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886화 (886/1,000)
  • 외전 12화 골렘 알레르기 (5)

    …콰쾅!

    제대로 기동하기 시작한 골렘은 거대한 몸을 움직여 장갑암룡의 돌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거대한 덩치들 간의 힘겨루기.

    이우주는 그것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증기 잠금(Vapor lock)’ 현상 때문이었어. 버그가 아니었네요.”

    그 말에 화살을 쏘던 이산하와 골렘을 조종하던 솔레이크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나도 아까부터 그게 신경 쓰였어!”

    “맞다. right. 짐작은 하고 있었어!”

    “……야, 거짓말 하지 마. 너 이해 못 했잖아.”

    “What? 아니야! 이해했어! 증기 잠금! Vapor lock 현상! 나도 알아! 그거잖아 그…… 그…… 나를 열어 주는 비밀번호 486. 삐빅 문이 열렸습니다 하는 거!”

    “그건 도어락이잖아! 이해 못 했네! 이 0개 국어!”

    “했다! 산하! 너야말로 이해 못 했어!”

    이산하와 솔레이크의 대화를 듣던 이우주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둘 다 그만해요. 설명해 드릴 테니까.”

    이우주는 골렘과 장갑암룡의 난투극에서 튀는 불똥들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Vapor lock 현상은 과열로 인해 연료 펌프나 파이프 속의 연료가 증기로 변화되어 갑자기 연료량이 부족해지는 현상을 뜻해요.”

    골렘의 달아오르는 몸뚱이를 보며 눈을 빛내는 이우주, 그는 신중한 어조로 말을 이어 나간다.

    “보스 레이드까지 도달하는 동안 골렘의 운행 시간, 주행 거리, 가한 데미지량과 입은 데미지량, 노출된 특성들의 종류 등 모든 값의 데이터들을 분석했습니다. 솔레이크 누나가 아이스크림을 사는 것과의 연관 관계도 파악했고요.”

    “무, 무슨 연관?”

    솔레이크의 어리둥절한 반문에 이우주는 설명을 추가했다.

    “한마디로 골렘이 레이드 도중 지나치게 과열되었고 냉각에 필요한 휴식 시간이 지나치게 적었다는 게 문제였죠. 민트초코가 중요한 게 아니라요.”

    홍옥의 파사에는 수없이 많은 잡몹들이 득실거렸다.

    비인기 던전이라 사냥을 뛰는 플레이어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던전의 일반적인 몬스터 적재량을 한참 웃도는 물량.

    더군다나 저희들끼리 딱히 먹이사슬에서 얽히는 관계도 아닌 몬스터들인지라 그 개체 수는 계속해서 임계점을 웃돌았다.

    그에 따라 던전 내부의 온도 역시도 계속해서 상승했다.

    곳곳에 불길을 뿜어내거나 불길 그 자체인 몬스터들이 득시글거리고 있으니 일반적으로 설정되어 있는 화염계열 던전의 온도보다도 훨씬 더 무더운 것이다.

    “……아, 그래서 네가 처음에 그런 말을 했구나.”

    이산하는 동생이 홍옥의 파사에 처음 들어올 당시에 했던 대사를 기억하고 있었다.

    ‘비인기 던전이라 그런가 몹들이 전혀 사냥 안 되어 있네요. 자기들끼리 딱히 먹이사슬로 얽혀 있는 관계도 아니라 그런가 엄청 몰려다니네.’

    이우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가뜩이나 솔레이크 누나는 레벨이 높고 장비가 좋아서 클리어가 빨랐죠. 단시간에 많은 화염계열 몬스터를 사냥한 만큼 골렘 역시도 빨리 가열되었을 겁니다. 그것은 단순 내구도나 HP가 아닌, 일반데미지 분의 화염데미지로 계산을 해야 나오는 값으로 진단해야 하거든요. 그 값이 일정치를 초과했을 때 베이퍼 록 현상이 발생하는 거니까요.”

    “……그, 그런 것까지 따져 가면서 게임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그래. 그리고 아직 안 끝났어.”

