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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908화 (908/1,000)

외전 34화 봉몽(逢蒙) (5)

…푸슉!

메카닉 골렘이 기동하기 시작했다.

두 눈에서 번쩍거리는 빛을 뿜어내며 움직이는 합금(合金)의 거인.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우, 우와- 이걸 스팀펑크라고 봐야 하나?”

“스팀펑크라기보다는 용자물에 가깝. 소년물의 꿈과 희망!”

“……멋있기는 하네.”

죠르디 역시도 소심하게 동감을 표한다.

이윽고, 골렘은 그대로 앞으로 달려 나가 정면에서 달려오는 데스나이트와 마주했다.

그리고 펼쳐지는 영혼의 맞다이!

콰쾅! 퍼억- 뻐억! 콰콰콰쾅!

데스나이트와 골렘은 서로 맹렬하게 치고받고 싸우기 시작했다.

골렘은 불붙어 넘실거리는 유증기와 가스를 뿜어내며 그 추진력으로 가차 없이 진격한다.

우지직- 우지지직!

자신을 믿어 준 주인에게 보답하기 위한 철혈(鐵血)의 저돌맹진(猪突猛進) 앞에서는 천하의 데스나이트조차도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상대는 원딜형 데스나이트! 다른 개체값이라면 몰라도 힘 스탯이랑 스테미나 면에서는 골렘이 앞선다! 그리고 놈은 지금 HP가 바닥인 상태니까 더더욱 해 볼 만해!”

이우주는 지금이 딜을 넣을 적기라고 판단했다.

골렘의 힘에 밀린 데스나이트는 일시적으로 행동불능 상태가 되어 던전의 구석에 갇혔다.

마치 권투선수가 상대에게 밀려 코너로 몰린 듯한 모양새.

골렘과의 고착상태를 유지하며 옴짝달싹도 못하는 데스나이트를 향해 이우주의 지령이 떨어져 내렸다.

“버스트 딜 타이밍이다! 각 잘 재서 다이빙하자고!”

그 말에 모든 이들의 눈빛이 결연해졌다.

이윽고.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가 앞으로 나섰다.

“이 자식! 내 활을 뽀개 먹은 놈! 원수를 갚아 주마! 내가 활이 하나만 있는 줄 아냐!? 이얍! 나무 활이다! 이건 몰랐지!?”

“힘내십시오! 나의 골렘! 나의 존재! 파이팅!”

“……끝낼 타이밍인가.”

그녀들은 골렘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데스나이트를 향해 모든 딜을 쏟아 넣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이우주의 상태창 한 구석의 시계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이산하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야, 너 알람 맞춰 놨었어?”

“어어- 오늘 게임 속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개기일식이 일어난다고 해서 혹시나 하고 맞춰 놨지. 아무래도 던전 입장 조건이 개기일식 시작 시간부터이니…….”

“그건 게임 속 개기일식에만 해당되는 얘기잖아? 굳이 현실의 개기일식은 왜?”

“말했잖아. 혹시나 했다고. 내가 가진 무기가 태양살(太陽殺)의 몽둥이니까 혹시 태양이 죽는 것이랑 뭔가 연관이 있을까 싶어서. 일식 현상이 일어나면 태양빛이 완전히 죽어 버리잖아.”

“에이~ 야, 그건 너무 억지 아니냐?”

“원래 헤비 게이머들은 이렇게 아님 말고 식으로 추리하는 거야. 이렇게 100번 해서 1번 걸리면 히든 피스나 이스터에그 먹는 거지 뭐. 손해 볼 것도 딱히 없고.”

바로 그때.

이산하, 이우주 남매의 말문을 막아 버리는 이변이 벌어졌다.

…번쩍!

난데없이 눈부신 빛이 터져 나온다.

“으악! 눈뽕! 뭐야 이게!”

“……?”

이산하는 냅다 눈을 가렸다.

이우주는 미간을 찡그리면서도 빛의 근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태양살의 몽둥이.

