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884화 (884/1,000)
  • 외전 10화 골렘 알레르기 (3)

    아이스크림 가게.

    이 작은 건물의 주변은 온통 하얀 서리로 뒤덮여 있다.

    이상하게도 이 구역만은 다른 구역에 비해 온도가 압도적으로 낮았다.

    단단하게 얼어붙은 빙벽들은 주변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불길과 용암에도 불구하고 전혀 녹지 않는다.

    알록달록 예쁜 색깔의 아이스크림들이 통에 담긴 채 얼어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들을 팔고 있는 NPC는 양철로 된 갑옷과 투구, 길게 흘러내린 백색의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거구의 남자.

    손에 굳게 쥐여 있는 것은 마법사의 지팡이처럼 길면서도 광전사의 할버트처럼 육중한 도끼날이었다.

    얼굴 전체를 가린 양철 투구 사이에서 시퍼런 불꽃이 피어오른다.

    [나는 심장이 없다네. 아픈 것을 느끼지 못하지.]

    그는 커다란 도끼로 색색의 얼음통 속에 든 아이스크림을 푸고 있었다.

    …땅! 파삭!

    얼음은 엄청나게 차갑고 단단해서 일반적인 물리력으로는 다룰 수 없어 보였다.

    아이스크림 장수는 거대하고 무거운 도끼날로 얼음을 깎아 냈고 그것은 던전의 뜨거운 대기와 만나 겨우 조금씩 녹아내려 아이스크림이 되는 것이다.

    “와- 얼음이 엄청 단단하네. 그래서 이렇게 뜨거운 데에서도 안 녹는구나. 어우, 무슨 빙산 같다. 안에 티라노사우르스 같은 게 파묻혀 있는 거 아냐?”

    이산하는 아이스크림 통을 콕콕 찌르며 말을 이었다.

    “일단 여기까지 왔는데 하나 먹어 보기는 해야지. 어디 보자…… 아이스크림이 얼마냐…… 헤엑!? 뭐가 이렇게 비싸!? 아저씨! 이렇게 팔면 좀 양심이 아프지 않아요!?”

    [나는 심장이 없다네. 아픈 것을 느끼지 못하지.]

    아이스크림 장수는 안 살 거면 가라는 듯 손을 휘휘 내젓는다.

    분노한 이산하는 옆에서 군침을 흘리고 있는 솔레이크를 돌아보며 말했다.

    “야. 저 아저씨 심장만 없는 게 아닌 것 같은데? 부모님도…….”

    “Oh 산하! 패드립은 나쁜 것! 가격은 파는 사람 마음대로! 그리고 이거 한다! 돈값! 맛있어!”

    비싸지만 그 값어치는 한다는 맛.

    그 말에 이산하도 반신반의 하며 지갑을 열었다.

    “제일 잘 팔리는 것 주세요.”

    [그것은 민트 초코다.]

    “……진짜로? 그럼 그 다음으로 잘 팔리는 것 주세요.”

    [아몬드붕탁과 아빠는 에일리언 퀸 중에 선택하라.]

    “……그냥 바닐라로 주세요.”

    이산하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돈을 건넨 뒤 큼지막한 바닐라 아이스크림콘을 받아들었다.

    그것을 한입 먹는 순간.

    “헉!”

    이산하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 아까 욕한 거 사과드려요! 와, 이거 진짜 맛있네. 시원하고. 안 사 먹을 수가 없겠구나.”

    무더운 던전 속을 뱅글뱅글 돌다가 끝에서 먹는 이 아이스크림의 맛은 뭐라 형용할 수가 없다.

    이 맛에 레이드 뛰는구나 싶을 정도.

    “보스방 앞에 이런 게 있는 건 반칙이지! 포션보다 스태미너 회복률이 더 높네 심지어!”

    솔레이크는 아이스크림을 정신없이 먹는 이산하를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며 손을 들었다.

    “마스터. 늘 먹던 걸로.”

    아이스크림 장수는 솔레이크를 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뎀2의 NPC들은 당연하게도 단골을 구분할 수 있다.

