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902화 (902/1,000)
  • 외전 28화 언데드 전당 (7)

    -띠링!

    <‘언데드 전당- 명예(明譽)의 광휘가 닿지 않는 구역’에 입장하셨습니다>

    <최초 방문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영구히 기록됩니다>

    <최초 방문자: (계정정보없음)>

    .

    .

    “역시.”

    이우주는 파괴된 벽 너머의 포탈로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들려오는 알림음으로 봐서는 선객의 정체가 대충 예상이 간다.

    이윽고, 칠흑의 어둠 너머로 녹푸른 등불 빛이 보인다.

    검은 머리칼과 창백한 피부, 어딘가 졸려 보이는 듯한 눈 밑으로 드리워진 퀭한 다크서클.

    해골로 된 말의 고삐를 쥐고 한 자루의 긴 장검을 든 여자가 이우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또 너희들인가.”

    죠르디 번디베일.

    어느새 카오 등급이 ‘몬스터’ 등급으로 올라 있는 그녀가 그곳에 서 있다.

    죠르디가 검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이 보스룸은 내가 먼저 발견했다. 끼어들면 뒈질 줄 알아.”

    “끼어든 건 아니지. 아직 네가 뭘 시작하기도 전인데.”

    “……예전에 파티 한번 같이 했다고 내가 우스워 보이나?”

    이우주의 대답을 들은 죠르디의 표정에 스산한 어둠이 깔렸다.

    그녀의 머리 위에 떠 있는 ‘몬스터’ 칭호가 시뻘건 핏빛으로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때.

    “누가 내 동생 건드려?”

    “Oh. 죠르디. 사냥터 독점 욕심은 추해. 뎀2는 모두의 것.”

    이우주의 뒤에서 두 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산하와 솔레이크. 둘은 어느새 이우주의 앞으로 걸어가 죠르디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산하가 당당하게 말했다.

    “내 동생은 나만 괴롭힐 수 있어.”

    “……켁, 재수 없는 남매로군.”

    죠르디는 칼에서 시커먼 아우라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를 향해 조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예전에 내 도플갱어에게도 쩔쩔매던 걸 벌써 잊었나? 고작 33%에도 그렇게 털렸으면서 100%를 어떻게 상대하겠다는 거지?”

    “그 100%가 중요한 보스전을 앞두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 우리를 다 잡고도 보스 레이드 멀쩡히 할 수 있겠어?”

    “…….”

    이우주의 차가운 목소리에 죠르디는 일순간 입을 다물었다.

    내친김에 이우주는 조금 더 이죽거리기로 했다.

    “그리고 파편들의 상태를 보니까 우리가 오기 전까지 시간이 꽤나 많았던 모양인데, 한참 먼저 와 놓고도 아직까지 보스를 불러내지도 못한 걸 보니까 보스전에 들어가는 법을 아예 모르나 봐? 보스 몬스터를 어떻게 소환하는지 알아? 뭘 알아야 하겠지?”

    “깐족거리지 마라, 고인물의 자식아!”

    죠르디는 버럭 짜증을 내며 칼을 휘둘렀다.

    그 일격에 이우주가 치명적인 데미지를 입을 것이란 계산 하에.

    ……하지만.

    슝-

    초승달 모양으로 뻗어 나가는 참격을 우습게 피해 내는 이우주.

    “……뭣!? 어떻게!”

    죠르디는 몇 번 더 칼을 휘둘러 보았다.

    콰콰콰쾅!

    뒤로 날아간 참격은 어마어마한 기세로 주변의 지형지물을 파괴한다.

    실로 무시무시한 데미지.

    “……흠. 이 정도면 뎀2 때 시작한 유저들 중에서는 거의 최상위 티어겠군. 어쩌면 손가락, 발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일지도.”

    하지만 말과는 달리 이우주의 안색은 평온해 보였다.

    참격이 날아올 때마다 이우주는 눈 깜짝할 사이에 몸의 자세를 바꾸어 가며 죠르디의 공격을 흘려보낸다.

    마치 미래를 읽는 초능력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말이다.

    “첫 공격은 대각선 베기, 그리고 이어지는 회전 참격, 그 뒤는 칼날 내려찍기, 이후 50%의 확률로 칼집 안에 칼을 집어넣은 뒤 거합술.”

    “……?”

    황당함과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는 죠르디의 앞까지 다가와 선 이우주는 씩 웃었다.

    “너의 도플갱어들을 무수히 잡아 죽이면서 철저히 학습한 공략 패턴이다.”

    “……!”

    그렇다.

