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880화 (880/1,000)
  • 외전 6화 강호 출도 (2)

    온통 초토화된 제전에는 포연만이 자욱하다.

    황금빛 바닥은 뱀이 기어간 자국처럼 길게 녹아내려 있었고 곳곳에 시커멓게 탄 자국들이 보인다.

    [이겼다! 이겼어! 해냈다구!]

    이산하는 제전의 중심에 서서 온 힘을 다해 외쳤다.

    HP는 두 자리 수가 간당간당하게 남아 있는 상태였다.

    -레전드급 빅매치였다...

    -남매 간의 피튀기는 배틀로얄ㄷㄷㄷ

    -ㄹㅇ...5초만 더 여유 있었어도 동생이 이겼다;;;

    -근데 동생 분 진짜 재능충이시네...그 레벨에 장비로 눈나랑 비비다니...

    -바꿔 말하면 산하 눈나의 재능도 역대급임ㅇㅇ

    -ㄴㅇㅈㅇㅈ그 레벨에 그 장비에 무명여왕의 몸에 빙의까지 했는데 이렇게 근소한 차이로 이기다니...

    -ㄴ이 싸움.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진다...!

    -ㄴ해냈다의 뜻을 잘못알고 있는 거 아님? ㅋㅋㅋㅋㅋ

    -ㄴ역대급 발컨....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눈나...그렇게 환호하지 마...우리가 부끄러워...ㅠㅠ

    .

    .

    [아, 아무튼 이긴 건 이긴 거잖아요! 어휴! 드디어 퀘 깼다! 그동안 여기서 막혀 가지고 열 받아 죽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한숨 돌렸어요!]

    -산하눈나 특) 게임 보스에게 막혔던 건 부끄럽고 오늘 게임 갓 시작한 친동생한테 막혔던 건 안 부끄러움

    -ㄴ산하눈나 특) 게임하다 막히면 혈관도 막힘

    -ㄴ산하눈나 특) 텐션도 높고 혈압도 높음

    -눈나 혈압 조심해요. 그러다 방송 못 켜면 어떡해...!

    -ㄴ역시 건강보다는 방송이지~

    -ㄴㅇㅈ아파도 방송 켜고 아파해야됨ㅎㅎ

    -근데 남동생 분 이름이 이우주? 라고 하셨던가. 진짜 미친 재능이다...

    -ㄴ보니까 피지컬 자체가 끝판왕 급이었음. 저 정도 레벨에 저 정도 피지컬 보여준건 튜더가 유일했는데...

    -ㄴ솔직히 자질만 놓고 보면 튜더보다 나은 듯?

    -쪼렙에 기본템으로 이름없는 여왕에 빙의한 산하눈나랑 비등비등할 정도면...

    -남동생 분은 딱 이 던전에 들어올 수 있을 정도의 레벨이랑 장비만 갖췄던데...만약 레벨링 어느정도 하고 템도 다 맞추면...ㅗㅜㅑ 그날 괴물 하나 뜨는 날일 듯...

    -ㄴㅋㅋㅋㅋ아 한국 프로팀 뭐하냐고~ 당장 스카웃 안하고

    -내가 보기엔 이 영상 퍼지는 순간 전 세계 프로구단 다 뒤집어진다ㄷㄷㄷ

    -성지순례왔습니다...

    -ㄴ성지순례왔습니다... 아들낳게 해주세요...

    -ㄴ성지순례왔습니다... 딸낳게 해주세요...

    -ㄴ성지순례왔습니다...로또되게 해주세요...

    .

    .

    [아무튼! 저 오늘 미션 클리어 했구요! 이제 보상 챙긴 뒤에 방종하겠습니다아! 오늘도 감사했어요! 산바!]

    -산바

    -산하 바이라는 뜻

    -산바~

    -수고하셨습니다~

    -눈나 방송 좀 더 자주 켜줘!

    -ㅂㅂ

    -ㅅㅂ

    -산바라는 뜻~

    -ㅅㅂ~

    .