    [요즘 뜸하더군. 자, 늘 먹던 민트초코. 맞지? 자네 몫은 내가 늘 미리 빼놓지.]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콘이 그 거대한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서 얼마나 자주, 얼마나 많이 사 먹은 것인지 아이스크림 장수는 아예 솔레이크를 위한 물량을 따로 빼놓은 듯했다.

    “우주. 우주 라잌 썸띵 투?”

    “아뇨. 전 됐어요. 양치하고 와서. 굳이 민트초코를 먹을 필요는 없죠.”

    솔레이크가 내미는 민트초코를 거절한 이우주는 아이스크림 가게 안에 놓여 있는 아이스크림 통들의 위치를 가만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다 먹었다!”

    “벌써?”

    솔레이크는 그 많은 아이스크림들을 순식간에 해치워 버렸다.

    훨씬 적은 양임에도 불구하고 반도 채 먹지 못한 이산하로서는 그저 놀랄 수밖에 없는 식욕이었다.

    “이제 레이드 뛸 시간! 이 보스만 잡으면 퀘스트 해결! 빠른 속행!”

    “알겠으니까 진정해. 뭐 이리 빨리 먹냐?”

    이산하는 남은 아이스크림을 인벤토리에 넣은 뒤 발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이산하 이우주 남매와 솔레이크는 보스방의 문을 열었다.

    -띠링!

    <뜨거운 불길들이 혓바닥을 낼름거립니다>

    <화마 속의 존재가 이쪽을 주시합니다>

    <용암동굴의 내부 온도가 3도 올라갑니다>

    <보스 몬스터가 침입자들을 향한 격렬한 적의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

    .

    동시에 이산하 이우주 남매와 솔레이크의 앞으로 홍옥의 파사를 지배하는 거대한 마물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만도씨불꽃> -등급: A+ / 특성: 불, 땅, 지진, 화마, 기갈, 가뭄, 용솟음, 유폭, 열상(熱傷)

    -서식지: 홍옥의 파사, 부글부 굴, 엘리뇨 해역,

    -크기: 12m

    -10,000℃로 타오르는 불꽃 덩어리가 어느 날부터인가 생명을 얻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살아 움직이는 화마(火魔)는 어지간한 수단으로는 끌 수 없으며 한번 날뛰기 시작하면 어마어마한 규모의 자연재해를 동반한다.

    뜨겁게 불타오르는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 장작이 될 만한 것들을 닥치는 대로 입속에 처넣으며 그 식욕과 식탐은 설사 물속이라고 해도 사그라들지 않는다.

    뜨거운 불덩어리에 할로윈 호박과도 같은 눈과 입이 시커멓게 붙어 있다.

    다리가 없어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몸뚱이에는 기괴하게 길쭉하고 가냘픈 두 개의 팔과 거대한 손바닥이 늘어져 있었다.

    눈과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유황 가스는 누렇고 시뻘건 불의 안개를 만들어 내고 있었는데 이것은 던전 내부에 떠도는 유증기와 만나 한층 더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우주가 재빠르게 외쳤다.

    “만도씨불꽃은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주변에 디버프를 겁니다! 또 스치기만 해도 몇 분간 열상 데미지를 도트로 입게 되니 주의할……!?”

    그러나 오더는 끝까지 내려지지 못했다.

    콰콰콰쾅!

    만도씨불꽃은 등장하는 즉시 거대한 입속에서 뜨거운 불길 세례를 쏟아 냈기 때문이다.

    이우주는 이를 악물었다.

    ‘만도씨불꽃은 등장 시 0.5%의 확률로 광역기를 터트린다. 재수가 없으려니……!’

    고개를 돌리니 이산하가 멍한 표정으로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모양.

    “피해 누나!”

    “헉?”

    이산하는 게임 센스가 이우주만큼 뛰어나지는 않다.

    그래서 반응이 조금 늦고 말았다.

    바로 그때.

    턱-

    뒷걸음질 치던 이산하는 그대로 뒤로 넘어져 버렸다.

    “아이고!”

