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915화 (915/1,000)
  • 외전 41화 엘리뇨와 라니냐 (2)

    -<게살버거> / 재료 / D

    그다지 인기 없는 식재료로 만든 햄버거.

    게살로 만들어졌다고는 하지만 실제 게살 함유량은 극도로 적고 대부분은 해파리 살로 이루어져 있다.

    이우주는 인벤토리에서 햄버거 하나를 꺼내 들었다.

    빵 사이에 약간의 채소, 그리고 튀긴 패티가 끼워져 있는 음식 아이템.

    게임 속에서 스태미나를 보충하기 위해 간간이 먹었던 소모품이다.

    “현실의 게살버거는 대부분 대구살이나 명태살로 만들어지는 것처럼 게임 속의 게살버거는 대부분 해파리로 만들어지지.”

    “……맞아. 요 일주일 정도 지겹게 먹었지. 무슨 네모바지 스펀지밥도 아니고.”

    “그랬군. 패티에서 느껴졌다. 비릿한 냄새. 그것은 Jellyfish의 smell이었던가.”

    일주일 내내 게살버거를 지겹게 먹은 결과 세 사람의 몸에는 해파리 냄새가 깊게 배어 버렸다.

    그 때문에 이들은 현재 해파리들의 환영을 받고 있는 것이었다.

    꾸물꾸물꾸물꾸물……

    해파리들은 나름대로 호의를 보이며 강렬한 냄새를 풍기는 이 동족들을 환영한다.

    문제는 해파리식의 격한 포옹이 인간에게 있어서 그리 익숙한 인사법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으악! 어딜 만지는 거야!”

    이산하가 울상을 지었다.

    촉수가 전신 구석구석을 훑자 비명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를 동족으로 아나 봐! 촉수로 그만 더듬어! 거, 거긴 눈이야! 이러다 실명하겠어! 촉수물 극혐이야 진짜!”

    “……촉수물? 산하. 너 그런 것 보나?”

    “시청자들이 자꾸 짤로 올리는데 어떡하라고 그럼!”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태격태격 툭탁거리며 바닷속 깊은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한편, 이우주는 입을 꾹 다문 채 해파리들의 손길을 버텨 냈다.

    ‘그래도 해파리들이 가까이 붙어 있어서 시야는 밝군. 다른 해저괴물들도 가까이 안 오고.’

    꾸준히 게살버거를 먹어 온 보람이 있다 싶었다.

    ‘하지만 해파리들은 하해의 연안에만 서식한다. 조금만 더 내려가면 해파리들의 비호를 받기도 어려울 거야.’

    어둠이 점점 짙어짐에 따라 이우주는 막대 모양의 산호 하나를 반으로 꺾었다.

    …또각!

    산호는 꺾이자마자 어슴푸레한 녹색의 불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마치 어두운 콘서트장의 응원봉처럼 말이다.

    “너무 밝은 빛은 심해의 괴물들을 불러들이니 안 되고. 이 정도가 딱 적절하겠군.”

    불과 십수 센티미터의 앞만 간신히 밝힐 수 있을 정도의 밝기였지만 딱히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몇 미터, 아니 몇십 미터의 앞을 밝힐 수 있다고 해도 어차피 그곳에는 텅 빈 어둠뿐일 테니 말이다.

    꼬르르르륵-

    이우주는 발광 산호를 손에 든 채 계속해서 아래를 향해 헤엄쳤다.

    입안에 산소 돌을 물고 있으니 호흡을 걱정할 일은 없었다.

    “그 많던 해파리들도 점점 안 보이네.”

    “해파리 없다. 어둡다. 이것은 이것대로 기분 나쁘다.”

    이산하와 솔레이크의 말대로였다.

    깊은 곳으로 내려갈수록 해파리들의 수도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다만 가끔씩 발견할 수 있는 월등히 큰 사이즈의 몇몇 개체들만이 천천히 공허 속을 부유하고 있을 뿐이다.

    그때.

    [……줘.]

    어디선가 인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는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여러 개의 큰 해파리들이 둥실둥실 부유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목소리는 그것들에게서 들려오고 있었다.

    [살려 줘.]

    너무도 선명하게 들려오는 목소리.

    심지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자신이 들어가 누울 관 하나쯤은 마련해 오는 것이 좋아.]

    [언제나 짊어지고 다니는 거야. 죽음을.]

    [이 기름은 같은 무게의 금보다도 훨씬 귀하니까.]

    [드디어 만났군. 향기로운 기름.]

