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8화 아이템 제작 (4)
이우주는 눈앞에 있는 낙타 인간을 바라보았다.
머리를 덮는 유리 뚜껑과 우주복을 연상케 하는 두꺼운 잠수복.
얼굴은 세월의 풍파에 깊게 고랑 졌다.
주름과 분노, 고집으로 잔뜩 일그러진 얼굴의 절반 이상을 굵고 긴 흉터가 지나가고 있다.
도화선과도 같은 그 흉터는 목 아래까지 쭉 그어져 있었는데 아마도 잠수복 안으로 타고 내려가 몸 전체를 종단하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압권인 것은 그의 오른쪽 다리였다.
무릎 아래부터가 뚝 떨어져 나가고 없는 오른쪽 다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은 고래의 이빨로 만들어진 의족이었다.
피와 지방이 눅진하게 엉겨 붙어 있는, 장검의 칼날처럼 길고 날카로우며 뾰족한 그 의족은 이 낙타 노인의 강퍅한 분위기를 잘 떠받치고 있었다.
NPC ‘시추꾼 이스마엘’
그를 본 이산하가 이우주의 귓가에 대고 소근거렸다.
“예전에 엄마한테 들은 적 있어. 아빠랑 같이 레이드 뛸 때 저렇게 낙타처럼 생긴 NPC들을 만났던 적이 있다고. 근데 그때 이야기는 별로 하기 싫어하는 눈치였어서 제대로 들은 건 많지가 않네.”
“나도 들어 본 것 같아. 그때 얘기만 나오면 엄마가 아빠 패잖아.”
“어어, 맞아. 살벌하게.”
“흠, 근데 내가 알기로 이스마엘이라는 NPC의 외모는 원래 굉장히 젊고 순박했다고 들었는데 말이야.”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존재의 외모는 젊지도, 순박하지도 않다.
오히려 엄청난 관록이 느껴지고 있었다.
괴팍하게 생긴 이 노인은 절뚝이는 걸음으로 이우주를 향해 걸어왔다.
그리고는 끓는 용암과도 같은 목소리로 으르렁대듯 물었다.
[뭘 찾나, 뜨내기?]
이우주는 그 기세에 약간 짓눌렸지만 애써 당당함을 유지하려 애썼다.
“하해에서 나오는 먹물을 찾고 있어요. 잉크를 만들어 책을 쓰게요.”
[……하해라.]
이스마엘은 상처투성이의 입술을 비죽 움직이며 웃었다.
해골 모양이 음각된 금니 몇 개가 등불 빛에 반짝인다.
[내 좌판에는 하해에서 구할 수 있는 아이템들이 잔뜩 있지. 하나같이들 다 심해의 무저갱, 저변 끝자락에서 건져 온 것들뿐이야. 마음 편히 둘러보시게나.]
마음 편히 둘러보라고 했는데 뭔가 마음이 편하지 않다.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는 이쪽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는 이스마엘의 시선을 애써 피했다.
“야, 눈 마주치면 강매당할 것 같지 않냐? 나 옷가게에서도 직원이 말 걸면 얼어 버리는데.”
“응. 만지면 무조건 사야 할 것 같아.”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내가 물건처럼 팔려 갈 것 같다. Like 새우잡이 배.”
하지만 의외로 이스마엘은 딱히 물건을 강매한다거나 바가지를 씌운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점잖고 신사적인 태도로 물건들의 용도와 원산지를 설명해 줄 뿐.
또한 이스마엘의 좌판에는 다른 좌판들에서 구경할 수 없는 진귀하고 다양한 물건들이 즐비해서 모두가 금세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오오! 미더덕 수류탄, 불가사리 표창, 성게 마름쇠, 가리비 방패, 해삼 방망이, 개불 부메랑, 보석 갯강구, 장어기름 비누, 초롱아귀 등불, 전기 해파리 말린 것…… 진짜 없는 게 없네.”
