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916화 (916/1,000)
  • 외전 42화 엘리뇨와 라니냐 (3)

    애초에 산갈치라는 생물은 전혀 다르게 생겼다.

    외형, 크기, 무게 면에서 일반적으로 사람의 밥상에 오르는 갈치와 말이다.

    어마어마하게 크고 길며 기괴하게 생긴, 어두운 심해의 공허 속에서나 서식하는 그런 것이 어쩌다 조류에 휩쓸려 와 연안의 수면을 헤엄쳐 다니는 것을 보면 공포감마저 느껴진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산갈치를 가리켜 ‘용’, ‘이무기’, ‘인어’, ‘요괴’, ‘용궁의 사자’, ‘청어의 왕’, ‘바다에 떨어진 하늘의 별’과 같은 별명으로 불렀던 것이다.

    ‘엘리뇨’와 ‘라니냐’.

    지금 세 사람의 눈앞에 있는 두 보스 몬스터는 인간의 그런 공포심과 경외심이 잘 반영된 형상을 하고 있었다.

    이산하가 입을 딱 벌리며 말했다.

    “……세, 세상에. 하해는 이런 괴물들의 서식지였나. 이런 것들이 돌아다니고 있으니 하이랭커들조차도 못 올 수밖에.”

    나름대로 뎀2를 오래 플레이해 왔던 이산하조차도 처음 보는 압도적인 비주얼.

    눈앞에 있는 거대한 산갈치 두 마리는 마치 ‘이것이 진정한 심해 괴물이다!’라고 외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거대한 체구, 무시무시한 생김새, 그리고 전신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흉악한 피어.

    지금까지 잠수하는 동안 만나 봤던 모든 심해괴물들을 압도하는 이 기괴하고 충격적인 모습에 이우주 역시도 침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질투의 악마성좌 레비아탄, 창해룡 버뮤다, 그리고 크툴루 크라켄과 곰치 네 자매. 그것들에게 밀려나 있었던 ‘은메달리스트’들인가. 아주 제 세상 만났군.”

    질투의 악마성좌 레비아탄과 창해룡 버뮤다는 서브스트림이니 서열에서 논외로 쳐 보자.

    그렇다면 원래 이 바다의 금메달리스트는 크라켄, 혹은 곰치 네 자매가 되었어야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실질적인 상해와 하해의 지배자로서 먹이사슬의 정점에서 군림해 왔었다.

    ……하지만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차례로 사냥당했다.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한 위대한 플레이어’에 의해서 말이다.

    그 뒤로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간 하해의 저변에서는 차세대 지배자를 노리는 은메달리스트의 준동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후보들 중 하나가 바로 눈앞에 있는 이 ‘엘리뇨’와 ‘라니냐’인 것이다.

    [오-오오오오오오!]

    무시무시한 기세로 포효하는 두 마리의 산갈치를 보며 이우주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 몬스터들에 대한 사전 정보는 전혀 없어. 당장 도망치지 않으면 무조건 죽는다.’

    보통의 인간은 항거불능의 거대한 재해를 만나면 도망부터 치고 본다.

    그것이 본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고나기를 남들과 다른 이들이 있다.

    도망보다는 도전.

    목숨을 보존해야 한다는 유전자의 제 1원칙보다도 앞선 제 0의 원칙.

    ……그것은 끝없는 호기심과 도전의식, 경이로울 정도의 탐구열.

    현재의 이우주가 보이고 있는 바로 그런 것 말이다.

    “그러니 일단은 부딪쳐가면서 정보를 모아 가는 수밖에!”

    극한까지 내몰린 위기의 상황 속에서, 이우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이질적인 본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당장 뒤돌아 도망쳐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엘리뇨와 라니냐를 향해 접근하는 이우주.

    그리고 그런 이우주를 내버려둘 수 없는 착한 누나는 그저 온갖 쌍욕만 퍼부을 뿐이다.

    “얌마! 이 XX, XXX야! XX, 너 어디 가! XX! XXXX! 뒤지고 싶어!?”

    “우주! 그러다 죽는다! 도움! 산하! 너는 왼쪽! 나는 오른쪽!”

    온갖 욕을 퍼부으면서도 동생을 향해 달려가는 이산하, 그리고 그런 이산하를 묵묵히 돕는 솔레이크.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의 파티가 본격적으로 개진을 알리고 있었다.

    …파캉!

