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0화 봉몽(逢蒙) (1)
-띠링!
<‘언데드 전당- 명예(明譽)의 광휘가 닿지 않는 구역’에 볕이 듭니다>
<‘진(眞) 보스’가 빛에 이끌려 다가옵니다!>
주변의 어둠이 붉게 물들며 요란한 경고음이 들려온다.
이윽고, 보스룸 안쪽의 벽이 허물어져 내리며 그 안쪽에 있던 존재가 이쪽으로 넘어오기 시작했다.
[……태양이 나를 찾아냈도다.]
온몸이 질척한 어둠으로 뒤덮여 있는 존재가 모두의 앞으로 기어 나오고 있었다.
[……복숭아 향기가 나를 쫓아온다.]
그것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파츠츠츠츠츠츠!
이산하가 들고 있던 불꽃의 활이 놀라운 속도로 부식되기 시작했다.
“어엇!?”
이산하는 깜짝 놀라 활을 인벤토리 안으로 집어넣었다.
하지만 그래도 소용없었다.
“……큭! 인벤토리 안에 넣어도 소용없나.”
죠르디의 말고삐와 안장 역시도 부식되고 있다.
불. 불로 제련한 철. 불빛을 내는 아이템들 모두가 어둠에 살라먹히고 있었다.
이우주는 침음을 삼켰다.
“역시. 이 던전 안에만 들어오면 장비들의 내구도가 급감하는 이유가 있었군. 다 저 녀석의 소행이었어.”
이 던전에 들어오기 전에 분석했던 수많은 레이드 실패사례들이 떠오른다.
-O월 X일, 랭커 OOO- 7인 파티로 레이드 개시. 탱커들의 방어구 내구도 격감으로 인해 중도 포기.
-Z월 N일, 랭커 ZZZ- 12인 파티로 레이드 개시. 모든 파티원들의 무기와 방어구 파괴로 인해 전멸.
-X월 O일, 랭커 XXX- 3인 파티로 레이드 개시. 원딜의 무기 내구도 격감으로 인해 중도 포기.
-O월 O일, 랭커 NNN- 9인 파티로 레이드 개시. 중요한 순간 딜러의 무기 파괴로 인해 전멸.
.
.
중간 보스가 무려 A+등급의 스켈레톤 킹 엘더인 것도 던전의 공략 난이도를 올려놓는 요인이지만 사실 그것은 곁가지에 불과하다.
진짜는 바로 내구도. 막대한 내구도 감소가 이 던전의 난이도를 가파르게 상승시키는 주범이다.
그리고 그 주범의 정체가 이우주의 앞으로 확연한 모습을 드러냈다.
<데스나이트 ‘봉몽(逢蒙)’> -등급: S / 특성: 어둠, 언데드, 백전노장, 연쇄살인, 앙버팀, 괴벽, 반전, 하극상, 변온, 한식(寒食), 반정(反正), 천하제일궁, 후예사일(后羿射日)
-서식지: ‘언데드 전당- 명예(明譽)의 광휘가 닿지 않는 구역’
-크기: 3m
-‘……마침내 태양이 나를 찾아냈도다.’
-봉몽-
무시무시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장신의 키와 깡마른 체구, 전신을 뒤덮고 있는 검은 불의 망토와 손에 들려져 있는 뼈다귀 활.
언데드들 중에서도 극도로 희귀하다는 데스나이트.
그리고 그 데스나이트들 중에서도 극도로 희귀하다는 궁수형 데스나이트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파파?”
솔레이크가 고개를 갸웃했다.
과거 드레이크는 국가대항전에서 데스나이트로 변해 승리를 거머쥔 적이 있었고 그 때문에 솔레이크는 눈앞에 있는 궁수형 데스나이트를 순간 아빠로 착각한 것이다.
하지만.
…턱!
이우주는 재빨리 솔레이크의 뒷덜미를 잡고 뒤로 빠졌다.
“드레이크 아저씨가 아니야 누나. 풍기는 아우라가 엄청 사악하잖아.”
“Oh. 우주. 네 말이 옳다. 저거 아빠 아냐.”
장내의 분위기가 극도로 팽팽하게 긴장되었다.
티격태격 싸우던 이산하와 죠르디 역시도 서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그때, 데스나이트가 뼈만 남은 하악을 움직여 목소리를 냈다.
[……복숭아 향기가 나를 쫓아온다.]
어둠만이 깃든 망자의 시선이 이우주를 향한다.
더 정확하게는 이우주의 손에 들려있는 몽둥이를 말이다.