이우주는 반짝거리는 시선으로 좌판을 구경했다.
언제나 기록으로만 접해 봤던 희귀한 아이템들을 직접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때, 이산하는 좌판 구석에 세워져 있는 작은 유리병 하나를 발견했다.
“이 하얀 기름은 뭐지? 병 속에 딱 한 방울만 담겨 있네. 색이 예쁘다 뭔가.”
그녀가 유리병을 향해 손을 뻗자.
[……아가씨. 그건 비매품이라고 적혀 있는데.]
잠자코 있던 이스마엘이 시가 연기를 훅 뿜어내며 이산하의 접근을 막았다.
“앗, 죄송해요. 안 만지고 보기만 할게요.”
[굳이 볼 것 있나? 예전에 한번 써 봤던 적이 있지 않은가?]
“……?”
[용연향(龍涎香) 말일세. 분명 아가씨가 가져갔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이스마엘은 이산하를 다른 누군가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머뭇거리지 마! 끝까지 가!’
이스마엘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때 분명 눈 내리는 심해에서……]
그 순간, 솔레이크가 해맑은 목소리로 이스마엘의 말을 끊었다.
“우주! 찾는 게 이거! 이거 아닌가?”
그녀가 집어 들고 있는 것은 유리병에 담겨 있는 시커먼 액체였다.
-<흑해의 무영묵(無影墨)> / 재료 / S
그림자 없는 이가 토해낸 검고 음흉한 속내.
아이템의 상태창을 본 이우주가 탄성을 질렀다.
“맞아, 이거야! 내가 찾던 게!”
“오, 엄청 까맣다. 뭐야 이게? 잉크?”
이산하도 고개를 빼어 아이템을 구경한다.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가 쪼그리고 앉아 아이템을 구경하는 것을 본 이스마엘은 담배를 뻐끔거리며 말했다.
[꼬맹이 손님들이 눈썰미가 제법이군.]
그는 병 안에 든 먹물을 찰랑찰랑 흔들며 말했다.
[이것은 네 자매 사육장에서 건져 온 물건이지. 극도의 검은색을 띠고 있어서 화가들이나 도료공들에게 인기가 많아. 얼마 전에는 한 화가가 부인을 데리고 사러 왔었지. 이름이 솔거와 아스모데우스라고 했었던가.]
“양은 이게 다인가요?”
[그렇다. 이제는 딱 이 만큼만 남았다. 사겠나?]
“네, 사겠습니다. 얼마인가요?”
[돈은 필요 없어.]
이스마엘의 말에 이산하가 의문을 제기했다.
“뭐에요? 아까는 사겠냐고 물어봐 놓고 왜 안 판다고 해요!”
[진정해, 아가씨. 안 판다고는 안 했어. 돈이 필요 없다고 했지.]
이스마엘의 눈빛이 스산해졌다.
[나는 물물교환만 해. 돈 같은 것은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럼 뭘 드리면 돼요?”
[용기.]
이스마엘의 대답에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윽고, 이스마엘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해로 내려갈 수 있는 용기 말이다.]
모두의 귓가로 이스마엘의 배경 설정, NPC 히스토리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나는 한때 하해의 밑에서 기름을 캐던 시추꾼이었다. 하지만 거대한 바다괴수에게 모든 동료들을 잃고 말았지. 전우도, 상관도, 믿음직하던 선장도. 모든 이들이 죽고 나 홀로 하해의 밑바닥에 홀로 남았어.]
그의 목소리에는 짙은 회한이 묻어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두 번 다시 바다로 돌아가지 않아. 하지만 눈을 감으면 내 발은 여전히 해저의 차가운 모래 속에 파묻혀 있고 머리 위로는 아득한 심해의 괴물들이 어른거리지.]
그 순간.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의 귓가에 알림음이 떴다.
-띠링!
