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903화 (903/1,000)

외전 29화 언데드 전당 (8)

“역시 너였군.”

이우주는 죠르디를 마주 보며 말했다.

너무도 순식간에 패치되어 사라진,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것이 있었는지도 모르는 버그.

일명 ‘무한 죽음 노가다’ 버그의 주인공.

그녀가 바로 죠르디인 것이다.

“그래. 그 버그의 주인공이 바로 나다.”

죠르디는 씹어 내뱉듯 말했다.

그때, 이산하와 솔레이크가 물었다.

“야, 무한 죽음 노가다가 뭐야? 그런 버그가 있었어? 나는 처음 듣는데.”

“아까부터 둘만 아는 이야기. All you need is love. All you need is explain. 나에게 필요한 것은 설명!”

누나들의 말을 들은 이우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간략하게나마 설명을 시작했다.

“지금은 순식간에 패치되어 사라진 버그지만…… 정말로 무서운 버그가 하나 있었어. 뎀1과 뎀2의 차이를 없애 버릴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오류였지. 누나들도 알지? 레벨 업을 하면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기본 스탯들이 조금씩 조금씩 영구적으로 상승하는 것.”

이우주의 말에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안에서 캐릭터의 전투력은 대부분 아이템과 특성, 칭호에 의해서 정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RPG게임인 이상 당연히 캐릭터의 스탯 역시도 중요한데 이 수치는 아이템으로 상승시키는 것 외에도 레벨 업을 통해 상승시킬 수 있다.

아이템을 착용해서 올라가는 스탯은 아이템 착용을 해제했을 때 도로 내려가지만 레벨 업으로 증가한 스탯은 한번 증가했을 시 영구적으로 유지된다.

“대표적인 예로 캐릭터의 기본 HP는 ‘레벨*10’이라는 공식이 적용되지. 레벨이 1일 때의 기본 체력은 10. 레벨이 10일 때의 기본 체력은 100. 레벨이 100일 때의 기본 체력은 1000. 이런 식으로 말이야.”

“응응. 체력을 올려 주는 아이템을 따로 정비하지 않으면 그렇지. 아빠도 만렙까지 쭉 기본 체력으로 플레이했었고.”

이산하의 대답을 들은 이우주는 설명을 계속 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만약 이 레벨 업을 영구적으로 반복한다면 어떨까?”

“엥? 그게 무슨 소리야?”

“레벨 업을 하면 힘, 민첩, 체력, 마력 등의 스탯들이 조금씩 조금씩 영구적으로 증가한다고 했잖아. 만약 레벨 업이 무한대로 가능하다면?”

“……흠. 그야 무한대로 강해지겠지? 하지만 레벨 업을 어떻게 무한대로 하겠어?”

“그게 가능했던 순간이 있었어. 버그지.”

이우주는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이 버그는 저레벨 캐릭터일수록 더욱 유리해. 일단 레벨을 하나 올리는 거야. 레벨 업에 필요한 경험치량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그리고 그 다음에는 죽는 거지. 일부러.”

“엥? 캐릭터를 죽인다고? 그럼 경험치가 깎이잖아. 접속 불가 패널티도 받고.”

“불가항력인 상황 속에서 사망한 접속 불가 패널티는 어느 정도 조정을 받아. 특히나 버그가 일어나는 장소에서 죽으면 거의 아무런 패널티도 받지 않은 채 바로 접속할 수가 있지. 더군다나 계정 정보가 없는 불법 계정이라면야 패널티를 피하기 훨씬 쉬운 일이야. 그 대가로 많은 것을 손해 봐야 하기는 하지만.”

“근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의미가 있지. 레벨 업 직후 사망한 뒤에 바로 접속하면 그 캐릭터가 어떻게 되어 있겠어?”

“……그야 레벨이 다운되어 있겠지? 누적 경험치가 깎였으니까.”

“바로 그거야.”

이우주는 눈을 빛냈다.

