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882화 (882/1,000)
  • 외전 8화 골렘 알레르기 (1)

    “접속.”

    [음성 인식으로 보안 해제]

    .

    .

    [동기화 중입니다……]

    .

    .

    [동기화 완료!]

    -띠링!

    [데우스 엑스 마키나2는 당신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이산하와 이우주는 낯익은 알림음과 함께 게임에 접속했다.

    유토러스(Utorus).

    ‘시작의 도시’, ‘모든 플레이어의 고향’, ‘태초의 마을’, ‘어머니의 도시’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거대 도시이다.

    튜토리얼의 탑이 있는 뉴비 존을 중심으로 거대한 초보자 구역이 펼쳐져 있는 도시이며 가장 많은 인구들이 몰려 있는 가운데 땅.

    모든 망자들이 새 생명을 얻는 ‘신전’부터 시작해서 대장간, 잡화점, 도서관, 목욕탕, 여인숙, 훈련소, 시장, 각종 상점이나 NPC들의 집 등 다양한 시설들이 밀집되어 있는 장소였다.

    이산하가 이우주를 이끌고 간 곳은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유저들이 붐비는 곳, 바로 ‘고물상’이었다.

    퍼엉- 쿵- 푸슉- 삐이익- 쾅- 철커덩-

    광물, 목재, 석조, 가죽, 뼈, 그 외 각종 폐기물들이 산더미처럼 늘어져 있는 곳.

    수없이 많은 고물 아이템들이 거대한 산을 이룬 채 산맥을 형성하고 있었다.

    푸슉- 삐이이익-

    무거운 쇳덩이에 의해 꽉 압착된 고물들 사이에서는 뜨거운 증기와 함께 기적 소리 비슷한 것들이 뿜어져 나온다.

    곳곳에서 철과 광물이 서로 부딪쳐 깨지는 소리, 뼈나 가죽이 짓눌리는 소리, 잡템을 처분하러 온 플레이어들이 다투고 흥정하는 소리들이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휴- 여기는 여전히 활기가 넘치는구만!”

    이산하는 검은 후드를 푹 눌러쓰면서도 쾌활하게 외쳤다.

    이우주 역시도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못 쓰게 된 고물 아이템들의 총집합.

    멀리서 보면 크고 장엄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이렇게 쓸데없는 것들의 집합이 또 없다.

    모든 파괴되고, 버려지고, 낡고, 쓸모없는 것들이 죄다 여기에 쌓여 있었다.

    부러진 칼, 구멍 난 방패, 닳아버린 갑옷, 찢어진 워커, 깨진 보석, 녹슨 투구, 썩어 버린 물약…….

    그것들은 무거운 철추에 깔려 한데 뭉쳐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뜨거운 열이 고물과 폐기물들을 뜨겁게 달구며 요란한 증기 소음을 터트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있는 널찍한 공터에 세 명의 사람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바로 고물상인 NPC들이다.

    첫 번째로 보이는 이는 훤칠한 키에 냉막한 인상을 가진 남자였다. 이름은 ‘그레이드’

    [등급이 높은 아이템이 깨졌나요? 저에게 가져오시면 값을 잘 쳐드리겠습니다]

    두 번째로 보이는 이는 볼륨감 넘치는 몸매에 애꾸눈, 한쪽 팔과 다리가 강철로 된 여자다. 이름은 ‘리엔포스’

    [아앙? 강화가 많이 된 아이템이 깨졌다고? 어차피 똥값 된 것 그냥 나한테 넘기는 게 어때?]

    세 번째로 보이는 이는 키 작고 추레한 노숙자 노인이다. 이름은 ‘홈리스’

    [폐 아이템 줍는 것도 꽤나 쏠쏠한 부업이라네. 깨진 게 필요 없다면 나 주게나]

    이산하는 씩 웃으며 이우주에게 설명해 주었다.

    “뎀1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줄곧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장수 NPC들이지.”

    “그 정도는 나도 알아.”

    “오 그래? 그럼 깜짝 퀴즈!”

    이산하는 이우주를 돌아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초보자 마을에 있는 NPC들 중 제일 키 큰 사람이 누구게?”

    “그야 저기 있는 ‘홈리스’지. 언뜻 보면 구부정한 노인이지만 허리가 S자 형태로 굽어 있어 허리를 펴면 총 2.7M의 키가 된다는 설정이잖아.”

    “……오. 뭐야 너? 어떻게 알았어? 이건 내가 엄마한테 들었던 비밀 정보인데.”

    “말했잖아. 이 게임을 7년 동안 연구하고 분석했다고. 유딩 때부터 했어.”

    이산하 이우주 남매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고물상 근처를 지나고 있을 때.

    …쿵!

    저 앞에서 묵직한 소음이 들려왔다.

    이우주가 고개를 돌린 곳에는 커다란 스톤골렘 하나가 고물을 나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뭐지? 고물상에 골렘 NPC가 있었나?”

    하지만 저 골렘은 아무리 봐도 NPC는 아니다.

    분명 플레이어가 다루는 하수인처럼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골렘의 뒤로 한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동양인 특유의 갸름하고 완만한 얼굴형에 회색 머리카락, 푸른 눈이 인상적인 여자였다.

    서양인과 동양인의 혼혈로 짐작되는 이국적이면서도 친숙한 외모.

    이우주가 그녀를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이- 솔레이크. 오랜만~”

    이산하가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솔레이크라는 이름으로 불린 여자가 이산하를 향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 산하 리. 나는 반가워?”

