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화 솔직히 완결 좀 에바였잖아, 안그래? (3)
도네 값은 한다며 멋지게 출전한 이산하의 불발탄.
이 역대급 발컨 앞에서 모든 이들이 레이드 실패를 점치고 있을 때.
“아, 생각했던 것보다는 쉽네요.”
혜성 같은 구원자가 나타났다.
이우주. 첫 게임 플레이. 첫 던전 레이드.
그리고 처음으로 잡은 것이 무려 B급의 강력한 몬스터.
“……아니. 엄밀히 말하면 첫 플레이는 아닙니다. 계정은 원래부터 있었어요. 던전 레이드 자체는 처음이지만 게임 방송도 많이 봤었고 또 나름 공략집이나 메타 분석도 철저히 했으니까 그다지 재능은 아니죠.”
시청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머쓱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는 이우주.
하지만 방금 전 그가 보여 줬던 재능과 자질은 분명히 진짜배기였다.
-아니;;; 저 몹이 저렇게 쉽게 잡힌다고????
-몇 번 치지도 않았는데 죽네...ㄷㄷㄷㄷ
-버그 아니냐;;;
-뭐임?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거임???
-잠깐 컵라면에 물 붓고 왔는데 왜 해골병들 다 죽어있음???
-님 이거 어떻게 하셨음???
-혹시 뉴비인척 하는 고인물 아냐?
-캐릭터 창 까라!! 레벨 공개해!!
-해.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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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들의 경악과 의심에 이우주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자신의 캐릭터 창을 공개했다.
<이우주>
LV: 13
HP: 130/130
호칭: 초보 모험가
형편없는 장비 탓에 기본만 갖추어져 있는 HP 박스.
특별한 퀘스트나 첫 레이드 성공 보상으로만 주어지는 호칭 특전도 당연히 일절 없는 상태이다.
이우주의 레벨과 장비는 분명 튜토리얼 지역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대로였다.
-않이;;; 그런데 어케 잡았냐고요!!!
-님아 진짜 어떻게 했는지 설명 좀 해주면 안됨?
-해골병사가 님 렙에 잡을 수 있는게 아니라고요;;;;
-진짜 버그 아니고서야 설명이 안됨ㅋㅋㅋ
-절.대.해.명.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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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요청에 이우주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으음. 버그는 아니구요. 그냥 직접 보여드릴게요.”
이우주는 상점에서 산 싸구려 철검을 들고 눈앞에 있는 언데드 병사를 향해 다가갔다.
“아시면 실망하실 텐데……. 진짜 별거 아니라서……. 그냥 다른 랭커 분들 하시는 거 보고 그대로 따라 한 거예요. 인간형 언데드 몬스터의 경우에는 팔다리 관절이나 목의 경추 부분에 극히 미세한 피격판정 박스가 따로 있는데 이게 기존 부위의 피격판정 박스랑 겹치도록 설정되어 있어서 그 부분을 찌르면 데미지가 두 배로 들어가거든요. 이 점은 다들 아실 텐데, 애초에 피격판정 박스라는 것이 부위별로 세밀하게 중첩되어 있잖아요? 그 부분을 딱 짚어서 때리면 데미지를 몇 배로 박는 게 가능하니까.”
-?
-??
-???
.
.
“그러니까 이런 거죠. 몸통 전체의 피격판정 박스가 있고 그 박스 안에 충격이 가해지면 데미지가 산정되는 거잖아요? 그러면 이제 그 안에 목 부분의 피격판정 박스가 또 있는 거죠. 그래서 목을 때리면 데미지가 두 배로 박히는 거고. 그리고 목 부분의 피격판정 박스 안에 1번 경추, 2번 경추…… 1번 경추 안에 척추동맥, 교감신경총…… 척추동맥 안에 쇄골하동맥, 횡동골, 경막…… 경막 안에 뇌막, 골막…… 뭐 이런 식으로 피격판정 박스가 또 있고, 그 피격판정 박스 안에 또 더 작고 세밀한 피격판정 박스가 있고…… 그래서 이 부분들을 골라서 때리면 데미지를 몇 배에서 최대 몇 십 배까지 박아 넣을 수 있다는 건데…… 저 같은 경우에는 일단 뉴런 단위까지 파악 중이에요.”