    ,

    *       *       *

    -띠링!

    [로그아웃 하셨습니다]

    [다음에 또 와 주세요]

    .

    .

    이산하는 캡슐에서 뛰쳐나오자마자 곧장 동생의 방문을 열어젖혔다.

    “야! 이우주!”

    “노크! 좀! 하라고! 옷도! 좀! 입고!”

    신경질적으로 버럭 소리치는 이우주의 눈빛에는 약간의 침울함이 깃들어 있었다.

    “야, 너 우냐?”

    “안 울어.”

    “에이, 우네. 또 아빠의 벽을 못 뛰어넘었다고 질질 짜고 있었나 보네. 이 파파보이 놈!”

    “아니라고. 안구 건조증 때문이야 이건.”

    이우주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약간의 침묵 끝에 조용히 말을 잇는다.

    “……아니. 사실 맞아. 눈물이 찔끔 나오더라. 아빠라면 분명 그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이겼을 텐데.”

    갑자기 진지해진 동생의 목소리에 이산하 역시도 머쓱한 표정으로 장난기를 거두었다.

    “야! 네가 그러면 내가 뭐가 돼! 너 정도면 진짜 잘한 거야! 그리고 아무리 아빠라고 해도 그 상황을 어떻게 뒤집냐?”

    “아빠는 예전에 해냈어. 엄마가 이름 없는 여왕에게 빙의했을 때 이겼다고.”

    “그거야 이미 핵심 코어템이 나와 있는 상태였으니까 그렇지. 아빠는 거의 풀템이나 다름없었다고. 그리고 그때는 이름 없는 여왕이 B+급 몬스터였고. 너도 알다시피 대격변 이후 전체적으로 구버전 몬스터들의 공략 난이도가 훨씬 올라갔잖아!”

    “다 핑계야. 나는 결국 아빠의 벽을 넘어서지 못……”

    “아 됐고! 너는 이번이 첫 레이드였어! 이 정도면 발전 가능성이 충분하다 못해 무궁무진하지! 벌써 내 채널에 쪽지들 쌓이고 있는 거 안 보여?”

    이산하는 이우주의 목덜미를 콱 잡아끌며 자신의 핸드폰에 온 메일들을 보여 주었다.

    <안녕하세요, ㈜리얼뎀코리아 구단의 김철현 감독입니다. 귀하의 방송에 출현하셨던 플레이어 분의 재능에 반해 이렇게 컨택 메일을 남깁니다. 저희 구단은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있는 명문…… 제 직통 번호를 남기오니 부디 회신 부탁드립……>

    <본 메일은 뎀 프로구단 ‘서울더와일드’의 공식 메일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구단주인 장진혁 전무이사입니다. 저희는 서울을 대표하는…… 오늘 귀하의 방송에 출연하셨던 의문의 플레이어의 레이드에 깊은 감명을 받아…… 방송을 보신 구단주님께서 직접 연락을 취하고 싶다고 하셨…… 부디 좋은 연봉으로 저희가 모셔가고 싶……>

    <안녕하세요? 한국을 대표하는 구단 ‘블러드문’의 감독 김태경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귀하의 플레이에 한눈에 반해 버렸습…… 연봉으로 어떤 액수를 희망하시든 간에 최대한 맞추어 조율해 드릴 수 있는…… 가까운 시일 내에 만나 뵙고 이야기 나누고 싶…… 부디 꼭 저희에게 함께할 수 있는 영광을 주셨으면 좋겠……>

    <다시 한번 메일 드립니다! 저는 엘북스 구단의 감독 김슬비입니다. 제 직통 번호와 메일, 블로그 주소로 회신을 보내 주시면 저희 쪽의 계약 조건과 자세한 정보를 안내해 드리고자 합…… 파격적 연봉과 복지, 자신 있습니다! 구단의 전 직원 일동이 오직 플레이어 님의 회신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습……>

    .

    .

    “……이게 정말 나한테 온 메일들이야?”

