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899화 (899/1,000)
  • 외전 25화 언데드 전당 (4)

    개기일식이 다가온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2를 플레이 하는 유저들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들었을 때 하늘 위의 구름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그림자와 날갯짓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휘이이이잉-

    마치 제트기가 가까운 상공을 스쳐 지날 때나 날 법한 소리들이 비행운과 함께 하늘을 활보한다.

    저레벨 유저들의 눈에는 그저 푸른 하늘과 흰 구름들만 보이고 있었지만 고레벨 유저들의 눈에는 흐릿하게나마 감지되고 있었다.

    구름 뒤를 스쳐가는 수많은 아룡(亞龍)들의 그림자가.

    *       *       *

    “……확실히 태양룡과 루시퍼의 부활이 얼마 안 남았나 보네.”

    하늘을 올려다보던 이산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옆에는 이우주와 솔레이크가 서 있었다.

    그들은 막 썩고 불타는 땅 중에서도 가장 변방으로 통하는 ‘부패의 성지’에 도착한 참이었다.

    <언데드 전당> -던전 등급: A+

    -언데드의 성지.

    미처 죽지 못한 이들의 넋이 서열화되고 계급화되어 있는 복마전(伏魔殿).

    살아생전 싸움을 즐겼거나 유난히도 원한이 강했던 극소수의 망자들만이 이곳에 입성한다.

    ⤷사망 경험이 1회 이상인 플레이어에 한해 입장 가능합니다.

    ⤷이 던전에서는 장비 아이템의 내구도 소모가 몹시 격심합니다.

    마치 고대 이슬람 사원과도 같은 모양새의 던전이 사막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솟구쳐 있었다.

    벽을 수북하게 뒤덮고 있는 넝쿨들이 바짝 말라 죽어 있는 것을 보면 한때 이곳이 푸르른 녹지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우주는 눈앞에 있는 던전을 바라보며 말했다.

    “드디어 왔구나. ‘언데드 전당’. 옛날에는 칼침의 탑과 더불어 양대 언데드 던전으로 통했던 곳이지. 뭐, 지금은 새로 나온 던전들에게 밀려서 오는 사람도 거의 없지만.”

    “궁전 역시도 언데드가 되어 버티고 있는 듯한 느낌이네. 이곳에 아빠가 처음으로 잡았던 던전 보스가 있다는 말이지?”

    “King of skeletons. 나 된다. 기대가 많이. 뼈 종류 몬스터 좋아한다. 디자인 멋있다. 맛도 있다. Like 뼈다귀 해장국.”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는 씩씩한 걸음으로 던전 입구를 향했다.

    “태양을 향해 쏴라!”

    이산하의 야심 가득한 외침이 길게 메아리치고 있었다.

    *       *       *

    -띠링!

    <‘언데드 전당’에 입장하셨습니다>

    <최초 방문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영구히 기록됩니다>

    <최초 방문자: 드레이크 캣>

    이산하 파티는 던전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귓가에 울리는 알림음 소리를 들었다.

    낯익은 이름이 포함되어 있는 알림음을 말이다.

    “Oh my 파파! 여기는 우리 아빠가 최초!”

    솔레이크가 발랄한 어조로 외친다.

    이산하, 이우주 남매도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는 드레이크 아저씨가 제일 먼저 왔었나 보네.”

    “뎀 1부터 있었던 올드 던전들 중에서는 최초 방문자가 아빠가 아닌 곳도 많으니까.”

    이윽고, 모두의 앞으로 던전에 서식하는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좀비, 스켈레톤, 고스트, 구울, 흡혈귀 등등의 저레벨 몬스터부터 이 몬스터들을 기본형으로 삼고 그 상태에서 특별한 능력이 추가되는 상위종 몬스터들까지.

    이산하와 솔레이크 콤비를 주축으로 한 파티는 빠르게 앞으로 전진했다.

    “좀비가 리젠된 지 오래되어 살이 완전히 썩어 문드러지면 스켈레톤으로 변하나 봐. 그 상태에서 뼈까지 삭아 사라지면 혼백만 남은 고스트가 되고.”

    이우주는 접근해 오는 몬스터들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었다.

    “엥? 언데드 몬스터들이 그런 식으로 변주되는 거였어? 나는 다 다른 개체들인 줄 알았는데. 고것 참 신기하구먼~”

    “죽은 뒤에도 after가 있다. 산하, 소개팅 after가 없다. 죽은 것만 못해.”