“저레벨 상태에서 레벨 업을 하고 버그나 무단 PK에 휘말려 죽는다. 그리고 접속제한 패널티 없이 바로 접속해서 곧바로 떨어진 레벨을 다시 올린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설마?”

이산하와 솔레이크 역시도 슬슬 눈치를 챈 것 같았다.

죠르디가 썼던 ‘부정한 노가다’가 무엇인지 말이다.

“레벨을 올릴 때마다 영구적으로 상승하는 힘, 민첩, 체력, 마력 스탯들은 한번 적용된 이상 변동되지 않지. 그렇다면 의도적으로 레벨을 다운시키고 다시 업 시켰을 때 올라가는 스탯들은?”

“……!”

“죽어서 의도적으로 경험치를 떨구고 다시 레벨 업을 반복 또 반복하는 거야. 그러면 캐릭터의 스탯은 어마어마하게 상승하게 되지. 아무런 아이템을 장비하지 않고서도 말이야. 말 그대로 ‘슈퍼 맨몸’이 되는 거야.”

이우주의 말에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놀란 표정으로 죠르디를 돌아보았다.

이윽고, 죠르디는 피식 웃었다.

“그래.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접속 패널티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계정 인증을 누락시켰지. 그 덕에 NPC들과도 교류하지 못하고 바로 카오 유저로 낙인찍혔다. 용케 알아냈군.”

“자칫하면 인과율과 세계관이 완전히 붕괴할 수도 있는 오류였으니까. 당연히 지금은 막혔지만.”

죠르디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비록 공격 패턴을 간파당하는 바람에 당황했고 그 탓에 일시적으로 밀리긴 했으나.

쿠-르르르륵!

그녀는 여전히 뎀2의 파이오니아, 손꼽히는 암흑 랭커들 중의 하나였다.

잠시 당황하는 바람에 잃어버렸던 페이스를 완벽하게 되찾은 죠르디는 이내 압도적인 농도의 아우라를 뿜어내며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를 압박했다.

이우주는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런 부정한 방법으로 캐릭터를 강화했지? 단순히 자기과시를 위해서는 아닌 것 같은데.”

“……너라면 이해할 수도 있겠군.”

죠르디는 이우주를 노려보며 말했다.

“아빠가 서 있던 경지. 그 경지를 밟아보고 싶은 마음을 말이야.”

“……!”

“나는 옛날의 아빠와 동등한 자격으로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세계의 꼭대기에 설 필요가 있지.”

그 점에는 이우주 역시 동감하는 바였다.

하지만 방법론에 있어서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그 마음은 어느 정도 이해하겠어. 하지만 그렇게 부정한 방법을 써서 일궈 낸 성과에 너희 아버지가 기뻐하실까?”

“기뻐할걸?”

“…….”

이우주는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 보면 조디악 역시도 빌런 중의 빌런이었다.

사고관이 조금 남다를 수밖에.

죠르디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너도 얼마 전에 텔레포트 스크롤 버그 썼잖아. 내로남불이냐? 또 너네 아빠도 전성기 시절에 틈틈이 버그 썼었거든? 꼼수와 버그 사이에서 외줄타기 하면서 말이야.”

“그건 게임 개발자들도 알지 못했던 것들이야. 새로운 시도고 모험이었지. 개발자들은 오히려 우리 아빠한테 버그를 보완할 수 있게 도와줘서 고맙다고 했었어. 또 대체로 용인 가능한 수준의 버그들이었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도 않았었지. 비유하자면 과일이나 꿀을 훔쳐 먹는 새나 벌, 그리고 그들을 통해 씨앗과 꽃가루를 옮기는 식물의 관계랄까.”

“말 하나는 잘하는군. 본인의 행동을 아주 잘 합리화 하고 있어.”

