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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897화 (897/1,000)
  • 외전 23화 언데드 전당 (2)

    <언데드 전당> -던전 등급: A+

    -언데드의 성지.

    미처 죽지 못한 이들의 넋이 서열화되고 계급화되어 있는 복마전(伏魔殿).

    살아생전 싸움을 즐겼거나 유난히도 원한이 강했던 극소수의 망자들이 이곳에 입성한다.

    ⤷사망 경험이 1회 이상인 플레이어에 한해 입장 가능합니다.

    ⤷이 던전에서는 장비 아이템의 내구도 소모가 몹시 격심합니다.

    언데드 전당.

    이것은 어떤 던전인가?

    이우주는 이 던전을 목표로 삼게 된 계기를 이산하와 솔레이크에게 설명했다.

    “공략 난이도가 무척이나 높은 던전이야. 아직까지도 진(眞) 보스가 한 번도 잡히지 않은 몇 안 되는 던전이기도 하고.”

    그러자 이산하와 솔레이크가 반응을 보였다.

    레벨을 허투루 먹은 것이 아니듯, 그녀들 역시도 이 던전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어라? 언데드 전당이라면 나도 아는데. 거기 그거잖아. 대격변 이후로 엄청나게 강해진 언데드들이 출몰하는 곳.”

    “나는 안다. 그곳의 보스. 스켈레톤 킹. 강하긴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다른 랭커들. 여러 번 잡은 적 있다.”

    누나들의 말에 이우주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곳의 진짜 보스는 따로 있어. 내 추측에 의하면 말이야.”

    이우주는 지금껏 언데드 전당을 공략했던 이들의 수많은 실패 사례들을 스크린에 모아 띄웠다.

    -O월 X일, 랭커 OOO- 7인 파티로 레이드 개시. 탱커들의 방어구 내구도 격감으로 인해 중도 포기.

    -Z월 N일, 랭커 ZZZ- 12인 파티로 레이드 개시. 모든 파티원들의 무기와 방어구 파괴로 인해 전멸.

    -X월 O일, 랭커 XXX- 3인 파티로 레이드 개시. 원딜의 무기 내구도 격감으로 인해 중도 포기.

    -O월 O일, 랭커 NNN- 9인 파티로 레이드 개시. 중요한 순간 딜러의 무기 파괴로 인해 전멸.

    .

    .

    어찌나 열심히 조사했는지 자료의 양만 몇십 페이지가 넘는다.

    이우주는 말을 이었다.

    “이 던전의 공략 난이도가 높은 이유는 중간 보스 몬스터가 강하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사실 그보다 더 주된 요인은 바로 ‘내구도’야.”

    언데드 전당은 기묘한 힘을 가지고 있는 던전이다.

    이 공간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가만히만 있어도 놀라운 속도로 아이템의 내구도가 줄어든다.

    “모든 장비를 썩게 만드는 힘. 그것 때문에 사람들은 이 던전을 피하지. 진 보스 몬스터가 아직까지 한 번도 공략된 적이 없는, 아니 사람들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이유가 바로 그거야.”

    “어이 동생, 확실한 거야?”

    “아니. 내가 말하는 것은 모두 방구석에서 한 추리에 불과하지. 그리고 지금부터 그 가설을 증명하러 가는 거고.”

    “흐음~ 진 보스 몬스터가 있다는 건 어째 좀 안 믿기기는 한다. 지금껏 그 던전에 얼마나 많은 도전자들이 들어갔었는데. 혹시 던전 보스인 스켈레톤 킹이 마몬 씨가 말했던 ‘던전의 주인’이 아닐까?”

    “마몬 씨는 전성기 때 그 위험등급이 S+급이었지. 그런 사람이 인연이 있다고 말할 정도라면 분명 엄청난 고위급 몬스터일 거야. 스켈레톤 킹이 대격변 이후 상향을 먹어서 강해지긴 했지만 고작 A+급, 심지어 그 전에는 C+급에 불과했어. 격이 안 맞잖아.”

    그 외에도 이우주가 진 보스 몬스터가 따로 있을 것이라 추측하는 이유들은 많았다.

    1. 언데드 전당의 특징인 ‘내구도 감소’ 현상을 일으키는 주범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스켈레톤 킹은 해당 특성을 보유하고

    있지 않음)

    2. 던전 안에서 파괴된 아이템들의 공통점은 전부 석재나 철재 등 광물로 만들어져 있었다는 것. 혹은 제련 과정에서 불의 기운을 극도로 많이 함유하게 된 것들이었다는 사실.

