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906화 (906/1,000)
  • 외전 32화 봉몽(逢蒙) (3)

    “엥? 뭐야 이게, 젤리?”

    이산하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뭐냐? 당 떨어졌으니까 보충하라는 거여?”

    “아니. 먹지 마.”

    이우주는 젤리를 한군데로 모았다.

    그리고 몽둥이를 들어 그런 젤리를 겨냥했다.

    “몽둥이에게 양보해.”

    동시에. 파사의 몽둥이가 가차 없이 휘둘러졌다.

    알록달록한 색의 젤리들을 향해서.

    퍽! 퍼억! 퍽!

    젤리들이 산산조각난다.

    딸기 젤리, 메론 젤리, 바나나 젤리, 포도 젤리, 오렌지 젤리, 장어 젤리, 소 눈알 젤리, 코딱지 젤리…… 오색찬란하게 부서져 나가는 몰캉몰캉한 설탕 파편들.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황당하다는 듯한 시선으로 그런 이우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캔디크러쉬 하냐?”

    “젤리를 주깁시다. 젤리는 나의 원수?”

    “…….”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골렘의 뒤를 바라보았다.

    데스나이트는 여전히 강맹한 저격을 쏘아 보내고 있다.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골렘을,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적들을 통째로 없애 버리겠다는 듯한 태도.

    이런 상황 속에서 골렘이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

    골렘이 파괴된 뒤에는 그들 차례였고 말이다.

    이산하는 이마를 짚었다.

    “역시 S급의 벽은 높구나. S급 몬스터도 이렇게 괴랄하게 강한데 아빠는 옛날에 S+급 몬스터를 대체 어떻게 잡은 걸까? 지금 집 소파에 누워서 배 긁는 거 보면 완전 그냥 아저씨인데.”

    “요즘도 S급 몬스터를 잡을 땐 수십 명씩 파티 꾸린다. 우리는 고작 셋. 무모했다.”

    “……셋이라니. 넷이겠지. 일단은 나도 파티원이니까. 빼놓지 말라고.”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마지막으로 목소리를 낸 죠르디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어느새인가 이우주를 따라 칼로 젤리를 썰고 있었다.

    “너 뭐 하냐?”

    “보면 모르냐? 젤리 부순다. 네 동생이 하는 것처럼.”

    죠르디는 진지한 표정으로 이우주를 따라 젤리를 공격하고 있었다.

    “네 동생. 엉뚱하기는 해도 기발한 것 같다. 위기 상황에서는 믿어 볼 가치가 있는 인물 같던데. 아니냐?”

    “……뭐, 그렇긴 하지. 근데 네 입에서 들으니까 뭔가 좀 짜증나네.”

    이산하 역시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윽고, 세 여자 역시도 이우주를 따라 젤리를 때리기 시작했다.

    이산하가 이우주를 향해 물었다.

    “야! 근데 젤리는 왜 자꾸 패는 거야?”

    그러자 비로소 이우주의 대답이 돌아왔다.

    “다들 젤리가 부서지는 순간을 눈 크게 뜨고 잘 봐. 집중해야 보일 거야.”

    너무도 진지한 표정과 목소리인지라 아무도 그것을 농담 취급하지 못했다.

    세 여자는 의구심을 지우지 못한 표정으로 젤리들이 부서져 나가는 현장을 살폈다.

    그러자.

    …파칫!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파칫! …파칫! …파칫! …파칫!

    몽둥이에 피격당한 젤리 아이템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면서 미세한 불꽃이 일어난 것이다.

    “어엇!?”

    세 여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몽둥이가 젤리들을 부술 때마다 파편들과 파편들 사이에서 부른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버그! 버그다!”

    “우주! 새로운 종류의 버그를 발견! 게임계의 파브르?”

    “……뭐야, 또 버그를 쓰는 거냐?”

    깜짝 놀라 소리치는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를 향해 이우주는 고개를 저었다.