“합리화가 아니라 팩트지. 내가 한 짓은 네가 한 짓에 비하면 재롱이나 다름없다고. 일단 너는 무조건 캐삭감이야. 계정 정보만 있었어도 바로 그렇게 됐을 거다.”

실제로 죠르디는 여전히 쫓기고 있는 몸임과 동시에 뎀2의 본사에서도 수배 중에 있다.

죠르디는 이를 악물었다.

“애초에 부정하게 만들어진 세계야. 부정하게 올라가는 게 뭐가 어떻다는 거야?”

“피장파장의 오류를 저지르면 쓰나. 세상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나까지 문제아가 될 수는 없는 거라고.”

“닥쳐! 내 앞에서 속 편한 소리를 지껄이지 마라! 네놈들의 아빠는 건강하고 또 오래 살 게 뻔하니까 그렇게 한가한 말을 할 수 있겠지!”

그녀의 일갈에 이우주는 순간 입을 다물었다.

조디악 번디베일. 죠르디의 부친인 그의 몸 상태에 대해서는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원래 희귀병을 앓고 있었는 데다가 불법 인체실험과 기나긴 도주생활로 인한 극도의 스트레스.

이 모든 요인들 때문에 현재 그의 건강 상태는 극도로 좋지 않다고 한다.

으득-

죠르디는 이를 갈았다.

“내 아빠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세상을 사는 네놈들. 네놈들이 하하호호 웃으며 돌아다니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억장이 무너져. 너희들은 어째서 아무렇지도 않지? 아빠랑 나는 이렇게 불행한데!”

순간, 이우주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 역시도 언젠가 비슷한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언데드 전당에 진입하기 전 장비를 점검하기 위해 들렸던 지하도시 데린쿠유.

그곳에서 이우주 역시도 지금의 죠르디가 느끼는 감정과 비슷한 것을 느꼈었다.

‘지각한 누나들을 기다리면서 평소에는 읽지 않던 문구들을 쭉 읽어 봤었지.’

<……마차의 수레바퀴를 수리하는 중……>

<……칼날에 슨 녹을 제거하는 중……>

<……방패와 갑옷을 점검하는 중……>

<……말에게 건초를 먹이는 중……>

<……여행 준비 완료!……>

칼림바와 오카리나가 어우러진 멜로디.

♩♪♬……

어느 판타지 세상, 오래된 골동품 상점 골목의 먼지 쌓인 오르골에서 들려올 법한 BGM.

-멸망의 어머니 오무아무아가 끝없는 항해를 떠난 이후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대격변의 흐름 속에 많은 것들이 사라졌고 또 많은 것들이 새로 생겨났습니다.

-끔찍한 재앙이 할퀴고 간 흉터에는 들꽃이 피어났습니다.

-청량한 빗물과 맑은 이슬이 모여 푸른 바다가 생겨났습니다.

-지평선은 숨이 차도록 달릴 아이들에게 뒤쳐지지 않도록 오늘도 멀찍이 달려나갑니다.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을 기리는 등불들이 하나하나 모여 은하수를 이루었습니다.

-그중의 하나는 분명 당신을 기다리는 불빛이겠지요.

-이제 세상은 다시 아름다워질 준비를 마쳤습니다.

-이왕이면 더 큰 잔에 술을 따라 주세요.

-그리고 마주 앉아 주세요.

-멋진 목소리로 기원해 주세요.

-더욱 멋진 웃음도 함께요.

-로프와 낙타, 한 다스의 연필과 노트 한 권, 한 조각의 빵과 나이프, 그리고 램프를 들고서.

-오늘도 새로운 모험가가 이 세계에 첫 발자국을 내딛습니다.

-바로 당신 말입니다!

.

.

뎀1부터 플레이했던 선발주자들은 이 문구를 보고 눈물을 흘린다던가.

하지만 뎀2에서부터 시작한 뉴비 이우주는 이런 문구를 봐도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그것은 문구들을 바로 스킵하던 꼬맹이 유저들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응~ SKIP~’

‘아오, 왤케 설명이 길어!’

