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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896화 (896/1,000)

외전 22화 언데드 전당 (1)

[아니. 너 누구냐고.]

“…….”

이우주의 걱정과는 달리 아르파공은 이우주를 전혀 몰라보는 듯했다.

결국 마몬이 슬쩍 귀띔을 해 주고 나서야 아르파공은 이우주를 알아보았다.

[어이쿠! 은인의 아들이었구만! 제 아버지보다 훨씬 더 예쁘게 생겨서 미처 몰라봤네.]

“……네, 뭐.”

[어서 들어오게. 시간이 늦어 대접이 변변치 못할 것 같아서 걱정이구만. 어서 들어와.]

이우주는 아르파공의 환대를 받으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이산하와 솔레이크 역시도 마몬을 따라 테이블 앞에 앉았다.

집 안은 제법 아늑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소파와 등불, 안락의자 등등이 포근하고 안락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와, 저 소파 엄청 푹신해 보인다!”

이산하는 응접실 구석에 있는 커다란 소파를 보고 그곳으로 펄쩍 뛰며 엉덩이를 댔다.

그러나.

…콰직!

순간 엉덩이로 밀려오는 격통에 이산하는 빽 하고 비명을 내질러야 했다.

“어…… 엄청 딱딱해…… 이거 돌 소파야?”

보기에는 푹신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가구들은 전부 돌이나 쇠로 되어 있었다.

배게 안에 들어 있는 톱밥들 역시도 하나하나가 다 쇠를 깎는 과정에서 생긴 부스러기들이다.

[허허허- 어디든 편하게 앉게. 내 집처럼 사용해도 좋아.]

아르파공은 소파 위에 걸터앉았다.

분명 단단한 돌로 되어 있었던 소파는 아르파공의 체형에 맞게 부드럽게 패이며 굴곡을 형성한다.

과연 돌과 쇠 등 광물을 자유자재로 다룬다는 드워프의 힘이었다.

“……근데 저 사람은 누구지?”

이우주가 고개를 돌리자 이산하와 솔레이크 역시도 시선을 옆으로 틀었다.

소파 옆에는 흰 머리칼의 NPC 하나가 입에 호미를 문 채 무릎을 꿇고 앉아 두 팔을 머리 위로 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이웃집 청년 싱클레어>

아르파공은 그를 보며 심기 불편한 표정으로 잔소리를 했다.

[싱클레어 이 녀석아!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더니! 이제 나이도 먹을 만치 먹은 녀석이 아직까지 도둑질이나 하고, 아주 이참에 싹수를 고쳐 주마!]

담뱃대로 싱클레어의 머리를 딱 때리는 아르파공.

그런 스승을 마몬이 뒤에서 말렸다.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습니까? 애가 그럴 수도 있지요.]

[어허! 왜 나를 나쁜 놈 만드느냐 이 녀석아! 도둑질을 했으면 혼쭐이 나야지! 그리고 이놈은 왜 맨날 호미만 훔쳐 가!?]

깐깐한 아르파공 노인과 그를 말리는 마몬.

둘은 서로 마주 보다가 어느덧 피식 웃음을 흘린다.

그것을 본 이우주가 이산하와 솔레이크에게 말했다.

“옛날에는 저 두 사람의 대화가 반대였다고 하더라고.”

“뭐? 어떻게?”

“아르파공 씨가 유한 입장이었고 마몬 씨가 강경한 입장이었대. 근데 지금은 둘의 태도가 뒤바뀐 것 같아. 모종의 사건 이후 서로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존중하게 되었다는 설정이라나? 뭐, 싱클레어 씨가 좀도둑인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헤에…… 믿을 수가 없네. 아르파공 쟝은 데린쿠유에서도 소문난 짠돌인걸?”

이산하 이우주 남매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벨럿이 주방에서 무언가를 내왔다.

[인간들은 야식을 좋아한다지?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시게.]

뜨거운 김이 올라오고 있는 그릇.

안에는 유황이 녹아든 지하수와 막 담금질해 뻘건 금괴가 올라가 있었다.

“이, 이거 먹을 수 있는 건가?”

“산하. 딱 보면 모르나. 아까 소파에서도 너의 궁둥이 Broken 했다. 섭취 시 바로 혓바닥 Barbecue 가능한 부분.”

솔레이크의 대답에 이산하는 시선을 슬쩍 옆으로 돌렸다.

순간 이산하와 이우주의 눈이 마주친다.

‘야, 이거 어떻게 거절하냐?’

‘호감도를 위해서는 최대한 좋게 말해야 할 것 같은데.’

남매가 빠르게 시선을 교환하고 있을 때.

“잘 먹겠다.”

솔레이크가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골렘을 소환했고 골렘은 벨럿이 준 차와 다과를 맛있게 먹어 치웠다.

손님이 대접한 음식을 잘 먹는 것만큼 집주인에게 있어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어찌되었든 간에 솔레이크가 음식을 모두 다 비우자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벨럿과 아르파공, 마몬의 호감도 게이지가 반짝거리며 조금씩 상승한다.

그 틈을 타서 이우주는 미리 준비해 놓았던 회심의 선물을 꺼내 들었다.

“드워프들은 수은을 좋아한다지?”

“맞아. 귀한 술 정도로 통하는 모양이야.”

이우주는 미리 준비한 수은 병을 벨럿에게 건넸다.

[오오, 이것은 수은이 아닌가? 여기서는 귀한 물건인데.]

아니나 다를까, 벨럿과 아르파공은 반색을 하며 기뻐했다.

