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879화 (879/1,000)
  • 외전 5화 강호 출도 (1)

    [Power Overwhelming. 힘↑이↓ 넘↑쳐↓ 흐↑른↓다↑ 최고로 High한 기분!]

    이산하는 이름 없는 여왕의 몸에 빙의한 기분을 한껏 만끽하고 있었다.

    한껏 커진 키, 볼륨감이 과하도록 더해진 몸매, 머리색과 눈동자 색이 바뀜에 따라 풍겨 나오게 된 이국적인 분위기.

    이우주는 변해 버린 누나를 앞에 두고 감탄했다.

    “원래도 몬스터 같았는데 진짜로 몬스터가 될 줄이야. 드디어 인간이길 포기한 건가?”

    동시에.

    -띠링!

    눈앞에 퀘스트 창이 떴다.

    <이우주 ver>

    지금까지 생사고락을 함께 해 왔던 파티원의 몸에 보스 몬스터의 영혼이 빙의했습니다.

    결단이 필요할 때입니다.

    -이름을 되찾은 여왕 ‘이산하’ 처치 0/1

    -보상 / ???

    -패널티 / 경험치 감소, 획득 골드 감소, 접속불가 1일.

    <이산하 ver>

    종래의 인연은 잊으십시오.

    이제 당신은 이 던전의 주인입니다

    -침입자 처치 0/1

    -보상 / ???

    -패널티 / 경험치 대폭 감소, 획득 골드 대폭 감소, 접속불가 7일.

    방금 전까지 파티였던 두 사람을 갈라놓는 퀘스트가 떴다.

    보통의 파티라면 여기서 서로를 마주 보며 쭈뼛쭈뼛 주저하게 되지만…….

    [동생아! 흙으로 돌아가거랏!]

    이산하에게는 그런 머뭇거림 따위가 존재하지 않았다.

    …콰쾅!

    친남매의 찐 우애를 뽐내기라도 하듯 뇌전창이 휘둘러졌다.

    돌기둥이 통째로 박살 나 흩어졌다.

    이우주는 머리를 숙이고 날아드는 참격을 피해 뒤로 물러섰다.

    [어쭈? 피해? 이걸 피해?]

    이산하는 계속해서 창을 휘둘렀지만 이우주는 요리조리 피하며 연신 뒤로 물러날 뿐이다.

    결국 참다못한 이산하는 빽 소리를 질렀다.

    [야! 피하면 어떡해! 나 퀘 깨야 되는데! 얌전히 죽어 걍!]

    애초에 이런 상황에서 순순히 죽어 주기 위해 이곳까지 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우주는 생각이 바뀌었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안 누나.”

    [?]

    “나, 이런 곳에서 죽을 수는 없을 것 같아.”

    [??]

    “이제부터는 진지하게 한번 해 보려고. 게임.”

    [???]

    “이번 대격변 패치를 보고 자극받았어. 꼭 내 손으로 태양룡과 오만의 악마성좌를 사냥하고 싶어. 아버지보다 먼저!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가야 해!”

    한편. 동생의 말에 이산하는 벙 찐 표정을 지었다.

    [아니…… 다 좋은데. 그걸 왜 지금 정하냐구! 하필 내가 퀘 깨려는 순간에!]

    “나. 아버지를 넘어서 볼 거야. 지금껏 지레 겁먹고 도망치기만 했지만 이제라도 정신 차리려고. 지금까지의 내가 너무 한심해. 도전했다가 아빠에게 미치지도 못하고 괜히 누만 끼치게 될까 봐 지금껏 회피하고만 있었는데 열정이 되살아났……”

    [알겠는데! 지금은 일단 그냥 죽어! 죽으라고! 나 퀘 깨야 된단 말야! 용돈 필요 없어!?]

    “아무튼 고마워 누나. 이것도 다 누나 덕분이야. 나 진짜 열심히 할게. 그리고 돈으로 내 열정을 살 수는 없어!”

    이우주는 본격적으로 자세를 잡았다.

    죽이려는 누나와 살기 위해 달아나려는 동생의 숨 막히는 추격전이 바야흐로 그 서막을 올리고 있었다.

    콰콰콰쾅!

    이산하는 뇌전창을 들어 지면을 쓸어버렸다.

    [뛰어야 벼룩이야! 최대한 빨리 끝내 주마!]

    시청자들은 이산하의 압도적인 승리를 예상하고 있었다.

    -저건 피하기 힘들지;;;

    -공격 자체를 멈추게 해야 하는데...렙이랑 장비 차이가 너무 심하다ㅋㅋㅋ

    -동생 상대로 인성질하네! 나쁜 눈나다...