    “뭐라는 거야! 갑자기 저번 소개팅 얘기가 왜 나와! 그때는 내가 배가 아파서……!”

    “저번이라고 딱히 안 했다. 얘기.”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툭탁거리면서 몬스터를 정리해 나간다.

    이윽고, 어느새 던전의 끝자락까지 온 모두는 보스방을 앞두게 되었다.

    이우주가 물었다.

    “누나들, 내구도 괜찮아?”

    “버틸 만해.”

    “Me too.”

    그때, 몸 상태를 점검해 본 이산하가 문득 우려스럽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근데 네 레벨에 스켈레톤 킹은 조금 부담스럽지 않을까? 여기는 5~6년차 베테랑도 힘겨워 하는 곳인데 말이야. 심지어 10년차 올드비들도 종종 여기로 사냥하러 온다고 하던데.”

    “누나들 믿고 온 거지 뭐. 버스 한번 타러.”

    이우주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너무 걱정 마. 오히려 이곳이기에 나도 한몫을 할 수 있는 거니까.”

    이우주는 손에 든 몽둥이를 꽉 움켜쥐었다.

    -<태양살(太陽殺)의 몽둥이> / 한손무기 / A+

    불을 찢는 힘이 담겨있는 파사(破邪)의 몽둥이.

    천년 묵은 복숭아나무 가지를 공들여 깎아낸 걸작이다.

    -공격력 +3,000

    -특성 ‘융합(融合)’ 사용 가능 (특수)

    -특성 ‘곤장형(棍杖刑)’ 사용 가능 (특수)

    -특성 ‘반정(反正)’ 사용 가능 (특수)

    -특성 ‘후예사일(后羿射日)’ 사용 가능 (특수)

    마몬이 만들어 준 목제 무기.

    쇠를 부식시키는 언데드 전당의 디버프가 통하지 않기에 내구도가 멀쩡하다.

    이산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역시도 현재 질긴 풀잎사귀와 가죽으로 된 방어구를 걸치고 있다.

    -<용암불기둥 활> / 활 / A+

    용암굴 속의 뜨거운 화산탄을 깎아 만든 활.

    일반 화살을 쏴도 불의 기운이 깃든다고 한다.

    -공격력 +7,700

    -불 속성 공격력 +300

    -특성 ‘불화살’ 사용 가능 (특수)

    손에 든 붉은 활은 솔레이크의 홍옥의 파사 레이드를 도와주며 얻은 것이었고 지금까지 얻은 활 중에 성능이 가장 좋았기에 아직 들고 있었다.

    “이것도 불의 기운이 어려 있어서 그런가 내구도가 많이 닳았네. 오래는 못 쓰겠다.”

    이산하는 활을 만지작거리며 탄식에 잠겼다.

    내구도는 대장간에서 회복시킬 수는 있지만 절대 내구도 자체가 감소하는 것만은 어찌할 수 없다.

    차가 망가지면 수리하면 되지만 중고 가격이 떨어지는 것과도 비슷한 이치였다.

    한편, 이산하보다 상태가 더욱 심각한 이가 있었다.

    바로 솔레이크였다.

    -<꿈틀거리는 화산탄 골렘> / 골렘 / A

    용암굴 속의 뜨거운 화산탄으로 제작된 골렘.

    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알 수 없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화산탄 골렘이 입은 데미지의 양은 평소의 2배에 달했다.

    전신에 금이 간 채 삐거덕거리고 있는 골렘을 간이 수리 키트로 고치고 있는 솔레이크.

    그 모습은 자동차 정비사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닦고. 조이고. 기름치고. Brushing. Tighten. Oil.”

    애정 어린 손길로 골렘을 보살피는 그 모습은 마치 어린 소녀가 바비인형을 데리고 소꿉놀이를 하는 듯했다.

    이산하가 양손을 허리에 얹은 채 말했다.

    “야, 근데 저번에 도플갱어 잡을 때부터 느낀 건데. 그 골렘 너무 약한 것 같지 않냐? 등급도 A급이면 미묘하고…… 지금이라도 시판용 머드골렘이나 우드골렘으로 바꾸는 게 어때? 그 편이 연비도 더 좋고 감가도 적고, 또 수리도 어디서나 할 수 있잖아. 대리점이 많으니까.”