‘똥망겜특. 초반에 아무도 안 궁금해하는 설정 줄줄 풀어놓음.’

‘이거리얼. 제국력 칠백사십육년, 천족과 마족 등장 쌉가능이잖어~’

‘쿠쿠루삥뽕빵! 오늘도 틀딱겜 출석체크 인증완료~ 응 출석보상~’

이우주는 궁금증을 느꼈었다.

이 세상을 지켜 낸 아빠.

모든 사람이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한 몸을 불살랐던 영웅.

하지만 그렇게 지켜 낸 세계를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아빠가 지켜 낸 세계. 그리고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즐기고 향유하는 사람들. 아빠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실까.’

그때 이우주가 했던 생각을 지금 눈앞의 죠르디가 하고 있었다.

단, 죠르디의 경우에는 훨씬 더 뜨겁고 격렬한 분노에 휩싸여 있는 상태였지만 말이다.

“다시 말해 봐라. 네가 나한테 정정당당히, 긴 시간을 투자해서 이 게임을 즐기라고 말할 수 있나? 감히? 나에게?”

“…….”

이우주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침묵할 때.

“그래. 알겠어.”

뒤에서 이산하가 걸어 나왔다.

그녀는 죠르디를 마주보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서로 처해 있는 상황이 다른데 의견이 같다는 게 더 웃기는 일이지. 안 그래?”

“…….”

“네가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걸 인정할게.”

“…….”

“하지만 서로 다른 이상 분쟁은 불가피하다는 것은 너도 인정하지? 인간 세상이 다 그렇잖아.”

무표정한 얼굴로 말하는 이산하를 향해 죠르디는 피식 웃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지. 네년이랑은 절대 친해질 수가 없겠다고.”

“어머? 친해지려는 생각을 했었어? 소름끼쳐라.”

“……바로 쳐 죽여 주마.”

“버그빨 불법충한테는 안 져.”

“그러다 죽으면 개망신인 건 알지? 아~ 아니까 그 띨빵한 방송도 안 켜고 있는 건가?”

“용감하네~ 나야 죽으면 몇 번이고 부활할 수 있지만 넌 죽으면 바로 캐삭인데 말이야. 웬일이니, 지 혼자 장르가 로그라이크네.”

두 여자 사이에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진다.

이윽고.

팟!

죠르디와 이산하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야아아아앗!”

“죽어어어어엇!”

시커먼 칼날과 불타는 화살이 서로를 노린다.

이우주는 그 사이에 낀 채 한숨을 쉬었다.

“보스전 직전에 힘 빼면 안 되는데…… 일단은 말려야 하나.”

하는 수 없는 일이다.

이우주는 인벤토리 안에 있던 태양살의 몽둥이를 꺼내 들었다.

……바로 그 순간.

파앗!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빛이 퍼진다.

이우주의 손에 잡힌 태양살의 몽둥이가 별안간 환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어엇!?”

“윽! 눈뽕!”

죠르디와 이산하는 순간 자리에 멈추고 손으로 눈을 가린다.

“……이게 왜 이러지?”

이우주는 미간을 찡그린 채 몽둥이를 내려다보았다.

엄청난 빛을 내뿜고 있는 파사(破邪)의 몽둥이.

그리고 그 빛에 반응하는 존재가 있었다.

[끄으으으윽…… 그으으으윽……]

칠흑의 어둠 속에서 끊어져 가는 신음 소리가 들려온다.

무척이나 불길하고 또 기분 나쁜 괴음.

그리고 이내, 모두의 귓가에 요란한 알림음이 터졌다.

-띠링!

<‘언데드 전당- 명예(明譽)의 광휘가 닿지 않는 구역’에 볕이 듭니다>

<‘진(眞) 보스’가 빛에 이끌려 다가옵니다!>

이윽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시무시한 그림자가 모든 이들의 시선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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