호감도 게이지가 반짝반짝 채워지는 것을 본 이우주는 기회다 싶어 말문을 열었다.

“혹시 무기 제작을 좀 의뢰할 수 있을까요?”

[당연하다. 이곳은 대장장이들의 마을. 못 만드는 것이 없지.]

벨럿은 자부심을 드러내며 말을 이었다.

[창? 칼? 활? 투구? 방패? 갑옷? 마름쇠? 뭐든지 만들 수 있다. 병장기부터 농기구까지, 드워프가 만들지 못하는 것은 없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것이 언제나 뜻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이우주가 내민 설계 의뢰서를 받아 든 벨럿은 당혹스러운 빛을 감추지 못하며 입을 열었다.

[이게 뭐냐? 철을 쓰지 않은 무기를 제작해 달라고?]

“정확하게는 불을 쓰지 않고 무기를 만들어 달라는 겁니다. 형태는 적당히 길이가 있으면서도 휴대하기 편한…… 긴 송곳이나 작살 같은 것이 좋겠고요.”

이우주가 요구하는 바는 독특했다.

불의 기운이 일절 스며들지 않은 무기.

그러니까 무기 재료를 제련할 때 용광로나 풀무 등을 일절 쓰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벨럿과 아르파공은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흐음. 불의 기운이 조금도 깃들지 않은 무기라.]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요구였다.

왜냐하면 철광석 등의 광물들은 제련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불을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돌을 깎아 만들 수도 없었다.

돌 자체가 지층 밑에서 오랜 시간 열과 압력에 의해 퇴적되고 압축되어 생겨난 물질이기 때문.

[유일하게 불의 기운을 배제할 수 있는 재료가 있다면 나무인데…… 무엇에 쓰려고 그러는가?]

“한 던전을 공략하기 위함입니다. 어디냐면…….”

이우주가 막 입을 열어 대답하려는 순간.

[그 무기. 내가 만들어 주마.]

뒤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데린쿠유의 대장장이 ‘마몬’>

마몬.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그가 이우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꼭 만들어 주고 싶군.]

“아빠와의 인연 때문인가요, ‘드머프 클레망소 마몬’ 씨? 그런 것 때문이라면 저에게 잘해 주실 필요 없습니다. 저는 거저 얻는 것을 싫어하…….”

[아니. 네 아버지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이윽고, 마몬의 눈빛이 진지하게 변했다.

[네가 도전하려고 하는 던전은 혹시 ‘언데드 전당(殿堂)’이 아니더냐?]

“어엇!? 그걸 어떻게?”

이우주가 놀란 기색을 보이자 마몬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불의 기운을 배제하고 가야 하는 곳이라면 그곳뿐이지. 그곳의 ‘까다로운 조건’들을 눈치챈 것이냐?]

“……확실한 건 아니죠. 랭커들이나 스트리머들이 실패한 사례를 쭉 연구하는 과정에서 가설을 세워 추리한 거니까. 그게 맞았는지 틀렸는지는 직접 부딪치면서 알아가 보려고요.”

[그런가. 눈썰미가 좋군. 역시 ‘그’의 아들인가.]

마몬은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순간, 이우주의 귓가로 요란한 알림음이 들려왔다.

-띠링!

<히든 퀘스트를 발견하셨습니다!>

<히든 퀘스트 ‘마몬이 타락하게 되었던 계기’>

<히든 퀘스트 발생 조건: ‘데린쿠유의 대장장이 마몬에게 특정 무기 제작을 의뢰’>

<히든 퀘스트 수행 제한: ‘메인 퀘스트-‘황금만능주의자’와 서브 퀘스트-‘기억의 습작’을 수행하지 않은 자’>

<히든 퀘스트 완료 조건: ‘???’ 처치>

<※이 퀘스트는 메인 퀘스트 ‘황금만능주의자’와 서브 퀘스트 ‘기억의 습작’을 수행하지 않은 플레이어에 한해서 수행 가능합니다>

.

.

이우주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메인 퀘스트인 ‘황금만능주의자’와 서브 퀘스트인 ‘기억의 습작’은 모두 뎀1에서 아빠가 클리어했던 초고난이도의 퀘스트였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전혀 새로운 히든 퀘스트가 떴다.

아빠가 밟지 못했던 궤적, 그 누구의 발자취도 남아있지 않은 전혀 새로운 루트였다.

그것도 대격변 이전의 세계관과 연결되어 있는 미공개 설정에 대한!

‘……아빠도 발견하지 못했던 퀘스트야! 거기다가 아빠는 받을 수조차 없게끔 제한이 걸려있어. 이건 명백히 후발주자를 키워 주기 위한 퀘스트다!’

이우주는 손에 땀이 맺히는 것을 느꼈다.

YES. YES. YES. YES. YES. 무조건 YES다.

이우주는 혹시 실수로라도 퀘스트를 거절할까 봐 무조건적으로 수락 버튼을 연타하고 있었다.

이윽고, 마몬이 입을 열었다.

[언데드 전당. 그곳의 주인과는 나도 나름 인연이 있어서 말이야……]

동시에 마몬이 회상하고 있는 기억이 영상처럼 재생되기 시작했다.

‘어제 일처럼 생생한 기억’이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표현해 내는 고퀄리티의 트레일러 영상.

그 속에서는 과거 마몬의 타락에 깊이 관여했던 듯 보이는 한 남자의 음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내 앞에서 불을 켜지 마라.’

그것은 마치 좁고 깊은 곳에 갇혀 죽어 가는 짐승의 것과도 같은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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