    “놉! 내 애착인형! 내 애착골렘! 나는 이 녀석, 버리지 않아!”

    “버리라는 게 아니라 이 던전에서만이라도 바꿔 보는 게 어떻냐 이거지. 화염 속성을 가진 모든 것들이 반감되니까. 그 편이 더 오래 쓸 수 있을걸?”

    보기 드문 이산하의 논리정연한 모습에 솔레이크는 양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시무룩해졌다.

    그때.

    “그냥 쓰게 해 줘. 누구에게나 애정템이라는 게 있는 건데.”

    솔레이크의 편을 들어주는 이가 있었다.

    바로 이우주였다.

    이우주는 솔레이크에게 젤리를 나눠 주며 위로했다.

    “애정을 쏟은 아이템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하죠. 언젠가는 도움이 될 거예요.”

    “우주…… 고맙다.”

    솔레이크는 젤리와 함께 눈물을 삼킨다.

    저번에 아이스크림 때도 그렇고, 참 단것을 좋아하는 그녀였다.

    이산하가 그런 이우주에게 물었다.

    “너 젤리 아직 남았었어?”

    “많이 남았어. 딸기 젤리, 메론 젤리, 바나나 젤리, 포도 젤리, 오렌지 젤리, 장어 젤리, 소 눈알 젤리, 코딱지 젤리…….”

    “도플갱어 잡을 때 다 쓴 줄 알았네. 뭐하러 남겨놨어 그런 걸. 이리 줘, 내가 다 먹어 버리게.”

    “안 돼. 비축해 두면 다 쓸데가 있는 법이야.”

    이윽고, 이우주는 보스방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언데드 전당의 최종 보스 ‘스켈레톤 킹’.

    1차 대격변에서 살아남은 스켈레톤 킹이 2차 대격변과 3차 대격변을 거치며 강력한 힘을 손에 넣었다는 설정의 몬스터.

    위험등급이 무려 A+까지 상향되었으며 그렇게 얻은 개체값이 무려 어둠 대왕에 필적한다는 망자계의 새로운 강자.

    하지만 이우주는 그것이 진 보스가 아닌 페이크 보스라고 확신했다.

    “……온다.”

    이윽고.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의 앞으로 장신의 칼잡이 하나가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다.

    <스켈레톤 킹> -등급: C+ / 특성: 어둠, 언데드, 하극상, 백전노장

    -크기: 3m.

    -서식지: 악의 고성, 썩고 불타는 땅

    -전생에 대가의 반열에 발을 걸쳤었던 칼잡이.

    죽은 뒤에도 계속 숙련된 동작으로 적의 목숨을 발라 낸다.

    육체는 강인하였지만 정신은 고결하지 못하여 끝끝내 ‘언데드 전당’에 입성하지 못하였고 그 육신은 데스 나이트의 열화판인 스켈레톤 킹으로 남고 말았다.

    고작 C+등급에 불과했던 스켈레톤 킹이 수없이 많은 수라장을 거치며 탈바꿈한 상위종.

    <스켈레톤 킹 엘더(Elder)> -등급: A+ / 특성: 어둠, 언데드, 괴벽, 하극상, 백전노장, 각골난망, 골육분쇄, 내반슬

    -크기: 6m

    -서식지: 언데드 전당

    -전생에 대가의 반열에 발을 걸쳤었던 칼잡이.

    죽은 뒤에도 계속 숙련된 동작으로 적의 목숨을 발라 낸다.

    육체는 강인하였지만 정신은 고결하지 못하여 끝끝내 ‘언데드 전당’에 입성하지 못했으나 특별한 몇몇 개체만큼은 뼈를 깎아내는 노력을 거쳐 목적지에 안장되는 것에 성공했다.

    스켈레톤 킹 엘더.

    이우주는 경외의 눈빛으로 눈앞의 거대한 뼈다귀 괴물을 올려다보았다.

    “이게 아빠가 처음으로 사냥했던 던전 보스야.”

    물론 그때와 비교해서 훨씬 더 강해졌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몬스터 데이터 값은 동일하다.

    “그 당시의 아빠는 튜토리얼의 탑에서 위험등급 C+의 스켈레톤 킹을 상대했지. 이제는 내 차례다!”

    이우주는 몽둥이를 움켜쥔 채 도전의식을 불태웠다.

    이윽고.

    …콰쾅!

    뼈만 남은 검호가 칼을 든 채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레이드가 개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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