    “버그 아니야. 뎀 안에 존재하는 엄연한 미시현상 중의 하나지. 일명 ‘Triboluminescence’, 혹은 ‘마찰루미네선스’ 공략법. 몇 년쯤 전에 딥웹 같은 곳에서 아주 반짝 유행했다가 사라진 공략이라서 지금은 아는 사람이 꽤 드물걸?”

    이우주는 설명을 하는 도중에도 계속해서 젤리를 방망이로 으깨 부수었다.

    “재료를 부수어 마찰시키는 과정에서 결정 속 비대칭 결합이 깨지고 그 결과 마찰광과 마찰열이 발생하는 광학 현상이지. 수정이나 망가니즈불순물을 함유한 황화아연의 형광체에서 흔히 볼 수 있어. 다이아몬드를 커팅하는 과정에서 푸른색이나 붉은색의 불길이 일어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지. 그리고 그것은 젤리나 사탕을 구성하고 있는 설탕 결정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돼. 설탕 결정이 깨지면서 미세한 전기장이 형성되어 양전하와 음전하가 분리되는데 이 전하들이 다시 재결합을 하면서 스파크가 발생하는 거지. 물론 결정의 파괴 부분 사이에서 생기는 이 기묘한 전하의 방전형상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하게 규명된 것이 없지만 적어도 이 게임 내에서는…….”

    “아. 완벽하게 이해했어!”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우주는 별수 없이 세 줄로 간단하게 요약해 주었다.

    “설탕을. 부수면. 불이 나요.”

    “아하! 그러니까 설탕으로 된 아이템을 부수면 불길이 일어난다는 거지!?”

    “음, 뭐 그렇지.”

    이산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좋았어! 역시 내 동생이 최고야! 젤리를 부수자! 랫츠 캔디크러쉬다!”

    “Oh이Oh이! 믿고 있었다구!”

    “……태세전환 봐라. 진짜 열받는 냔들이네.”

    말을 마친 세 여자들은 열심히 주변의 젤리 파편들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야! 죠르디! 젤리들을 좀 더 모아서 쳐야지! 그렇게 자잘한 불꽃 만들어서 어느 세월에 불붙일래!”

    “젤리보다는 네 머리를 때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군. 부싯돌 역할 정도는 해낼 수 있을 테니까.”

    “해 보든가! 그 전에 네 뚝배기가 사탕처럼 부서질걸!”

    티격태격 싸우면서도 열심히 합심하여 젤리를 부수는 이산하와 죠르디다.

    이윽고.

    …파치직!

    젤리를 열심히 내려친 결과, 그 중 불똥 하나가 자욱하게 낀 유증기에 옮겨 붙었다.

    골렘이 부서지며 내뿜은 가스와 유증기는 이미 데스나이트의 주변을 자욱하게 감싸고 있는 상태였다.

    그 결과.

    쿠르르르르륵!

    불꽃은 유증기와 가스가 흐르는 위쪽 방향을 따라 사납게 번져 간다.

    콰-콰콰콰콰쾅!

    엄청난 규모의 폭발과 불길이 데스나이트를 휘감기 시작했다.

    유리하다고 해서 한자리만을 계속 고수한 것이 패인이었다.

    [오-오오오오!?]

    데스나이트는 격렬하게 발버둥 쳤다.

    이윽고, 그는 온몸을 불사르며 작렬하는 불길과 빛무리에 휩싸였다.

    그리고 찢어지는 듯한 절규가 보스룸 전체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내 앞에서 불을 켜지 마라!]

    그것은 일찍이 ‘마몬의 회상’ 트레일러 영상 속에서 들었던 부랑자의 목소리와 똑같았다.

    [……내 앞에서 불을 켜지 마라.]

    이우주는 그 목소리와 대사를 듣자마자 바로 직감했다.

    “역시! 마몬 씨가 말했던 불길함의 근원은 너였구나!”

    히든 퀘스트가 가리키고 있는 대상이 명확해졌다.

    이제는 그 퀘스트를 완료할 때였다.

    그때.

    쿠르르륵!

    보스룸 전체를 휘감아 돌던 불길이 심상치 않은 기색으로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바닥에서 모여들어 위로 향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마치 승천을 준비하는 거대한 이무기와도 같은 형상.

