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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898화 (898/1,000)
  • 외전 24화 언데드 전당 (3)

    이우주는 데린쿠유의 지하동굴 깊숙한 곳에 앉아 명상을 하고 있었다.

    알을 깨고 나가는 것은 원래 있던 세계를 부숴 버리는 일.

    태어날 때부터 줄곧 함께 해 왔던 벽을 뛰어넘는 것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까마득한 종유석 위에 걸터앉은 채로 그는 생각했다.

    ‘……내가 정말 아빠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아빠는 최고의 친구임과 동시에 최고의 스승이었고 또 최고의 적수이기도 했다.

    깊은 굴속의 허생은 고뇌했다.

    ‘원래는 10년을 공부한 뒤 뛰어들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제 겨우 7년.’

    하필 거부할 수 없는 콘텐츠인 태양룡과 오만의 악마성좌 업데이트가 지금 추가되는 바람에 계획된 타이밍보다 일찍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아빠가 달성하지 못했던 위업에 도전할 수 있는 다시없을 기회였으니까.

    어둠 속에 홀로 파묻혀 있자니 자꾸만 회의적인 의문이 든다.

    ‘너무 일찍 시작한 것은 아닌가?’, ‘아빠의 명예를 실추시킨다면?’, ‘내가 7년 동안 쌓은 것은 사실 보잘 것 없었던 것이 아닐까?’, ‘내 준비가 부족했으면 어쩌지?’, ‘웃음거리가 될지도 몰라’, ‘아빠가 실망하지 않을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자신이 없다.

    이우주는 새로운 창을 열어 캡쳐해 둔 스크린샷들을 열어 보았다.

    <안녕하세요, ㈜리얼뎀코리아 구단의 김철현 감독입니다. 귀하의 방송에 출현하셨던 플레이어 분의 재능에 반해 이렇게 컨택 메일을 남깁니다. 저희 구단은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있는 명문…… 제 직통 번호를 남기오니 부디 회신 부탁드립……>

    <본 메일은 뎀 프로구단 ‘서울더와일드’의 공식 메일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구단주인 장진혁 전무이사입니다. 저희는 서울을 대표하는…… 오늘 귀하의 방송에 출연하셨던 의문의 플레이어의 레이드에 깊은 감명을 받아…… 방송을 보신 구단주님께서 직접 연락을 취하고 싶다고 하셨…… 부디 좋은 연봉으로 저희가 모셔가고 싶……>

    <안녕하세요? 한국을 대표하는 구단 ‘블러드문’의 감독 김태경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귀하의 플레이에 한눈에 반해버렸습…… 연봉으로 어떤 액수를 희망하시든 간에 최대한 맞추어 조율해드릴 수 있는…… 가까운 시일 내에 만나 뵙고 이야기 나누고 싶…… 부디 꼭 저희에게 함께할 수 있는 영광을 주셨으면 좋겠……>

    <다시 한번 메일 드립니다! 저는 엘북스 구단의 감독 김슬비입니다. 제 직통 번호와 메일, 블로그 주소로 회신을 보내주시면 저희 쪽의 계약 조건과 자세한 정보를 안내해 드리고자 합…… 파격적 연봉과 복지, 자신 있습니다! 구단의 전 직원 일동이 오직 플레이어 님의 회신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습……>

    .

    .

    <3주 전>

    -ㄹㅇ...5초만 더 여유 있었어도 동생이 이겼다;;; <3주 전>

    -근데 동생 분 진짜 재능충이시네...그 레벨에 장비로 눈나랑 비비다니... <3주 전>

    -근데 남동생 분 이름이 이우주? 라고 하셨던가. 진짜 미친 재능이다... <3주 전>

    -ㄴ보니까 피지컬 자체가 끝판왕 급이었음. 저 정도 레벨에 저 정도 피지컬 보여준건 튜더가 유일했는데... <3주 전>

    -ㄴ솔직히 자질만 놓고 보면 튜더보다 나은 듯? <3주 전>

    -쪼렙에 기본템으로 이름없는 여왕에 빙의한 산하눈나랑 비등비등할 정도면... <3주 전>

    -남동생 분은 딱 이 던전에 들어올 수 있을 정도의 레벨이랑 장비만 갖췄던데...만약 레벨링 어느정도 하고 템도 다 맞추면...ㅗㅜㅑ 그날 괴물 하나 뜨는 날일 듯... <3주 전>

    -ㄴㅋㅋㅋㅋ아 한국 프로팀 뭐하냐고~ 당장 스카웃 안하고 <3주 전>

    -내가 보기엔 이 영상 퍼지는 순간 전 세계 프로구단 다 뒤집어진다ㄷㄷㄷ <3주 전>

    -성지순례왔습니다... <3주 전>

    -ㄴ성지순례왔습니다...아들낳게 해주세요... <3주 전>

    -ㄴ성지순례왔습니다...딸낳게 해주세요... <3주 전>

    -ㄴ성지순례왔습니다...로또되게 해주세요... <3주 전>

    .