    이산하의 화살이 제일 먼저 쏘아져 나간다.

    날카로운 수류를 만들며 회전하는 화살이 푸른 갈기의 산갈치 라니냐를 향해 날아갔다.

    [크륵!?]

    라니냐는 피부에 와 박히는 화살에 미간을 찡그렸다.

    동시에.

    휘오오오오오오……

    주변의 해류가 거칠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물속이라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마어마한 규모의 진흙 구름과 돌가루들의 움직임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끔찍할 정도로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는 것을.

    “온다! 뭉쳐!”

    이우주가 비명에 가까운 오더를 내렸다.

    이윽고, 무시무시한 와류가 일어나 주변을 초토화시키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콰콰쾅!

    절벽이 깎여 나가고 암초들이 붕괴되었으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뒤틀리고 일그러졌다.

    강력한 해류들이 상상할 수조차 없는 엄청난 유속으로 뒤엉켜 들며 주변의 지형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는 서로의 손을 맞잡은 채 골렘에게 붙어 와류의 핵심으로부터 최대한 멀찍이 떨어졌다.

    으득-

    이우주는 이를 갈았다.

    “잘 보면 저 빨간 지느러미는 주변의 바닷물을 끓이고 있고 파란 지느러미는 주변의 바닷물을 얼리고 있어.”

    말 그대로였다.

    엘리뇨의 몸 주변으로는 연신 뜨거운 기포가 부글거리고 있었고 라니냐의 몸 주변으로는 살얼음이 껴 주변 풍경이 일그러진 것처럼 뿌옇게 보인다.

    “저 두 몬스터가 뒤엉켜서 만들어내는 격심한 온도 차이가 해류의 순환을 만들어 내고 있는 거야. 그것도 엄청나게 격렬하게.”

    엘리뇨와 라니냐는 부부로 추정된다.

    둘은 마치 뫼비우스의 띠 모양으로 얽힌 채 양쪽 방향으로 열탕과 냉탕을 만들어 내어 해류를 조종한다.

    놈들의 격렬한 움직임에 따라 생기는 취송류, 해수의 밀도 차로 생기는 밀도류, 주변 해면의 경사로 생기는 경사류, 육지에서 바다 쪽으로 강력하게 끌려오는 이안류, 대량의 해수가 움직이며 생긴 빈 공간으로 새롭게 밀려들어 오는 해수가 만들어 내는 보류 등의 특성으로 짐작컨대…….

    “저놈들은 아마 바다 안에 존재하는 모든 해류에 대한 특성을 가지고 있을 거야.”

    그뿐만이 아니라 가뭄, 폭우, 태풍, 심지어 눈보라까지.

    온갖 종류의 기상이변에 관련된 자연재해 특성들이 죄다 붙어 있다.

    이산하와 솔레이크가 질렸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그게 진짜라면 아마 바다에서 만날 수 있는 최악의 상대 같은데.”

    “누가 봐도 진짜 같다. And 굳이 바다. 장소. 한정 짓지 않아도 될 듯싶다. 그냥 최악.”

    지금 이 순간에도 엘리뇨가 만들어 내고 있는 끓는 해수와 라니냐가 만들어 내고 있는 얼어붙는 해수가 뒤섞이며 거대한 와류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

    이우주는 해류에 끌려 들어가지 않게 골렘을 붙잡고 버티고 있었으나 정작 문제는 골렘이 붙잡고 있는 바위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였다.

    “진짜 말도 안 되게 세군. 개체값도 S급 몬스터들 중에서 상위권에 속하는데 둘이서 한 몸처럼 붙어 다니다니. 저래서야 자체적으로 ‘변온’ 특성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잖아.”

    ‘변온’ 특성.

    한 속성을 그에 상반되는 속성의 데미지로 변환시킬 수 있는 능력.

    가령 불을 얼음으로, 얼음을 불로 치환할 수 있는 그 스킬을 엘리뇨와 라니냐는 페어를 이룸으로써 발휘하고 있었다.

    “부부라서 그런가 합도 잘 맞아! 진짜 최악이야!”

    “갈기 색깔. 송곳니 모양. 딱 봐도 궁합이 딱이다!”

    이산하와 솔레이크가 외쳤다.

    하지만 마냥 투덜대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

    두 마리의 산갈치 중 라니냐가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쩌저저저적!

    주변의 바다가 얼어붙는다.

