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885화 (885/1,000)

외전 11화 골렘 알레르기 (4)

-띠링!

<‘홍옥의 파사(婆娑)’- ‘제 1급 붕괴위험지대’에 입장하셨습니다>

이산하 이우주 남매, 그리고 솔레이크는 다시 한번 파사의 홍옥에 도전했다.

“사람이 별로 없어서 다행이네. 바로 보스 레이드를 뛸 수 있으니.”

“그러게.”

이산하의 말에 이우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기 던전은 출입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 보스방 입장 시간을 미리 예약해야 할 정도이다.

대부분은 대형 길드에 의해 순차적으로 관리되는 편.

하지만 수도 없이 많은 던전들이 모두 붐빌 리는 없다.

인기가 많아 사람이 미어터지는 던전이 있는가 하면 인적이 드물어 몬스터들만 바글거리게 되는 던전이 있다.

이 홍옥의 파사는 그 중에서도 상당히 인기가 없는 던전이었다.

잡몹들에 비해 보스 몬스터가 괴랄하게 세도록 설정되어 있는 밸런스.

드랍 아이템들은 한때 유행을 타다가 지금은 대체재에 의해 밀려난 것들뿐.

몇몇 퀘스트를 위해 동굴 초입의 잡몹들을 잡으러 오는 뜨내기들을 제외하면 심층부에는 인적이 드물다 못해 아예 없다시피 한 편이다.

“나는 이곳에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 오는 편. 퀘스트 이후에도 방문할 의지 있다. 그것은 아주 충만!”

“네. 그렇군요.”

이우주는 솔레이크의 텐션 높은 목소리에 대충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또다시 잡몹들을 처리하며 가는 무더운 강행군이 이어졌다.

이산하는 화살을 쏴 불갯지렁이의 환대를 맞혔고 유사암룡의 갑옷 틈 사이를 비틀어 열었다.

솔레이크는 골렘을 소환해 용암 달팽이를 으깨 죽였고 백도씨불꽃과 천도씨불꽃을 육중한 흙과 모래의 무게로 짓이겨 꺼 버렸다.

이우주는 특유의 날쌘 움직임과 최소한의 동선 설계로 화산탄골렘들을 멀찍이 따돌렸다.

파티의 케미는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골렘술사인 솔레이크가 골렘들을 운용하며 탱커 역할을 했고 그 뒤를 따라 원거리 딜러인 이산하가 강력한 저격을 날린다.

이우주는 레벨이 낮아 전면에서 활약하지는 못했지만 타고난 게임 센스와 상황 분석력으로 레이드의 시간을 최단으로 압축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보스방.

“헉…… 헉…… 이거 더워서 아이스크림을 안 사 먹을 수가 없네.”

“환상적인 입점 위치. 손님도 얼마 없으니 나만의 작은 맛집!”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또다시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다.

그동안 이우주는 자신의 몸과 파티원들의 몸을 자세히 살폈다.

너나 할 것 없이 온통 땀에 푹 젖어 있는 몸.

던전의 열기는 그만큼이나 무더웠다.

더군다나 곳곳에 불길을 뿜어내거나 불길 그 자체인 몬스터들이 득시글거리고 있으니 일반적으로 설정되어 있는 화염계열 던전의 온도보다도 훨씬 더 무더운 것이다.

그때.

“……!”

자신을 향한 이우주의 힐끔거리는 시선을 느낀 솔레이크가 배시시 웃었다.

“Oh. 우주. 나한테 관심 있어? 하지만 우주는 변태. 땀범벅으로 비쳐 보이는 옷. 그리 빤히 쳐다보다. You 철컹철컹. 경찰청 쇠창살 외철창살. 검찰청 쇠창살 쌍철창살? 보고 싶으면 훔쳐보지 말고 그냥 봐. 우주라면 OK.”

“아 그런가요? 미안합니다. 그럼 대놓고 좀 보겠습니다.”

“……!?”

농담처럼 던진 말에 이우주가 정색을 하며 반응하자 솔레이크의 두 귀가 순간 빨갛게 달아오른다.

“자, 잠깐! wait! 이, 일단 마음의 ready를!”

“준비랄 게 뭐 있나요. 조금만 비켜 주시면 되는 것을.”

이우주는 정중한 태도로 손을 뻗어 솔레이크를 옆으로 치웠(?)다.

이윽고, 이우주의 반짝거리는 시선이 솔레이크의 뒤를 향한다.

그곳에는 떡 벌어진 어깨와 가슴팍, 날렵한 허리와 큼지막한 주먹을 가진 거구의 강철 골렘이 육중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용암동굴의 뜨거운 대기, 그리고 각종 몬스터들이 내뿜는 열로 인해 시뻘겋게 달아오른 골렘의 몸뚱이.

강철로 만들어진 튼튼한 골렘인지라 수많은 몬스터에게 피격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구도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연료도 던전에 들어오기 전에 충분히 충전했고 관절 부분의 이음매도 매끄러웠다.

“…….”

이우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제 가시죠.”

“응!”

그새 어마어마한 양의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을 모두 먹어 버린 솔레이크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산하는 여전히 자기가 산 아이스크림을 반밖에 먹지 못했을 때였다.

*       *       *

-띠링!

<뜨거운 불길들이 장벽처럼 치솟아 오릅니다>

<화마 속의 존재가 이쪽을 주시합니다>

<용암동굴의 내부 온도가 4도 올라갑니다>

<보스 몬스터가 침입자들을 향한 격렬한 적의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

.

동시에 이산하 이우주 남매와 솔레이크의 앞으로 홍옥의 파사를 지배하는 거대한 마물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오오오오오!]

