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891화 (891/1,000)

외전 17화 롤모델 (5)

<텔레포트 스크롤>

이우주의 인벤토리에서 튀어나온 아이템은 순간이동을 가능케 해 주는 스크롤 아이템.

즉 긴급 탈출용 생존템이었다.

그것을 본 죠르디는 순간 목구멍까지 치솟아 오르는 고함을 간신히 참아냈다.

‘미친놈아! 너 혼자 튀면 어떡해!?’

하지만 이내 그녀는 꾹 참고 상황을 좀 더 판단하기로 했다.

방금 전까지 이우주를 향해 무한한 신뢰가 담긴 시선을 보내던 이산하와 솔레이크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래. 그 두 여자가 말했지. 저 녀석은 절대로 생각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항상 다 계획이 있다고 했으니 분명 뭔가가 더 있을…….’

그러나. 죠르디는 이내 양 옆에서 귀청을 떨어트릴 듯 들려오는 고함들에 화들짝 놀라야 했다.

“야 이 생각 없는 새끼야! 니 혼자 튀냐! 이 검은 머리 짐승!”

“우주! 항상 계획이 있다! 근데 그게 지 혼자만 살 계획! 용서 못해!”

이우주를 향해 고래고래 욕을 하는 이산하와 솔레이크.

오히려 죠르디보다도 그녀들의 태세전환이 더 빠른 것이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이우주는 준비해 놓은 텔레포트 스크롤을 찢었다.

…파앗!

환한 빛무리가 일어나더니 허공에 차원문이 열린다.

이우주는 몸을 뒤로 물리는가 싶더니 그 포탈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

“…….”

“…….”

현장에 남은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어색한 침묵 속에 방치되었다.

이윽고.

[크르르르르……]

짭핑크 고인물이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것은 날카로운 깎단을 든 채 쏜살같이 들이닥쳤다.

“꺄아아악! 징그러워! 오지 마! 주겅!”

이산하가 본능적으로 화살을 발사했지만 짭핑크 고인물은 오지고 지리는 무빙으로 화살들을 모조리 피해 버렸다.

MISS!

솔레이크의 골렘이 날린 주먹도, 죠르디의 참격도 모조리 빗나가 버린다.

MISS! MISS!

짭핑크 고인물은 이윽고 세 여자의 앞으로 그 무시무시한 마수를 뻗쳤다.

……아니, 뻗치려 했다.

위이잉-

짭핑크 고인물의 등 뒤로 생겨난 포탈과 그 속에서 튀어나온 이우주의 머리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이봐! 이쪽이다!”

포탈을 열고 갑자기 나타난 이우주.

그는 방금 전 찢은 텔레포트 스크롤의 출구를 짭핑크 고인물의 등 뒤로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이산하가 동생을 향해 반갑게 소리쳤다.

“동생아! 돌아왔구나! 믿고 있었어!”

“욕하는 거 다 들었거든? 사람이 저리 믿음이 없어서야…… 쯧쯧.”

이우주는 황당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윽고, 어그로가 끌린 짭핑크 고인물은 뒤로 돌아 이우주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뿜어내는 피어가 한층 더 강해진 것이 아무래도 젤리에 대한 원한이 상당히 깊은 듯싶다.

하지만.

“아직 스크롤이 좀 남았지.”

이우주는 뒤로 빠지며 또 한번 텔레포트 스크롤을 찢었다.

…팟!

푸른 빛무리와 함께 둥그런 포탈이 생겨난다.

물리법칙을 왜곡시켜 서로 다른 두 공간을 이어주는 마나의 통로.

이우주는 돌아선 자세 그대로 포탈을 향해 다이빙했다.

츠츠츠츠츠-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이우주.

[……!]

짭핑크 고인물은 잠시 멈칫하는가 싶더니 포탈 앞에 멈춰 섰다.

어디로 끌려갈지 모르니 함께 차원이동을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바로 그때.

“여기란다.”

이우주가 머리를 쏙 내민 포탈은 이번에도 짭핑크 고인물의 등 뒤에 형성되어 있었다.

[크아악!]

짭핑크 고인물은 재빨리 뒤돌아 포탈을 찔렀지만 그것은 뒤로 삐죽 튀어나와 자신의 등을 찌를 뿐이었다.

핏-

하마터면 자신의 공격에 당할 뻔한 짭핑크 고인물은 이를 갈며 고개를 돌렸다.

휘릭-

이우주는 시간이 지나 캔슬된 포탈 밖으로 빠져나왔고 또다시 짭핑크 고인물을 향해 텔레포트 스크롤을 흔들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황소를 유인하는 투우사와도 같았다.

“어디 또 와 봐. 텔레포트로 피해 줄 테니까.”

[캬아악!]

이우주의 도발에 짭핑크 고인물은 분노의 포효를 내질렀다.

하지만.

“캬아악!”

짭핑크 고인물보다도 더 큰 분노를 토해 내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이산하다.

“꺔마! 너 그게 얼만 줄 알고 그렇게 펑펑 써 대는 거야!”

텔레포트 스크롤은 본디 매우 귀하고 비싼 아이템이다.

여벌의 목숨이나 다름없는, 자칫 게임의 밸런스를 위협할 수도 있는 희소 아이템이기에 가격도 매우 비싸다.