    놀랍게도 그곳에는 딱 이산하가 몸을 숨기기 좋을 만큼 깊은 구덩이가 패여 있었고 그 덕에 이산하는 만도씨불꽃의 기습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옛날부터 진짜 행운 하나는 타고났군. 괴물 같은…….’

    이우주는 혀를 내둘렀다.

    누나인 이산하는 옛날부터 저런 식의 말도 안 되는 행운을 수도 없이 거머쥐곤 했다.

    복권 2, 3등에 당첨되는 것은 그냥 흔한 일.

    학교 시험에서 제멋대로 찍었는데 실력으로 푼 것보다 훨씬 더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은 예사.

    어디 이벤트에 응모하면 항상 당첨되었고 극악한 확률의 가챠도 몇 번이나 뚫어 내부자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게임을 했을 때 좋은 아이템이 떨어지거나 히든 퀘스트가 따라붙는 것 역시도 일상적인 일이었다.

    이번에 몇몇 뎀 스트리머에 한정해서 알려 주었던 태양룡과 오만의 악마성좌 관련 업데이트에 대한 내용도 이산하가 정보열람 이벤트에 응모해서 당첨되었기에 미리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나 같은 분석가 타입에게는 누나가 가장 상대하기 힘든 타입일지도. 도무지 예측이 불가능하니 원.’

    이우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던 그때.

    “다들 이리컴!”

    솔레이크가 골렘의 뒤로 이산하 이우주 남매를 끌어들였다.

    강철의 육체를 가진 거대한 골렘이 만도씨불꽃의 불길을 막아 주는 벽이 되었다.

    “으아, 살았다!”

    “골렘은 탱과 딜이 동시에 되니 참 좋네요.”

    이산하와 이우주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골렘 덕분에 만도씨불꽃의 첫 번째 화염방사를 완벽하게 피해냈다.

    “좋아! 이제 반격 타이밍이다! 솔레이크! 골렘을 딜 모드로 전환 부탁해!”

    이산하가 활에 화살을 건 채 골렘 뒤에서 나가려는 순간.

    “……어?”

    솔레이크의 입에서 당황한 듯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골렘이 움직이지 않은 채 가만히 서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마나를 불어넣고 무빙 커맨드를 입력해도 골렘은 요지부동,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어어!? 지, 진짜 안 움직이네!? 방금 전까지는 잘만 움직였었는데!? 설마 진짜로 민트초코 때문인가!?”

    “으음, 일단 골렘 없이 만도씨불꽃을 잡는 것은 무리야. 여기서는 빼는 게 낫겠어.”

    “아오! 레이드 중간에 포기하면 영상도 다 삭제되고 멸칭 디버프도 생기는데!”

    “스탯이 하락하는 게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가뜩이나 대격변 업데이트도 얼마 남지 않은 마당에 접속불가 패널티는 치명적이야.”

    이산하와 이우주는 결국 레이드를 포기하기로 했다.

    솔레이크는 울상이 된 채로 골렘을 역소환시켜야 했다.

    “이것을 보라! 본인이 민트초코 아이스크림 먹으면 골렘 정지되는 현상! 바닐라나 초코를 샀을 당시. 이런 일 없었다!”

    “진짜요?”

    “그렇다! 바닐라를 샀을 때, 초코를 샀을 때, 아빠는 에일리언 퀸을 샀을 때, 내 골렘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Why! 왜 민트초코만! 이것은 신의 질투!”

    그러자 옆에서 뛰던 이산하가 답답하다는 듯 외쳤다.

    “알겠는데! 그러면 민트초코 말고 다른 거 먹으면 되잖아!”

    “No! 나는 그 맛이 아니면 먹지 않아! 그것은 민초단의 신념!”

    “망할! 그럼 진짜 버그인가!?”

    패널티를 감수하고서 로그아웃을 하는 그 순간까지도 골렘은 버벅거릴 뿐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로그아웃을 알리는 환한 빛무리가 막 이산하와 솔레이크의 몸을 휘감을 때.

    “……나 이유를 알 것 같아.”

    이우주는 멈춰 버린 골렘과 코앞까지 다가온 만도씨불꽃의 거체를 번갈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버그 아니에요 이거. 다음 판에는 잡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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