지면을 찢어발기며 피어오르는 불길.

그 속에 시뻘건 눈알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장갑암룡(裝甲巖龍)> -등급: A+ / 특성: 불, 땅, 지진, 화마, 기갈, 가뭄, 앙버팀, 백전노장, 열상(熱傷)

-서식지: 홍옥의 파사, 서부전선 ‘벌레부름 숲’

-크기: 14m

-지층의 열과 압력에 의해 굳은 암석들을 비늘로 삼아 돌아다니는 거대 도마뱀.

혼혈의 아룡(亞龍)들 중에서도 순혈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중생대의 존재이다.

바실리스크를 제외하면 같은 랭킹의 하위룡 중 최강으로 손꼽히며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불릴 정도로 긴 수명과 강력한 방어력을 무기 삼아 지금껏 수많은 적대자들을 쓰러트려 왔다.

‘장갑암룡(裝甲巖龍)’

깊은 땅 밑, 단단한 암반지대를 파헤치고 다니는 습성이 있는 만큼 초고온으로 타오르는 피부 위에 암석들이 눌어붙어 마치 갑옷과도 같은 형상을 취하게 되었다.

그 모습은 흡사 뿔이 돋아난 거북이가 가시 갑옷을 두르고 철퇴가 달린 긴 꼬리를 늘어트린 모양새.

걸을 때마다 지진이 일어날 정도로 육중한 거구, 공격을 허용할 마음이 조금도 없어 보이는 암석의 중장갑은 보는 이를 절로 주눅 들게 만든다.

이우주는 이산하를 돌아보며 혀를 찼다.

“만도씨불꽃보다 더 센 녀석이 등장했군. 홍옥의 파사는 99%의 확률로 만도씨불꽃이 보스몹으로 등장하는데……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뭐야, 지금 이게 내 탓이라는 거야!?”

“그건 아니지만. 누나랑 같이 다니면 항상 이런저런 사건들에 휘말리는 것 같아서.”

“우하하! 이 몸이 원래 좀 기연을 몰고 다니지!”

“트러블 메이커가 될 때도 많지만 말야.”

이우주는 눈앞에 있는 거대 몬스터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장갑암룡은 온몸을 단단한 돌과 끈적한 진흙으로 감싸고 있는데다가 위험등급 A+랭크에 올라있을 만큼 강한 스탯과 특성을 가졌지…… 더군다나 저 개체는 덩치나 비늘의 흉터로 짐작건대 상당히 많은 싸움을 거쳐 온 것 같은데. 재수 없으면 전투 도중 상위종으로 진화할 가능성도…….’

그러나 탁상 위와 달리 현장에서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장갑암룡은 곧바로 발을 굴러 용암의 파도를 만들어 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드물게 만날 수 있는 거대한 화물트럭이나 트레일러.

그것들보다도 훨씬 더 큰 몸집이 이런 속도로 움직인다는 것은 자연재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콰콰콰콰쾅!

불길에 부글부글 끓는 진흙이 단단한 돌무더기와 함께 날아든다.

“에잇! 부디 나의 골렘! 버텨 주십시오!”

솔레이크는 골렘을 움직여 장갑암룡의 공격을 막으려 했으나……

기기긱- 끼긱-

보스방에 진입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골렘은 또다시 먹통이 되었다.

콰콰콰쾅!

장갑암룡의 공격이 그대로 골렘에게 적중한다.

이산하는 경악했다.

“아앗! 또 민트초코 버그가!?”

“아니! 이건 버그가 아니야!”

그러나 이우주는 단호한 어조로 이산하의 말을 부정했다.

동시에.

…파앗!

이우주는 틈새를 노려 샀던 대량의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을 꺼내 들었다.

그것을 본 솔레이크가 눈을 반짝 빛냈다.

“우주! 무더위에 지친 나를 위해 준비한 아이스크림! 보스에게 죽기 직전인 급박한 와중에도 감동! 먹고 죽은 귀신. 고운 때깔을 자랑하다?”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비켜 주세요!”

이우주는 두 팔을 벌리는 솔레이크를 가차 없이 밀어냈다.

이윽고, 이우주는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을 한가득 집어 들고 앞에 있는 존재의 입안에 욱여넣었다.

강제로 민트초코로 양치를 하게 된 대상.

그것은 바로 솔레이크의 강철 골렘이었다!

“뭐, 뭐 하는 거야 너! 가뜩이나 민트초코 알레르기가 있을지 모르는 애한테 무슨……!”

이산하가 이우주를 말리려 했지만.

쿠쿵-

갑자기 시작된 골렘의 진동에 이산하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오-오오오오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골렘이 요란한 함성과 함께 다시 가동을 시작한 것이다!

“뭐, 뭐야!? 어떻게!?”

“Ohhhhhh! 서프라이즈! 내 골렘. 부활!”

이산하와 솔레이크가 기쁨과 놀람이 공존하는 얼굴로 탄성을 질렀다.

이윽고, 두 여자의 시선이 이우주를 향한다.

대체 어떻게 멈췄던 골렘을 다시 움직이게 만들었느냐는 것.

이에 대해 이우주는 약간의 생각 끝에 자신의 답을 내놓았다.

“아무래도 그간 골렘이 멈췄던 것은 버그가 아니라 ‘증기 잠금(Vapor lock)’ 현상 때문인 것 같아요.”

그 말을 들은 이산하와 솔레이크는 손뼉을 치며 동시에 외쳤다.

“……아! 그것 때문이었구나! 완벽히 이해했어!”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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