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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893화 (893/1,000)
  • 외전 19화 롤모델 (7)

    츠츠츠츠츠츠츠……

    죽어라고 내달려 도그숲의 안개 속을 빠져나오자 도플갱어들은 사라졌다.

    죠르디의 얼굴을 한 검은 그림자들은 언제 이 세상에 있었냐는 듯 숲속의 음울한 어둠 속으로 녹아들어 버렸다.

    “만신창이네 아주.”

    “나는 알았다. 죽는 줄. 간발의 차이.”

    “…….”

    이산하와 솔레이크, 이우주는 너덜너덜해진 HP바를 바라보았다.

    잡몹에게 평타 몇 대만 더 허용해도 사망각, 실로 위험한 상태였다.

    “포션! 포션!”

    “마시지 마라. 피부에 양보해라. 링겔로 꽂는다.”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황급히 인벤토리 안의 모든 포션들을 죄다 꺼내 샤워하다시피 했다.

    “와, 진짜로 죽을 뻔했네. 레이드까지 다 성공시켜 놓고.”

    모든 위험이 사라졌음을 몇 번이고 확인한 이산하는 한숨을 내쉬며 주저앉았다.

    텅 빈 화살통, 상처투성이의 활, 그리고 솔레이크가 소환한 골렘의 전신에 난 칼자국들을 보면 숲을 빠져나오기까지의 전투가 얼마나 격렬한 것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우주 역시 포션을 마시며 말했다.

    “후. 중간부터는 소란에 이끌린 다른 도플갱어들까지 접근해 오는 바람에 큰일 날 뻔했지. 누나의 도플갱어와 솔레이크 누나의 도플갱어들까지 생겨나는 바람에.”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니가 그 도플갱어들을 안 공격하는 바람에!”

    “미안. 하지만 나는 터치를 해야 특성을 카피할 수 있잖아. 누나의 모습을 한 도플갱어들을 만지고 싶지는 않았어. 손소독제라도 있으면 모를까.”

    “이, 이 쉑……!? 너 일로 와 봐!”

    이산하와 이우주는 티격태격 싸우기 시작했다.

    한편, 솔레이크는 자신의 골렘을 점검하고 있었다.

    “내 골렘. 많이 파괴. 아프겠다. 호~”

    그녀는 슬픈 표정을 지은 채로 만신창이가 된 골렘을 수리하고 있었다.

    -<꿈틀거리는 화산탄 골렘> / 골렘 / A

    용암굴 속의 뜨거운 화산탄으로 제작된 골렘.

    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알 수 없다.

    거대한 몸 이곳저곳이 칼자국으로 인해 심각하게 파괴된 상태.

    이글거리던 불길은 아예 다 꺼져 있었다.

    여기저기 깨지고 내부의 핵마저 차갑게 식어 버린 화산탄 골렘은 상당히 볼품없어 보였다.

    이산하는 골렘의 몸을 손으로 툭툭 두드려 보았다.

    와자작-

    손가락을 댈 때마다 조금씩 부서져 내리는 골렘의 피부를 본 이산하는 미간을 조금 찡그렸다.

    “근데 예전부터 느낀 건데…… 이 자식 골렘 주제에 왜 이렇게 잘 부서져? 뜨거운 불길을 뿜어내는 건 좋은데 내구도가 좀 약하지 않아? 등급도 A급이면 미묘하고…….”

    “나는 좋다. 내 골렘. 힘들게 얻은 녀석. 무시하지 마라.”

    “무시하는 게 아니라 비효율적인 것 같아서. 차라리 그냥 평범한 시판용 머드골렘이나 우드골렘을 쓰는 게 안 낫나 싶네. 상점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고 대리점이 많으니 아무데서나 수리하기도 편하잖아. 또 이 녀석을 운용하는 마나면 다른 골렘 세 구는 운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여러모로 손 많이 가는 중고 외제차보다는 신품 국산 차가 훨씬 낫지 않나…….”

    “놉! 내 애착인형! 내 애착골렘! 나는 이 녀석, 버리지 않아!”

    “어휴, 뭐 그러든가. 너 맘대로 해라. 다음 레이드 때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되어도 난 몰라.”

    이산하 역시도 간이 수리키트를 꺼내 솔레이크의 골렘 수리를 돕는다.

    “저도 도와드려요?”

    “됐다. 나와 산하면 충분.”

    솔레이크는 손사래를 치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이우주를 향해 씩 웃어 보였다.

    “그리고 이제. 말 놔라. 우리는 파티. 너 꽤 멋진 녀석.”

    “……익숙해지면 차차 놓을게요.”

    “알겠다.”

    “그럼 할 거 해. 나는 보상 받은 거 확인 좀 하고 있을게.”

    “……빨리 익숙해지는 편? 알겠다.”

    솔레이크와 이산하는 계속해서 골렘을 수리한다.

    팔, 다리, 머리, 옆구리 등등 많은 곳이 부서진 골렘의 몸.

    ‘골렘…… 많이 부서졌네. 치열하긴 했구나.’

    이우주는 천천히 수리되어 가는 화산탄 골렘의 모습을 빤히 지켜보다가 조용히 로그아웃 버튼을 눌렀다.

    무얼 얻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앞으로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       *       *

    -띠링!

    [로그아웃 하셨습니다]

    [다음에 또 와 주세요]

    .

    .

    이우주는 캡슐에서 나왔다.

    현실로 돌아왔지만 아직도 게임 속에 있는 듯 눈앞에 상태창이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이우주>

    LV: 31

    HP: 310/310

    호칭: 초보 모험가

    -<도플갱어의 링> / 반지 / S

    꼭 닮고 싶은 존재를 향한 강렬한 열망이 깃들어있는 반지.

