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881화 (881/1,000)
  • 외전 7화 강호 출도 (3)

    허생은 남산 아래 묵적골의 오막살이집에 살고 있었다.

    두어 칸 초가는 비바람을 막지 못할 정도였다.

    허생은 책 읽기만 좋아하고 그의 처가 남의 바느질품을 팔아서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어느 날 굶주리다 못한 아내가 과거도 보지 않으면서 책은 무엇 때문에 읽느냐고 푸념했다.

    이에 허생이 아직 책 읽기에 능해지지 못했다 하자 아내는 기술이나 장사일이라도 하여 돈을 벌어 오기를 청했으나 거절당하자 결국 도둑질이라도 하라며 화를 내었다.

    ‘아깝다. 당초 십 년을 기약했는데, 인제 칠 년인걸…….’

    허생은 글 읽기로 십 년을 기약했는데 결국 7년 만에 폐하는 것을 슬퍼하며 집을 나갔다.

    -박지원, 『허생전』 中-

    *       *       *

    “그건 이제부터 누나가 찾아야지.”

    이우주의 말에 이산하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입을 반쯤 벌렸다.

    “야! 그런 특성은 들어 본 적도 없어! 어디서 입수하는지 어떻게 알아!”

    “누나는 마당발이잖아. SNS 팔로워들도 많으니까 제보 받으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아무리 그래도……”

    “나도 짚이는 구석이 몇 군데 있긴 있어. 혹시 모르니까 자료 조사만 좀 도와 달라는 말이야.”

    이우주의 말에 이산하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게까지 해 가면서 얻을 만한 가치가 있는 특성이야? 그런 특성을 보유하고 있는 랭커는 한 번도 못 봤는데. 차라리 검증된 것이 낫지 않겠냐? 좋다고 소문난 스킬 트리야 많은데.”

    모든 게임에는 공식 메타, 스킬 트리라는 것이 있다.

    너무나도 효율적이기에 공식처럼 굳어져 버린 몇몇 길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메타들 많잖아. 뭐가 있더라…… 아빠의 메타는 너무 독특해서 따라 하려는 사람이 없었고…… 역시 흑마법사 조디악 메타이려나? 죽이고 되살려 부하로 부리는 ‘투기장+언데드’ 메타는 대단했지. 아니면 세계랭킹 1위 튜더 메타는 어때? ‘광전사+성기사+테이머+흑마법사’ 조합을 베이스로 하는 쿼드라 클래스는 아직도 전설이잖아? 아니면 옛날 GM랭킹 1위였던 남세나 씨의 메타도 멋지고.”

    그 외, 수많은 랭커들이 만들어 냈던 메타들은 연구되고 발전되어 후세 사람들이 즐겨 선택하는 공식이 되었다.

    전부 다 세계에서 이름을 날렸던 메타, 스킬 트리들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그것들 중 아빠를 넘어섰던 메타가 하나라도 있었나?”

    이우주의 신념은 확고했다.

    “전성기 시절의 아빠는 세계최강, 아니 역사상 최강의 플레이어였지.”

    “뭐, 그 점에는 나도 동의.”

    “그 말인즉슨, 지금까지 연구되고 개발된 메타 중에는 아빠를 이길 수 있는 게 없다는 뜻이야.”

    이우주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빠에게 도전했다가 패배한 수많은 은메달리스트들…… 나는 그들의 재능과 운, 자질이 나보다 뒤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아. 내가 만약 그들의 메타를 흉내 낸다면 내 최종 종착지는 기껏해야 그들의 아류인 수준에서 그치겠지. 표절로 원작을 뛰어넘기란 불가능하니까. 그러니 아빠를 뛰어넘는 것은 당연히 무리일 거야.”

    “아니, 그래서 없는 길을 만들어 가겠다고?”

    “이미 뚫려 있는 길들의 한계가 명확한 이상 그럴 수밖에.”

    이우주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중학교 2학년생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강렬하고 곧은 눈빛.

    “지난 7년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 원래는 3년을 더 생각하려고 했지만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할 수 없지.”

    이우주의 시선은 눈앞에 있는 노트의 한 페이지에 머물렀다.

    특성: <롤모델>

    ↳상대방의 가장 뛰어난 특성 하나를 접촉할 때마다 0.01%씩 훔쳐옵니다.

    ※100%가 되어야 발동 가능.

    ※상대방이 죽으면 특성은 사라집니다.

    “역시 아빠를 초월할 수 있는 특성은 이것뿐이야.”

    “흐음. 이게 진짜 쓸모가 있는 특성일까? 희귀해 보이기는 하는데 일단.”

    이산하는 미간을 찌푸린 채 나름의 분석을 내놓았다.

    그녀 또한 상당히 오랜 시간 게임을 해온 몸인지라 안목이나 식견 자체는 상당히 뛰어난 편에 속했다.

    “일단 특성의 효율성이 좀 의심돼. 아빠는 접촉 후 무조건 1만 초를 기다리면 상대를 죽이게 만들었잖아. 물론 자연회복량이나 기타 변수들도 많았기는 했지만.”

    “맞아. 하지만 내가 얻고자 하는 특성은 1만 번의 접촉 후에야 비로소 시작되지. 누구는 1만을 기다리면 끝이지만 누구는 1만을 기다려야 비로소 시작이야.”