요 근래 받은 용돈과 도네로 번 수익을 탈탈 털어 텔레포트 스크롤 몇 장을 사 줬더니 그것을 이렇게 허무하게 낭비할 줄이야.

그래서 지금 이산하는 도발에 걸린 몬스터마냥 길길이 날뛰고 있는 것이다.

“너는 변변찮은 딜 수단도 없잖아! 근데 뭐하러 그렇게 어그로를 끌어! 아우, 방금 낭비한 스크롤이 다 얼마냐…… 어흑흑!”

“아직 몇 장 남았어. 조금만 기다려.”

“뭘 기다려! 그렇게 근거리에다가 포탈 만들 거면 차라리 블링크를 배워서 써!”

“블링크는 진짜 단거리 순간이동이잖아. 텔레포트처럼 장거리 이동이 안 되니까.”

“그래! 그 장거리용 아이템을 너는 지금 초단거리에 쓰고 있잖아! 그게 뭐 하는 낭비냐구!”

답답하다는 듯 외치는 이산하, 하지만 이우주의 눈빛에서는 확고한 신념이 느껴지고 있었다.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해.”

말을 마친 이우주는 이산하의 눈앞에서 또다시 스크롤을 찢었다.

…팟!

이번에도 역시 가까운 거리에 텔레포트 포탈의 입구와 출구가 생성되었다.

그러자 짭핑크 고인물의 행동 패턴도 바뀌었다.

어차피 포탈이 근처에 생기고 사라진다는 사실을 안 짭핑크 고인물은 이우주가 포탈 안으로 도망가면 그것을 끝까지 따라오기 시작했다.

위잉-

이우주가 포탈 안으로 몸을 던지면 짭핑크 고인물 또한 그 뒤를 따라간다.

위잉- 팟! 위잉- 팟! 위잉- 팟! 위잉- 팟! 위잉- 팟! 위잉- 팟! 위잉……

짧은 간격을 두고 계속해서 생겨나는 포탈의 출구와 입구.

그곳을 왔다갔다 들쭉날쭉하는 이우주와 짭핑크 고인물.

둘은 포탈과 포탈을 오가며 맹렬한 추격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악!]

몇 번 포탈을 오가고 난 뒤 그것이 별로 해로울 게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짭핑크 고인물은 이제 거리낌 없이 이우주를 따라 포탈로 뛰어들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또 몇 장인가의 텔레포트 스크롤이 허망하게 찢어져 버렸다.

“야! 도플갱어가 포탈도 타는데 이제 스크롤이 아예 아무런 의미도 없잖아!”

“이대로 가면 오링. 우주의 텔레포트 스크롤. And 산하의 포켓머니.”

“미쳤군. 그냥 자포자기한 건가…….”

이산하의 외침에 솔레이크와 죠르디 역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그러니까 세 여자가 이우주의 기행에 어느 정도 적응했나 싶을 바로 그 순간.

“아직 한 발 남았다.”

이우주가 마지막 텔레포트 스크롤을 찢었다.

…파앗!

허공에 생겨난 포탈.

이우주는 그것에 뛰어 들려다가 잠시 멈칫하고는 번개같이 바닥에 엎드려 버렸다.

타탁!

그런 이우주의 뒤를 바짝 쫓던 짭핑크 고인물은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포탈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크아악!]

하지만 간신히 발을 멈추고 몸의 균형을 잡는 것에 성공한 짭핑크 고인물은 그대로 포탈에 들어갔던 머리를 빼냈다.

……아니, 빼내려 했다.

핏-

포탈이 난데없이 취소되지만 않았어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어?”

뒤늦게 달려온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가 동시에 자리에 멈춰 섰다.

일반적으로 텔레포트 스크롤에 의해 생겨난 포탈은 10초 정도를 허공에 머물러 있는다.

하지만 지금 일어난 현상은 여러모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텔레포트 스크롤이 찢어지며 발생한 포탈은 그야말로 눈 한번 깜짝할 시간에 사라져 버렸다.

마치 버그에 의해 생성을 취소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순간이동 포탈이 나타났다가 사라진 것은 그야말로 빛의 속도, 찰나를 찰나로 쪼갠 것만큼이나 짧은 순간, 마치 컴퓨터에 스크린 창이 나타나는 것이나 그것을 닫았을 때 사라지는 것처럼 순식간이었다.

물리적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현상.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한 가지 결말을 야기했다.

…퍼억!

순간이동 포탈 안에 들어가 있었던 짭핑크 고인물의 머리통 절반이 피를 뿜어낸다.

얼굴의 절반이 순식간에 대각선으로 잘려 나갔다.

푸슉! 움찔- 푸슈슉! 움찔-

포탈이 생겨났다가 다시 좁아지며 사라지는 과정에서 머리의 절반을 잃어버린 짭핑크 고인물.

[……? ……? ……?]

그것은 죽는 바로 그 순간까지도 자신에게 닥친 일의 영문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이윽고.

쿵-

도플갱어는 피분수를 뿜어내며 비틀거리다가 선 자리에서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져 버렸다.

물리법칙 상 일어날 수 없는 텔레포트 스크롤 포탈 캔슬 오류.

그리고 그로 인해 창졸간에 목숨을 잃은 핑크 악귀.

“……휴.”

식은땀을 닦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이우주의 뒤로.

???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

세 여자만이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우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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