    착용하고 있다 보면 상대방을 점점 닮아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방어력 +100

    -특성 ‘롤모델’ 사용 가능 (특수)

    도플갱어가 떨군 롤모델 특성의 반지, 상당히 상징성 있는 조합이 아닐 수 없다.

    “그래. 레벨이 31로 껑충 뛰었었지. 가장 힘든 첫 걸음을 성공적으로 뗐어.”

    그리고 짭핑크 고인물을 잡은 덕분인지 S급 반지에 원하던 특성인 ‘롤모델’이 붙어 떨어졌다.

    이산하의 어마어마한 행운이 깃든 결과라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이우주가 침대에 누워 한참 동안을 더 고민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띵동-

    현관문에서 벨소리가 났다.

    이우주가 밖으로 나가 문을 열자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Oh. 우주. 나도 로그아웃. 바로 택시 타고 왔다.”

    솔레이크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마법사 로브가 아니라 트레이닝 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이기에 다소 낯설다.

    이우주는 어색한 태도로 중문을 열어 주었다.

    “누나는 방에 있어요.”

    “말 놓기로!”

    “아 참. 그랬지. 누나는 방에 있…….”

    때마침 저쪽 방문이 열렸다.

    “요이, 솔레이크~”

    방문으로 막 팔다리가 나오려는 순간.

    “옷 좀 쳐 입고 다니라고 이 변태야!”

    이우주가 냅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수면 바지와 박스 티를 걷어찼다.

    그러자 방문 밖으로 나왔던 팔다리는 놀라운 운동신경으로 그것들을 낚아챘다.

    주섬주섬-

    이윽고, 목 늘어진 박스티와 헐렁한 수면바지를 입은 이산하가 손을 흔들며 방 밖으로 나왔다.

    그 모습을 본 이우주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가슴을 쓸어내린다.

    “휴. 눈 썩을 뻔했네.”

    “이 쉑이 진짜, 남이사 집에서 벗고 다니든 입고 다니든.”

    “제발 아빠 같은 말 좀 하지 말아줘.”

    이우주의 간곡한 요청을 이산하는 사뿐하게 씹어 버렸다.

    솔레이크의 옆 소파에 앉은 그녀는 동생을 향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래. 원하던 거 얻어서 잘 됐네. 앞으로는 뭘 할 생각이야?”

    “이건 첫걸음일 뿐이고, 이제 두 번째 걸음을 걸어야겠지.”

    태양룡 바이어스. 그리고 오만의 악마성좌 루시퍼.

    그 둘의 침공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아빠도 분명 레이드를 준비하고 있을 거야. 그보다 빨리 강해져야 해.”

    “흠, 뭔가 생각해 놓은 전략이 있어?”

    “당연히 있지.”

    이우주는 눈을 반짝 빛냈다.

    “예전에 아빠의 기반이 되었던 초창기 3신기 메타에 대해 기억해?”

    그 말에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어…… 그러니까, 샌드웜의 망토, 바실리스크의 갑옷, 어둠 대왕의 반지였던가?”

    “맞다. 강한 공격에 피격. 그 뒤 앙버팀 특성으로 생존. 패륜아 특성의 반사 데미지. 그리고 혈액포식자 특성으로 피흡. 죽지 않는 변태 메타.”

    그 메타는 훗날 최단 시간 내에 정점으로 가는 공식으로 여겨져 무수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근데 결국은 피지컬이 안 돼서 소화를 못 하는 극악의 메타로 평가받았지?”

    “맞다. 자칫하면 죽지 않고 고통만 받는 메타. 차라리 죽는 게 나은. 셀프 고문형에 처해질 가능성 높음.”

    두 누나의 말에 이우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나의 3신기 메타라는 걸 만들어 볼 생각이야.”

    아주 오래 전부터 세워 왔던 계획의 첫 시작이었다.

    이우주에게 다음 계획이 있음을 눈치챈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물었다.

    “그래서, 다음 행선지는?”

    “우주. 다 계획이 있다. 어떤 몬스터. 사냥 예정?”

    역시나 이우주는 바로 대답했다.

    “아빠가 처음으로 잡았던 던전 보스를 잡으러 갈 생각이야.”

    그 말에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동시에 대답했다.

    “아빠가 처음으로 사냥했던 던전 보스라면 유명하지.”

    “흔들귀의 미궁. 아카오니! Am I right??”

    하지만 이우주는 고개를 저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곤 하지. 아빠가 처음으로 잡은 던전 보스가 아카오니라고 말이야. 하지만 아니야.”

    “엥? 아니라고? 맞는데? 자서전에도 그렇게 나와 있고. 혹시 긴칼비늘 킹코브라나 젖거미를 말하는 건가? 둘이 싸움 시켜서 잡았었던?”

    “그것도 아니지. 걔네들은 필드보스지 던전보스가 아니잖아.”

    “이상하다. 아빠는 한번 사냥한 몹은 그 상위종까지 싹 다 털어 버리는 걸로 유명했는데. 그 와중에 숨어 있던 세계관 설정들까지 주렁주렁 고구마처럼 캐내곤 했고.”

    “맞아. 그리고 나는 아빠가 그 와중에도 끝까지 회수하지 못했던 숨은 설정들부터 우선 공략할 거야. 빡셀 테니 각오해.”

    “아니, 그래서 뭔데? 아빠가 회수 못했던 떡밥이?”

    이산하의 답답하다는 듯한 물음에 이우주는 그저 씩 웃을 뿐이다.

    “따라와 보면 알아.”

    상당히 자신감 넘치는 발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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