-<태양살(太陽殺)의 몽둥이> / 한손무기 / A+
불을 찢는 힘이 담겨있는 파사(破邪)의 몽둥이.
천년 묵은 복숭아나무 가지를 공들여 깎아낸 걸작이다.
-공격력 +3,000
-특성 ‘융합(融合)’ 사용 가능 (특수)
-특성 ‘곤장형(棍杖刑)’ 사용 가능 (특수)
-특성 ‘반정(反正)’ 사용 가능 (특수)
-특성 ‘후예사일(后羿射日)’ 사용 가능 (특수)
이우주는 따듯한 힘이 느껴지는 몽둥이를 내려다보았다.
“내구도 감소 디버프를 피하기 위해 나무로 된 무기를 제작한 거였는데…… 복숭아와 무슨 연관이 있나?”
“뭐야? 쟤 복숭아 좋아한대?”
“나도 어피치 좋아한다. 아, 특정 브랜드 광고 아니다.”
이산하와 솔레이크 역시 이우주의 옆으로 붙어 경계태세를 취했다.
이윽고.
[오-오오오오! 파사(破邪)의 향기! 꺼져라!]
데스나이트가 뼈로 된 활을 들어 화살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쾅!
곳곳에서 엄청난 기세로 터져 나오는 폭발에 이우주는 경악해야 했다.
“미친, 딜 미터기 터지겠다! 누나, 저거는 활로 대항할 수가 없는 것 같은데. 메타 바꾸는 게 어때?”
“메타는 게이머의 자존심이야! 절대 바꾸지 않는다!”
“동의! 나도 애착 골렘 한번 정하면 안 바꾼다!”
서로 죽이 잘 맞는 이산하와 솔레이크였다.
이우주는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데스나이트의 저격을 피했다.
콰콰콰콰쾅!
곳곳에서 무너져 내리는 벽과 기둥.
데스나이트가 쏘는 화살 한 발 한 발은 마치 대포와도 같은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미쳤군. 이게 S급 몬스터의 힘인가? 전에 봤던 용암장갑암룡보다도 훨씬 더 강한 것 같은데…….”
솔직히 눈앞의 데스나이트는 예전 ‘홍옥의 파사(破邪)’에서 잡았던 용암장갑암룡보다 두세 배는 강해 보인다.
같은 S급 몬스터라고 해도 개체값 차이가 상당한 것이다.
“제길! 그래도 이 활, 나름 S급 몬스터 잡고 얻은 활이야! 홍옥의 파사에서 얻은 정수란 말이야! 이얍!”
이산하는 바닥을 구르며 불화살을 쏘았다.
빛을 내뿜는 불길이 허공에 시뻘건 궤적을 그리며 날아간다.
이 역시 파사(破邪)의 기운이 담겨 있는 화살이었다.
순간, 데스나이트의 기세가 급변했다.
[……태양이 나를 찾아냈도다.]
데스나이트는 기겁을 하며 이산하의 저격을 피했다.
츠츠츠츠츠-
공격에 실패한 이산하의 활이 조금 더 빠른 속도로 부식되기 시작했다.
“아, 안 돼! 이러다 진짜 망가지겠어! 제기랄, 저렇게 빠르고 강력한데 내구도 감소 디버프까지 있다고? 완전 사기 아냐!”
“그러니까 불에 관련된 아이템은 안 된다고 한 거야. 저 녀석의 고유 능력인 것 같으니까. 아마도 ‘한식(寒食)’ 특성인 것 같은데. 심지어 ‘변온’ 특성까지 붙어있어서 불뿐만 아니라 얼음에 관련된 아이템들까지도 부식시킬 수 있겠군. 진짜 OP 캐릭터다 저건.”
이우주는 데스나이트의 상태창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의문스러운 특성들이 몇 개 있군. ‘반정’과 ‘후예사일’ 특성은 지금까지 아무도 발견한 적이 없는 특성이야. 심지어 아빠조차도 이 특성들에 대해 모른다고 했단 말이지.”
자신이 지금 굳게 쥐고 있는 몽둥이에도 같은 특성들이 붙어 있다.
쓰이는 곳을 몰라 아직까지 봉인되어 있기는 했지만.
“어쩌면 저 녀석을 상대하다 보면 이 아이템의 숨겨진 능력을 개화시킬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어차피 마몬 씨의 퀘스트 때문에 저 녀석을 잡긴 해야 해!”
“Oh! 맞다! 퀘스트! 완전히 까먹다 and 버렸다.”
주춤했던 것도 잠시, 이산하와 솔레이크 역시도 다시금 투지를 불태운다.