    이우주는 솔레이크의 입에 묻은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을 손가락으로 닦아 주며 말을 이었다.

    “솔레이크 누나가 아이스크림을 살 때 사는 시간이 매우 짧았다는 것도 문제야.”

    “Why? 그게 어때서?”

    “왜 바닐라나 초코 아이스크림을 샀을 때는 골렘이 정상 작동했고 하필 민트초코에만 그런 반응을 보였을까요?”

    그러고 보니 그렇다.

    전에 초코나 아이스크림, 심지어 아몬드붕탁이나 아빠는 에일리언 퀸 등의 맛을 샀을 때에는 이런 일이 없었던 것이다.

    이우주는 마저 설명했다.

    “그것은 아이스크림 가게의 배치 때문이었습니다. 믿을 수는 없지만 민트초코는 가장 잘 팔리는 맛이라서 제일 앞쪽에 진열되어 있죠. 그리고 솔레이크 누나는 단골이니만큼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빨리 아이스크림을 살 수 있고요.”

    그 말에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아까 전 아이스크림 장수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요즘 뜸하더군. 자, 늘 먹던 민트초코. 맞지? 자네 몫은 내가 늘 미리 빼놓지.]

    확실히, 이산하의 아이스크림보다 솔레이크의 것이 훨씬 더 빨리 나왔었다.

    “더군다나 솔레이크 누나는 아이스크림 먹는 속도가 엄청 빠르죠. 산하 누나가 반도 채 못 먹었을 때 늘 다 드시니까요. 양도 훨씬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제야 이산하와 솔레이크 역시도 이 문제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군. 골렘 내부의 연료가 유증기가 되어서 일순간 연료부족 상태에 놓였던 거구나. 바닐라나 초코 아이스크림을 고르는 시간 동안에는 골렘의 핵이 냉각되어서 잘 움직였던 거고.”

    “Oh…… 버그 아니었다. 내가 아이스크림 너무 빨리 먹었다. 상상도 못한 불찰. 나의 잘못.”

    골렘의 민트초코 아이스크림 알레르기.

    터무니없는 버그라고 생각했던 현상에 이런 복잡한 원리가 숨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둘이었다.

    바로 그때.

    [그-오오오오오!]

    저쪽에서 장갑암룡이 내지르는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

    이우주의 설명이 계속되는 동안 골렘의 난타와 이산하의 화살에 의해 꾸준히 데미지가 누적된 지금, 장갑암룡은 마지막 용틀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파앗!

    장갑암룡의 몸이 화려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이우주는 그 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으악!? 저 녀석 진화하고 있어요!”

    그 말에 이산하와 솔레이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무수한 전투 경험을 축적한 장갑암룡은 종종 상위종으로의 진화를 이뤄낸다.

    장갑암룡이 진화하면 어떤 몬스터가 되는지 알고 있는 이산하와 솔레이크의 얼굴색이 핼쑥해졌다.

    ‘용암장갑암룡! S급 몬스터!’

    그게 뜨면 끝이다.

    “으아아아아아! 지, 지, 진화하기 전에 빠, 빨리 잡아!”

    “빨피! 빨피일 때 폭딜 꽂아서 조져야 돼! 굼벵이 산하 빨리 활 들어! 나도 골렘 가동한다! 저게 다시 일어나 날뛰면 답 없어! 나 퀘스트 깨야 돼! 진짜 이번에도 죽으면 나 울 거야!”

    “너, 너 한국말 갑자기 왜 이렇게 잘해!?”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부랴부랴 모든 힘을 쏟아 내어 장갑암룡을 두들겼다.

    “이야아아아아압!”

    이윽고, 이산하는 마지막 남은 화살 한 발에 모든 힘을 불어넣고 발사했다.

    막타. 그 결과.

    -띠링!

    ……오잉!? ‘장갑암룡’의 상태가……?

    -축하합니다! ‘장갑암룡’는(은) ‘용암장갑암룡’(으)로 진화했다!

    -띠링!