    -나에게도 나쁘게 대해줘...하악...

    -산하 언니...몹으로 변한 것도 예뻐...

    .

    .

    그러나 이우주의 표정에는 여전히 큰 변화가 없었다.

    “……어쩔 수 없나. 챙겨 오길 잘했군.”

    이우주는 계속되는 뇌전 세례를 피해 품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이윽고.

    파앗!

    이우주는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이산하의 정면에 무언가를 꺼내 놓았다.

    그 순간.

    …뚝!

    폭풍처럼 이어지던 이산하의 연격이 멈췄다.

    -!?

    -멈췄다!?

    -왜 멈춤?

    -무슨 아이템 꺼낸 것???

    .

    .

    시청자들은 이산하의 공격을 막아낸 이우주의 아이템에 주목했다.

    -<작은 거울> / 거울 / F

    어디에나 널려있는 평범한 거울이다.

    -방어력 +1

    그것은 바로 거울. 별다른 옵션도 없는 평범한 거울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본 순간 이산하는 그 자리에 선 채로 굳어 버렸다.

    마치 자신의 얼굴을 본 메두사처럼.

    [……세상에.]

    이내 이산하의 입술이 더듬더듬 움직였다.

    [너무 예뻐.]

    -?

    -??

    -???

    .

    .

    [이, 이건…… 이건 너무 예쁘잖아. 이게 진짜 나야?]

    -???

    -????

    -?????

    .

    .

    이산하는 저도 모르게 거울을 손으로 한번 쓸어 보았다.

    한껏 커진 키, 볼륨감이 과하도록 더해진 몸매, 머리색과 눈동자 색이 바뀜에 따라 풍겨 나오게 된 이국적인 분위기.

    이른바 ‘이름 없는 여왕 룩’.

    평소 자기애가 강한, 특히나 룩과 커스터마이징에 자신 있는 존재일수록 이 새로운 커스텀에는 홀린 듯 빨려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그것은 거의 본능과도 같았다.

    이산하는 바로 스크린샷 버튼을 연타해 셀카를 찍기 시작했다.

    -눈나...나죽어...

    -오이오이 산하쟝! 오늘 수금 준비 만땅이구만!

    -ㅗㅜㅑㅗㅜㅑ 오늘 조명빨 지대로 받네 언니;;;

    -평소보다 더 예쁜데 뭐지??? 레전드다...

    -몬스터 되고 후광 이팩트 생겨서 그런듯요ㅎㅎㅎㅎ

    -자동 기미 보정ㄷㄷㄷ

    .

    .

    시청자들 역시도 자연스럽게 그 흐름에 동참하고 있었다.

    ……단 한 사람만 빼고!

    “골반을 빼느라 허리가 비었군. 볼을 부풀리고 손으로 입을 가리느라 하단 시야도 좁아졌고.”

    친누나의 셀카 삼매경을 눈앞에 두고 냉정함을 넘어서 혐오감까지 보이고 있는 이우주.

    그는 상점에서 산 철검으로 누나의 등팍을 힘껏 찔렸다.

    [꺄악! 브루투스 너마저…… 가 아니고! 이 자식이 진짜!?]

    이산하가 빽 소리치자 채팅창의 여론이 이우주에게서 돌아섰다.

    -산하눈나를 울리다니!

    -그게 설령 친동생일지라도 용서못해!

    -이우주! 나는 이제부터 네 안티팬이다!

    .

    .

    하지만 이우주는 전혀 굴하지 않았다.

    “봐줘서 고마워 누나.”

    [……뭐?]

    “하지만 나는 진지해. 내 실력이 지금 어디인지 시험해 보고 싶어. 그러니 봐주지 말고 전력을 다해 줘!”

    [……저, 전력을 다하라고?]

    이산하는 이를 으득 갈았다.

    [오, 오냐! 당연히 지금까지는 봐준 거였지! 이제부터 전력을 다해 주마! 한국전력이다!]

    되도 않는 무근본 드립과 함께, 뇌전창의 끝에서 번개줄기가 뿜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하하! 최고 출력을 넘어선 한 방이다! 두 발 중에 하나라도 땅에 닿는 순간 끝이야!]

    이산하는 자신감 있게 외쳤다.

    쩌저저저저저적!

    온 세상을 휘감아가는 이 극악무도한 번개줄기의 패턴은 그야말로 발 디딜 틈도 없이 몰아친다.

    예전에는 그나마 실낱같은 빈틈이라도 있었지만 이름 없는 여왕의 위험 등급이 A+로 상향 조정된 이상 그런 게 있을 턱이 없었다.

