의 파편.

파괴는커녕 돌아서 넘어갈 생각조차도 들지 않았던 그 거대한 행성의 조각, 그렇다면 부서지기 전 본래의 모체는 대체 얼마나 거대했다는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한 주먹에 부숴 버릴 정도면 대체 공격력이 어느 정도였다는…….”

이우주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나는 결국 아빠의 벽, 그중에서도 극히 일부분에 가로막혀서 죽은 거였나.”

“얘 또 바닥 파고 들어가네.”

이산하가 그런 이우주의 목덜미를 잡아들었다.

“넌 의미 부여 좀 그만 해라. 벽은 벽이지 뭘 그리 시무룩해.”

“하지만 아빠랑 관련된 벽이니까…….”

“벽이 있으면 뛰어넘으면 되지.”

“못 뛰어넘을 것 같으니까 하는 말이지…….”

“그럼 부수면 되지.”

“어떻게 부숴…….”

“그럼 돌아서 가면 되지.”

“…….”

“기어서 넘든가, 땅굴을 파든가, 어떻게든 그 너머로 가기만 하면 돼. 시간이 아무리 걸릴지라도. 적어도 시간 가지고 눈치 받지 않는다는 게 후발주자의 장점 아냐?”

이산하의 말에 흔들리던 이우주의 눈빛도 다시 잔잔해졌다.

“맞아. 시간이 좀 걸려도 차근차근하면 돼.”

“그래~ 마인드 좋다, 내 동생!”

“근데 태양룡과 오만의 악마성좌 업데이트까지는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그래도 서둘러야겠어. 좌절할 시간이 없지.”

“맞아. 바쁜 벌꿀은 슬퍼할 시간도 없다잖아.”

“Busy honey? 허니가 바빠?”

대화 말미에 솔레이크가 슬쩍 끼어드는 것을 무시한 이우주는 재빨리 테이블 위로 지도를 펼쳤다.

하해의 미니맵을 프린트한 것이었다.

이우주는 손가락으로 하해의 하단부를 짚었다.

“어떻게 보면 이 해역이 딱 중간 보스 존이겠네. 깊이로 따져 봐도 그래.”

엘리뇨와 라니냐.

상위 티어에 속하는 개체값을 지닌 S급 몬스터가 페어를 이루어 도사리고 있다.

이우주는 턱을 쓸며 말했다.

“산갈치는 원래도 커다란 심해어류지. 덩치가 크고 모습이 기괴해서 옛날 사람들은 산갈치를 가리켜 ‘바다에 떨어진 하늘의 별’이라고 불렀대.”

“기묘하네. 달이 떨어진 해역에 생겨난 괴물의 별명치고는 말야.”

“굳이 따지자면. 달.”

이산하와 솔레이크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우주는 머리를 굴렸다.

“엘리뇨와 라니냐는 반경 수백 미터 이내에 거대한 해류를 일으키지. 심층수가 염분이나 온도 차이로 움직이는 것을 읽고 그 흐름을 읽을 줄 아는 것 같아. 그 커다란 덩치에 엄청난 속도로 헤엄쳐 다니는 것을 보면 말이야.”

종이 위에 표가 그려졌다.

이우주는 엘리뇨와 라니냐의 특징을 간단히 정리했다.

<엘리뇨> -등급: S / 특성: 가뭄, 폭우, 태풍, 홍수, 눈보라, 지진해일, 취송류, 밀도류, 경사류, 이안류, 보류, 자연재해, 변온, 백전노장, 연쇄살인, 뺑소니, 데스롤, 하강해류, 홍해(紅海)

-서식지: 하해(下海) ‘네 자매 사육장’

-크기: 44m

-붉은 갈기의 초대형 심해어류 수컷.

주변의 바다를 열탕(熱湯)으로 만들어 버리는 초고열의 체온을 자랑한다.

<라니냐> -등급: S / 특성: 가뭄, 폭우, 태풍, 홍수, 눈보라, 지진해일, 취송류, 밀도류, 경사류, 이안류, 보류, 자연재해, 변온, 백전노장, 연쇄살인, 뺑소니, 데스롤, 상승해류, 용권(龍卷)

-서식지: 하해(下海) ‘네 자매 사육장’

-크기: 44m

-푸른 갈기의 초대형 심해어류 암컷.

주변의 바다를 냉탕(冷湯)으로 만들어 버리는 극저온의 체온을 자랑한다.

“보니까 엘리뇨와 라니냐의 특징은 명확해. 거의 모든 자연재해류 특성을 공유하고 있지만 부분적으로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는 것. 부부답게 닮았으면서도 개체의 차이가 뚜렷하지.”

이우주는 색깔과 송곳니의 방향이 다르다는 것 말고도 하나의 차이점을 더 찾아냈다.

