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905화 (905/1,000)
  • 외전 31화 봉몽(逢蒙) (2)

    “으으…… 내가 왜 이런 놈들이랑 파티를…….”

    “님 지금 하드코어 상태 아니야? 죽으면 바로 캐삭이잖아. 무슨 로그라이크 게임도 아니고.”

    “……크윽.”

    이우주의 일침에 죠르디는 투덜거리던 입을 다물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띠링!

    <파티가 결성되었습니다>

    <파티원: 이우주, 눈누난나내가니누나네, 0개국어능력자, (계정정보없음)>

    파티 결성을 알리는 알림음이 뜨자마자 돌기둥 뒤에 숨어 있던 이산하와 솔레이크가 미어캣처럼 목을 뺐다.

    “야! 뭐야 이게! 파티에 왜 불순물이 끼었어!? 사장님! 반품이요, 반품!”

    “Oh! 왜 저런 Bad Beach랑 파티! 나는 싫다!”

    하지만 둘의 비난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데스나이트가 날린 화살이 그녀들의 머리 바로 위를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콰-콰콰콰콰쾅!

    이우주가 물었다.

    “또 불만 있는 사람?”

    “……있지만.”

    “……없다.”

    이산하과 솔레이크 역시 동의(?)한 이후 죠르디는 파티 멤버가 되었다.

    이우주는 오더를 내렸다.

    “아까 말한 대로야! 데스나이트는 열 번 중 한 번은 반드시 오발을 내! 그 타이밍을 노려서 공격하는 거야!”

    “시발 말이 쉽지.”

    “산하! NO 쉬발, 킵고잉!”

    “만담할 여유가 있으면 엄호나 해라. 바보들아.”

    이우주의 오더를 들은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가 움직였다.

    죠르디는 유령 군마를 한 마리 더 소환하고는 온 힘을 다해 몰았다.

    다그닥- 다그닥- 따각!

    해골과 검게 불타는 갈기만 남은 죽음의 말이 데스나이트를 향해 돌진한다.

    “죽어라!”

    죠르디는 시커멓게 불타는 참격을 내질렀다.

    퍼펑!

    예상치 못한 근접 딜에 데스나이트가 주춤하는 모습을 보인다.

    바로 그때, 죠르디가 만들어 낸 화살 소나기의 빈틈으로 이산하가 나타났다.

    “시발은 욕이 아니야! 시발(矢發)! 화살을 쏜다는 뜻이다!”

    큰 소리로 외친 이산하는 불타는 화살을 들어 데스나이트의 발등에 들이밀었다.

    “아저 씨발 조심하세요!”

    이산하는 그대로 데스나이트의 발등에 불화살을 박아 넣었다.

    …콰쾅!

    데스나이트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저격이 날아왔지만 예전처럼 강력하지도, 정확하지도 않은 오발이었다.

    이산하는 쾌재를 불렀다.

    “역시! 궁수는 발이 생명이지!”

    “겨우 한 발 꽂아 넣고 자만이냐? 멍청하긴.”

    “뭐야? 지금까지 한 대도 못 때린 게 어디서…….”

    그러나, 죠르디는 바로 이산하의 말문을 막아 버렸다.

    콰콰콰콰쾅!

    주춤거리고 있었던 데스나이트의 복부에 강력한 참격 한 방을 먹여 뒤로 날려 버린 것이다.

    “봤냐? 딜은 이렇게 넣는 거야.”

    “……재수없는 냔.”

    씩 웃는 죠르디의 시선을 피하는 이산하였다.

    그때.

    “조심! 큰 게 온다!”

    둘의 목덜미를 순식간에 낚아채는 손길이 있었다.

    바로 이우주였다.

    “야! 좀 말로 해…… 으헉!?”

    “내 몸에 함부로 손대지…… 흐윽!?”

    이우주의 강압적인 후퇴에 불만을 제기하려던 이산하와 죠르디는 순간 헛바람을 집어삼켜야 했다.

    퍼-퍼퍼퍼퍼퍼퍼펑!

    그 순간을 기점으로 데스나이트의 화살 난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지, 진짜 큰 게 오네?”