    3. 유일하게 나무로 된 아이템만은 내구도 소모가 심하지 않았다는 것.

    4. 방금 전 마몬이 했던 대사와 부여받은 히든 퀘스트……

    .

    .

    이우주는 이산하와 솔레이크에게 다시 한번 설명했다.

    “랭커들의 레이드 실패 사례들의 99%가 아이템 내구도 감소 때문이었어. 또 내구도가 심하게 감소된 아이템일수록 불의 기운과 연관이 깊었지. 그래서 불의 기운과 먼 아이템을 제작해서 던전 안에 들어간다면 어떨까 한 거야.”

    “그렇구나. 그래서 나무로 만들어 달라고 한 거였군.”

    “Woooood! 기왕이면 절대 격파당하지 않는 나무로. 백오동나무를 추천.”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한편, 마몬은 계속해서 오래된 기억을 회상하고 있었다.

    그것은 드머프 클레망소 마몬, 그가 아직 타락하기 전의 이야기였다.

    “엥? 마몬 씨를 타락시킨 것은 부패의 악마성좌 벨제붑 아니었나?”

    “쉿. 따로 뭔가가 More 있었던 모양.”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언제 챙겨 왔는지 모를 팝콘 봉지를 뜯으며 소파에 걸터앉았다.

    이우주 역시도 긴장한 기색으로 화면을 뚫어져라 노려본다.

    이윽고. 필름이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제 일처럼 생생한 기억, 아주 또렷한 화질로.

    *       *       *

    마을 중앙 광장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수레에서 젊은 청년들이 쩌렁쩌렁 고함치는 것이 들려온다.

    [곧 ‘선택의 날’이 다가옵니다! 고르딕사 님에게 한 표 부탁드립니다! 황금신을 정령왕으로!]

    [쌀값보다 금값이 더 높다! 실리를 추구하자!]

    [고르딕사 정령왕님 만세! 황금청년단 만세!]

    수레와 말을 모는 청년단원들은 자극적인 구호를 외치며 마을 전역을 누빈다.

    그리고 그 맨 앞에는 마몬이 있었다.

    혈기왕성하던 청년 시절의 그는 무리의 제일 앞쪽에서 말을 몰아 달린다.

    바로 그때, 마을을 벗어나 한적한 어귀로 접어들던 마몬의 앞으로 낯선 존재가 나타났다.

    검은 누더기를 걸친 채 나무 그늘 밑에서 쉬고 있던 나그네.

    “…….”

    예전에 떠돌이 용 사냥꾼 조손에게 칼을 거저 내주었던 적이 있는 마몬으로서는 이런 부류의 방랑자들이 그리 달갑게 여겨지지 않았다.

    “이봐! 마을에서 나가라! 요즘 같이 어수선한 시국에는 외부인을 받지 않아!”

    “…….”

    나그네는 마몬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마몬은 화가 났다. 지금껏 자신의 거구와 힘 앞에서 이렇게 태연한 이는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기 낯선 자야. 내 말이 안 들리나?”

    마몬의 기세가 험악해짐에 따라 주변에 있던 몇 명의 청년들이 말에서 내렸다.

    “왜 말로 하면 안 들어?”

    “여기저기 좀 두들겨 주랴?”

    “꺼지라고 할 때 꺼졌으면 몸뚱이는 성히 보존할 수 있었잖아.”

    마을에서도 소문난 불량아들이 나그네를 둘러쌌다.

    하지만. 그 다음으로 일어난 일은 아직 말 위에 올라타 있던 마몬으로서는 믿지 못할 것이었다.

    퍼퍼퍽-

    몽둥이. 복숭아나무로 만들어진 커다란 몽둥이가 허공을 휘저었다.

    마치 커다란 화살에서 화살촉만 뗀 듯한 외형의 이 묵직한 둔기는 순식간에 마을 청년들의 머리통을 깨트려 놓았다.

    “……!?”

    마몬은 황급히 말에서 내려섰다.

    “이놈!”

    망치와 낫을 들고 달려드는 마몬을 보며 나그네는 희미하게 웃었다.

    “팔 힘이 좋구나. 내게 활을 배워 볼 생각 없느냐?”

    “개소리 지껄이지 마라.”

    마몬은 낫과 망치를 휘둘렀다.