    ……하지만.

    타탁!

    이우주는 말없이 스탭을 밟기 시작했다.

    ‘↗↘⤾↗→↑⤿↗↘↑→↗↕⤿⤤↳↗⤹……’

    그것은 먼 옛날 고인물이 밟았던 전설의 스탭.

    동영상을 하도 많이 돌려 봐서 필름이 너덜너덜…… 아니, 와이파이 칸이 너덜너덜해졌을 정도.

    먼 옛날의 전율을 그대로 재현해 내는 이우주의 현란한 스탭에 시청자들은 오히려 열광하기 시작했다.

    -진짜 미쳐버린 재능이다ㄷㄷㄷ

    -서늘한 감각, 검성 이우주로 돌아갈 때다...

    -이 정도면 산하눈나 죽여도 인정이지!!!!!!!

    -눈나 분위기 파악 않되????

    -이쯤되면 눈나가 그냥 죽어줘라...

    -오이오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무리야! 이름없는 여왕이 B+급이던 시절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A+급이라고!

    .

    .

    몇몇 시청자들은 아무리 그래도 이우주가 이번 페이즈를 견뎌 내기 어려울 것이라 점치고 있었다.

    그러나.

    ‘확실히 그때와는 다르다. 이름 없는 여왕이 등급 상승을 하면서 더 정교하고 복잡하게 변했어!’

    그 점은 이우주 역시도 이미 인지를 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 상황 속에서 그가 택한 행보는……!

    타타탁! 토토토톳!

    바로 양손 워킹이었다.

    ‘↗↘⤾↗→↕⤿⤤↳↗⤹↑⤿↗↘⤾↗→↕⤿⤤↳↗⤹↑↑→⤾↗→↕⤿⤤↳↗⤹↑↕⤿⤤↳↗⤹↗↕⤿⤤↳↗⤹⤾↗→↕⤿⤤↳↗⤹↑⤾↗→↕⤿⤤↳↗⤹↑↗→↕⤿⤤↳↗⤹↑……’

    두 개의 발과 두 개의 손을 이용해 거미처럼 바닥을 사사삭 기어 다니는 이우주.

    그 현란한 스텝에는 작렬하는 번개의 그물망조차도 그냥 흘러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죽여! 가서 산하눈나를 죽여라!

    -가라아아아앗 고인물 2세에에엣!

    -재능폭력배 이우주 사랑해! 가즈아아아아!

    -이우주! 나는 네 안티팬에서 다시 돌아서겠다! 나는 이제부터 네 팬티안이다!

    .

    .

    시청자들은 결국 게임 잘하는 사람 편을 들기 마련이다.

    “누나! 봐주지 말고 진짜로 해!”

    [으-아아아아! 아까부터 진짜로 하고 있었어 이 새끼야! 람쥐썬더!]

    이산하는 온 힘을 다해 뇌전을 방출했지만 결국 이우주는 그 모든 것을 죄다 피해 버리고 말았다.

    압도적인, 실로 깡패에 가까운 재능. 거기에 지난 5년간의 치밀한 분석과 자료조사가 병행된 결과였다.

    …털썩!

    마나와 스테미나가 동난 이산하는 결국 힘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으으…… 야, 알겠으니까. 잠깐 쉬었다 해. 너도 피곤하지?]

    “응? 나는 괜찮은데. 굳이 쉬었다 할 필요는……”

    [아냐. 생각해 보니까 쪼렙 상대로 진심을 다한 내가 조금 부끄럽고 막 그렇다. 그리고 그거랑 별개로 동생 상대로 창을 휘둘렀더니 마음이 별로 안 좋네. 재정비하면서 좀 토크의 시간을 갖자 우리.]

    “누나…….”

    이산하의 말에 이우주는 약간 감동을 받은 듯 멈춰 섰다.

    -ㅋㅋ이걸속네~

    -않이 이걸 진짜 속는다고??;;;

    -우주쟝...생각보다 맘씨가 여리구나? 어려서 그런가...

    -그래도 결국엔 남매다 이거군...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다!

    .

    .

    하지만.

    새롭게 올라온 채팅 하나가 이우주의 눈빛을 바꿔 놓았다.

    -띠링!

    -‘철혈검가사냥개의회귀좆노잼’님께서 1,0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철혈검가사냥개의회귀좆노잼: 피가 아무리 진하다 한들 돈보다 진할까요?

    -철혈검가사냥개의회귀좆노잼: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

    ……그것은 거절하기에는 너무 많은 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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