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913화 (913/1,000)
  • 외전 39화 아이템 제작 (5)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는 조합소에 모였다.

    목적은 아이템 조합이었다.

    “드디어 세 가지 재료템을 다 모았네. 솔직히 힘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쉽게 됐어. 설마 외상이 가능할 줄이야.”

    이우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손안의 아이템들을 내려다보았다.

    -<망자부름 골분(骨粉)> / 재료 / A+

    해골왕의 넓적다리 뼈를 빻아 낸 뼛가루.

    -<식육부름 섬유(纖維)> / 재료 / A+

    넝쿨 미치광이류의 줄기를 잘라 만든 섬유질.

    -<흑해의 무영묵(無影墨)> / 재료 / S

    그림자 없는 이가 토해낸 검고 음흉한 속내.

    검은 뼛가루, 검은 줄기, 검은 먹물.

    책을 만들기 위한 재료들이 모두 모였다.

    이우주는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살인자의 백과사전’을 제작할 수 있겠어.”

    다소 살벌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 아이템을 제작하기 위해 이우주는 지금껏 열심히 레이드를 뛰어왔다.

    이산하와 솔레이크 역시도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처음 듣는 아이템이긴 한데, 만약 성능이 네가 말한 대로가 맞다면 ‘롤모델’ 특성이랑 찰떡궁합인 시너지가 나올 것이라 생각해.”

    “우주만의 3신기. 새로운 메타. 응원한다.”

    이우주는 심호흡을 했다.

    예전에 해골왕의 넓적다리 뼈 대검을 강화할 때와는 사뭇 다른 긴장감이 엄습하고 있었다.

    “누나, 조합 좀 부탁할게.”

    “응? 내가 해?”

    “나는 행운보다는 실력인 쪽이잖아.”

    “……그 말은 뭐냐? 나는 실력이 없다는 뜻?”

    “그렇다기보다는 누나의 행운이 워낙 강해서 실력이 다소 묻혀 보이는 게 아쉽다는 거지.”

    단순한 이산하는 동생의 아부에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조~왓서! 그렇다면 한번 조합해 볼까!”

    “Oh!”

    솔레이크 역시도 흥미진진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이산하의 두 손을 내려다본다.

    이윽고, 이산하는 세 가지 재료 아이템을 조합기 안에 밀어 넣었다.

    위잉- 철컹! 끼기기기긱- 푸슈-욱!

    조합기는 특유의 증기기관 소리와 함께 뜨거운 기적을 뿜어내며 돌아간다.

    이윽고, 모두의 귓가에 알림음이 떴다.

    -띠링!

    <아이템 제작 중입니다>

    <재료 아이템: 망자부름 골분(A+), 식육부름 섬유(A+), 흑해의 무영묵(S)’>

    <레시피 결과: ‘살인자의 백과사전’>

    <‘살인자의 백과사전’은 상대 등급형 아이템입니다>

    <정해지는 아이템의 등급은 랜덤입니다>

    모두의 눈앞으로 검은 광채가 모여든다.

    시커먼 입자들이 한곳으로 집결해 책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우주는 눈앞에 뜨는 알림음의 자막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제발. ……제발. ……제발.”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이우주.

    그 열망어린 시선은 하단의 글귀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살인자의 백과사전’은 상대 등급형 아이템입니다>

    <정해지는 아이템의 등급은 랜덤입니다>

    상대 등급형 아이템, 그것은 무엇인가?

    사실 그것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2에서는 새삼 새로울 것도 없는 개념이었다.

    이 세계에는 수없이 많은 아이템들이 존재하는데 그것들은 대부분 성능과 히스토리에 따라서 평가 등급이 제각각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같은 아이템으로 취급되지만 평가 등급이 다른 것들도 간혹 존재한다.

    즉, 이우주가 제작하려고 하는 ‘살인자의 백과사전’은 최하 F급부터 최고 S+급까지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산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같은 ‘살인자의 백과사전’이라면 F급 백과사전보다는 S+급 백과사전이 더 좋겠지. 그렇다면 내가 최대한 높은 등급의 아이템이 뜨도록 도와줄게! 이야아아압! 이산하 파워!”

    그녀는 두 손을 뻗어 막 제조되고 있는 아이템을 향해 힘을 불어넣는 시늉을 했다.

    이윽고.

    -띠링!

    아이템 제작이 완료되었다는 메시지가 떴다.

    <아이템 조합이 완료되었습니다>

    <‘살인자의 백과사전’은 상대 등급형 아이템입니다>

    <제작된 ‘살인자의 백과사전’은……>

    <짜쟌! 무려 ‘S’랭크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알림음을 본 이산하와 솔레이크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대박이다! S급이래! 꺄아아악!”

    “와! S급! 대단해! 우주! 축하해! 한턱 쏴!”

    그러나.

    “……안 돼.”

    이우주는 서글픈 기색이었다.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예상치 못한 이우주의 반응에 조금 당황했다.

    “뭐야? 왜 그래? 기껏 S급 아이템이 떴는데.”

    “우주. 너무 많은 욕심? 설마 S+급 바랬다? S급도 충분히 굉장해!”

    하지만 이우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등급이 높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야. 아이템의 상세 설명을 보면 생각이 조금 달라질 거라고.”

    이윽고, 이산하와 솔레이크의 시선이 완성된 아이템을 향한다.

    시커먼 표지에 붉은 역오망성이 그려져 있는 마도서(魔道書).

    그것은 이우주의 손에 착 달라붙은 채 벌써부터 불길한 검은색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살인자의 백과사전> / 마도서 / S

    죽은 자를 위한 죽인 자의 기록.

    사냥했던 대상의 살아생전 모습, 특징, 습관 등이 자세하고도 생생하게 저장되어 있다.