    콰콰쾅!

    말라 죽은 나무가 통째로 부러져 나갔고 거대한 바위가 단박에 깨져 바스라졌다.

    나그네는 검은 누더기를 휘날리며 멀찍이 물러섰다.

    그리고는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으음. 하긴. 나도 이제 활을 놓았지. 두 번 다시 잡지 않기로 했건만 자꾸 이리 미련이 남아서야…… 하지만 실로 아까운 재능이로다.”

    나그네는 몽둥이를 들어 마몬의 망치를 막아냈고 이내 그를 멀리 날려 버렸다.

    “컥!?”

    마몬은 땅바닥에 나뒹굴게 되었다.

    자신의 힘이 통하지 않는 상대는 처음이다.

    그 사실에 좌절과 혼란, 절망감이 엄습해 오고 있었다.

    하지만 마몬은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제일 잘하는 걸로 승부하면 된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마몬은 부리나케 움직였다.

    …따앙!

    쇠망치가 방금 전에 깨진 바위를 내리찍었다.

    …따앙! …따앙! …따앙! …땅!

    나그네가 마몬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화르륵!

    이변이 일어났다.

    돌과 부딪친 망치가 빚어낸 불똥이 마른 낙엽과 고사목의 톱밥 부스러기에 닿아 이내 커다란 불길로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

    순간, 나그네의 발걸음이 멈칫했다.

    “……불!”

    나그네는 불길을 피해 뒤로 휘적휘적 물러났다.

    마치 평생을 어둠 속에서 살아온 짐승이 난생 처음 겪어 보는 불빛에 놀라기라도 한 양.

    그것을 본 마몬은 씩 웃었다.

    “대장장이는 쇠와 불에 강하지.”

    이윽고, 마몬은 불길을 찢으며 나그네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검은 로브 안으로 타오르고 있는 나그네의 황금색 눈빛은 일순간 부활했던 마몬의 자신감을 단숨에 사그라트려 버릴 만큼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불을 찢는 힘이라.”

    나그네는 차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실로 끔찍한 음성으로 말했다.

    “……내 앞에서 불을 켜지 마라.”

    그것은 마치 좁고 깊은 곳에 갇혀 죽어 가는 짐승의 소리.

    후회와 자기혐오의 늪 바닥에 가라앉은 익사자의 유언과도 같았다.

    이윽고, 나그네의 몽둥이가 날아든다.

    ‘내가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그것이 동료들을 모두 잃어버린 마몬이 제정신으로 했던 마지막 생각이었다.

    *       *       *

    [그 이후로 나는 강한 힘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변명일 수도 있지만, 그날의 기억은 꽤나 강렬했지. 나를 더욱 더 초초하고 충동적이게 만들었으니까.]

    마몬은 회상을 종료한 뒤 이우주를 돌아보았다.

    [어떤가. 내 신세를 대신 갚아 준다면 나는 너를 위한 무기를 만들어 줄 수 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우주는 바로 퀘스트 수락 버튼을 눌렀다.

    <히든 퀘스트 ‘마몬이 타락하게 되었던 계기-‘스승을 배신한 자’’>

    <히든 퀘스트 완료 조건: ‘언데드 전당의 진(眞) 보스’ 처치>

    ‘……역시나!’

    이우주의 판단이 확신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언데드 전당에는 분명 진짜 보스가 따로 있었고 그는 마몬의 회상에 등장했던 검은 로브의 나그네일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그 뒤로 유구한 세월이 흘렀으니 나그네가 어떤 상태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언데드 전당의 보스 몬스터로 군림하고 있는 이상 아마도……’

    그 말로(末路)가 어땠을지는 대충 짐작이 간다.

    그때, 문득 이우주의 눈길을 사로잡는 퀘스트 문구가 있었다.

    <‘스승을 배신한 자’>

    ‘이건 뭐지? 마몬 씨의 과거 때문에 붙은 부제인가?’

    과거 마몬은 탐욕의 악마성좌가 되는 과정에서 스승인 아르파공을 공격했던 적이 있었다.

    ‘……아마 그 때문에 붙은 자잘한 타이틀인 모양이군.’

    이우주는 퀘스트의 제목에 대해서는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이윽고, 마몬은 망치와 정을 집어 들었다.

    [내일 정오, 해가 가장 높게 뜰 때 이곳으로 와라. 그때까지 무기를 완성해 놓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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