    죠르디는 과거 짭핑크 고인물을 잡기 위해 도플갱어의 숲에 간 적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자신의 레플리카들을 양산했었다.

    그리고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는 죠르디의 도플갱어들과 무수히 많은 격전을 치르면서 그녀의 패턴을 완벽하게 학습한 것이다.

    정말로 완벽하게.

    “도플갱어들은 하나하나가 고도의 딥러닝 ai로 카피한 대상의 MBTI 성격과 공격 패턴, 메타적 특성을 거의 그대로 재현해 내지. 참고로 당신의 도플갱어들은 대체로 ESTJ, 엄격한 관리자형 아니면 INTJ, 청렴결백한 논리주의자 형이었다. 대체로 공략하기 쉬운 성격과 패턴이지.”

    “네, 네놈들은 어찌……!?”

    “우리들은 어찌 나왔냐고? 나는 ISFJ, 용감한 수호자 형이다.”

    이우주의 말에 이산하와 솔레이크 역시도 신이 나서 대답했다.

    “나는 ENFP, 재기발랄한 활동가! 나 이런 심리테스트 같은 거 완전 좋아해!”

    “Oh! 나는 ISFP. 호기심 많은 예술가! I am a curious Asshole가!”

    그러자 죠르디가 빽 소리쳤다.

    “누가 네놈들이 어떤 성격 유형인지 궁금하댔냐!? 그 도플갱어의 숲을 어찌 빠져나왔냐고 묻는 거다!”

    “아, 그런 거였나. 그것은 아까도 말했듯 네 도플갱어들이 가진 패턴을 잘 파악해서 빠져나왔지.”

    “……억세게 운이 좋은 놈들이군.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다.”

    죠르디는 칼을 들고 이우주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왼쪽에서 내리긋는 칼날, 그 다음에는 허리를 틀어 오른쪽 발차기.”

    “그 뒤에는 무조건 세 걸음 뒤로 백스텝, 이후 거리확보용 찌르기가 한 번.”

    “다음에는 바닥을 구를 듯 페인트를 주다가 반대편으로 몸을 트는데 오른쪽일 확률이 약 75%, 왼쪽일 확률이 약 25%, 가운데일 확률이 약 5%, 도합 105%의 움직임인가.”

    “이번에는 왼쪽으로 틀었나? 그렇다면 그 뒤에는 100%의 확률로 칼 손잡이를 둔기처럼 휘두른 뒤 칼날을 손으로 잡은 채 작살처럼 집어 던지는 공격 패턴. 그 뒤에 다시 앞으로 전진 후 칼날 손잡이를 회수해 제자리에서 720도 회전 베기가 이어지지.”

    이우주는 죠르디의 움직임을 훤히 꿰고 있었다.

    아니, 꿰고 있다 못해 그것을 완벽히 따라가며 밀착 마크를 하고 있는 중이다.

    “헉!? 어, 어떻게……!?”

    “아까부터 계속 같은 말만 하는군.”

    “아까부터 대체 뭐냐!”

    헛바람 소리를 내는 죠르디와 그녀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이우주.

    이내 둘은 서로의 코끝이 닿을 정도의 거리까지 가까워졌다.

    죠르디는 생각했다.

    ‘당장 거리를 벌려야…….’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도중에 중단되었다.

    이우주가 난데없이 손을 뻗더니 죠르디의 신체 부위 중 한 곳을 잡은 것이다.

    그것은 몸속의 가장 은밀한 기관, 평생을 살면서 단 한 번도 남에게 손길을 허락한 적 없던 부위.

    ……바로 혓바닥이었다.

    이우주는 입술 밖으로 나온 죠르디의 혀끝을 잡은 채로 근엄하게 말했다.

    “너는 긴장하면 입술을 혓바닥으로 핥는 습관이 있더군. 입술의 좌측 끝부터 시작해 오른쪽으로 한 번, 다시 왼쪽으로 한 번, 그리고 아랫입술로 넘어가 다시 왼쪽부터 오른쪽까지를 훑고 입 안으로 들어간다.”

    “으우욱? 우어뜨케?”

    “어떻게 알았냐고? 안면 근육의 미묘한 쏠림 현상으로 알 수 있지. 이때쯤이라면 확률상 한번쯤 핥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서 잡아 봤다. 참고로 도플갱어들과 싸울 때는 손가락이 아니라 이빨, 발가락으로도 잡아 봤어.”

    이우주의 진지한 눈빛을 본 죠르디의 등골에 순간 오싹한 소름이 타 올랐다.

    ‘……미친놈이다. 이건 미친놈이야.’

