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914화 (914/1,000)
  • 외전 40화 엘리뇨와 라니냐 (1)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는 새로운 모험을 떠난다.

    목적지는 하해, 원래 주인이 모종의 이유로 사라지고 없는 ‘네 자매 사육장’ 너머에 있는 곳.

    하해의 새로운 대왕이 있다는 곳이었다.

    -띠링!

    <해저 화산 ‘피쿼드(Pequod)’를 발견하셨습니다>

    <최초 발견자: YOUdie>

    하해의 입구에서 들려오는 알림음을 들은 이산하가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어? 엄마다! 엄마 아이디야!”

    이곳은 왕년의 유다희가 제일 처음으로 발견했던 맵이다.

    이우주는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아빠가 아니라 엄마가 여기를 최초 발견했다고?”

    “우주네 어머님. 개척적. 역시 파이오니아. 1세대다우시다.”

    심해의 열공(熱空) 앞에 선 세 사람은 각자 아이템을 나누었다.

    -<산소 돌> / 재료 / B

    알록달록 예쁜 색깔의 돌멩이.

    호흡에 필요한 각종 기체를 뿜어낸다.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색색깔의 작은 돌.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크기니 삼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입에 물고 있으면 다양한 혜택을 제공해 주는 신규 아이템! 산소도 공급해 주고 목소리도 전달해 주며 수압 감소 효과까지 있지!”

    “……정말. 이 아이템이 추가되기 전에는 다들 심해맵 공략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네.”

    “내가 들은 바가 있다. 쇠공? 속에 들어가서 내려갔다고 한다. 폐쇄공포증 걸린 사람. 짱많음. 이라고 들었다.”

    이윽고. 세 사람은 바다 밑에 뚫린 깊은 구멍을 내려다보게 되었다.

    온 바다의 퇴적물들이 쌓여 만들어진 사막, 그리고 심해의 극도로 차가운 바닷물과 수압에 의해 얼어붙은 4천 미터 두께의 얼음층.

    그 밑에는 일명 하해(下海), ‘바다 밑의 바다’가 존재한다.

    이우주는 하해의 규모에 대해 떠올렸다.

    “……면적은 약 1만 4000㎢, 길이는 230㎞, 너비는 50㎞. 최고 깊이는 1,200m 정도로 추정. 우리나라로 치면 강원도 면적 정도 된다는 거네.”

    두터운 사막층과 얼음층에 갇혀 오랜 시간 동안 외부와 고립되어 있던 공간.

    그 너머에 어떤 종류의 생명체가 어떤 진화체계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가. 그럼 가 보자구!”

    이산하가 활기차게 외쳤다.

    이윽고, 세 사람은 전방을 향한 힘찬 함성과 함께 하해로 통하는 구멍 안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빠직!

    귓전을 때리는 강렬한 소음과 함께.

    시야가 어두워졌다.

    -띠링!

    <사망하셨습니다>

    *       *       *

    “?”

    “??”

    “???”

    세 사람은 캡슐 밖으로 나오자마자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너 죽었어?”

    “누나도?”

    “우리 왜 죽었나?”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셋 중 몰살의 원인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분명 어두운 구멍을 향해 뛰어들었고…….”

    “빠직! 하는 소리가 들렸던 것 같은데.”

    “난 바로 튕겼다.”

    이우주는 생각에 잠겼다.

    “이런, 초고렙들의 사냥터인 만큼 입구에서부터 뭔가 함정이 있었던 건가. 하지만 그런 정보는 입수한 적이 없는데. ……내가 미숙했나. 아빠였다면 좀 더 신중했을 거야. 일단 누나라도 먼저 들여보내 볼걸.”

    “뭐야 인마?”

    “……농담이야. 다음에는 뭐라도 먼저 떨어트려 보자. 상점용 골렘이라거나 몬스터의 시체라거나.”

    이우주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사망으로 인한 짧은 접속 제한이 풀린 뒤, 세 사람은 다시 하해로의 진입을 시도했다.

    “머드 골렘 가져왔지?”

