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9화 골렘 알레르기 (2)
“내 골렘. 민트초코 아이스크림 알레르기를 가졌다.”
솔레이크의 말에 이산하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이 자식이 진짜 또 되도 않는 장난을!”
“No! 나는 100% 진지, 5% 억울. 도합 105%의 진심. listen carefully.”
솔레이크는 억울했는지 두 손을 내저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나는 소환했다. 골렘. 그것은 잡몹 청소를 목적으로 한. 보스방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그것은 정상 동작. 하지만 민트초코 알레르기 발발하다. 골렘 먹통. 장비를 정지합니다. 안 되잖아? 이런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조짐을 느꼈지. 나는 여기서 나가야겠어. 그것은 An unexpected event. 으아아아아-”
“아 씨. 뭐라는 거야. 이해하기 되게 힘드네. 이건 파파고도 거른다.”
이산하는 두 손을 허리 위에 얹은 채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
“잡몹 처리용으로 소환한 골렘이 보스방에 들어가자마자 민트초코 알레르기 때문에 먹통이 되었고 그 탓에 결국 보스 몬스터에게 죽었다. 뭐 이런 뜻 같은데?”
이우주가 태연한 어조로 솔레이크의 말을 통역했다.
이산하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 얘 말이 들려?”
“못 알아들을 건 또 뭐야. 핵심 단어들은 다 있는데.”
이우주의 반응에 이산하는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솔레이크는 감격에 겨운 표정을 지었다.
“Oh! 우주! 나의 space! 내 말을 정확히 알아듣는 사람. 첫 번째. 당신이 유일! 그것은 엄마와 아빠라는 가족을 제외한 결과!”
그 뒤로 이우주는 솔레이크의 말을 하나하나 통역했다.
“그러니까. 홍옥의 파사 레이드 막바지에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는데 거기서 아이스크림만 사 먹으면 꼭 골렘이 먹통이 된다 이거죠? 그러면 아이스크림을 안 사 먹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아, 던전이 너무 더워서 상태이상 ‘탈수’에 걸린다 이거군요. 그래서 보스방에 입장하기 전에 꼭 아이스크림을 사 먹어야 하는 게 국룰이고요. 또 그 아이스크림은 해당 던전에서만 파는 명물이라 안 먹으면 손해라…….”
“흠. 그러니까 바닐라나 초코, 딸기 아이스크림 등등은 괜찮은데 꼭 민트초코 아이스크림만 먹으면 골렘이 먹통이 된다는 거죠?”
“그럼 애초에 민트초코 말고 다른 맛의 아이스크림을 드시면 되잖아요?”
“……아. 민트초코 말고 다른 맛은 아예 안 드신다고요. 신념이 굉장히 강하시네요.”
이우주의 통역이 끝나자 이산하가 솔레이크의 뺨을 쭉 잡아 늘이기 시작했다.
“왜 그 치약 얼린 걸 자꾸 고집하는 거야?”
“너무한다! 그것은 JMT! 포기할 수 없는 맛!”
두 여자가 툭탁거리는 것을 보며 이우주는 생각에 잠겼다.
‘상식적으로 골렘이 아이스크림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가뜩이나 논란 많은 ‘그 맛’에 버그가 있다는 것은 뜨거운 구설수 거리인데…… 그걸 개발팀이 놓치고 있었을 리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야.’
데우스 엑스 마키나2는 버그가 거의 없기로 유명한 갓겜이다.
만약 버그가 있다고 해도 거의 실시간으로 그 자리에서 패치를 해 버리기 때문에 버그로 인한 사고가 일어날 확률은 극히 적다.
더군다나 골렘이 가진 민트초코 아이스크림 알레르기 버그가 벌써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면 시스템 AI가 이를 내버려 두었을 리가 만무할 터.
한참을 고민하던 이우주는 결국 결정을 내렸다.
“일단 현장을 한번 점검해 보러 가죠.”
뭐든 백문이 불여일견인 법이다.
* * *
-띠링!
<‘홍옥의 파사(婆娑)’에 입장하셨습니다>
<최초 방문자: 고인물>
귓가에 들려오는 알림음에서는 여전히 아빠의 발자취가 느껴진다.
‘아빠는 이곳에도 최초로 왔었던 건가…… 하긴, 그것이 당연하겠지. 이 세계관 태초의 파이오니아였는걸.’
이우주는 피부를 확 달구는 열기를 느끼며 시뻘건 용암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이윽고 던전에 서식하는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혀를 길게 빼물고 헐떡거리는 거대한 불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지면 아래를 헤엄쳐 다니는 갯지렁이, 용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사실은 돌무더기를 피부에 붙여 용을 흉내 내는 것뿐인 도롱뇽, 화산탄으로 만들어진 골렘, 점액 대신 용암을 흘리면서 기어다니는 달팽이, 손발을 가지고 있는 뜨거운 불꽃 덩어리…… 기괴하게 생긴 몬스터들이 우글우글거리고 있었다.
“비인기 던전이라 그런가 몹들이 전혀 사냥 안 되어 있네요. 자기들끼리 딱히 먹이사슬로 얽혀있는 관계도 아니라 그런가 엄청 몰려다니네.”
이우주는 맨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파티를 구성하고 있는 궁수 이산하와 골렘 마법사 솔레이크를 향해 오더를 내렸다.