    <‘용암장갑암룡’ 레이드에 성공하셨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홍옥의 파사’를 지배하는 보스가 쓰러졌습니다.>

    <용암굴의 불길이 사그라듭니다.>

    <보스 몬스터가 부활할 때까지 던전의 온도가 8도 낮아집니다.>

    놀라운 상황이 벌어졌다.

    상위종으로 진화하기 직전, 이산하의 막타에 피격당한 장갑암룡의 HP가 딱 0으로 떨어지면서 동시 판정이 난 것이다.

    그 결과.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파티는 A+급 몬스터인 장갑암룡이 아니라 S급 몬스터인 용암장갑암룡을 사냥한 것이 되어 버렸다.

    “세상에. 운이 좋아도 이렇게 좋을 수 있다니. 동시 판정이란 게 절대 흔한 게 아닌데…….”

    “Oh. 산하…… 너의 행운. 정말 Respect…….”

    이우주와 솔레이크는 동시에 이산하를 돌아보았다.

    졸지에 막타를 먹여 S급 몬스터를 잡은 이산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이게 되네.”

    *       *       *

    이윽고, 보상 시간이 되었다.

    이우주는 고민했다.

    “사실 용암장갑암룡은 옛날에 아빠가 한번 사냥했던 적이 있는 몬스터야.”

    그 말에 이산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빠가 이 무시무시한 몬스터도 잡았어? 언제?”

    “아주 옛날에. 용자의 무덤 91층에서. 심지어 그때는 22분 42초밖에 걸리지 않았지.”

    “히익…… 진짜 괴물이었구나 우리 아빠.”

    “맞아. 유튜뷰 동영상 보니까 무슨 참치 해체하는 것처럼 잡아 버리더라.”

    이우주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는 누나의 행운 아니었으면 용암장갑암룡에게 몰살당했을 거야. 이 상태에서 아빠를 따라잡으려면…… 정말 먼 길이 되겠네.”

    분위기가 짐짓 무거워지려 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Oh! 산하! 우주! 그러지 말고 드랍 더 비트! 드랍된 아이템 체크! It’s 보상 타임!”

    솔레이크가 쾌활한 어조로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그 말을 듣고 이산하는 인벤토리로 들어온 보상을 확인해 보았다.

    “오? 꽤 좋은 게 걸렸는데?”

    그것은 시뻘건 불길에 휘감겨 이글거리고 있는 커다란 활이었다.

    -<용암불기둥 활> / 활 / A+

    용암굴 속의 뜨거운 화산탄을 깎아 만든 활.

    일반 화살을 쏴도 불의 기운이 깃든다고 한다.

    -공격력 +7,700

    -불 속성 공격력 +300

    -특성 ‘불화살’ 사용 가능 (특수)

    평타만으로도 염계 데미지를 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좋은 무기다.

    이산하는 전에 사용하던 활을 인벤토리에 넣어 버리고 새로운 활로 바꿔 들었다.

    솔레이크 역시도 보상 아이템을 꺼내 보였다.

    -<꿈틀거리는 화산탄> / 재료 / A+

    용암굴 속의 뜨거운 화산탄.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겉을 깎아서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만 같다.

    그것은 큼지막한 화산탄이었다.

    솔레이크는 탄성을 질렀다.

    “야호! 이걸로 골렘 제작해야지!”

    골렘술사에게는 골렘을 제작할 수 있는 원재료 아이템만큼 매력적인 것이 없을 것이다.

    한편, 이우주는 용암장갑암룡의 사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별 기여도가 없어서 그런가 보상이 거의 없네. 이제는 호칭 특전이 사라졌으니 별다른 보상을 기대할 수는 없겠군.”

    소수 파이오니아들의 독과점을 없애겠다는 취지로 호칭 특전이 사라진 지금, 빠르게 강해지기 위해서는 더더욱 부지런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때.

    “보상. 없지 않다.”

    솔레이크가 해맑은 미소를 지은 채 이우주의 어깨를 탁 쳤다.

    “네가 찾는 특성. 내가 어디서 얻는지 안다. 빚을 갚고 싶다. 알려 준다.”

    이우주가 그토록 원하던 특성, 그것에 대한 정보가 드디어 밝혀지려는 순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