    그것을 본 이우주는 이를 악물었다.

    “모두 고개 숙여! 진짜 폭발이 온다!”

    동시에.

    쿠르르르르륵!

    데스나이트를 중심으로 거대한 불기둥이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콰쾅!

    플래시 오버(Flash over).

    가연성 물질들이 천장에 모여 있다가 위로 타고 올라온 불꽃에 의해 점화되어 방 전체가 화마에 삼켜지는 현상.

    데스나이트를 심지로 타오르는 이 거대한 촛불은 보스룸 전체를 불길로 휘감아 버릴 정도로 거대했다.

    유일한 안식처가 있다면 바로 골렘의 몸 뒤, 마지막까지 주인을 지키려 한 용맹하고 멋진 전사의 품속이었다.

    …터엉!

    골렘의 내구도가 0이 되는 소리.

    “My 골렘. 굿바이…… 사랑해.”

    솔레이크는 완전한 기동 중지 상태가 된 골렘의 등 뒤에 꼭 붙은 채 눈물을 흘렸다.

    바로 그때.

    “어엇!?”

    이산하의 두 눈이 커졌다.

    방의 벽을 타고 불어온 강력한 열풍이 골렘의 몸 뒤까지 미쳤다.

    그 탓에 꼭 붙지 않은 채 어색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던 죠르디가 휘말린 것이다.

    “야! 잡아!”

    이산하는 손을 뻗었지만 거리가 멀어서 죠르디를 붙잡는 데에 실패했다.

    이윽고, 죠르디는 열풍에 휘말려 불기둥 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데스나이트가 끔찍한 절규를 토해 내며 불타오르고 있는 화마의 심장부였다.

    “……큭!?”

    저곳으로 끌려 들어갔다간 100% 사망이 확실하다.

    위험등급 S랭크 중에서도 최상위 개체값을 지닌 저 데스나이트조차도 맹렬하게 절규하는 화염폭풍이었으니까.

    그리고 카오 유저이자 몬스터 등급에 있는 죠르디로서는 두 번 다시 계정을 복구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까지인가.’

    죠르디는 전신의 힘이 탁 풀리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버그를 이용해 강화시킨 캐릭터이지만 이곳까지 오는 동안 수많은 사선을 넘나들었다.

    한 번이라도 죽으면 끝이기에 모든 순간마다 최선을 다해 키운 캐릭터가 이제는 사라진다.

    ‘……만렙 찍는 거, 아빠에게 보여 주고 싶었는데.’

    아빠와 함께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 꼭 보여 주고 싶었던 것.

    하지만 그것은 이제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사필귀정(事必歸正).

    사특한 것의 끝은 결국 좋지 않은 법이다.

    그것을 알기에 죠르디는 그저 씁쓸한 미소만을 입가에 띄운 채 불바람 속을 부유할 뿐이었다.

    …턱!

    그녀의 손을 낚아챈 또 다른 손길이 아니었더라면 말이다.

    “……?”

    죠르디는 뜨거운 열풍 때문에 떠지지 않는 눈을 힘겹게 떴다.

    그곳에는 이를 악문 채 돌기둥을 붙잡고 있는 이우주가 보였다.

    “꽉 잡고 올라와!”

    화기에 의해 일그러지는 풍경 속에서도 이우주의 얼굴만은 똑똑히 보였다.

    죠르디는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날 구해 줬어?”

    그러자 이우주는 대답했다.

    “파티니까. 당신을 빼놓지 말라며.”

    그것은 아까 전에 죠르디가 이산하와 솔레이크에게 했었던 말이다.

    ‘……셋이라니. 넷이겠지. 일단은 나도 파티원이니까. 빼놓지 말라고.’

    이우주의 손에서 강한 힘이 느껴진다.

    그 힘은 손목의 동맥을 타고 죠르디의 심장까지 전해져 왔다.

    쿵-

    방안을 가득 채운 열기 때문일까?

    그동안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던 심장이 작게나마 뛰게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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