    .

    <3주 전>

    지나친 고민 끝에 자존감이 낮아질 때면 이름 없는 여왕 레이드 이후 누나의 채널로 온 프로 권유 메일들을 읽어 보고는 했지만 그것도 한두 번, 메일에 답장을 안 했더니 그 이후로는 연락이 잘 오지도 않는다.

    찬양 일색이던 댓글들 역시도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이우주에게 관심이 식어 버렸다.

    “하도 많이 읽었더니 이제는 제대로 읽히지도 않네.”

    고작 3주 만에 대중들의 관심에서 깨끗하게 밀려나고 나니 전의 그 뜨거웠던 반응들이 한순간의 꿈처럼 여겨질 정도.

    “……후우.”

    이우주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이렇게 고민이나 하고 있는 것도 사치였다.

    뭐가 되었든 간에 칩거를 깨고 나왔으니 일단 부딪쳐 봐야 한다.

    이번 레이드만 성공시킬 수 있다면 지금껏 방구석에 앉아 연구하고 또 연구했던 보람이 있는 것이리라.

    무엇이든 간에 성과로 증명해야 하는 것이 세상의 룰 아니겠나.

    ‘하지만 과연 그게 잘 될지.’

    이우주가 끝없는 고민의 굴레를 굴리고 있을 때.

    [이봐.]

    종유석 아래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우주가 시선을 내린 곳에는 마몬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시계를 보니 시간은 낮 11시 50분 정도. 아직 약속 시간이 되지는 않은 상태였다.

    이우주가 종유석 바닥으로 내려오자 마몬은 질문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나? 무기를 기다리는 내내 초조해 보이던데.]

    “…….”

    이우주는 고개를 돌려 옆에 앉은 마몬을 바라보았다.

    한때 아빠와 호각으로 싸웠던 남자.

    이 남자를 쓰러트리기 위해서 아빠는 엄청난 노력치와 빌드업을 쌓아 만반의 준비를 갖춘 채 레이드에 도전했다.

    마몬.

    무저갱의 수전노.

    고정 S+급 몬스터.

    최강의 황금만능주의자.

    탐욕을 관장했던 악마성좌.

    비록 패배하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아빠로 하여금 무수히 많은 사선을 넘게 했던 존재.

    지금은 사람 북적이는 지하도시의 대장간 NPC일 뿐이지만 그의 설정은 이처럼 어마무시하다.

    게다가 상대는 아빠와 싸워 봤던 경험이 있는 강자인지라 예의를 갖출 수밖에 없었다.

    이우주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제가 아빠를 실망시켜 드리면 어쩌나 걱정이에요. 혹여나 누를 끼치게 되지는 않을지…….

    [그게 다냐?]

    “네?”

    [네 마음속에 있는 욕망은 그게 다냐고 물었다.]

    마몬의 질문에 이우주는 한참을 우물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물론 아니죠.”

    [그러면?]

    “아빠를 뛰어넘고 싶어요.”

    이우주는 결연한 눈빛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아빠를 닮고 싶고, 또 아빠의 명예를 더욱 빛나게 해 줄 아들이 되고 싶지만…… 그 이전에 한 사람의 게이머로서 아빠의 경지를 뛰어넘고 싶어요.”

    그 말을 들은 마몬은 희미하게 웃었다.

    [옛날 생각나는구나. 나에게도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마몬 씨에게도요?”

    [그래. 스승님을 뛰어넘기 위해 참 부던히도 애썼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넘긴 것도 모자라 그렇게 해서 탄생시킨 수도 없이 많은 걸작들을 내 손으로 파괴하고 다시 만들고, 또 파괴했지. 가령 옥좌라던가…….]

    마몬의 얼굴에는 쓴웃음이 묻어나고 있었다.

    그는 이우주의 어깨를 짚으며 말을 이었다.

    [초조하고 불안한 것은 좋다. 하지만 그것이 네 마음을 학대하도록 놔두지는 말아라. 너를 초조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네 아버지가 아니라 네 자신일 뿐. 내가 아는 네 아버지는 너를 재촉하지도, 다그치지도 않은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너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야.]