    [……하느님의 영역은 여기까지.]

    [스타벅, 스텁, 패들러, 플라스크, 테슈테고, 다부… 모두 죽었어. 모두.]

    [짐승에게 복수를 하겠다니…… 미친 짓이야. 하지만 그 또한 한 마리의 상처 입은 짐승이리니.]

    [퀴퀘그!]

    .

    .

    누구의 것인지, 언제 녹음된 것인지 알 수 없는 옛날의 목소리들.

    해파리들은 어둠 너머에서 유령처럼 부유하며 아무런 목적도 의도도 없는 목소리들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중얼거리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 으스스한 음성들을 들은 이산하는 몸을 오싹 떨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들은 적이 있어. 바다의 해파리들은 익사체의 영혼이라는 괴담을.”

    오컬트 같은 것에 관심이 많은 이산하는 평소 무서운 이야기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다.

    그녀는 옆에서 귀를 막고 있는 솔레이크의 손을 강제로 치우며 괴담을 들려주었다.

    “그거 알아? 만물은 곧 에너지. 사람의 영혼도 결국은 음(-)과 양(+)의 전하라는 거. 사람이 죽으면 보통 그게 흩어져 사라지는데 가끔 근처에 물이 있으면 그것을 타고 흐른다나 봐. 그래서 수맥이 있는 곳에는 귀신이 있다잖아.”

    “그, 그게 뭔가! That’s 허무맹랑!”

    “들어봐. 그런데 사람이 바다에서 죽으면? 영혼의 전기적 신호는 어디로 갈까? 죽기 직전의 그 강렬한 메시지는 어디로 향할까? 물은 전기가 잘 통하지. 그것은 하염없이 어디론가 퍼져 나갈 거야. 그리고 라디오처럼 수신이 가능한 곳에서 붙잡히겠지.”

    이산하는 옆을 둥둥 떠다니던 작은 해파리 하나를 손으로 붙잡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이 해파리는 말이야, 몸의 98% 이상이 물이야. 그리고 나머지 몸체에는 발전 세포가 있지. 전기를 만들어 내고 보관할 수 있단 말이야. 어떻게 보면 떠돌아다니는 주파수를 잡을 수 있는 라디오랄까?”

    “으으으으…… no…… 안 들려…….”

    “만약 사람이 물에 빠져 죽기 직전 강렬한 전기적 신호, 최후의 메시지를 사념처럼 남겼다면? 그리고 그 근처에 마침 몸의 대부분이 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발전 세포까지 가지고 있는 해파리가 있었다면? 그 익사체의 마지막 사념은 어디에 수신되어 깃들까?”

    말을 마친 이산하는 해파리를 손으로 콱 움켜쥐었다.

    그러자 해파리의 몸이 으깨지며 늙고 괴팍한 노인의 음성이 터져 나왔다.

    [가눌 수 없는 증오를 담아 내 마지막 숨을 너에게 뱉어 주마!]

    “으악!?”

    정작 해파리를 손으로 쥔 이산하마저 깜짝 놀라 손을 털어 버릴 정도로 강렬한 사념이었다.

    이우주는 그것을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고 보니 한국전쟁 때 남한군이 보냈던 구조 신호가 수십 년 동안 주파수로 떠돌다가 우연히 한 초소의 무전기로 송신되었다는 괴담을 들었던 것 같아. 아빠한테서.”

    “어우, 내가 말했지만 소름끼치네. 그렇게 보니까 이 해파리들 엄청 으스스하게 보인다.”

    “으으으으…… I hate ghosts…… I hate jellyfish.”

    어둠 너머로 해파리들이 발하는 희미한 불빛들이 흐른다.

    그것들은 마치 온몸으로 외치고 있는 듯했다.

    ‘더 깊숙이 내려가지 마’라고.

    하지만 이우주에게 있어서 이것들은 그저 신비로운 게임 속 자연현상일 뿐이었다.

    “어디 보자.”

    이우주는 옆을 지나가는 커다란 해파리를 응시했다.

    해파리는 안쪽의 내장들이 그대로 들여다보일 정도로 투명한 몸을 가지고 있었고 촉수의 끝에서 희미하게나마 발광까지 하고 있었기에 관찰이 용이했다.

    입수공을 통해 빨아들인 물이 전신을 몇 바퀴나 돌아서 다시 출수공을 통해 나간다.

    물과 함께 딸려 들어온 먹이들은 투명한 창자 속에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녹아내린다.