    “그렇다니까! 야! 이 누나가 다 흐뭇하다! 짜식! 초장에 이렇게 프로구단들의 러브콜을 무더기로 받는 뉴비가 어딨냐! 어구, 이 기특한 놈! 여러분들! 얘가 내 동생이에요!”

    이산하는 이우주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으며 웃는다.

    이우주 역시도 얼떨떨한 표정으로 머뭇거리다가 이내 배시시 웃었다.

    이산하는 이우주에게 어깨동무를 걸며 말했다.

    “아무튼. 이 누나는 네가 해낼 줄 알았다. 너 진짜 잘하더라.”

    “냉정하게 말하면 잘한 건 아니야. 이론과 실제가 달라서 허둥댔던 적이 5번, 실수가 4번 있었어. 의심하고 머뭇거리다가 킬각을 놓친 것도 한번 있었고.”

    “그, 그래. 암튼 넌 재능이 있담마.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몰랐거든.”

    이산하는 눈을 반짝이며 이우주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결심했어. 너도 태양룡과 오만의 악마성좌를 잡으러 갈 때 끼워 주기로 말이야!”

    “……뭐?”

    “뭐라니. 너도 한 자리 주겠다 이거지! 이 누나를 힘써 도와라!”

    “싫어. 혼자 할 거…… 얽!?”

    이우주의 거절은 강력한 헤드락으로 인해 무효화되었다.

    “하, 할게! 할게!”

    “자식이 튕기기는. 어차피 너도 레벨링이랑 장비 맞추려면 내 도움 필요하면서.”

    “……뭐, 그건 그렇지. 누나를 이용하면 초반에 쓸데없는 과정들을 많이 스킵할 수 있으니까.”

    “이용이라니, 자식 말 냉정하게 하네. 공생! 공생! 쌍무적 협력 관계!”

    이산하가 가슴을 탕탕 치며 하는 말에 이우주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무언가를 고민하던 이우주의 입이 열렸다.

    “좋아. 누나가 나랑 손을 잡기 위해서는 일단 도와줘야 할 것이 있어.”

    “뭐? 이게 어디서 건방지게 조건을 붙여?”

    “진정해. 태양룡과 오만의 악마성좌를 잡는 데에 꼭 필수적인 과정이야.”

    이우주가 대격변 업데이트를 언급하자 장난기 가득하던 이산하의 눈빛 역시도 진지해졌다.

    이윽고, 이우주의 입이 열렸다.

    “나는 아빠를 초월할 수 있는 메타를 얻을 거야.”

    “……그런 게 있어?”

    “있지. 딱 하나 존재해.”

    이우주는 심각한 표정으로 턱을 짚었다.

    “아빠에 근접할 수 있는 메타는 몇 가지 있어. 하지만 아빠를 뛰어넘을 메타는 오직 하나뿐이야. 나는 그걸 얻으러 갈 거야.”

    “뭔데 그게?”

    이산하가 묻자 이우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책장으로 가는가 싶더니 이내 어마어마하게 많은 서류 뭉치들을 이산하의 앞에 텅 하고 내려놓았다.

    이윽고.

    팔락- 파라락- 팔락-

    이우주가 골방에서 혼자 연구하던 지난 5년간의 연구결과들이 허공으로 나부낀다.

    그리고 이윽고.

    …탁!

    딱 한 장의 종이만이 이산하의 앞에 남게 되었다.

    그곳에는 이산하의 눈을 동그랗게 만드는 특성 하나가 적혀 있었다.

    특성: <롤모델>

    이우주는 단언했다.

    “오직 이 스킬만이 아빠를 뛰어넘을 수 있어.”

    더없는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이산하는 입술을 모으며 오~ 하고 감탄했다.

    “그래서. 그 스킬이 어디에 있는데?”

    당연할 질문이다.

    이산하는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 동생을 향해 해맑은 호기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이우주는 당연하다는 듯 질문에 대답해 이산하를 놀라게 만들었다.

    “그건 이제부터 누나가 찾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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