    해수의 온도가 순식간에 내려가며 주변에 브리니클(Brinicle)이 형성되었다.

    고밀도의 염수가 얼어붙으며 만들어 내는 죽음의 고드름이 이산하를 덮쳤다.

    “우왓!? 이건 맞으면 즉사겠다!”

    “맞지 않아도 죽는다. 닿기만 해도 즉사!”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재빨리 고드름의 영역에서 피했다.

    이우주는 오더를 내렸다.

    “첫 레이드에서 잡는 것은 당연히 무리야! 일단 탐색전만 해 보자! 도망치면서 가능한 오래 살아남는 걸 목표로!”

    “라져!”

    “알겠다!”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도망가는 길을 선택했다고 해도 그 또한 쉽지 않은 일.

    쩌적- 쩌저적- 쩌저저적-

    시시각각 엄습해 오는 고드름, 그것이 아주 가까운 거리까지 닥쳤다는 것은 목덜미 뒤가 점점 차가워지는 것으로 알 수 있었다.

    결국 발뒤꿈치에까지 딱딱한 고드름이 닿았을 때,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둘은 오랜 친구 사이, 말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의사를 전달할 수 있었다.

    ‘우리보다는 우주를 먼저 살리자. 저 녀석은 똑똑하니까 최대한 오래 살아서 정보를 모으게 해야지. 그러면 분명 다음 레이드 때 도움이 될 거야!’

    ‘그렇군 산하! 게살버거가 또 먹고 싶은 건가! 이런 극한 상황에서 저녁 메뉴를 생각하다니. 사실 나도 아까부터 배가 엄청 고팠다! 하지만 햄버거는 조금 질렸으니 제육쌈밥과 두부 된장찌개가 어떨지?’

    둘은 재빨리 절벽을 박차며 고드름을 피해 이동했다.

    “솔레이크! 알지!?”

    “Of course! 안다!”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이우주의 목덜미를 낚아채고는 비교적 안전한 앞으로 확 떠밀었다.

    “동생아! 꼭 살아남아라!”

    “제육쌈밥!”

    두 누나의 손길에 의해 고드름을 피하게 된 이우주.

    그리고 라니냐의 고드름에 적중당한 둘은 서로를 쳐다보는 자세 그대로 얼어붙었다.

    “……?”

    “……?”

    고드름 속에 갇힌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순식간에 리타이어 당했다.

    이우주는 이를 악물었다.

    “걱정 마! 내가 최대한 시간을 끌며 정보를 모을게! 그리고 반드시 다음 레이드에서 저놈들을 잡겠어!”

    불가능을 가능케 만들 것이다.

    그것은 아빠가 늘 해 왔던 것이고 그런 아빠의 아들인 자신이라면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우주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일단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공략법을 찾아야…… 응?’

    하지만.

    이우주는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었다.

    턱-

    등에 닿는 차갑고 단단한 감촉.

    사전에 미리 공부해 뒀던 맵의 구조 상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어야 정상이다.

    ‘아빠가 이곳 ‘네 자매 사육장’을 공략하는 영상을 본 적 있어. 분명 그때 이곳에는 아무런 장애물도 없었는데?’

    하지만 지금 어둠 속에는 무언가 거대한 장애물 같은 것이 이우주의 도주로를 막고 있었다.

    [오-오오오오오!]

    [캬-아아아아악!]

    뒤에서는 엘리뇨와 라니냐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추격해 오고 있다.

    이우주는 손을 뻗어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것을 더듬어 보았다.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이내 어둠에 눈이 익자 장벽의 모습이 서서히 시야에 들어온다.

    “……!?”

    이우주는 자신의 앞을 막다른 길로 만든 거대한 오브젝트의 존재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것은 커다란 구체가 부서져 만들어진 파편.

    마치 행성이 폭발하고 남은 잔해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뭐지? 별똥별 같은 게 바다에 떨어져 여기까지 가라앉은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파편의 크기가 너무나도 크다.

    둥그런 구체에서 떨어져 나온 극히 일부의 조각임에도 불구하고 도주로 전체를 가로막을 정도라니.

    이 정도로 커다란 별이 떨어졌다면 이우주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렇다. 정말로 모를 리가 없다.

    이우주는 눈앞에 있는 이 커다란 낙성(洛星)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었다.

    “……달?”

    그렇다.

    산산조각으로 파괴된 채 이곳 하해의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별의 정체.

    그것은 바로 달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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