    그 과정에서 해파리의 내장들은 펄떡펄떡 뛰며 왕성한 생명유지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몸이 투명해서 그런가 뱃속에 있는 먹이들이 그대로 다 보이네.”

    “소화 느리다. 저장공간 많다. 마치 보물상자 같은 느낌.”

    이산하와 솔레이크 역시도 신기하다는 듯 해파리를 관찰하고 있었다.

    이우주는 손끝으로 해파리의 갓을 톡 건드려 보았다.

    …찌릿!

    미약하게나마 전기가 느껴진다.

    “하해의 해파리들은 대부분 발전 세포를 가지고 있구나. 자체적으로 전력을 생산하는 건가? 동력은 뭐지?”

    해파리들은 하나하나가 크고 작은 발전소나 다름없다.

    하지만 어떤 원리와 구조로 인해 전력을 발산하고 또 충전할 수 있는지는 아직 알 길이 없었다.

    “아마도 주변에 흐르는 해류의 위치 에너지와 운동 에너지를 이용해 발전하고 충전하는 것 같은데…… 이건 좀 시간을 들여 연구해 볼 가치가 있겠군.”

    이우주는 해파리가 가진 발전 기능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바로 그때.

    -띠링!

    세 사람의 귓가에 요란한 알림음이 들려왔다.

    어둡기만 했던 시야가 붉은 빛으로 빠르게 점멸한다.

    이산하가 제일 먼저 반응했다.

    “……보스몹이다!”

    그 말대로였다.

    <해류가 불안정해집니다>

    <유속이 급격히 증가합니다>

    <히든 던전 ‘네 자매 사육장’의 보스 몬스터가 눈을 떴습니다!>

    원래 이 구역의 지배자였던 헬렌, 린다, 제니, 바비를 대신하여 새롭게 등장한 얼굴들이 있었다.

    그것은 굵고 긴 몸체와 어지럽게 휘날리는 갈기를 지닌 거대한 해저괴물들.

    …꾸르르르르륵!

    엄청난 양의 물거품들이 융기하는 가운데로 두 마리의 몬스터가 머리를 드러냈다.

    “오옷! 드디어 흑해의 무영왕인가!?”

    “아니. 그 녀석은 훨씬 더 밑쪽, 하해의 저변에 서식하고 있을 거야. 과거 레비아탄이 지배하던 구역이지.”

    “그럼. 저것은 무엇이다?”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는 눈앞의 시야를 꽉 채울 정도로 거대한 보스 몬스터와 마주하고 있었다.

    그것들의 전체적인 외형은 아주 커다란 산갈치를 닮았다.

    몸은 뱀장어나 곰치처럼 길었고 옆으로 납작한 편이었으며 커다란 턱과 송곳니를 지녔다.

    한 마리는 위턱에서 자라나 아래로 뻗은 커다란 송곳니를, 다른 한 마리는 아래턱에서 자라나 위로 뻗은 송곳니를 가지고 있었다.

    위턱 송곳니를 가진 산갈치는 목덜미에서 꼬리 끝까지 이어지는 불길과도 같은 붉은 갈기를, 아래턱 송곳니를 가진 산갈치는 얼음처럼 푸른 갈기를 휘날린다.

    <엘리뇨> -등급: S / 특성: 가뭄, 폭우, 태풍, 홍수, 눈보라, 지진해일, 취송류, 밀도류, 경사류, 이안류, 보류, 자연재해, 변온, 백전노장, 연쇄살인, 뺑소니, 데스롤, 하강해류, 홍해(紅海)

    -서식지: 하해(下海) ‘네 자매 사육장’

    -크기: 44m

    -붉은 갈기의 초대형 심해어류 수컷.

    주변의 바다를 열탕(熱湯)으로 만들어 버리는 초고열의 체온을 자랑한다.

    <라니냐> -등급: S / 특성: 가뭄, 폭우, 태풍, 홍수, 눈보라, 지진해일, 취송류, 밀도류, 경사류, 이안류, 보류, 자연재해, 변온, 백전노장, 연쇄살인, 뺑소니, 데스롤, 상승해류, 용권(龍卷)

    -서식지: 하해(下海) ‘네 자매 사육장’

    -크기: 44m

    -푸른 갈기의 초대형 심해어류 암컷.

    주변의 바다를 냉탕(冷湯)으로 만들어 버리는 극저온의 체온을 자랑한다.

    엘리뇨(El Niño)와 라니냐(La Niña).

    이 해역의 새로운 지배자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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