    “그렇다. 시판용 공산품.”

    이우주의 질문에 솔레이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커다란 진흙 골렘이 하해의 입구로 들어간다.

    골렘의 가슴에 붙여 놓은 야광 산호가 반짝반짝 빛을 뿜으며 어둠 밑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

    “…….”

    “…….”

    세 사람은 빛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한동안 그것을 지켜보았다.

    “……아무 일도 없는데?”

    “딱히 함정은 안 보이네.”

    “그럼 들어가도 되나?”

    머드 골렘을 한 구 더 떨어트려 보았지만 이번에도 큰 이상은 없었다.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는 비로소 진입해도 괜찮다는 판단을 내렸고 그대로 심연을 향해 몸을 던졌다.

    ……그리고.

    빠직!

    또다시 시야가 어두워졌다.

    -띠링!

    <사망하셨습니다>

    *       *       *

    “뭐지, 진짜?”

    “진짜, 뭐지?”

    “뭐짜, 지진?”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캡슐에서 일어났다.

    벌써 두 번이나 허무하게 죽었다.

    심지어 죽은 원인도 알 수 없었다.

    머리를 벅벅 긁는 이산하와 멍한 표정의 솔레이크.

    그리고 이우주는 이내 한 가지 가설을 생각해 냈다.

    “음. 알 것도 같다. 왜 죽었는지.”

    “뭐? 왜?”

    “죽기 직전에 말이야. 내 볼에 뭔가 하늘하늘하고 간질간질한 것이 닿았거든. 그리고 불이 번쩍! 하더니 죽은 거야.”

    이우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접속불가 제한 풀리면 바로 다시 도전해 보자.”

    *       *       *

    곧바로 세 번째 도전이 이어졌다.

    이산하는 초심해로 들어가는 열공 앞에 서서 투덜거렸다.

    “진입만으로도 이렇게 빡세다니. 난이도 무엇? 왜 사람들이 아무도 여기에 사냥하러 안 오는지 알겠네.”

    “동감한다, 산하. 이번에는 강철 골렘. 다이브 간다.”

    솔레이크는 이우주의 오더대로 골렘을 소환했다.

    다만, 이번에는 진흙으로 된 것이 아니라 강철로 된 것이었다.

    이윽고, 강철 골렘이 심해로 뛰어든다.

    순간.

    빠지지지지지지직!

    어두운 구멍 밑으로 눈부신 불빛들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이우주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강철골렘의 몸 곳곳, 오만 곳에서 다 터져 나오는 전기 충격.

    그리고 그것들이 밝히고 있는 빛무리에는 특이하게 생긴 발광체들이 잡히고 있었다.

    해파리.

    전기를 뿜어내는 이 연체동물들이 강철 골렘의 주변을 가득 뒤덮고 있었던 것이다.

    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우글……

    너무 많아서 마릿수를 일일이 다 셀 수도 없다.

    그냥 보이는 시야 안이 오로지 해파리로만 꽉 차 있다고 보면 된다.

    “물 반 해파리 반이네.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진짜로.”

    “저게 다 전기 해파리라니. 엄청나군. 예상은 했지만 저렇게 많을 줄이야…….”

    “이해가 된다. 우리. 들어가자마자. Sudden death. 바로 죽었던 것.”

    이윽고, 세 사람은 인벤토리에서 옷 한 벌씩을 꺼냈다.

    그것은 검은 타이즈로 된 고무 잠수복이었다.

    “이거라면 해파리가 뿜어내는 전류를 막아낼 수 있지.”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는 차갑고 무거운 심해의 바닷물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는다.

    곳곳에 수많은 해파리들이 넘실거린다.

    어슴푸레한 빛을 뿌리며 눈앞을 지나가는 크고 작은 해파리들.

    작은 것은 손톱만 했고 큰 것은 대저택의 크기에 필적한다.

    그것들 하나하나가 강력한 전기를 뿜어내는 발전형(發電形) 몬스터였다.