    과거 아빠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내 호적수? 역시 그 미친놈뿐이겠지. 푸스스스- 아아, 진짜로 미친 녀석이야. 그놈은. 가능하면 얽히지 말거라. ……무서우니까.’

    그리고 지금, 죠르디는 아빠의 호적수의 아들과 마주하고 있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아빠가 왜 그런 말을 했었는지.

    ‘……여, 역시 피는 못 속이는 건가?’

    바로 그때.

    “대세요.”

    뒤에서 난데없이 들려온 이산하의 목소리가 죠르디의 상념을 깼다.

    “뚝배기 딱 대시라구요.”

    동시에.

    …뻑!

    몽둥이처럼 떨어져 내린 활이 죠르디의 정수리를 강타했다.

    “꺄악!”

    죠르디는 저도 모르게 소녀 같은 비명을 내지르고 말았다.

    이우주의 그림자 옆으로 이산하의 그림자 역시도 스산하게 드리워진다.

    “아까 우리보고 운이 좋다고 했었던가? 도플갱어들의 숲을 빠져나왔다고 했을 때 말이야.”

    이산하는 피식 웃으며 턱을 긁적였다.

    “내가 말 안 했었나 보네.”

    “……?”

    머리를 감싸 쥐고 고개를 드는 죠르디를 향해, 이산하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거기 있는 도플갱어, 모조리 죽이고 나왔다고.”

    순간, 죠르디는 몸을 오싹- 떨었다.

    ‘이년도 또라이다. 또라이가 틀림없어.’

    서늘한 소름이 등골을 타오르는 감각에 죠르디는 잽싸게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렸다.

    “오, 오지 마!”

    “오지 마, 와지 마, 와 줘. 두음법칙상 와 달라는 뜻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중얼거리며 다가오는 이는 솔레이크.

    그녀는 벌써 골렘을 이용해 퇴각로를 원천봉쇄하고 있는 중이었다.

    불길함에 몸을 떠는 죠르디의 앞으로 악마 세 마리가 무시무시한 웃음을 흘리며 다가온다.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그들은 죠르디의 상태를 면밀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특히나 이우주가 그랬다.

    “역시. 수없이 많은 도플갱어들을 해부해 본 보람이 있어. 본체까지 확인하니 더욱 확실해졌다. 죠르디, 저 여자는 분명 부정한 방법으로 캐릭터를 강화시켰어.”

    “부정한 방법? 동생아, 누나들도 좀 알아듣게 말해 주련?”

    “Oh. 부정? paternal love? 나도 우리 아빠 사랑해. 우리 아빠도 나를 사랑해?”

    이우주의 말에 이산하와 솔레이크가 고개를 돌려 의아함을 표한다.

    이윽고, 이우주는 입을 열었다.

    “예전에 아주 잠시 뎀2에 긴급 패치가 이루어졌던 것을 기억하지. 새벽에 기습적으로, 엄청 다급하게 이루어진 디버깅이었어. 심지어 너무 급하게 패치를 한 나머지 다른 자잘한 버그들을 몇 십 개씩이나 새로 만들어 냈을 정도로 말이야.”

    이우주는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는 죠르디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몇 십, 아니 몇 백 개의 새로운 버그가 생기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은 꼭 막아야 하는 버그였어. 뎀2의 뉴비가 뎀1의 올드비를 하루 만에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버그였으니까.”

    갓겜 데우스 엑스 마키나2가 나온 지 어언 15년.

    그리고 그 전까지 유구하던 데우스 엑스 마키나 1의 서비스 시간.

    이 모든 것을 합친 세월 동안 게임을 향유하는 유저들의 세대는 몇 번이나 바뀌었다.

    그렇다면 최초의 세대와 최후의 세대.

    그러니까 뎀1이 막 서비스 될 무렵에 계정을 만들어 꾸준하게 플레이했던 유저와 뎀2에서 이제 막 계정을 만든 유저 사이의 격차는 얼마나 날 것인가?

    그것은 그야말로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이리라.

    하지만 그 격차를 하루 만에 메꿔 버릴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버그.

    인과율의 질서를 와해시키고 세계관 그 자체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오버밸런스이다.

    ‘그런 게 있었어?’라는 표정으로 눈을 끔뻑거리는 이산하와 솔레이크를 뒤로 한 채, 이우주는 입을 열었다.

    “……일명 ‘무한 죽음 노가다’, 혹은 ‘부정한 캐릭터 작업’.”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죠르디는 그런 이우주를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의 입이 열리며 독기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 그 버그의 주인공이 바로 나다.”

    죠르디가 가진 터무니없는 전투력의 근원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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