<히든 퀘스트 ‘마몬이 타락하게 되었던 계기-‘스승을 배신한 자’’>
<히든 퀘스트 완료 조건: ‘언데드 전당의 진(眞) 보스’ 처치>
마몬에게 받은 히든 퀘스트의 대상은 아무래도 눈앞의 이 데스나이트를 가리키는 것 같았다.
[언데드 전당. 그곳의 주인과는 나도 나름 인연이 있어서 말이야……]
마몬 본인도 이렇게 말했던 적이 있으니 아마도 확실할 것이다.
이우주는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빠는 마몬 씨의 메인 스토리를 발견하고 해결했지만 서브 스토리까지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모양이야.”
이산하 역시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보면 이 또한 아빠가 놓친 떡밥들의 연계 스토리겠지. 반드시 우리가 잡자!”
“오케이!”
남매의 뜻이 간만에 하나로 일치했다.
퍼퍼퍼펑!
데스나이트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강력한 화살들을 쏘아 보내고 있다.
츠츠츠츠-
장비의 내구도를 감소시키는 디버프 역시도 여전히 유효했다.
그러나.
“아쵸! 그 정도로는 나를 맞출 수 없다!”
풀잎과 나뭇잎, 나무로 만들어진 장구류를 착용한 이산하의 민첩 스탯은 그다지 감소하지 않았기에 겨우겨우 저격을 피할 수 있었다.
그래봤자 반격은커녕 겨우 피하기만 하는 수준이었지만.
하지만 이산하가 어그로를 끄는 동안 이우주는 데스나이트의 공격 패턴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누나! 잘 들어!”
“어! 말해! 으악! 나 죽는다! 빨리 말해! 귀 기울이느라 균형 망가져!”
“공격 패턴 찾아냈어!”
이우주는 솔레이크의 골렘 뒤에 숨은 채 말했다.
“데스나이트가 쏘는 화살들 중 몇 개는 랜덤하게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 대충 10발 중에 1발 꼴이야!”
말 그대로였다.
데스나이트의 명중률은 약 90%, 열 번의 저격 중 한 번은 꼭 불발을 낸다.
연달아 아홉 번을 쏘면 마지막 한 발은 꼭 비실비실 힘없는 화살을 쐈고 그 한 발만은 유독 데미지가 형편없었다.
“데스나이트가 열 번째 화살을 쏠 때면 늘 손이 파들파들 떨리며 굳어! 그럼 삑사리가 나는 거야! 마치 인형뽑기 기계처럼 일정한 패턴으로 불발이 나는 거지!”
이우주의 분석을 들은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래서 뭐?’라는 표정으로.
“근데 뭐 어쩌라고 이 자식아! 빨리 저거 잡을 수 있는 방법이나 말해! 딜을 넣어야 잡을 것 아냐!”
“Oh, 우주! 알려 준 것은 고맙다. but. 그걸 안다고 해도 겨우 겨우 피할 수만 있을 뿐! 공격 수단은 nothing! 이대로 가다간 스테미나 고갈로 Retire!”
솔레이크의 골렘이 간신히, 정말 간신히 탱커 역할을 해 주고 있으나 딜을 넣을 수단이 없다.
원딜러인 이산하가 압도적인 상위호환 앞에 가로막혀 쩔쩔매고 있으니 말이다.
이우주 역시 이 문제점을 진작부터 간파하고 있었다.
“원딜을 상대로 할 때는 근접 딜러가 필요한 것이 상식…… 그렇다면?”
이윽고, 이우주의 시선은 한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유령 군마를 탄 채 화살을 피해 도망 다니고 있는 죠르디가 있었다.
자신을 쳐다보는 이우주의 시선을 의식한 그녀는 코웃음을 쳤다.
“하! 꿈 깨라! 내가 늬들이랑 손잡을 일은 절대 없…….”
그 순간. 데스나이트가 쏘아 보낸 화살이 유령 군마의 머리를 관통했다.
…우당탕!
말 달리던 기세 그대로 땅바닥을 구른 죠르디는 벽에 머리를 들이받고서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이윽고, 죠르디의 앞으로 스산한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데스나이트가 죠르디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고개를 든 죠르디의 입이 힘겹게 열렸다.
“……지 않다.”
“오케이. 딜.”
동시에, 이우주와 죠르디의 귓가에 맑은 알림음이 들려왔다.
-띠링!
<파티가 결성되었습니다>
<파티원: 이우주, 눈누난나내가니누나네, 0개국어능력자, (계정정보없음)>
파티에 근접 딜러 하나가 추가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