    “저게 다 몇 발이냐…….”

    이산하와 죠르디는 시야를 꽉 채우는 화살들의 난무에 기겁해야 했다.

    비록 열 발 중에 한 발이 빗나간다 해도 기본적으로 쏘는 횟수 자체가 엄청나다.

    10발 중 9발만 정확하다 하더라도 100발을 쏘면 90발이, 1000발을 쏘면 900발이, 10000발을 쏘면 9000발이 명중한다는 이야기다.

    더군다나 데스나이트가 쏘는 화살은 어둠의 아우라가 모여 발사되는 무형시(無形矢)이니만큼 장전도 따로 필요 없는지라 연사 속도가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맞대응이 불가능해. 피할 수밖에 없어.”

    이우주의 말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윽고,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한곳으로 다이빙했다.

    바로 솔레이크의 골렘이 있는 곳이었다.

    콰콰콰쾅!

    무차별적으로 날아드는 화살들을 피해 골렘의 뒤로 숨은 파티.

    하지만 솔레이크의 골렘은 단단하기는 해도 무적은 아니다.

    데스나이트의 화살이 쏘아질 때마다 골렘은 조금씩 조금씩 부서져 가고 있었다.

    “오, 오래 못 버틴다! 골렘체의 부담 격심! 코어 부담 격심! 연료 누수 현상 발생!”

    게다가 솔레이크의 골렘은 화산탄을 기본 재료로 한 것이니만큼 데스나이트의 디버프에 더욱 취약했다.

    골렘은 실시간으로 천천히 깎여 나가고 있었고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것임이 자명해 보였다.

    “어, 어쩌지? 이대로 가다간 모두 벌집핏자가 되겠는데. 나 이제 활 내구도도 없어.”

    “내 골렘…… 내 애착 골렘…… 가엾다. 슬프다. 비통하다. 수리비 많이 나오겠다. 흑흑- 희귀 재료로 제작한 골렘은 전손처리 시 보험금도 안 나온다.”

    “제길. 혼자서 될 줄 알았는데. 아직 S급 최상위 티어의 몬스터를 상대로 1:1은 무리인가…….”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모두 침울한 기색이다.

    마치 전쟁의 패배를 예감한 참호 속 패잔병들 같은 기색.

    하지만 유일하게 이우주만은 반짝거리는 눈빛을 잃지 않고 있었다.

    “뭐, 보스가 HP 깎일 때마다 버스트 딜 넣는 거 예상 못한 것도 아니고. 너무 걱정들 마.”

    “뭐야? 너 왜 그렇게 눈빛이 기분 나쁘게 초롱초롱해? 뭔가 꿍쳐 놓은 거라도 있어?”

    “당연히 있지. 내가 아무 준비도 없이 보스룸 열었을 것 같아?”

    이우주의 말에 질문을 한 이산하를 비롯해 모든 여자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윽고, 이우주는 솔레이크를 돌아보며 말했다.

    “누나 기억해?”

    “한다!”

    “……아직 묻지도 않았는데 뭘 해. 내가 던전에 막 들어왔을 때 했던 말 말이야. 누나한테 애착골렘 그냥 쓰라고 했던 말. 젤리 나눠 주면서 했었잖아.”

    그 말에 솔레이크는 고개를 여러 번 갸웃한 끝에 손뼉을 쳤다.

    골렘의 효율이 구리니 다른 골렘을 쓰라고 했던 이산하의 제안에 이우주가 했었던 말이 있다.

    ‘그냥 쓰게 해 줘. 누구에게나 애정템이라는 게 있는 건데.’

    “우주…… 고맙다.”

    ‘애정을 쏟은 아이템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하죠. 언젠가는 도움이 될 거예요.’

    이윽고, 이우주는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때는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나는 이미 이 골렘의 파괴를 예상하고 있었어.”

    “우주! 비인간적! 사람도 아냐! 나쁘다!”

    울먹이며 툭탁툭탁 주먹을 날리는 솔레이크를 이산하가 다독였다.