<히든 퀘스트를 발견하셨습니다!>
<히든 퀘스트 ‘그림자를 빼앗긴 사나이’>
<히든 퀘스트 발생 조건: ‘귀시의 암상인 이스마엘에게 물건을 구입할 것’>
<히든 퀘스트 수행 제한: ‘하해(下海)에 가본 적이 없는 플레이어’>
<히든 퀘스트 완료 조건: ‘흑해(黑海)의 무영왕(無影王)’ 처치>
<※이 퀘스트는 하해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플레이어만이 수행할 수 있습니다>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이, 이것도 아빠가 해결하지 못하고 남긴 떡밥인가?”
“맞아. 마몬 씨 때와 경우가 같잖아. 후발주자들을 키워 주기 위한 퀘스트인게 분명해.”
“그런데 이 퀘스트. 뭔가 불길하다.”
솔레이크의 마지막 말에 이우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퀘스트는 히든 퀘스트이기는 하지만 비교적 발견되기 쉬운 위치에 있었어. 우리 말고도 이 퀘스트를 발견한 사람들은 많겠지. 하지만 아직도 이 퀘스트가 완료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는 것은…… 난이도가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야.”
아니나 다를까, 이스마엘은 모두를 향해 말했다.
[내가 아직까지도 악몽에 시달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것은 하해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던 도중 만났던 한 마리의 악마 때문이야.]
과거를 회상하는 그의 표정은 공포와 증오로 인해 일그러져 있었다.
[그놈은 약해질 대로 약해진 나를 덮쳤고 나의 그림자를 빨아 먹었지. 나는 필사적으로 저항했고 그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놈이 뿜어낸 먹물을 약간이나마 손에 넣을 수 있었어. 하지만 그 대가인지 나는 그림자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길어지는 대사.
이우주는 [SKIP] 버튼을 누르려는 이산하의 손가락을 겨우겨우 막아냈다.
그 덕에 이스마엘은 대사를 무사히 끝마칠 수 있었다.
[눈을 감으면 나의 그림자가 보여. 그리고 그 뒤에는 그놈이 웃고 있지. 부디 그놈을 처치해 다오. 그렇게 해 줄 수 있다면 자네들이 원하는 이 아이템을 넘겨주지. 원한다면 먼저 줄 수도 있어.]
외상을 받아 주겠다는 이스마엘의 제안은 꽤나 파격적인 것이었다.
“으음. 심해에 도사린 채 그림자를 빼앗아 가는 악마라.”
이우주는 고심했다.
이산하가 그런 이우주의 어깨를 짚었다.
“뭘 망설여? 이건 아빠의 흔적을 되짚어 가는 거야. 결코 아빠의 그림자에 가려지는 게 아니라구.”
“……역시 그렇겠지?”
태양은 높이 떠 있고 그것은 짙은 그림자를 만든다.
그리고 태양을 닮고 싶은 한 후예(後裔)는 태양 이전에 먼저 그림자를 쫓기로 했다.
이윽고, 이스마엘의 퀘스트를 수락한 이우주는 아이템을 넘겨받았다.
“드디어 재료 아이템 세 개가 모두 모였다. 이거라면 가능할지도 몰라. 하해행(下海行)이.”
“어감이 좀 그렇다. 하해행.”
“당나귀 울음 같다. 하해해행-”
이산하와 솔레이크의 장난에도 이우주의 진지한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외상값, 꼭 갚을게요.”
[부탁하지. 내 그림자를 찾아다오. 놈을 처치하기만 하면 나도 이제 바다를 잊고 편히 잠들 수 있을 게야.]
이스마엘은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이우주는 발걸음을 돌렸다.
“아이템부터 제작한 뒤 바로 레이드 개시하자.”
“오케이!”
“Oh!”
이산하와 솔레이크가 의욕에 가득 찬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들은 이제 새로운 여정을 떠나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하해, 원래 주인이 모종의 이유로 사라지고 없는 ‘네 자매 사육장’.
하해의 새로운 대왕이 있다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