    한편, 이우주는 이상하리만치 많은 해파리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상하다? 하해에 원래 전기 해파리들이 많기는 해도 이렇게까지 많지는 않은데. 이건 분명 뭔가가 잘못됐어.”

    “하해에는 플레이어들이 거의 안 오잖아. 사냥 난이도에 비해 효율이 별로 없으니까. 그래서 몬스터들이 너무 많이 쌓인 게 아닐까?”

    “그걸 감안해도 너무 많아. 몬스터들끼리는 먹이사슬 생태계가 조성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종의 개체수가 유지되어야 하는데…… 아!”

    이산하의 말에 이견을 내던 이우주는 문득 소리쳤다.

    “그렇구나. 원래 이 구역은…….”

    이우주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띠링!

    모두의 귓가에 알림음이 들려왔다.

    -띠링!

    <히든 던전 ‘네 자매 사육장’에 입장 하셨습니다>

    <최초 방문자: 고인물, YOUdie>

    먼 옛날 엄마와 아빠가 첫 발자국을 찍었던 히든 던전.

    이우주가 입을 열었다.

    “옛날 이 던전의 보스로 군림하던 네 마리의 곰치가 있었다지? 이름이 아마 ‘헬렌(Helen)’, ‘린다(Linda)’, ‘제니(Jenny)’, ‘바비(Barbie)’였을 거야. 고전게임인 메탈슬X그에서 오마주된 몬스터들이었으니까.”

    “어? 들어본 것 같다. 걔네들 엄마랑 아빠가 다 잡지 않았나?”

    이산하의 질문에 이우주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비슷해. 직접 잡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엄마 아빠에 의해 그것들은 사라졌지. 이상 증식한 해파리들은 그 사건 이후에 벌어진 나비효과야.”

    “엥? 해파리들이 왜?”

    “메탈슬X그에 나오는 곰치들의 모션을 생각해 보면 알기 쉽지. 그것들은 구멍에서 머리를 내밀고 커다란 해파리를 잡아먹거든.”

    오마주에 따라 이곳 하해의 곰치들 역시도 해파리들을 잡아먹고 산다.

    “하지만 곰치들이 사라졌으니 해파리들의 입장에서는 천적이 줄어든 셈이지. 그래서 이렇게 해파리류 몬스터들이 많아진 거야.”

    한마디로, 해파리들의 천적이었던 곰치 네 자매가 사라진 이후 해파리의 개체수가 급증했다는 뜻이다.

    “어우, 진짜 해파리의 바다를 헤집고 나가는 기분이네.”

    이산하는 눈앞으로 들이대는 해파리들을 밀치며 말했다.

    순간, 솔레이크가 불안하다는 듯 말했다.

    “그런데 말이다. 이 해파리들. 묘하게 우리 앞에만 많지 않나?”

    그 말대로였다.

    해파리들은 자꾸만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의 옆으로 다가와 붙는다.

    전기는 통하지 않고 있었지만 이대로 가다간 해파리들의 공 안에 갇혀 버릴 위험이 있었다.

    “전기는 막는다고 해도 촉수들이 휘감기면 좀 무서운데…….”

    “엄청 큰 녀석들도 있다. 모이면 부담.”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걱정스러운 기색이었다.

    하지만.

    이우주는 태연한 기색이다.

    “걱정 마. 해파리들이 우리에게 붙는 건 적대감의 표시가 아니니까.”

    “오잉? 그러면?”

    “오히려 반대야. 친숙함의 표시지. 이 녀석들이 지금 우리에게 하고 있는 것은 프리허그 같은 거야.”

    동포를 향한 반가움의 포옹.

    그래서 그런지 해파리들은 약간 부담스럽게 부비적거리기는 해도 숨통을 조여 올 정도로 달라붙지는 않고 있었다.

    “이 녀석들이 왜 이러지? 너 뭔가 했냐?”

    “우주. 예전부터 젤리를 좋아했다. Love with jellyfish?”

    이산하와 솔레이크의 질문에 이우주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 게살버거만 먹은 보람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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