-???
-????
-?????
.
.
“그러니까 결국 모든 평타를 다 크리티컬 히트로 때리면 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 평타들이 끊이지 않고 쭉 이어지게끔 구분 동작으로 연계 콤보를 짜 두면 좋은데…… 뭐,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냥 허비하는 동작 없이 모든 공격을 적중시키면 된다는 겁니다. 약간 바늘로 찌르듯?”
-?????
-??????
-???????
.
.
“예…… 뭐. 그렇게 한 거죠.”
이우주는 멋쩍게 웃었다.
“진짜 별거 없죠? 그냥 다른 분들 방송 보면서 생각했던 거예요 개인적으로. 이렇게만 하면 B+급 이하 인간형 언데드 몬스터들은 쉽게 사냥할 수 있겠더라구요. 실제로 해 본 건 처음이지만…….”
-팩트) 저 친구가 지금 말하고 있는 ‘몇 겹으로 중첩된 피격판정 박스’의 크기는 바늘귀의 절반 정도 넓이이다.
-그...러니까...한 대도 안 맞고 내 공격을 모두 적중시키면 된다? 바늘귀 만한 공간을 비집고?
-요약하지면 몸 때릴 시 데미지 10, 그중에서 머리 때릴 시 데미지 20, 그중에서 이마 때릴 시 데미지 30, 그중에서 미간 때릴 시 데미지 40, 그중에서 미간 사이에 난 여드름 때릴 시 데미지 50이라는 소리죠??
-이런 방송을 하는 랭커가...있어???
-있기는 있음. 천상계에...튜더나 비앙카...아니면 페이사나 트로츠키 같은...;;;; 근데 그 사람들도 종종 실수 하긴 하던데...
-아니...제가 지금 방송 보면서 따라해봤는데...택도 없습니다...이거...뭐 어케했누 ㅅㅂ!!!!
-저건 바늘귀에 실 꿰는걸 100번 연속으로 해서 100번 연속으로 성공하는 거랑 비슷한 난이도인데...?
-와 진짜 역대급 재능충이다...
-재능폭력배...재능깡패...
-세상 혼자 살아요?
-거의 뭐 횡포네 이건ㅋㅋㅋㅋㅋ
.
.
실제로 이우주는 송곳과도 같은 낡은 에스톡 한 자루를 들고 언데드 병사들을 농락하고 있었다.
무거운 무기와 갑옷 탓에 이동속도가 느린 언데드 병사들은 이우주 앞에서 그저 무겁고 헐거운 고철덩어리나 다름없었다.
바늘귀의 절반도 안 될 정도의 피격판정 박스들을 에스톡으로 콕콕 찌르는 이우주.
그것을 본 이산하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입을 반쯤 벌렸다.
“야. 너 바느질 좀 한다?”
“몰랐어? 나 기술 가정 시간에 수행평가 만점이었잖아. 내가 애들 바느질 할 때 바늘에 실 못 꿴다고 해서 꿰어 주고 그랬지.”
“그게 한 번에 돼?”
“이게 왜 안 돼?”
이우주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이산하를 바라본다.
‘……뭔가 열 받는데?’
동생의 저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빛이 오늘따라 더더욱 마음에 안 드는 이산하였다.
이윽고.
-띠링
<잊혀진 고대문명의 유적 지하 7층에 입장하셨습니다.>
<죽은 자들의 광기가 활성화됩니다.>
이산하와 이우주 남매는 거대한 광장에 진입했다.
거대한 광장, 횃불들이 일렁거리고 있다. 주변은 온통 황토와 금 장식물로 가득하다.
차라라라락-
도르래가 돌아가자 쇠사슬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쿠쿵!
묵직한 굉음과 함께, 지하로 통하는 문이 열렸다.
온통 황금으로 치장된 공간 중앙에 커다란 구조물이 보인다.
칼과 창을 덧대 만들어진 거대한 왕좌.
그곳에는 키가 3미터는 될 법한 장신의 미이라 한 구가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었다.
“자, 세 번째 도전이군.”
이산하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왕좌의 미이라를 쏘아보았다.
우드득-
인기척에 반응한 미이라가 고개를 들었다.