그것이 지금 어마어마한 밝기의 빛을 뿜어내고 있는 것이다.

“……서, 설마?”

“……!?”

이산하와 이우주의 눈이 마주쳤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진짜 이변이 일어나긴 일어날 모양.

“현실의 개기일식과 게임 속의 개기일식 타이밍에 맞춰 빛나는 건가? 그렇다면……?”

이우주는 황급히 무기의 상태창을 열람했다.

그러자 이내, 숨겨져 있던 특성들의 정체가 드러났다.

-<태양살(太陽殺)의 몽둥이> / 한손무기 / A+

불을 찢는 힘이 담겨있는 파사(破邪)의 몽둥이.

천년 묵은 복숭아나무 가지를 공들여 깎아낸 걸작이다.

-공격력 +3,000

-특성 ‘융합(融合)’ 사용 가능 (특수)

-특성 ‘곤장형(棍杖刑)’ 사용 가능 (특수)

-특성 ‘반정(反正)’ 사용 가능 (특수)

-특성 ‘후예사일(后羿射日)’ 사용 가능 (특수)

특성: <후예사일(后羿射日)>

↳ 두 세계의 개기일식이 동시에 일어날 때, 모든 스탯이 10배 상승합니다.

그동안 의문에 싸여 있었던 ‘후예사일’ 특성의 정체가 밝혀졌다.

그것은 현실의 개기일식과 게임 속의 개기일식이 겹치는 타이밍에 스탯이 폭증하는, 게임 속의 세계관을 넘어 현실 세계관까지 맞닿아 있는 초희귀특성이었던 것이다.

“힘이…… 힘이 넘쳐흐른다. 이게 하이랭커들의 기분인가?”

이우주는 눈이 멀 듯한 광채를 뿜어내고 있는 태양살의 몽둥이를 꽉 움켜쥐었다.

“우주! 딜!”

이산하가 빽 소리치는 것이 들려온다.

이우주는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의 내 레벨로는 스탯이 10배 폭증한다고 해도 데스나이트에게 치명적인 데미지를 주기 힘들어. 제길, 조금 더 레벨업을 빡세게 해야겠군.’

하지만 지금은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때다.

“간다!”

이우주는 온 힘을 다해 데스나이트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파사의 몽둥이에서 느껴지는 찬란한 빛무리를 본 데스나이트는 끊어져 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태양이 나를 찾아냈도다.]

이윽고, 이우주의 몽둥이가 데스나이트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린다.

[……복숭아 향기가 나를 쫓아온다.]

데스나이트의 고정 대사가 들려온 직후.

퍼-억!

이우주의 몽둥이가 데스나이트의 뒤통수를 세차게 가격했다.

바로 그 순간.

…팟!

이우주는 방망이 끝에서 터져 나오는 딜량이 예사롭지 않음을 직감했다.

“뭐야? 어째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수치가?”

아무리 후예사일 특성의 힘을 받아서 스탯이 폭증했다고 해도 이것은 말이 되지 않는 수치였다.

딜량을 기록한 그래프가 딜 미터기를 한참이나 뚫고 치솟았을 정도니까.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뜬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가 몽둥이의 상태에 주목했다.

특성: <반정(反正)>

↳ 윗사람을 해친 자에게 10배의 추가 데미지를 부여합니다.

몽둥이가 가지고 있었던 최후의 특성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범용성이 좋아 초보들에게 널리 쓰이는 ‘하극상(下剋上)’ 특성의 까마득한 상위호환 및 카운터 특성.

이런 것은 그 어떤 랭커들의 인터뷰에서도, 혹은 커뮤니티나 딥웹의 뻘글들 속에서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번쩍거리는 황금빛을 뿜어내고 있는 몽둥이를 본 이우주는 탄성을 질렀다.

‘그렇군! 마몬 씨는 한때 스승인 아르파공 씨를 해친 적이 있다고 했어. 그래서 이 특성이 붙어 있는 건가? 그리고 이 특성이 발현되었다는 것은 이 데스나이트 역시도 윗사람이었던 누군가를 해쳤다는 뜻……?’