    <현재 기록: (없음) >

    -특성 ‘살인자의 기억법’ 사용 가능 (특수)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고개를 갸웃했다.

    “살인자의 기억법? 특이한 특성이네.”

    “처음 들어 본다.”

    이우주는 두 누나에게 특성에 대한 것을 설명해 주었다.

    특성: <살인자의 기억법>

    ↳ 죽인 대상의 특성을 빼앗는 것에 성공했을 경우 그것을 페이지 안에 영구히 저장합니다.

    ※특성 저장은 빼앗은 것을 기준으로 이루어집니다

    ※특성을 빼앗은 상대가 생존해 있을 경우 특성 저장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급에 맞는 상대의 특성만을 기록할 수 있습니다

    이 마도서는 죽인 대상의 스킬 하나를 책의 페이지 안에 저장하는 아이템이다.

    그것은 별도의 특성을 통해 훔친 스킬을 대상으로만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흉내내기’나 ‘레플리카’ 같은 카피형 특성, 그리고 그것들의 상위호환 특성인 ‘롤모델’ 같은 능력으로 상대방의 특성을 빼앗고 상대방을 죽였을 경우에 그것을 영구히 저장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거야.”

    “아하, 빼앗는 것이 먼저 선행되어야 할 일이고. 그 뒤에 일단 어떻게든 죽이는 것에만 성공한다면 빼앗은 특성을 저장해서 영구히 쓸 수 있게 해 준다는 거구나. ‘흉내내기’ 같은 싸구려 특성으로는 적을 죽이는 게 무리일 거고. 확실히 ‘롤모델’ 특성밖에는 연계할 게 없네.”

    “맞아. 겉으로 보기에는 좋아 보이지만 사실 결과를 얻기까지의 제약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아. 어찌 보면 데우스 엑스 마키나1에서의 호칭 특전의 하위호환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다만 후발주자도 호칭 특전의 덕을 볼 수 있게끔 해 주는 꿀템이랄까.”

    이산하의 말에 이우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세 번째 당구장 표시 뒤에 적혀 있는 내용이야.”

    문제는 모든 사냥감의 특성을 저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동급, 그러니까 아이템의 등급과 같은 위험등급의 상대만을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우주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A+급 정도가 딱 좋았거든. 그 등급대의 몬스터들이 또 재미있는 특성을 많이 가지고 있잖아. 그 이하의 몬스터들은 너무 약해서 안 되고. A+급 몬스터들부터 하나하나 사냥해서 특성을 모은 다음에 도전했으면 좋았는데…….”

    “어? 뭐야? 네 마도서의 등급은 S잖아. 그럼 S급 몬스터의 특성밖에는 흡수 못 한다는 거야?”

    “그렇지. 뭐랄까, 그림의 떡이 되어 버렸어. S급 몬스터는 사냥하기가 살인적으로 힘드니까.”

    이산하의 괴물 같은 행운이 여기서는 독이 된 셈이다.

    “조금 힘들긴 해도 A+등급의 몬스터를 한 100마리 정도만 잡아서 특성을 기록하는 데에 성공했다면 태양룡과 오만의 악마성좌에게 한 방 먹일 수도 있었을 것 같았는데.”

    “짜, 짜식! 뭐가 문제야! 앞으로 롤모델 특성 갖다가 S급 몬스터 팍팍 잡아서 특성 많이 기록해 놓으면 되잖아! 그리고 A+몬스터 백 마리를 어느 세월에 다 잡냐! 태양룡이랑 오만의 악마성좌 업데이트 얼마 안 남았다구! S급 몬스터를 잡아서 특성을 모으는 편이 훨씬 더 시간을 아낄 수 있을 거야!”

    “이번에 데스나이트 봉몽 잡을 때 기억 안 나?”

    “……엄청 고생하긴 했지.”

    이 게임의 세계관 속에서 S급 몬스터는 아직도 사실상의 끝판왕 격이다.

    아직도 상위랭커들이 개떼같이 달려들어 레이드를 뛰지 않으면 잡을 수 없는 존재들로 통하고 있으니 말 다한 셈.

    어쩌면 정말로 A+급 정예 몬스터를 100마리 이상 잡는 것이 더 편한 길일지도 모른다.

    “아빠를 따라잡을 발판이 마련되긴 했는데, 어째 발판부터가 좀 높은 것 같기도 하고…….”

    “우주! 기운 내라! 산하의 행운과 너의 분석력이면 가능!”

    “고마워 솔레이크 누나.”

    이우주는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산하 역시도 그런 이우주의 등을 팡팡 친다.

    “그래! 우리는 짭핑크 아빠랑 데스나이트도 잡았잖아! 앞으로도 못할 게 없어!”

    “맞아. 이제는 수정되고 없는 텔레포트 스크롤 버그와 죠르디의 도움이 있었기는 했지만 말이야.”

    하지만 이제부터는 이런 행운들에 기댈 수 없다.

    철저한 계산과 분석을 통해 상황을 완전히 지배하는 것만이 아빠를 뛰어넘을 수 있는 지름길이리라.

    …탁!

    이우주는 ‘살인자의 백과사전’을 챙겼다.

    “좋아. 이제 이 책을 만들 수 있게 재료를 제공해 준 은인에게 은혜를 갚으러 가야지.”

    시추꾼 이스마엘.

    그의 그림자를 앗아간 악마를 잡으러 갈 때다.

    이우주는 손안에서 시커먼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는 마도서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어쩌면 그놈이 이 백과사전에 기록될 첫 제물이 될지도 모르겠군.”

    흑해의 무영왕.

    레비아탄의 빈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하해의 새로운 군주를 알현하러 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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