“엘리뇨의 특성은 하강해류고 라니냐의 특성은 상승해류야. 그리고 이렇게 상반되는 특성 외에도 전혀 다른 특성을 하나씩 보유하고 있네. ‘홍해(紅海)’와 ‘용권(龍卷)’인데 이것들의 정체는 짐작이 안 간다.”

“해류의 지형 데미지가 진짜로 무시무시하던데. 특히나 이안류랑 보류 특성이 사기더라.”

“라니냐. 선공. 엘리뇨. 후공. 라니냐 쪽이 항상 먼저 움직인다. 성격 과격.”

라니냐가 선공 때리고 엘리뇨가 보조하는 공격패턴.

이우주 역시도 이점을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공략법이 없기는 마찬가지야. 천상계의 극소수의 하이랭커들조차도 하해를 사냥터로써 비추천하는 이유가 있었어.”

“맞아. 나도 오래 전 뉴스 기사에서 봤어. 이미 밸런스가 붕괴된 맵이라고. 대형 길드 차원에서 한번 물갈이 겸 정화작업을 하지 않는 한 일반 유저들의 사냥은 불가능할거라던데…… 그런데 누가 돈과 시간, 인력을 들여서 그걸 하겠어. 그럴 바에는 다른 데서 사냥하지.”

“엘리뇨와 라니냐. 한 번도 안 잡힌 보스 몬스터들. 공략. 요원해 보인다.”

토의를 하면 할수록 미궁으로 빠진다.

정말 엘리뇨와 라니냐를 잡는 것은 불가능한 미션일까?

이우주, 이산하, 솔레이크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얘들아~ 밥 먹고 해라.”

방 밖에서 발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산하와 이우주는 부엌에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에 쪼르르 나갔다.

솔레이크 역시도 해맑은 표정으로 뒤를 따라간다.

“음, 제육쌈밥 먹긴 했는데.”

“양이 좀 부족하긴 했지.”

“산하네 집밥. 맛있다.”

하지만 테이블은 텅 비어 있다.

이산하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엄마, 밥은요?”

“뻥이야. 심부름 시킬라고 불렀어. 우리 솔레이크도 이리 좀 와 보렴.”

이산하와 이우주의 모친 유다희 여사.

그녀는 이산하와 이우주, 솔레이크에게 커다란 짐덩이를 떠맡겼다.

그것은 큼지막한 바구니에 담긴 조립식 물레방아와 황토가 담긴 비닐팩이었다.

“이거 가져가서 저기 마당에 있는 연못에다가 설치 좀 해 놓고 와라. 설명서대로만 하면 된대.”

“에엥? 이건 다 뭐예요? 아침에 택배 와 있던 게 이거였나 보네.”

“요즘 잉어들이 산소 부족으로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주문했지. 자꾸만 수면 위로 올라와서 입을 뻐끔거리더라구.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까 물레방아 설치해 주고 황토볼을 조금 넣어 주면 좋대.”

거실 창문을 통해 마당에 있는 널찍한 연못을 내려다보니 과연 잉어들이 수면 위에서 입을 뻐끔거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날이 더워서 그런가 물속의 산소가 부족해진 모양.

이산하가 투덜거렸다.

“물레방아랑 황토가 도움이 돼요?”

“물레방아가 물을 저어 주니까 아무래도 좀 낫겠지? 황토볼도 그렇고.”

“네이- 그럼 얼른 설치하구 오겠습니다아-”

“아, 그리고 물레방아 설치할 때 전선 조심해라. 멀티탭 연결한 상태로 물에 빠트리면 감전되니까.”

유다희는 평소 덜렁거리는 성격인 이산하에게 거듭 주의를 주었다.

바로 그때.

“……그래! 그거야!”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우주가 빽 소리쳤다.

마당의 연못. 뻐끔거리는 잉어. 부족한 산소. 물레방아. 전기. 황토.

여러 개의 키워드들이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뒤엉켜 든다.

그것은 이내 번개처럼 뇌리를 스쳐 가는 한 개의 생각으로 귀결되었다.

“고마워요 엄마! 좋은 생각이 났어요! 엘리뇨와 라니냐를 공략할!”

이우주는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그리고는 재빨리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흥분과 열정으로 가득 찬 어조로 말이다.

“저 X끼 연못 공사하기 싫어서 튀는 거 아냐……?”

“타이밍. 수상쩍다. 하필 지금.”

이산하와 솔레이크만이 바구니를 든 채 투덜거릴 뿐이었다.

*       *       *

엄마가 안방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당신 말대로 전해 줬어요.”

그곳에는 게임 캡슐 위에 앉아 있는 아빠가 있었다.

“허허- 역시 육아는 손이 많이 가는구만.”

부부는 오늘도 지그시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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