    마몬은 말미에 ‘스승님과 사제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이라는 말을 조그맣게 덧붙였다.

    “…….”

    이우주는 잠시 침묵했다.

    ‘세상은 아름답고 싸워 볼 가치가 있다.’

    지평선이 노을을 삼킬 적이면 아빠가 종종 했던 말이다.

    그땐 어려서 잘 몰랐지만 지금은 어쩐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마몬이 이우주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

    그 위에 올라가 있는 아이템 하나를 확인한 이우주의 두 눈이 확 커졌다.

    어느새 정오가 된 지금, 그것은 이우주의 마음속 어둠을 환하게 날려 버릴 정도로 눈부신 황금색 빛을 내뿜고 있었다.

    한손무기.

    창이라고 하기에는 짧고 몽둥이라고 하기에는 긴.

    한 손에 쥐기에는 약간 벅차지만 양손으로 쥐기에는 조금 넉넉한.

    -<태양살(太陽殺)의 몽둥이> / 한손무기 / A+

    불을 찢는 힘이 담겨있는 파사(破邪)의 몽둥이.

    천년 묵은 복숭아나무 가지를 공들여 깎아낸 걸작이다.

    -공격력 +3,000

    -특성 ‘융합(融合)’ 사용 가능 (특수)

    -특성 ‘곤장형(棍杖刑)’ 사용 가능 (특수)

    -특성 ‘반정(反正)’ 사용 가능 (특수)

    -특성 ‘후예사일(后羿射日)’ 사용 가능 (특수)

    “……뭐지 이게?”

    이우주는 황금빛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나무 몽둥이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우선 3천에 이르는 준수한 깡 공격력이 쓸 만하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무려 4개나 붙어있는 특수 옵션이었다.

    “두 개는 아는 특성이고 나머지 두 개는 모르는 특성인데? 뭐에 쓰는 거지?”

    이우주는 자신이 아는 모든 지식들을 동원해 보았다.

    특성: <융합>

    ↳이 아이템은 세트 아이템입니다.

    융합할 짝 아이템을 찾아보세요.

    특성: <곤장형(棍杖刑)>

    ↳적에게 유효타를 한 번 넣을 때마다 최소 한 번에서 최대 아홉 번의 추가타가 들어갑니다.

    추가타는 피할 수 없으며 반드시 명중합니다.

    특성: <반정(反正)>

    ↳ ?

    특성: <후예사일(后羿射日)>

    ↳ ?

    융합 특성은 모두가 알고 있는 희귀 특성이다.

    뎀 세계관 속에 존재하는 극소수의 세트 아이템들, 이것들은 따로 떨어져 있을 때보다는 하나로 합쳐져 있을 때에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

    가령 아카오니의 발가죽이나 아오오니의 발가죽이 바로 그런 경우에 속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곤장형 특성. 이것 역시도 찾아보기 드문 희귀 특성이었다.

    한 대를 때리면 랜덤으로 1~9대의 추가 타격이 들어가는 스킬.

    그것은 이우주가 이미 보유하고 있는 롤모델 특성과 연계될 수 있는 좋은 공격형 특성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머지 두 개는 완전히 처음 보는데. 어디에 쓰는 걸까?”

    ‘반정’. 그리고 ‘후예사일’.

    혹시나 해서 바로 검색엔진에 키워드를 넣고 돌려 보았지만 수없이 많은 게시물과 자료들 중 어디에도 위의 두 특성들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한편, 마몬은 입을 열었다.

    [그날 내가 덤벼들었다가 호되게 당했던 그자…… 그자가 쓰던 몽둥이를 재현해 만든 것이다. 완벽하게 똑같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자가 마지막으로 모습을 감추었던 언데드 전당에서 분명 도움이 될 게야.]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꼭 의뢰를 완수해 보이겠습니다.”

    이우주는 마몬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때쯤 해서 저쪽에 로그인을 알리는 흰 빛무리가 보인다.

    이산하와 솔레이크가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어이! 먼저 와 있었네!”

    “무기 받았나? 뭐 받았나? 이제 레이드 시간?”

    이우주는 다가오는 파티원들을 향해 새로 얻은 무기를 보여 주며 말했다.

    “이제부터 제대로 시작해 보자고.”

    태양살의 몽둥이.

    어째 이 비밀 많은 아이템과는 꽤나 오랜 시간을 함께하게 될 듯한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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