하지만 길게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이산하가 쾌재를 부르며 동생의 등을 떠민다.

“세상에! 반정(反正)이 이런 뜻이었구나! 그래! 이게 옳게 되는 거지! 지금부터는 우주반정 시간이다! 꺄아아악!”

“Oh! 우주반점! 짜장면! 짬뽕! 고르기 힘들어!”

“그건 반점(飯店). 중국요리집이고…….”

그 뒤로 솔레이크와 죠르디도 함께하고 있었다.

개기일식을 기해 맞이한 절호의 찬스.

그리고 마침 상대방은 윗사람을 해쳤던 전적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존재.

궁수형 데스나이트 봉몽(逢蒙).

그는 파사(破邪)의 기운이 담겨져 있는 태양살(太陽殺)의 몽둥이 앞에서 절규하듯 소리 질렀다.

[내 앞에서…… 내 앞에서 불을 켜지 마라!]

하지만 그의 바람과 소망은 요원한 것이었다.

“궁수가 몽둥이 들고 그게 뭐냐! 내가 너보다 활은 못 쏴도 몽둥이는 안 든다, 이 자존심도 없는 놈아!”

이산하의 외침과 동시에.

퍼-억!

이우주의 몽둥이가 봉몽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그와 동시에.

이우주의 귓가로 요란한 알림음들이 빗발쳤다.

-띠링!

<세계 최초로 ‘데스나이트 봉몽(逢蒙)’ 레이드에 성공하셨습니다!>

<히든 퀘스트 ‘마몬이 타락하게 되었던 계기-‘스승을 배신한 자’를 완료하셨습니다>

<히든 퀘스트 완료 조건: ‘언데드 전장의 진(眞) 보스-데스나이트 봉몽(逢蒙)’ 처치 (1/1)>

<보상이 지급됩니다!>

<이름을 남기시겠습니까?>

.

.

무려 ‘세계 최초’ 타이틀.

그것을 본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 네 사람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름을 남기시겠습니까?>

<……YES>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

이우주는 이름을 남기면서도 손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굳이 아이디가 아닌 실명으로 남겨 놓는 기록.

“…….”

원래 계정 정보가 없어 이름을 남길 수 없었던 죠르디는 그런 이우주의 손길에 새삼 묘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한편,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서로를 바라보며 울먹거리고 있었다.

“이, 이, 이, 이거 꿈 아니지? 세계최초…… 맞지?”

“응. 꿈이 아닌 것 같아! 이게 꿈이라면 내가 직접 피부로 느끼고 있는 이 감각들이 거짓이라는 건데, 도저히 그런 생각은 안 들어! 이건 꿈이 아니라 엄연히 사실이야, 산하야! 우리는 세계 최초 타이틀을 손에 쥐게 된 거라고!”

“……아니, 너 한국어 왜 이렇게 잘하냐고.”

그리고 그들이 경험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결코 꿈이나 허상이 아님을 증명해 주는 존재가 있었다.

<데스나이트 ‘봉몽(逢蒙)’> -등급: S / 특성: 어둠, 언데드, 백전노장, 연쇄살인, 앙버팀, 괴벽, 반전, 한식(寒食), 반정(反正), 천하제일궁, 후예사일(后羿射日)

-서식지: ‘언데드 전당- 명예(明譽)의 광휘가 닿지 않는 구역’

-크기: 3m

-‘……마침내 태양이 나를 찾아냈도다.’

-봉몽-

아직도 잔불이 남아 이글거리는 몸으로 꼿꼿하게 서 있는 남자.

봉몽.

망자로 전락해 버린 한때의 천하제일궁(天下第一弓).

그는 텅 빈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마침내 태양이 나를 찾아냈도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풀썩- 파스스스스……

매운 잿가루로 변해 무너져 내리는 그를 보며 모두는 직감했다.

이제 이 던전 속에서 불과 관련된 아이템들의 내구도가 빠르게 감소하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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