    이우주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후발주자인 내 입장을 잘 대변하는 것 같지 않아? 그래서 더더욱 마음에 들어.”

    “아니, 알겠는데…… 상대방을 만 번 공격해서 특성을 빼앗았다고 치자. 무슨 특성을 빼앗아 올지 어떻게 알아?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달라지고 휘발될 그 수많은 스킬들을 어떻게 다 쓰겠어.”

    “그러니 내가 지난 7년간 철저하게 분석하고 또 연구한 거야. 어떤 순서대로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그 수많은 변수들을 모조리 경우의 수로 계산해 가면서. ……게다가.”

    이우주는 눈을 빛내며 첨언했다.

    “어떻게 보면 ‘특정’ 몬스터만을 타깃으로 할 경우에 한해 내 쪽이 오히려 더 유리할 수도 있어.”

    1만 초 뒤에 적을 거꾸러트리는 능력은 어느 몬스터에게나 먹힌다.

    그러나 1만 번의 접촉 후에 대상의 특성 중 하나를 빼앗아 오는 능력은 상당히 비효율적이다.

    어떤 대상에서 무엇을 빼앗아 올지 매 레이드마다 변동이 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몬스터만을 타깃으로 할 경우에는 오히려 극적인 의외성을 이끌어 낼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이 ‘롤모델’이라는 특성.

    “즉, 시간제한 없이 불특정다수를 사냥하는 것에는 아빠의 메타가 절대적으로 유리하지만 한정된 시간 내에 특정 상대를 사냥하는 것에는 내가 더 유리할 수도 있다는 거야.”

    “그런가. 1의 차이로 패배할 확률이 100%인 것보다 99의 차이로 패배하느니 1%라도 이길 확률이 있는 쪽을 고르겠다는 거네.”

    “맞아, 그거야. 안정적으로 적게 지는 것보다는 불안정하고 크게 질 위험이 있지만 조금이라도 역전의 발판을 만들 수 있는 편이 낫지.”

    “……아빠를 롤모델로 삼고 있는 너한테는 어찌 보면 딱이네.”

    이산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우주는 미소 지었다.

    “나는 새로운 길을 열 거야. 아빠를 뛰어넘을 만큼 악랄하고 다채로운 기술 폭을 손에 넣고 꼭 태양룡과 오만의 악마성좌를 잡아내겠어.”

    “뎀앤도 구하고 말이지?”

    “……그때 그 계정은 삭제하고 다시 만들었거든? 아무튼! 들어봐! 아빠는 거의 미래예지에 가까운 사전조사로 레이드를 개척해 나갔잖아. 하지만 한계가 있었어.”

    “아빠에게 한계가 있었다고?”

    “응. 아빠의 레이드 동영상들을 수도 없이 돌려 보면서 알게 됐지.”

    이우주는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아빠에게는 재능이 없었어.”

    그 말에 이산하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이우주가 뿜어내는 기세에 한순간 압도된 탓이었다.

    이우주는 말을 이었다.

    “그것은 확실해. 아빠는 그다지 재능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어. 다만 노력과 열정으로 벽을 뚫고 임계를 넘어 버린 특이한 케이스지.”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야. 나는 아빠와 달라. 엄마 쪽에서 물려받은 천부적인 재능이 있지. 즉 피지컬이 된다는 말이야. 그건 프로 구단들의 러브콜로 확실하게 증명됐어.”

    “그건 맞지.”

    “그리고 나는 아빠의 뇌지컬 역시도 물려받았지. 분석력과 응용력, 즉각적인 상황 판단력까지 말이야. 그러면 같은 출발선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는 내가 제일 아빠를 뛰어넘을 가능성이 높지 않겠냐 이 말이야!”

    “맞아! 우리는 타고났어!”

    “……우리는 아니고. 나만인 것 같던데. 아까 레이드 뛸 때 보니까.”

    “오늘도 여전히 재수없구나 동생아.”

    이산하는 동생을 콱 쥐어박으려다 말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암튼 알겠어. 롤모델 특성이라 이거지? 만 번을 더듬어야 어른이 된다, 뭐 그런 건가?”

    “맞아. 이 특성을 꼭 손에 넣어야 해. 그래야 태양룡과 오만의 악마성좌를……”

    “아빠보다 먼저 잡을 수 있다 이거지? 알겠어. 일단 아까 친한 사람들에게 먼저 연락을 돌려보긴 했는데, 워낙에 희귀한 특성이라서 아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겠다. 뭐, 정 안 되면 방송이나 SNS로 제보 받아야……”

    바로 그때.

    위이잉-

    이산하의 핸드폰이 한번 울렸다.

    핸드폰 액정 화면에 새로운 문자 메시지가 와 있는 것을 확인한 그녀의 눈이 일순간 동그랗게 변했다.

    ……그리고.

    “우후후후후후- 그래. 공작새는 의외로 가까이에 있다고 했던가.”

    “파랑새겠지.”

    “아무튼 동생아.”

    이산하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들고 눈앞의 이우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껏 뻐기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누나가 이 특성 어디서 얻는지 찾아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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