    “솔레이크, 네 심경은 이해해.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애초에 불 속성 아이템 내구도가 급감하는 던전 속에 화염골렘을 이끌고 온 네 미련한 두뇌를 탓하는 수밖에. 솔직히 자업자득이지, 친구야.”

    “산하! 죽어! 내 골렘에서 나가!”

    “네 골렘‘이었던 것’이겠지. 톡 치면 부서질 것만 같은 가녀린 돌덩어리 가지고 생색내지 마라.”

    “죠르디! 너도 나가 죽어라!”

    믿을 사람 없다는 듯 울상을 짓는 솔레이크.

    하지만 이우주는 그런 솔레이크를 따듯하게 다독였다.

    “미안 누나. 하지만 이 골렘은 우리를 살릴 구원의 동앗줄이 될 거야. 그리고 동시에 반격의 신호탄이기도 하지.”

    “……?”

    세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우주는 솔레이크의 어깨를 짚은 채 말했다.

    “내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전에 누나의 허락이 필요해. 이것은 누나의 골렘이니까.”

    “…….”

    솔레이크는 한참을 갈등했다.

    그리고 결국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알겠다. 우주. 모두를 위해. 내 골렘을 내놓겠다.”

    “친구야! 여윽시 넌 멋진 냔이야!”

    “……흥.”

    이산하는 감동했다는 듯 울먹이는 솔레이크를 끌어안았다.

    죠르디 역시도 어색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돌린다.

    이우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솔레이크 누나. 내가 꼭 골렘 보험사에 연락해서 전손처리 해 달라고 협상해 볼게.”

    “Oh…….”

    시무룩해 있는 솔레이크를 뒤로 한 채 이우주는 고개를 들었다.

    -<꿈틀거리는 화산탄 골렘> / 골렘 / A

    용암굴 속의 뜨거운 화산탄으로 제작된 골렘.

    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알 수 없다.

    솔레이크의 골렘은 이제 거의 다 무너졌다.

    내구도가 0에 수렴하는 순간 골렘은 모래로 변해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솔레이크 누나의 애착골렘은 사라지지 않아. 이 던전 안에, 보스룸 안에 하나가 되어 함께 살아가!”

    가슴이 뜨거워지는 어떤 용자물의 명언처럼, 솔레이크의 골렘은 형태가 바뀌었을 뿐 여전히 이곳에 존재한다.

    푸슉- 퓨쉬이이익!

    골렘이 파손되어 가는 과정에서 내뿜는 유증기와 유황 가스, 화산탄의 부스러기들이 대기 중에 떠돌고 있었다.

    그것은 점점 방 안에 가득, 농밀하게 고여 간다.

    “이걸 폭발시킬 거야. 그렇다면 보스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할 수 있어. 반격의 신호탄이 되는 거야!”

    이우주가 크게 외치는 순간, 이산하가 울상이 된 얼굴로 말했다.

    “근데 뭘로 점화하지?”

    불을 붙일 만한 수단이 없다.

    유증기와 유황 가스에 불을 붙이기 위해서는 불씨가 있어야 하는데 이산하의 활은 이미 내구도가 다 되어 부서진 지 오래이다.

    솔레이크와 죠르디 역시 난색이었다.

    “불을 지필 만한 아이템. 다 바스라졌다. 던전 디버프 때문.”

    “……인벤토리 안에 넣어둔 화섭자(火攝子)들도 다 내구도가 0이 되었군.”

    하지만. 이우주는 여전히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눈치였다.

    “그럴 줄 알고 불을 붙일 만한 것들을 가져왔지.”

    이윽고, 세 여자의 기대감 어린 시선이 집중되는 가운데 이우주가 챙겨 온 비밀무기들이 등장했다.

    그것은 부드럽고 말랑말랑하며 매우 달콤한 아이템.

    설탕과 과일을 녹여 차갑게 굳힌 어린이 유저들의 인기 간식.

    딸기 젤리, 메론 젤리, 바나나 젤리, 포도 젤리, 오렌지 젤리, 장어 젤리, 소 눈알 젤리, 코딱지 젤리…….

    이우주가 띄우는 최후의 승부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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