    기묘한 한국어. 그것을 듣는 순간 이우주는 그녀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설마 솔레이크 쟌 누나야? 드레이크 삼촌이랑 윤솔 이모네 딸?”

    “보면 모르냐? 아, 오래 못 봐서 얼굴 잊어버렸을 수도 있겠구나 넌.”

    이산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솔레이크. 그녀는 몇 구의 골렘을 거느린 채 해사하게 웃고 있었다.

    “안녕하신가. 힘세고 강한 아침. 만일 내게 물어보면. 내 이름은 솔레이크! 우주 리는 나와 상당히 오랜만인 것으로 여겨진다. 기억나는지 궁금. 내 얼굴!”

    “기적의 0개 국어는 여전하구만! 아하하!”

    솔레이크와 이산하는 손깍지를 끼며 발랄하게 웃었다.

    이산하는 이우주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 녀석이 네가 말한 특성이 어디에 있는지 안대.”

    “저, 정말요?”

    이우주가 간절한 눈빛을 보내자 솔레이크는 유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Of course. 당근빳다죠. 그 특성. 희귀해. 하지만 No 희소해. 구하기 어렵고 무가치하다.”

    “어, 어디서 구할 수 있나요?”

    “Um…… 골렘 제작 퀘스트. 그것을 수행 중에 보았던 기억이 존재합니다?”

    솔레이크의 말에 이산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도그숲 지나면 있는 달빛 광산에 토륨 광석 캐러 갔다가 봤다고 그랬어. 달빛 물든 토륨주괴골렘 제작 퀘스트 도중에 말이야.”

    “Oh! 맞아. 지난주 Saturday. 목요일. 누가 자꾸 나의 토륨 주괴. 상회입찰. 직접 구하러 가는 것이 불가피. That’s 개고생.”

    “그런 건 관심 없고. 그래서, 어디 가면 그 특성을 구할 수 있는데?”

    이산하가 묻자 솔레이크는 씩 웃더니 검지를 흔들었다.

    “산하. No pain, no gay.”

    “고통 없이는 게이도 없다? 아, 진짜 아까부터! 너 괜히 하지도 못하는 영어 쓰지 말라고!”

    “오케이. 산하. 큰 정보에는 큰 대가가 따르는 법. 대가는 마음에 들어야 한다. 그 정보에 대한. 누구의 마음? 나의 마음!”

    “공짜로는 안 된다는 말을 되게 어렵게 하네.”

    이산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이우주를 돌아보았다.

    “들었지? 정보료를 내래.”

    “뭘로 내면 돼요?”

    이우주가 묻자 솔레이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보유하고 있다. 개인적이고 사적인 고민. 그것은 아마도 버그.”

    “……버그요?”

    “Yes. 버그. 니가 생각하는 그 버그. 내 게임 플레이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는 나쁜 버그. Oh, That's terrible.”

    솔레이크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버그. 너무 싫다. 그것이 존재하는 이유로 나는 중요하며 핵심적인 퀘스트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지금도 현재진행형. ing. ing. ing.”

    “무슨 버그이길래 그래요?”

    “던전 공략. 너무 어려워.”

    솔레이크의 대략적인 설명은 이러했다.

    그녀는 며칠 전부터 ‘홍옥의 파사(婆娑)’라는 던전에 도전하고 있다고 했다.

    그 던전의 보스에게서만 구할 수 있는 몇몇 핵심 퀘스트 아이템을 수집하기 위해서이다.

    “……홍옥의 파사라. 그리 공략 난이도가 높지는 않은 던전이네요. 중저렙 화염계열 몬스터들이 서식하는 곳이죠. 더위먹은 불쥐, 불갯지렁이, 유사암룡, 화산탄 골렘, 용암달팽이, 백도씨불꽃, 천도씨불꽃, 그리고 보스몹인 만도씨불꽃과 용암장갑룡이 랜덤으로 등장하는 비인기 사냥터인데. 거기에 버그가 있다고요?”

    “Yes. 하지만 그 버그 때문에 매번 나는 실패. 보스 몬스터 레이드. 몇 주째 퀘스트가 막히다. 내 인생도 함께 막혀 있는 듯?”

    솔레이크의 말을 들은 이산하와 이우주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이상하다. 얘 레벨이랑 장비 정도면 좀 아슬아슬하긴 해도 충분히 솔플로 보스 레이드가 가능할 텐데?”

    “맞아. 누나보다 레벨도 더 높아 보이고, 애초에 토륨골렘을 주조해서 데리고 다닐 정도면 꽤 랭킹도 높을 텐데…… 왜 홍옥의 파사에서 막혀 있지? 대체 무슨 버그이길래?”

    그러자 솔레이크는 두 남매의 의문에 대답해 주었다.

    “골렘에 문제 있어? 그것이 이유.”

    “그러니까 네 골렘에 뭔가 버그가 있다는 거지?”

    “Yes. 바로 그것.”

    “무슨 문제가 있는데?”

    뎀은 버그가 거의 없기로 유명한 게임이다.

    그것이 이산하와 이우주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 이유였다.

    순간, 솔레이크의 표정이 더없이 진지하게 바뀌었다.

    “나도 안다. 있다는 것을.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오해 받을 여지.”

    이윽고. 그녀는 두 남매의 귓가에 대고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버그에 관한 비밀을 털어놓았다.

    “내 골렘. 민트초코 아이스크림 알레르기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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