“일반적인 화염계열 몬스터와는 달리 더위먹은 불쥐는 특이하게도 화염 공격에 데미지를 더 많이 입죠. 얼음 공격을 받으면 오히려 HP가 회복되는 ‘열사병’ 특성이 있으니 주의하세요.”
“불갯지렁이는 이동속도가 빠르고 공격력이 강력하지만 소리를 내지 않으면 공격해 오지 않는 반 비선공 타입 몬스터입니다. 소리 내지 않고 다가가 급소인 환대(Clitellum) 부분에 한방딜을 꽂아 넣기만 하면 일격에도 잡죠. 그냥 경험치 덩어리라고 보시면 됩니다. 어디까지나 소리를 내지 않고 접근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유사암룡은 용형 몬스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도룡뇽입니다. 점액으로 이어붙인 화산재와 암석 덩어리들로 용 모양을 흉내 내지만 본체는 훨씬 작죠. 그러니 빈 껍데기인 머리나 팔다리, 꼬리를 공격할 필요 없이 몸통 하단부만 계속 때리면 됩니다. 방어력과 체력이 높지만 공격력이 낮고 무빙이 느리니 시간을 들여가며 잡으면 됩니다.”
“화산탄 골렘은 경험치도 별로 안 주고 딱히 좋은 아이템을 떨구지도 않는데다가 무식하게 체력만 높고 공격력도 세니 웬만해서는 잡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두고 도망가도 이동속도가 느려서 따라오지 못하니 잡지 말고 무시하는 게 레이드의 효율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죠.”
“용암달팽이는 보기에는 느려 보이지만 사실 이동속도가 엄청나게 빠릅니다. 용암 점액을 타고 미끄러지면서 입에서 화산탄을 펑펑 뿜어내니 골치 아프죠. 하지만 화산탄을 뿜어내는 각도와 타이밍이 항상 일정하니 조금만 신경을 쓰면 금방 간파할 수 있습니다. 그저 갑각 바깥으로 드러난 연한 살점에 원딜만 잘 박아 넣어 주면 됩니다.”
“백도씨 불꽃과 천도씨 불꽃은 잡는 방식이 비슷해요. 불을 끄듯 하면 됩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물을 부으면 절대 안 됩니다. 순식간에 기화되면서 수증기 폭발이 일어나니까요. 흙모래나 두꺼운 천 같은 것을 덮어서 HP를 깎는 것이 좋습니다.”
이우주의 분석력은 나름대로 고레벨 유저 축에 속하는 이산하나 솔레이크조차도 경탄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너는 게임도 안 해 본 녀석이 뭐 이렇게 잘 알아?”
“수많은 스트리머들 공략 영상과 커뮤니티의 온갖 개념글부터 뻘끌까지, 그리고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논문들이나 자료집들을 모조리 정주행하고 외운 덕분이지.”
“……그게 가능해?”
“말했잖아. 7년 공부했다고. 3년만 더 했으면 10년을 채우는 건데 아쉽네. 하필 태양룡과 오만의 악마성좌가 지금 패치되는 바람에.”
“와, 이건 진짜 현대판 허생이 따로 없네. 너 게임 이렇게 잘하는 거 엄마 아빠가 알면 진짜 좋아하시겠다.”
“말하지 마. 아직은.”
이산하 이우주 남매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홍옥의 파사를 질주한다.
-띠링!
<‘홍옥의 파사(婆娑)’- ‘제 1급 붕괴위험지대’에 입장하셨습니다>
<최초 방문자: 고인물>
이윽고, 불길이 치솟아 오르는 외길 낭떠러지가 구불구불 뻗어 있는 것이 보인다.
그 너머에 있는 것은 보스방으로 통하는 거대한 문.
솔레이크가 외쳤다.
“저 문의 앞! 내가 자주 가는 아이스크림 맛집! 쌩뚱맞게도 그곳에 존재하다!”
그녀의 말 대로였다.
보스방으로 통하는 붉은 문 앞에는 불길에도 끄떡없이 자리하고 있는 상점 하나가 보였다.
“……마치 옛날 고전게임 중 하나인 롤러코X터 타이쿤에 나오는 아이스크림 가게처럼 생겼네. 진짜 있을 줄이야.”
이산하는 땀에 흠뻑 젖은 옷깃을 팔랑팔랑 흔들며 말했다.
“사실 레이드 시작 전에는 왜 저기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을 필요가 있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보스방까지 와 보니 알겠네. 흐아! 덥고 목말라서 죽을 것 같아. 아이스크림 가게는 꼭 필요한 인프라였다고!”
“나도 생각 변경. 역시 이론과 실제에는 차이가 있구나.”
이산하의 말에 이우주 역시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의 뜻을 표했다.
한편. 솔레이크는 지금껏 함께 해 온 달빛의 강철골렘을 돌아보았다.
열에 의해 벌겋게 달아오른 골렘은 뿌연 수증기를 내뿜으며 씩씩거리고 있었다.
HP도 아직 꽉 차있고 전신 파츠들의 내구도도 충분한 상태.
마나액 연료까지 충분히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한 솔레이크는 이내 비장한 표정을 지은 채 아이스크림 가게로 다가갔다.
“나는 구매한다. 그리고 시험한다. 내 골렘의 민트초코 알레르기를.”
이제는 정말로 검증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