무시무시한 안광이 폭사되며, 왕좌에 부착되어 있던 칼과 창들이 사방팔방으로 쏘아졌다.
-띠링!
눈누난나내가니누나네: 오늘 컨디션 괜찮네요. 캐리합니다! 템포 따라오세요~
눈누난나내가니누나네: 자!!!!!!!! 창칼난사 타이밍!!!!!!! 여!기!서! 피해욧!!!!!!!!!! 자 다들 구석으로!!!!!!!!!
눈누난나내가니누나네 님이 사망하셨습니다.
-띠링!
눈누난나내가니누나네: ㅈㅅㅈㅅ아까는 실수였음요ㅎㅎ;; 방금까지는 연습 게임! 지금부터가 진짜! 우리 이제부터 보스에게 죽는 사람 파티 추방합시닼ㅋㅋㅋ엌ㅋㅋㅋㅋㅋㅋㅋ
눈누난나내가니누나네 님이 사망하셨습니다.
눈누난나내가니누나네 님이 파티에서 추방당하셨습니다.
.
.
아프고 굴욕적이었던 과거가 떠오른다.
사방을 가득 채우는 것은 온통 창과 칼!
시작부터 공격이 퍼부어지는 시스템. 그야말로 극악의 난이도다.
“피해 동생아! 이거 광역기야!”
이산하는 잽싸게 기둥이 있는 구석으로 달리며 말했다.
……하지만?
“이건 굳이 구석으로 갈 필요가 있나? 그냥 누워서 피해도 되겠는데?”
이우주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마치 림보 게임을 하듯 바닥에 반쯤 드러누운 상태로 엉거주춤 움직였다.
샤샤샤샥-
놀랍게도, 창과 칼의 난무는 이우주를 피해 갔다.
미친 듯이 기둥 뒤로 달려 숨었음에도 불구하고 몇 번인가 칼과 창에 스쳐 HP가 닳아 버린 이산하는 그저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벌릴 뿐이다.
“……너, 그거 어떻게?”
“음? 그냥 보고 피했는데?”
“뭐? 그게 돼? 엄청 빠르게 날아왔잖아?”
“모르고 다른 데를 보고 있었다면 당했을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그쪽 방향에서 날아온다는 걸 알고 있는데 왜 맞아? 보고 있다가 피하면 되지.”
“?”
“??”
“???”
두 남매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우뚱 하는 동안 채팅창은 난리가 났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
-산하눈나 어리둥절잼
-아ㅋㅋㅋㅋ이우주랬나? 저 친구 예능감 있네
-보고 피하면 되죠 ☜오늘의 명대사;;;;
-지려버려따~~~~이게 재능이지!
-이거 방제 바꾸세욬ㅋㅋㅋ‘역대급 재능러의 깽판’으로ㅋㅋㅋㅋ
.
.
바로 그때.
…우드득! 꾸드드득!
보스 몬스터가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옥좌 위에 말라붙어 있던 태고의 언데드가 눈을 떴다.
[불경한 냄새가 난다. 수컷의 냄새가.]
장신의 미이라가 몸을 일으켜 아래를 굽어본다.
전신을 휘감고 있는 붕대. 머리에 쓴 거대한 왕관.
커다란 키를 가졌지만 분명 여자다.
굴곡진 몸과 왕관 아래로 늘어진 긴 머리카락을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
<이름 없는 여왕> -등급: A+ / 특성: 이심전심, 반전, 백전노장, 어둠, 언데드
-서식지: 잊혀진 유적지
-크기: 3m
-아주 먼 옛날 존재했던 고대국가의 마지막 여왕.
그녀가 다스리던 국가는 전 대륙을 호령할 정도로 크게 번창했었지만 어느 날 단 하루 만에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는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망국(亡國), 그녀의 한은 앞으로 천 년은 더 푸르리라.
-오!!! 드디어 최종 보스 타임!!!
-드디어 떴다;;; 무명여왕;;;
-와... 언제 봐도 포스 지리네...
-위험등급 오른 것 보소ㄷㄷㄷ
-대격변 이후 헬난이도로 떡상한 대표적인 케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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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떴다.
‘이름 없는 여왕’, 위험 등급은 무려 A+!
이 던전의 최종 콘텐츠가 강림하는 순간이었다.